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25. 13:50ㆍ일반산행
일시 ; 2010.4.24.토.11시~
일정 ; 창의문-돌고래 쉼터-백악마루(342m)-청운대-숙정문-말바위 쉼터-
삼청공원-백련사-광화문 광장-덕수궁-프라자 호텔
참석자;조용철.김의성 내외.정명수.박영민.이형민.이용희.이병돈.
이윤정.이인순.이금주.이인성과친구.장용자.
이상14명중 동창12명
정대형.강성도.박덕희 뒷풀이 참석
올봄은 유난히 흉흉한 소식이 전해오고
개나리 벚꽃 살구꽃 진달래 릴레이하는 꽃들이 피어나도
어젯밤에는 강원도에는 눈이 내렸습니다.. 여름이 다 오는데 눈이라니...
계절을 모르는 변덕이 추웠다 더웠다 요동치는 꼭 내마음 같다.
뭔 모르고 산행공지를 올리고 후회를 했다.
가진것보다 없는게 더 많고,
할수있는일 보다 못하는게 더 많은
내가, 그중 세개를 꼽는다면,
남앞에 나서는 일과 돈계산 하는것,그리고 길찾는일 인것을..
오늘 그 세개를 한꺼번에 갖게 되었다.
잔인한 사월의 마지막 주말은
활짝 벌어진 목련꽃마냥,날씨가 포근했다.
경복궁3번출구 오전11시 집합,
두시간 놀다, 쉬다 가도 세시간이면 돌아볼
오늘 일정은 아침 운무는 걷히고 시야가 트여질 무렵,
무장공비와 싸우다 희생된 최규식 동상이 서있는
창의문 쉼터에서 신청서를 작성하고
12시가 되어서야 시작되었다.
신분증이 없으면 입장할수 없는데
우리 동창생들은 공부가 잘되어 모두 입장 할수있었다.
성곽탐방은 단지 등산을 목적으로만은 아닐터,
서울을 안으로 감싸고 있는 네개의 산인
백악산, 남산, 낙산, 인왕산을 내사산이라 부르는데
서울성곽은 이 네개의 산과 평지를 이어 둥그렇게 쌓은 것이다.
태조가 조선의 도읍을 한양에 세우면서
평지는 토성으로 산지는 산성으로 쌓은 성곽길이는 18.2km
세종은 성곽을 석성으로 보수하였다.
본래 성곽은 도성을 방어할 목적으로 쌓았지만
정작 임진왜란이 일어났을때 제구실을 못하고
선조가 의주로 피난하면서 전란으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았다.
1704년 숙종은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나아가
북악 산성까지 세워 방위체제를 정비한다.
일제와 근대화 과정인1899년 서울에 전차가 생기고
흥인문,숭례문,돈의문 주변 도성을 헐리고 현재는 10.5km만 남았다.
반대편 와룡공원에서 오르는 탐방은
한두번만 쉬어도 가능하나
오늘 우리가 선택한 길은 창의문에서 백악마루까지
악 악 대며 숨을 몰아 내쉬고
엉덩이 붙일곳만 보이면 앉았다 가야 하는 급경사이다.
제일 먼저 앞장서 계단을 오르다가도
쉴때는 맨 꼴애비로 도착하는걸 보면
나는 초등약골이 분명하다.
죽겄다고 해봐야 들어줄 짝궁도 없고
가긴가야겠고 보름전부터 아파트 계단 연습한게
그래도 쫘끔 도움이 되어 기어올라갔다.
급경사는 이곳에 백악마루 정상을 찍고 바위정상에 앉았다.
이제서야 인원 파악이된 우리 일행은 열네명.
서울도심을 바라보면 이산을 시발점으로
경복궁과 광화문,세종로,숭례문이 일직선을 이루고
주요 가로망이 여기서 부터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갔는데
막상 정상에 올라서는 멀리 시내를 바라보지 못하고 말았다.
이제부터는 내리막이고 숨찰일 없으니
성곽돌을 자세히 관찰할수 있을것이다.
누구나 정도전이나 무학이 아니여도
이렇게 큰돌을 움직여 도시를 세운 노력을 생각 할수있을 시간이다.
성곽에 반해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르는 사람도 있다는데
난,세번째 탐방이 되었다.
60년대부터 80년대 말까지 요정정치가 만연했던 시절,
최고급 3대 요정 대원각,청운각,삼청각중 하나로
현재는 한식전문 요리집이다.
북악산의 정기와 수려한 소나무숲에 둘러쌓인 삼청각은
멀리서 바라보아도 아름다운 한옥이다.
북악스카이 팔각정이 멀리 보인다.
팔각정에 오르면 성북동으로 내려가는길과,
서울에서 도룔룡이 살고 있는 이항복 백사실 계곡길로 나뉜다.
작년에 떠밀려 구경나왔다 힘들어 죽을뻔했던 팔각정에서
평소엔 먹지 않는 아이스크림이 얼마나 맛있던지..
바람쐬러 나와 왜 답답하고 침침한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냐며
남편은 부라보콘을 두개를 사들고와 하나를 내밀었다.
소나무 그늘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다 먹기도 전에
일어서는 남편을 따라다니느라 일주일을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있었던게 벌써 추억이 되었다.
정상에 올라 촛대바위 모습을 확실하게 볼수있는데
촛대바위도 놓치고 말았다.
촛대 바위란 높이가13m.
바위위에 지석은 1920년대 일제 강점기 민족정기 말살정책일환으로
쇠말뚝을 박았던곳이다.
총맞은 소나무도 놓치고 오늘 탐방은 여러가지 헛점을 보였다.
숙정문에 도달했다.
성곽의 북대문으로 "엄숙하게 다스린다"는뜻으로 이름지어졌다.
태조 5년 성곽을 쌓을때는 지금보다 약간 서쪽에 있었으나 연산군10년에 옮겨졌다 한다.
원래 사람출입을 위해 지어진것이 아니어 평소는 굳게 닫고
가뭄이 심할때는 숙정문을 열고 남대문을 닫아두었다 한다.
오랫동안 무지개 모양의 석문만 남아 있었는데 1976년 현재모습으로 복원했다.
삼청각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산벚꽃이 눈길을 사로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