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4. 22:00ㆍ참고
가을에 창경궁과 고갱의 그림을 만나다.
가을에 창경궁과 고갱의 그림을 만나다.
햇빛 찬란한 가을..
오전에 창경궁을 거닐며 조선 후기 문화 르네상스 시기였던 영, 정조시대의 인물들을 만난다. 영조와 사도세자, 정조와 혜경궁 홍씨 그리고 박지원, 정약용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창경궁의 전각들 사이를 아직도 거닐고 있다.
오후엔 진정한 순수를 그리워한 남자 고갱이 그린 낙원을 보러간다.
오전: 창경궁답사
창경궁은 성종 14년(1483)에 세조비 정희왕후, 예종비 안순왕후, 덕종비 소혜왕후 세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해 옛 수강궁터에 창건한 궁이다. 수강궁이란 1418년에 세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의 거처를 위해서 마련한 궁이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연결되어 동궐이라는 하나의 궁역을 형성하면서, 독립적인 궁궐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창덕궁의 모자란 주거공간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성종대 창건된 창경궁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소실되었고, 광해군 8년(1616)에 재건되었다. 그러나 인조2년(1624) 이괄의 난과 순조30년(1830) 대화재로 인하여 내전이 소실되었다. 화재에서 살아남은 명정전, 명정문, 홍화문은 17세기 조선시대 건축양식을 보여주며, 정전인 명정전은 조선왕궁 법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일제강점기 대부분의 궁궐이 훼철되지만 특히 창경궁은 더 큰 수난을 당한다. 1907년 창경궁은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고 창경원으로 이름마저 바꿔버린다. 1909년부터 1984년까지 창경궁은 궁의 권위를 모욕당하면서 놀이터로 전락해버렸다.
창경궁은 다른 궁과 다르게 궁궐정문이 동쪽을 향하고 있다. 임금은 남면을 해야 하기 때문에 경복궁이나 창덕궁은 정문과 정전이 남쪽을 향하였지만 3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해 지은 궁이기 때문에 당연히 정문이 동쪽을 향하게 된 것이다.
정문을 들어서면 명정전과 마주하게 되며 남서쪽으로 편전인 문정전이 북서쪽에는 내전과 행각들이 줄지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거의 대부분 철거되었다.
창덕궁과 창경궁은 자연의 지세를 그대로 이용하여 궁궐을 조성한 것으로 경복궁의 구조와 사뭇 다르다.
창경궁의 명경전 조선을 망친 임금 중 하나인 인조가 반정하고 즉위한 곳이기도 하며
환경전은 중종과 효명세자가 승하한 곳이기도 하다. 경춘전은 정조와 헌종이 탄생한 곳이며, 양화당은 인조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돌아와 기거한 곳이며 철종비인 철인왕후가 돌아가신 것이기도 하다.
영춘헌에서는 사도세자가 태어나고 순조가 태어났으며 정조는 이 영춘헌에서 승하하였다.
조선 대부분의 임금들이 이곳 창경궁에 기거하는 것을 좋아했고 편안해 하였다.
특히 영조와 사도세자, 그리고 정조 그들의 정치적 욕망과 회한이 묻혀있는 곳이기도 하며 영조와 정조의 조선 후기 문화 르네상스시대를 이끈 중요한 공간이기도 하다.
오후: 서울시립미술관 -고갱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19세기 폴 고갱의 작품과 21세기 현대미술작품이 만나는 이색적인 전시를 마련하였다. 폴 고갱은 대표적인 후기인상주의 화가로 상징주의, 종합주의 등의 탈인상주의 화풍을 탄생시키며 스스로 인상주의의 종말을 고하였던 급진적인 예술가였다. 모더니티(근대성)의 포문을 열었던 그의 화풍은 야수주의, 표현주의, 입체주의, 추상주의 등 20세기 미술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21세기 오늘날의 시각예술에도 폴 고갱이 남긴 상징주의적, 종합주의적 태도는 ��속되고 있다. 본 전시를 통하여 서울시립미술관은 고갱 작품과 그 이후 현대미술작품을 접목시키며 ‘고갱 재해석’을 시도했다. 고갱의 독특한 미술사적 양식을 재조명함과 동시에 그의 작품에 면면히 흐르는 정신성에 전시의 초점을 두며 21세기 현대미술작품과 어우러지게 구성하였다. 고갱 예술의 특징을 양분하는 브르타뉴(Bretagne)와 폴리네시아(Polynesia)시기는 '설교 후의 환상' '황색 그리스도'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무엇인가, 어디로 가는가'등 고갱의 3대 걸작을 통하여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마르코 브람빌라를 비롯한 6인의 현대미술작가들은 그들의 작품을 통하여 예술적 언어와 추구하는 정신이 고갱의 상징성과 급진성 이라는 유전인자를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대미술작품의 시각적인 개입이 고갱이 추구하던 ‘낙원’의 의미를 다채롭게 해석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고갱은 오랜 방랑과 고된 삶으로 인해서 작품을 그리 많이 남기지 못했고, 그나마 있는 작품들 조차 세계 도처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 전시는 고갱 3대 걸작과 함께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타히티의 여인들' '파아 이헤이헤 타히티 목가'등 60여점의 진귀한 고갱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