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14. 17:14ㆍTMB
일시-2019년 7월4일 목요일 맑음
코스-Champex Gite Bon Abri(1440m)-1.5km-Relais D`Arpette(1627m)-5.5km-Fenetre d`Arpette(2665m)-3.3km-
Chalet du Glacier(1583m)-1.6km-Les Grands Dessus(2113m)-4km-Col de Balme(2191m)-1.5km-
Gite Charamillon(1920m)
17.4km를 13시간 걸림
오늘은 TMB일정중에서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면서도 가장 힘들다는 코스가 있는날이다
상팩스에서 트리앙까지 가는길은 두갈래가 있다
보통의 경우 보빈느 목장쪽으로 산허리를 우회하여 가는길이 있고
아르페뜨 고개를 직접 넘는길이 있다
우린 아르페뜨 고개를 넘어 트리앙 못미쳐 글라시에 휴계소로 하산했다가 무인산장에서
다시 발므고개를 넘어 사라미옹까지 가야하므로
오색에서 대청봉 찍고 희운각 대피소로 하산하여 다시 공룡능선을 타고 마등령 저항령에서
황철봉의 너덜맛을 봐야 하는 수준이랄까
비행기 타기전부터 고도는 천이백이상 올리고 너덜지대는 황철봉보다 험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안그래도 한낮 더위 때문에 평지길도 힘든데 오르막은 지옥에 다녀오는 수준일게다
여명이 트이기직전 떠나기로 했다
대신 산장에서 주는 아침식사는 거르고 전날 사둔 비상식량으로 대체하여야 한다
남들이 자는 틈을 타서 조용히 산장을 빠져 나왔다
훨씬 시원하고 상쾌했다
역시 산행을 남들보다 일찍 시작해서 일찍 마치는것이 한결 낫다
산장 마당옆으로 지나는 계곡물위의 다리를 건너고 임도를 건너면 숲으로 들어서는 지름길이 나온다
이슬에 젖은 풀들이 종아리를 적시고 서늘한 감촉이 든다
이른 새벽 새들이 지저귀고 나뭇가지와 이파리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조용한 아침을 깨운다
눅눅한 습기 젖은 공기 냄새가 진하게 코끝을 통해 폐부까지 전달되어
심신의 정적은 이미 깨어났다
완만한 오르막과 평편한길을 지나 아르파트 산장이다
아르파트 산장 주변에서는 야영도 할수 있어 조금더 숲으로 들어서니 대여섯개의 텐트가 쳐져 있다
아침 알람이 아니여도 새가 부르는 노래소리에 늦잠은 잘수 없을것이다
연신 계곡에서 흐르는 물과 초촉한 이끼 서린 바위돌과 작은 꽃들 큰 나무들이 서로 어울려
숲은 깊고 싱싱했다
샹팩스 호수에 물을 대는 수로 옆길을 따라 걷다 보면 차츰 시야가 트이고
한동안 평지길이다
너른 초원지대와 초록 풀들이 일주일넘게 타들어갔던 눈을 씻어준다
길가에는 금국화와 안개초가 피어있고 도라지꽃인가 우리꽃처럼 생긴 야샹화도 피었다
푸른 이끼돌과 낮은 초목지대가 나오고 하나둘 너덜 바위도 나온다
새벽부터 걷기 시작한지 벌써 두시간이 지나가고 허기진 배를 간단한 샌드위치로 채웠다
간혹 비가 많이 내리는경우 계곡이 범람하여 길이 없어진다는 길은 햇빛 강하고
맑고 투명한 하늘로 훤히 보였다
그동안 걷는내내 날씨로 인해 방해되는날은 없었다
처음 걷는길에서 길 까지 잃고 헤매면 두배로 고생 했을텐데 얼마나 다행인지
밤에는 잦은 비가 내려도 낮에는 화창하여 아무튼 날씨 하나는 복이 터졌다
아르파트 고개까지 오르려면 각오가 필요하다고 애써 다짐하여 이만한 너덜 바위쯤이야
하지만 발걸음은 점점 늦춰진다
빠르게 딛을수가 없다
비슴듬히 오르막이 시작되고 돌위에 새겨진 빨간색 페인트를 보면서 오른다
점점 경사가 심해지고 오를수록 바위돌도 커졌다
산사태가 난다면 걷잡을수없이 쏟아져 나도 바위돌이 되고 말것이다
황철봉에서도 조물주의 심술을 봤었는데 한단계 올려놓은 심술 바위들이 쫙 펼쳐져
그위를 조심스럽게 사뿐사뿐 거리면 다칠염려는 없을게다
너무 조심하였나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정상부근 급경사 오르막에는 눈이 녹지 않아 게걸음으로 걸어 올라 다시 너덜바위를 밟고
드디어 TMB 일정을 걷는 산객들중에서도 십분의 일도 못한다는 아르페뜨 정상고개에 섰다
해발고도 2665m의 하늘아래 높은곳은 딱 두사람과 개한마리가 있었다
이어 우리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던 두명의 커플과 무거운 카메라를 맨 남자가 올라왔다
젊은 남자는 바위위에 앉아 경치 감상중이고 늙은 남자 한분은 애완견하고 바나나를 나눠 먹고 있엇다
나도 가지고 온 바나나 한개와 오렌지 주스를 마셨다
올라온길을 뒤돌아보니 아찔한 경사와 돌무더기가 산사면으로 흐르는거 같다
위험천만한 광경이 아닐수없다
고갯마루 정상에는 알프스 침봉들이 손에 잡힐듯이 가까이에 있고 트리앙 빙하벽도 보인다
이정표에 적인 시간보다 무려 한시간 삼십분이나 늦었다
글라시에 휴계소까지 내려가서 다시 발므고개로 오르려면 아직 초반전인데 갈길은 구만리고 무릎은 뻐근하다
앉았다 일어서기가 힘들다
아마 가벼운 배낭매고 오르며 시간계산이 되었는지 이정표에 적힌 시간보다 무려 한시간여가 넘게 걸렸다
하산길이 걱정되어 통증이 감지되는 왼쪽 무릎에 테이핑을 한번 더 붙이고 압박 붕대로 감았다
고개정상에 상단부분은 급한 너덜지대를 지나고 사면으로 지그재그로 난길을 하산하면서
좌측으로난 트리앙 빙하를 내내보면서 걷는다
빙하색이 하얗고 푸르고 검고 오묘한 빛깔로 바위벽에 붙어있었다
지구 온난화로 이년전보다 눈녹은 흔적이 굉장한데 언젠가 모두 흘러 내릴것만 같다
점점 하산길은 완만해지고 너덜바위들은 작아진다
바위벽에 붙어 자라는 구절초가 벌써 피었다
이끼 잔디와 초록 습지를 지나고 돌지붕 움막을 지나 길은 편해졌다
초록풀 사이로 빨간 알펜로제도 피었다
드디어 쉴수 있는 산장이 나온다
산장 입구에 동양에서난 볼수있음직한 금동 부처 좌상이 있었다
쉽게 볼수 있는 십자가와 마리아상에 비하면 유럽에서 부처상은 처음 본다
글레시아 산장에서 거의 녹초가 되어 옆자리에 사람이 있음에도 양해도 없이
나무 의자에 덜썩 앉았다
그들 모두 알프스 산행나온 사람들이라서 마음은 넉넉했다
지치고 몰골 사나운 작은 동양인이 궁금했나보다
이딜가나 어디서 온사람인지를 먼저 묻는다
당당히 코리아 라고 말하고 한번 더 사우스 코리아라고 말하면 대부분 긍적적이 신호를 보낸다
예전에는 알지도 못하던 코리아의 위상이 케이팝과 축구 선수들로 유럽에서는 호감이 좋은편이다
열하루 일정에 오늘이 구일째가 된다니 모두 입을 벌리고 놀란다
집에서 가까운 산에는 오히려 자주 안가듯이 아마도 그네들도 알프스의 정기를 받으면서도
정작 알프스 산행은 아무나 하지 않는가보다
아무튼 한국명산도 다보지 않은 내가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를 걸치고 있는 알프스 산행을 하고 있다니
꿈을 꾸고 있는거만 같다
뭐든 먹어야 기운을 차릴텐데 스위스는 주로 독일어를 사용하여 메뉴판을 봐도 알수가 없으니
간단 영어로 옆좌석에서 먹고 있던 파이 두조각을 시켰다
블루베리 파이와 살구 파이중 살구 파이가 맛있었다
글라시아 산장에서 달콤한 휴식도 잠시 다시 배낭을 맸다
소비한 체력에 비하면 너무 적은양의 칼로리를 보충하였나 얼마못가 다시 허기지고 기운이 딸렸다
이미 지친 몸으로 산장 아래 급류에 놓인 다리를 건너 숲으로 들어가 갈길을 재촉했다
어찌나 많은물이 급하게 흐르는지 급류에서 내려오는 물살에 떨어지면 어디까지 떠내려갈지 모른다
알프스 산 곳곳의 계곡물은 흐르는 속도가 빗줄기가 떨어지는 속도만치 빠르다
글라시아 산장에서 오른편에 나있는 평탄한길을 택하면 호텔과 캠핑장이 있는 포르클라고개가 나오고
거기서 계곡을 따라 삼십여분 더 걸어 러 빼띠와 트리앙으로 넘어갈수가 있다는데
우린 산허리를 돌고도는 길을 택해 고생문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작은 산허리만 돌면 나오줄 알았던 발므고개가 가도가도 나올 기미가 없다
아마도 산을 한바뀌 뺑 돌고나서야 나왔던거 같다
오르막길은 흙길과 작은 자갈길 거기까지는 좋았다
길 옆으로 난 토기풀이 우리네 토종 토끼풀과 똑같은 흰꽃들이 많았고 보라색꽃도 있었다
작은 꽃들이 없었다면 길은 더 팍팍했을것이다
바위길을 오르고 오른다 심지어 절벽에는 쉬밧줄이 달려있고 우측으로는 까마득한 절벽이다
바위벽을 돌면 아마도 이곳이 마지막 숨이 넘어간 장소인듯 십자가도 세워져 있다
무인산장이라는 데쎄 산장이 나왔다
산장밖에서 쉬고있는 딱 한사람밖에 없어 조용한 산장은 식사는 되지않고 잠만 잘수 있다는 산장이란다
지쳤지만 쉴수가 없는 시각이여서 그냥 자리를 벗어났다
발므 고개까지 이정표는 한시간 삼십분이라고 쓰여 있는데 남은 거리는 무려 4km 날라가야 한다
고도는 그리 높게 오르락 거리지 않은데 왜 그렇게 힘이 드는지
여태껏 살면서 가장 힘든 산행중이였다
체력과 기력 모두 바닥나서 그런가 보다
다시 산허리는 쇠밧줄 바위를 지나고 너덜지대가 나온다
너덜 바위 사이에도 꽃은 피워내 생명의 끈질긴 강인함이 우리 삶과 비슷하다
지붕도 쓰러져가고 페허가된 움막을 지나고 또 다시 초록 풀사이로 지난다
그 와중에 하늘을 파랗고 햇볕은 내려쬐어 이미 내 다리와 토시를 벗어난 팔은 까만 흙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산 허리를 거의 다 돌았나 싶을때 눈밭이 나오고 다시 작은 너덜지대를 넘어
드디어 멀리 발므고개가 보인다
눈으로 가까이 보이는 고갯마루가 왜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던지
발므고개에 다달으니 거센 바람에 또 한번 놀랐다
목버프를 올리고 숨을 살살 쉬어도 찬바람이 코로 입으로 막 들어온다
발므고개에서 오늘밤 묵을 사라미옹 산장까지 이정표상으로 사십분이다
스키 슬로프가 지나는 완만한 내리막길을 정신없이 걸어 내려왔다
죽을 지경에도 오기가 생기면 또 다른 힘이 샘솟는지
사라미옹 산장에 도달하니 무려 열세시간을 걸어내고도 나는 건재했고 오히려
신비하리만큼 하루종일 햇볕이 머물럿던 머리는 맑고 몸도 개운했다
이미 저녁식사가 끝나갈 무렵 오후 일곱시 삼십분이다
씻는것은 식후로 미루고 밥부터 먹었다
언덕위에 있는 발므 산장에 예약하지 않은것을 후회하며 내려왔더니 발므산장은 공사중이란다
그동안 다녀온 산장에서 맛보기 힘든 식사와 친절로 힘든 구간 해냈다는 뿌듯함에 보태어
기쁨은 두배로 커졌고 그날밤 나는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사라미옹 산장비는 68 유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