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5. 16. 19:55ㆍ동식물
초롱이와 인연은 12년전으로 거슬러 가야된다.
원주에서 올라온지 몇달안되어 우리는 불암산자락밑에서 살았다.
이미 오갈곳 없었던 치와와 한마리와 이별을 경험했던 우리가족은 개를 다좋아했다.
여기저기 지린 오줌을 치울땐 다시는 키우지않겟다고 하면서도..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자상한 남편은 주말이면 산에 가길 원한다
그러나,나도 얘들도 힘든 산행을 즐기지 않는터라 어쩌다 한번 큰 인심인양 따라나서는게 고작이다.
가장의 말을 잘 듣지않는다며 가끔 화를내면 너무 무서워서..
해마다 다가오는 오월,유난히 화창한 어느날,
일찍 점심을 먹고 아이들과 함께 불암산에 올랐다.
입구에서부터 숨이 턱 막히는 콩크리트 오르막을 오르고,헉헉거리면서....
이름에서도 알듯이 바위를 안고,
오르다보면 오히려 정상에서는 완만한 산책길이 나와 비로소 숨을 고르게된다.
제법 나뭇잎 색깔도 진초록으로 변하고 그늘이 생겨, 짜증스럽던 얼굴이 퍼진다.
오늘 운동은 제대로 했구나 하며,
내려오는길은 누구라 할것없이 발걸음이 가볍다.
집으로 돌아가는길에 동물병원이있었다.
유리창 넘어에 보인는 종을 알수없는 조금만 강아지가 예뻐 다섯식구는 가던길을 멈췄다.
눈이 커다랗고 두귀가 쫑긋한 흰색 강아지였다.
어찌보면 토끼 같고,여우같기도 했던 강아지에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자연스레 안으로 들어가서 물어봤다.
이 강아지 파는거예요?
"오만원에 살려면 사가세요".
맞벌이가정에서 도저히 기를수 없어 판다는 강아지였다.
커다란 쌍까풀 눈에 반한 남편은 호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사고싶다는 눈치다.
그런데 지갑을 안가지고 나온 남편은 우리보고 기다리란다.
십분만에 나타난 남편은 돈을 지불하고 강아지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정확히 태어난 날짜도 모르고,유치를 가는걸보니 대략 육개월정도 되었나, 종도 모르는 잡종견인 강아지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우리 가족을 하나하나 쳐다보며 인사를 하는것같았다.
날 식구로 받아줘서 고마워요,하며..그날로 이름도 김초롱이 되고..
집으로 온 첫날 얼마나 뛰고 뛰던지 거실을 한오십번 왔다갔다 하면서 신고식을 치뤘다.
그렇게 가족이된 초롱이가 오늘 베란다의 햇빛을 쬐며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막둥이 아들 초등학교 일학년 때였으니까 벌써 열두살이 된 초롱이는 요즘은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성견이 되면서 딸내미 앞에서도 흔들어대는 꼴이 보기싫고,
잡종으로 환영받지 못할 씨앗을 남기게 하고 싶지 않아 거세를 시켰다.
사실은, 다리 들고 집안곳곳에 영역표시하는게 제일 싫었던거라하면 맞을거다.
초롱이한테는 종족보존을 끊어버린 미안함이 크다.
주로 앉아서 쉬고 자고 하다가 갑자기 더워진다거나 몹시 피곤할땐 마루에 내려와 쭉 뻗어버린다.
그럴땐 혹시 죽었나 생각이 들정도로
이삼년전부터 오른족 귀에 혈액종양이 생기기 시작했다.
불알 두쪽 떼어낼때 빼곤 병원에 가본일이 없이 건강한 초롱이도 이제 늙긴 늙었나보다.
웬만하면 자연사 하게끔 병원에 가는것은 싫어하는 우리식구들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같다고 본다.
발톱으로 긁어대지만 안하면 괜찮을것같다.
생일날을 유난히 좋아하는 초롱이
케잌을 얻어먹을수있고,
박수치면 노래도 부를수있고....
2009년 5월 이 화창한 날씨에
초롱이는 죽고 싶은것 처럼 힘이없다.
현관밖에서 발자국소리만 나도,컹컹 짖어대던 초롱이가
띵똥띵똥 초인종소리에도,전화 벨소리에도 조용해져버린 초롱이는 갑자기 밥도 안먹고,똥 오줌도 못가린다.
개밥을 잘안먹어 우유를 조금 먹인것이 채했나 숨소리가 고르지않고 토한후로 영기운이 없다.
금새 어땋게 될것같으니 우리집 남편은 모종삽이 있냐고 물어본다.
이뻐할때는 언제고...죽기전까지 청각은 뚜렸하다는데 섭섭하게시리...
내장고를 뒤져 홍삼엑기스 하나를 꺼내 꿀을 진하게 타서 강제로 입을 벌리고 먹였다.
축 쳐져 있던 팔다리와 게슴츠름한 눈동자가 하루정도 지났다.
이삼일이 지나고 눈이 조금 맑아졌나 싶었는데 여전히 밥은 안 먹는다.
어느덧 5월도 가고 6월이 시작되었다.
열흘을 고생한 초롱이는 여전히 사료는 거절하고 사람밥은 조금씩 받아먹는다.
열흘만에 진짜로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우리개는 이제 조용하다.
치매걸린 노인네 마냥 계속 왔다갔다 돌아다니다 힘없이 눈만 꺼먹꺼먹 떴다 감았다 자면서 하루를 보낸다.
죽는것이 순식간에 이러나 쉬워보여도 또 가장 어려운 일이가보다.
금방 죽어버릴것같아 아차산중턱 양지바른곳에 묻어줄 장지까지 보고왔다는
남편을 무색하게 초롱이는 제법 자극에 반응을 하면서 잘견디고 있다.
지환이 대학들어 갈때까지라도 살아야지,아님 여름방학 생일때가지라도,
너가 좋아하는 생일 케익을 먹고 노래도 하고...알듣거나 말거나 중얼거리며 밥을 물에 불려 먹였다.
먹기싫으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고 혀로 내민다.
이제 내일부터는 혼자 스스로 먹도록 나둬 봐야겠다.
죽다 살아난 우리집 초롱이는 열흘 넘게 병치레를 하고 점점 좋아지고 있다.
이전 말썽이 다시살아나 저혼자 내버려두고 집을 비우면 오줌을 지려 놓는다.
한가지 못하는것은 침대위로 발딱 뛰어오르는것만 빼고는..조금 얌전해진 늙은 개가 되었다.
유월 등짝에 내리쬐는 햇살이 뜨거워도 좋은날,
아랫지방에서부터 장마철이 다가올시기다.
초롱이의 오른쪽귀에 붙은 혹을 띠기로 결정했다,
늙어서 죽지 혹때문에는 죽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이놈아가 자꾸 긁어대는 바람에 피가 나고 그피를 막는다고 반창고를 붙여둔것이 화근이되고 말았다.
안에서 썩는냄새가 나고 지도 불편한지 걸음걸이도 신통치가 않다.
병원에 가볼까 하다가 집에서 떼어내기로 하고 미용가위를 불에 소독시켰다.
미용가위는 우리가족의 머리를 손질하는데 사용한다고 십년전 거금 이십만원에 사서 지금껏 잘사용하고있다.
살짝 대기만 해도 종이가 쓱 잘려나가는 무서운가위다
잠자리만 옮겨도 나는 잠을 못잔다.
심지어 내침대가 아니고 딸이나 아들침대에서도 불편해 잠이 안온다.
이십육년을 같이살다보니 남편도 날 닮아가는지 내가 신랑을 닮아가는지
술이나 진땅 먹어야 골아떨어지지 집을 벗어나서는 꼴까닥 밤을 질긴밤을 보낸다.
잠자리만 바뀌면 잠못드는 남편은 어쩌다 하룻밤이라도 자는 산행을 하려면 고역이라며
친구인 닥터서한테서 얻어다 놓은 수면 유도제를
초롱이가 좋아하는 참외속에 버무려 먹이기로 했다.
어떨때는 나보다 더 영리한 초롱이가 먹지않는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마취는 아니더라도 잠깐이라도 자고 있으면 움직이지않아
잘라내기가 쉬울거라는 막연한 생각에 그랬는데 역시 귀신같은 그녀석이다
지난번 체했을때 먹인것같이 억지로 떠먹였더니 약효는 금새 나타났다.
비틀거리며 걸어다니는게 금새 고꾸라질것 같았다.
안쓰러운 나머지 안아주었더니 몇번 꽥꽥 토악질해더니만 실컨먹여놓은 약을 다 토해버리고 나선다.
그래도 약기운이 조금은 남았는지 혹을 만지지도 못하게 자지러지는데,
만져도 반응이 약해서 이때를 놓치면 안될것같은 예감이 들어 심호흡 한번 크게 하고 못할일을 하고 말았다.
엄지발가락 만한 혹은 순식간에 떨어져 나갔고,
초롱이는 별로 소리도 지르지 않았다.
유월 한낮에 무거웠던 혹은 없어졌다.
그다음이 문제였다.
여기가 동물병원수술실이라면 혈관을 묶는 수술이 필요했을텐데
내엄지손가락이 마비가될정도로 지혈하는데 힘들었다.
지혈제와소독약을 번가라 뿌리고 비르고 내손가락이 마비가 올시점에
남편에 손가락으로 옮겨가 무려 네시간이 지나 피가 멎였다.
상처를 건드리면 자지러지게 소리를 치다가도 금세 조용하게 잘참아 견뎌낸
우리집 강아지는 두번 죽었다 살아났다.
그날밤 난 내혹을 떼어내기라도 한것처럼 온몸에 힘이 빠져버리고 정신없이 깊이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그리고 여러가지로 미안했다.
사진기에 날짜가 틀려 찍혀다.6월인데
혹을 제거한뒤 일주일
초롱이는 이제 열세살중에 열살은 떼어내고 세살이라고 해도 될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침대도 가볍게 뛰어오르고 소파는 물론 꼬리도 세우고 궁둥이를 살살 흔들며 잘도 다닌다.
회복도 빠르고 치매기도 없어진것같고 그러다 환갑까지 살면 어떻하나
아이고,이제는 개를 기르면 이씨 성을 갈들지 장을 지지든지 내한탄이 맞을런가 ..
회춘한 초롱이는 나의 친구요 웬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