2019. 7. 17. 17:16ㆍTMB
일정-2019년 7월6일 토요일 맑음
코스-La Frasse의 플뢰르 데 네이즈 호텔-Montroc 버스 정거장(1360m)-1.7km-Col des Montets(1461m)
-5.5km-Refuge du Lac blanc-4.0km-La Flegere(1875m)-4,5km-Planpraz(2000m)-1.5km-샤모니 슈드
TMB거리 15.7km+접속거리 1.5km=17.2km를 10시간 삼십분걸림
길은 끝나기위해 있는것이 아니고 다시 시작하기 위해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나의 여정은 오늘로 마감할때가 다가왔다
어젯밤 체크인할때 미리 받아놓은 버스티켓을 이용했다
새벽 첫버스가 6시 16분에 있어 부지런을 떨어 일찍 호텔을 나섰다
더운 햇볕 아래 산행하느니 차라리 이른 새벽부터 찬기운을 받으며 산행하기가 훨씬 수월하다는걸
아는 나는 차라리 아침밥을 주지않는 산장이 나은편이다
며칠전 봉아브리 산장에서 처럼 아침밥을 먹지 않고 나서니
먹은만큼 간다는 속설은 이른 새벽에는 상관없다는듯 뱃속은 비었어도 몸은 가볍고 머리도 맑았다
버스는 몇몇 산객들을 싣고 빠르게 산악마을을 지나 기차역의 종점인 몽뚝마을이다
철로가 통과하는 터널이 보이고 터널 뒤쪽으로 난마을 뒷산으로 올라 TMB길로 들어섰다
점점 철로와 마을을 멀어져 가고 있었다
마을을 뒤로 하고 걸은지 얼마 안되어 건장하고 잘 생긴 청년 두명을 만났다
한국남자로 보인다하고 생각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익숙한 말에 반갑기만 하다
광주에서 백백킹 하려 맘먹고 왔다는 청년들은 뜨레러상에서 오는길인데
어제 내가 지나왔던 포제트 능선을 걸을 예정 이란다
그들의 건강한 도전과 야망을 격려하며 헤어졌다
야생화가 야생초들이 천지인 마을 뒤산길은 아른 아침에도 나비와 꿈틀거리며 지나가는 작은 풀벌레들
부지런한 생물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이번 TMB걷는내내 야생염소라는 산양인 샤모아나 야생염소인 부크땡은 한번도 보질 못했다
종종 멋진 포즈로 찍사들 발길을 잡는다던데 나는 밤새 싸놓은 염소똥만 보고 있다
길 한가운데에서 염소똥이 수북히 너브러져 있고 죽은 지렁이도 있었다
야생에서는 죽고 사는것이 자연의 순환으로 자연스러운일이라서
죽은 나무의 흉상들이 초록의 생명위에 다시 우뚝우뚝 서 있는것도 그리 흉물스런 조각물이 아니다
예술로 승화된 작품들을 지나고 길은 점점 오른다
아마 땅속에 물길이 있는듯 물이 거품을 내며 솟구치다 가라앉는 장면도 목격했다
알프스 산에는 생과 몰이 연결된 장소임이 분명하다
이어 이차선 도로가 나오고 도로를 건너 몽떼 언덕이다
여기서부터 길은 점점 오르막으로 오른다
이어 조망이 트이면서 길은 바위사이길과 흙길이 번가라 지난다
락블랑 가는길에 자주 출몰된다는 산양을 기대 했으나 모습이나 하는짓도 쥐새끼처럼 생긴 마모트만
멀리서 조망된다
갈림길이 나오고 이곳에서 모두 쉬어가는 자리인듯 한무더기 사람들이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오전에 산행을 마치고 오후에는 제네바로 떠나야 하는 나는 한가한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어
에귀 루즈 허리길을 걸으면서 그들을 바라보는것만으로 대신한다
아무리 설산과 검은산이 어우러진 빼곡한 멋진 풍경도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없다면
너무 거창한 경치에 그만 압도되어 기 죽는날이 되었을텐데
우주에서 가장 멋진 작품인 사람이 그것과 어울리는 산은 모두 그림이 아닐수 없다
갈림길에서 락블랑까지 다소 험한길이 나온다
바위에 직접 박은 통나무계단과 거의 구십도에 달하는 작은 철계단을 오르고서야
락블랑고개가 나온다
고갯마루에 서니 몽블랑 설산들이 좀더 가까이 다가오고 발 아래는 파란 호수속에 보석같은 침봉들이
박혀있다
걷기 시작한지 열하루가 되어가고 지칠때도 되었지만 빼어난 풍광은 자꾸만 왔던길을 뒤돌아보게
만든다
락블랑에는 작은 호수인 세서리 호수들이 여러개 있다
어찌나 물이 맑은지 어느곳이나 잔잔한 호수속에 풍덩빠진 에귀드루즈 산군들을 감상할수 있을텐데
아이들은 자꾸만 돌을 던진다
그야말로 잔잔한 호수에 돌 던지기다
산장 위의 락블랑 호수는 아직 녹지않은 눈이 호수를 반쯤이나 가리리고 있었다
고도가 너무 높은 해발고도 2352m에 오른 산객들이 꽤 많았다
호수주변 풀밭에는 야영하기가 좋다
산장에서 그늘막을 찾아 점심으로 콜라에 파이 조각하나를 사먹고 일어났다
락블랑 산장에서 부터 프레제르까지는 4.5km만 가면 된다
프레제르 가기전에 풍광도 얼마나 빼어난지 초록색 일색인 초원언덕에 노랑 민들레와 연보라 토끼풀
연녹색 아네모네 빨간 알펜로제 꽃들이 향연을 이루고 뒤로는 병풍처럼 몽블랑 산군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져있다
아마도 이구간이 일주일전 푹 꺼진 페레계곡 건너편의 몽블랑과 그랑조라스를 바라보며
걷던 사팡고개와 함께 가장 발은 편하면서 눈은 호강을 하는 구간일것이다
아르장띠에르에서 올라오는 삼거리가 나오고 길은 다시 얼음의 바다라는 에르 더그라스와
눈이 덮힌 몽블랑 침봉들을 바라보며 케이블카역 밑에 있는 플레제르 전망대까지 오른다
힘들면 프레제르에서 케이블카로 레프라까지 내려가 샤모니로 가는 방법도 있으나
케이블카는 운행을 멈추고 있기도 하거니와 원점회귀 차원에서 난 처음 시작했던 쁘랑프라까지
걸어가기로했다
인공호수를 지나고 숲길과 마른길을 번가라 지나는데
아침 점심을 간단한 샌드위치와 오렌지 주스로 해결하고 무거운 배낭에 짓눌려 어깨가 빠질것만 같아
점점 뱃가죽은 허리로 달라붙는 느낌이다
식수도 떨어져 가고 체력은 바닥을 치고 있어 점점 힘들어진다
오후 햇볕은 이미 머리속과 팔 다리 어느 하나 가릴곳없이 뼈속까지 파고 들어 금방이라도 불이 날것만 같고
산벌레가 물어뜯은 종아리는 피멍이 든채지만 물러날수도 없다
이순간 알프스 산자락 돌무더기에서 쓰러지지만 않는다면 걸어야한다
백두대간 탄 여자가 이것도 못하고 포기할수는 없는 노릇이라 마지막 남은 오기가 필요한 시각이다
앉았다가 일어서면 곡소리가 절로나는 무릎 통증으로 오히려 서서 있는게 편안해진 지금
이미 하나가 된 맘과 몸은 나도 모르게 걷고 있었다
몽블랑을 실컨 눈과 가슴에 집어 넣으며 산허리를 끼고 돌아 마침내
TMB시작점인 쁠랑프라에 도달했다
산속에서 열하루를 아무런 사고 없이 마친 감격으로 몽블랑이 떠나 가도록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물소리 새소리 벌레소리 풀잎과 나뭇잎 소리 바람소리 햇볕 내리는 소리 구름소리 눈녹는 소리가
전부인 그곳에선 내목소리는 오히려 소음이라 화이 파이브로 대신했다
케이블카로 올라왔던 샤모니땅을 다시 밟고 샤모니 슈드로 걸어가는데
벌써 오후 네시가 되어간다
제네바 국제공항까지 가는 버스 예약 시각은 오후 다섯시다
샤모니 시내 중앙으로 걸어내려오면서 야외 우물에서 식수를 채우고
목말랐던 목을 축이려는데 탈수 직전이였는지 거의 병이 바닥날정도로 물을 마셨다
소쉬르와 발마 입상과 조금뒤에 있는 파카르의 좌상을 다시 보고
두려움과 신비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몽블랑 주변의 산들을 실컨 구경하고
산행도 할수있는 용기를 부여한
그들 삼인 영웅의 알프스 몽블랑 도전정신에 다시금 경외를 표했다
정확히 오후 다섯시가 되어 알핀 버스는 우리 부부만 태운채로
프랑스땅을 벗어나 스위스땅인 제네바 국제공항까지 왔다
공항에서 연결된 수퍼로 들어가 가장 먹고 싶었던 달달한 수박 한조각과 오븐 닭과 사과와
푸딩케잌도 샀다
TMB 일정내내 덥다고 때론 힘들다고 투덜대는 나 때문에 속은 썩었어도
피 한방울 보지않던 남편은 새로산 면도기를 개봉하며 손가락에 피를 뽑아내고
그날밤 과식을 하고 잤다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뒤 호텔 새벽 조식을 끝으로 우린 비행기에 올라 뮌헨에서 환승하여
다음날 한국으로 귀국했다
자고나면 높은 하늘에 둥근 태양이 떠 언제나 뜨거운 햇살이 머물렀던 열하루
햇볕을 푸짐하게 선물 받았던 초여름날의꿈은 그렇게 추억이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