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 14. 22:04ㆍ참고
낙동강으로 가던 길 ---------------------신정일
낙동강으로 가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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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방송 녹화를 마치고,
이른 아침 봉화 답사를 가기 위해
모텔에서 하룻밤 머물고 잠겼던 거리에 나와
아침 풍경을 보면서 떠오르던 생각
모텔은 나에게 무엇인가?
“홀연히 왔다가 홀연히 떠나가는 곳
모텔은 그런 곳이다.
‘일반 사만원. 특실 오만원.’
알라딘의 램프인 카드로 천국의 문을 열고
쓰러져 잠드는 곳,
자다가 깨면 언제나 낯설음이
성에처럼 달려드는 그 밤이 지나고
다시 새로운 출발을 위해
계단을 내려서서 카운터 앞에다 키를 내려놓을 때
밤을 지킨 젊은 사내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꿈나라를 헤매는 곳,
모텔은 밤이 다하고 날이 환하게 밝아지면ᆞ
늦은 적막이 안개처럼 내려
고요 속에 잠기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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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자취도 남기지 않고
남겨진 자취는 흔적도 없이,
말끔히 지우고 그렇게 떠나가는 곳.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곳,
떠나고 나면 금세 존재조차 지워지는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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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밤을 꼬박 지킨 말이나 개들이
어둠이 걷히는 세상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아침 햇살이 주막집 초가 지붕위에 내려앉을 때
하룻길을 출발하던 나그네들이 살았던 그 시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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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존재했던 시절인가
아니면 신화속의 이야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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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동안 길에서 보내다 보니
가장 편안하게 찾아가는 곳이면서도
가장 낯선 곳이 모텔이다.
얼마나 더 모텔이나 낯선 숙소를 전전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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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혼과 몸이 쉬는 곳,
그래서 고마우면서도 쓸쓸함을 자아내는 곳,
주막집이 사라지고 다시 그 소임을 다하는 모텔은
나그네들의 유일한 안식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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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2001년 가을 열엿새 동안 혼자서 낙동강을 걷고
쓴 <낙동강>에서 승부터널을 지나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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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명 이상 통과금지라고 쓰여 진 출렁다리를 건너며 바라본 낙동강은 더없이 아름답다. “텃밭이 세 뼘 밖에 되지 않는다.”하는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승부역에 들어가자 역무원 두 명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맞는다.
나는 내가 찾아간 이유를 얘기하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저녁 8시 20분에 떠나는 통일호를 타고 분천까지 가는 것과 하나는 터널 몇 개와 교량을 건너는 것이 있는데 둘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그러나 우리는 어느 것이던 선택하라고 할 수 없습니다. 철도법상 철로를 걷는다는 것 자체가 위법이고 또 그동안 5시 45분, 6시 30분 열차와 몇 개의 임시열차가 있기 때문에 원칙상으로는 못가 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터널만 문제가 되지 철교는 괜찮습니다. 예전에는 철교만 있었는데 지금은 그 옆으로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길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밤중에 기적을 울리는 기차를 타고 싶은 환상을 품고 있다.”라고 말한 ‘월리 넬슨’의 말처럼 나 역시 열차를 타고 가고 싶은 마음이 없겠는가만, 낙동강을 따라서 걷는 내가 열차를 탄다거나 다시 되돌아간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철길을 따라 갈 수밖에 없다고 얘기하자 터널 길이가 600m가 되는 승부터널(각금굴이라 부름)과 300m쯤 되는 터널 그리고 철교들이 많이 있는데 가능하겠느냐며 혹시 랜턴을 준비했는가? 고 묻는다. 그러나 강을 따라 걷다가 어두우면 아무 곳(여관, 민박=음식점)이나 자리 잡고 잠을 청했던 내게 무슨 랜턴이 있겠느냐고 대답하자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결정하란다. 그래 갈 수 있을 테지. 600m라면 보통의 내 걸음으로도 10분이면 통과할 테지 시계를 보자 5시 15분 승부터널 입구까지 10분 나머지 15분에서 20분 안에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막차를 기다리며 곽재구 시인의 빼어난 시 사평역에서가 쓰여 진 느낌을 공유하고 싶고 한겨울마다 눈꽃열차가 머무는 이곳 풍경 속에 나를 떼밀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떠나가야지 내가 떠나면 다시 두 사람의 역무원만이 남아 가고 오는 열차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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沙平驛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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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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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인사를 건네고 나는 철로 길을 재촉한다. 강물은 속이 타는 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다는 듯이 유유히 흐르고 내 마음만 급하다. 천천히 걸어가리란 내 생각은 이렇듯 또 속절없이 꺾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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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느냐 사느냐 그게 문제로다
드디어 터널 앞에 다다랐다.
한발 한발 천천히 걸어가자 그러나 웬 걸 50m쯤 들어갔을까. 코앞도 보이지 않는다. 땀이 비오 듯 흐르고 불현 듯 무서움이 밀려온다. 갈 수 있을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캄캄한 어둠 오직 내가 앞으로 가고 있다는 막막한 확신 하나로 나는 한발 한발 내딛을 뿐이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내가 걸음을 멈추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움직임의 세계에서 모든 것이 정지된 세계로 나는 들어온 것이다. 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철커덕 소리 들리고 나는 화들짝 놀랜다. 알고 보니 자동카메라가 닫히는 소리다. 정신 바짝 차리자 한발 한발 떼어놓는데 그 넓은 좌우측의 철길이 왜 그렇듯 양쪽 발에 차이는지, 이러다가 넘어지거나 쓰러져 다치기라도 하면 나는 끝장이다. 문득 기차가 앞에서 오는듯한 착각이 들고 어떻게 할 것인가. 벽에 온 몸을 붙인 채 숨죽이고 있거나 철길 가장자리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을 것인가. 감이 서지 않는다. 다행히 그 소리는 착각이었고 온몸에 땀이 흥건하다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 무사히 이 죽음의 터널을 빠져나가는 수밖에 나는 너무 경솔하지 않았는가. 아무도 가지 않는 그 강 길을 따라 걸으며 그 순수하고 아름다운 강물을 보고 싶다는 그 열망 하나로 너무 무모한 선택을 하지 않았는가. 불현듯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르고 나 자신이 한없이 미워졌다.
어떻게 한다. 이러다 쓰러져 다치게 되면 죽을 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죽음이 그토록 두려운가, 아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거나 “가난에 찌들어도 천대를 받아도 이 세상에 사는 것이 좋다”라는 말 또는 “저승 백년보다 이승 일 년이 좋다”는 우리네 사생관을 나는 믿지 않는다. “죽음이란 저기 또는 여기에 있지 않고 그는 모든 길 위에 있다. 너의 그리고 나의 내면에 깃들어 있다”는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삶이 아름다운 것이라면 죽음 또한 아름다운 것이리라 생각해왔기 때문에 어느 때 죽음이 닥치더라도 나는 그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리라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한발 한발이 천근만근이 되는 듯 싶고 내 발자국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울려온다. 무섭고 외롭다. 나는 소리 내어 읊조린다. 신정일 너는 잘할 수 있어! 신정일 너는 잘해낼 거야. 내 소리에 내가 놀라는 시간이 지나고 멀리선 듯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희미한 빛 그 빛을 따라가는 그 순간이 얼마나 길었던가. 드디어 나는 승부터널 마지막 지점에 서있었고 그때까지 열차는 오지 않았다.
터널을 벗어나 맨 처음의 침목을 밟으며 나는 쟝그르니에의 산문『지중해의 영감』중 한 부분을 떠올린다.
“삶이 때때로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지만 삶의 시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그 삶은 언제나 매일 매일 다시 시작 된다”
나는 그 말처럼 ?母?철길에서 발을 때고 다시 철길을 걸어갈 것이며 어느 날 또 다시 이런 순간에 직면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후엔 T․S 엘리어트의 시 한 구절을 꼭 기억할 것이다.
“근심할 것과 근심하지 말 것을 분별케 하소서, 조용히 앉아 있기를 가르쳐 주소서”
내가 지나온 승부터널을 한 장의 사진으로 남기고 다시 철교를 지나자 눈빛처럼 희디흰 구절초꽃이 희망처럼 보였다. 그 강가에 늘어뜨린 채 피어있던 한 포기의 구절초는 가슴 조렸던 내 마음의 상처를 씻어 내주는 듯 싶었다.
나는 15분 동안 그 터널을 지나면서 10년 동안의 생각을 했을 것이다. 온갖 떠올랐던 상념들이며 온 몸을 흘렀던 땀들은 내 생이 다하는 날까지 내 마음 속에 남아있을 것이라 믿지만 그 역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어느 날 잊혀지고 말 것이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 ,가서는 안 된다고 말리던 길, 그 길에서 나는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얻었는가, 나는 철교 아래로 흐르는 강물소리 속에서 무언가 다른 소리를 듣고 싶다. “찬란한 노을이 아름다워도 잠깐 사이에 스러지고 만다. 흐르는 물소리가 듣기 좋지만 들을 때 뿐 듣고 나면 그 뿐이다. 사람이 찬란한 노을을 통해 여생을 헤아린다면 허물이 가벼워지리라 사람이 흐르는 물에서 거문고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정신에 유익함이 있게 되라라” 명나라 때의 문인 도륭이 그의 저술『파라관청언』에서 노래했던 것처럼 나는 저 물소리에서 그리운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만 물소리는 물소리일 뿐이다.(승부역 054-673-0468) 내가 지나고 있는 이곳 소천면 고선리, 분천리, 승부리에 걸쳐 있는 비룡산(飛龍山)은 높이 1,120m로서 용이 나는 형국의 명당이 있다고 한다.
서두르자 지도를 보면 인적이 있는 곳은 어디도 없고 내가 갈 길은 그래도 멀고도 멀다. 낙동강은 이곳에서부터 너무도 아름답다.“
신정일의 <낙동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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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나면 그리운 것이 흘러가버린 세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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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 구월 열나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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