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3. 22. 08:59ㆍ백두대간
일시-2017년 3월 21일 화요일 맑음
장소-백두대간 아막성터 구간 북진
코스-매요리(460m)-유치재 삼거리-사치재-새맥이재-시리봉 삼거리-781봉
-아막성터(620m)-흥부묘 갈림길-복성이재(540m)
전날 내린비로 남원 하늘은 깨끗하고 공기는 산뜻했다
미세먼지로 희뿌연 서울의 하늘과는 대조로 파란 하늘에
산세가 아름다운 매요마을이 향기마저 낯설어 보름전 왔던 마을인가 싶다
흙 풀어지고 새싹 돋는 들판의 시골 냄새가 완연하다
매요 마을은 해발고도 460m의 마을이다
말의 형국을 닮은 지세로 馬腰里라 부르던 마을에 임진왜란이 지나고
산천을 유람하던 사명대사가 들렀다 마을에 핀 매화의 정기가 감도는것을 보고
梅要里로 지어준뒤 마을 이름이 바뀌었단다
쫓비산 아래에는 연분홍 진분홍 매화꽃으로 온통 천지가 꽃 구름을 이루어
정신이 혼미할 정도라는데 매화의 정기가 감돈다는 매요마을에는 꽃 한송이 없었다
마을회관에서 이어지는 대간길은 오고가는 대간꾼들이 막걸리로 요기하고 떠난다는
매요 휴계소를 지나쳐 언덕위의 느티나무와 그림같은 작은 교회를 지나치고
아스팔트 도로 따라 사백미터를 걸어 남원의 동학농민 유적지로 알려진
유치재 삼거리가 나온다
유치재는 사치마을 입구로 번암과 인월로 갈라서는 도로이다
여원재까지는 10.5km 사치재까지는 2.5km로 표지판이 서 있다
본격적인 대간 숲길로 들어서는 시작점이다
작년에 벌목 잡업을 실시하던 산 사면은 어느새 뻘건 흙을 드러낸 흙산으로 변하고
뒤로는 소나무가 빙 둘러쳐 있어 마치 바리깡으로 쭉쭉 밀어버린 머리 모양 같다
낮으막한 봉우리를 올라치면 다시 길은 편하게 오르고 내려선다
여원재 밭에도 묘지들이 많더만 남원지방에는 양지 바른 대간길 옆에도
묘가 많다
618봉을 지나 묘 하나를 더 지난다
묘 옆에 키 작은 할미꽃도 금세 꽃망울을 터트릴 자세다
바위산이 아닌 흙산 백두대간 대간 능선은 몇개의 바위 덩어리를 지나고 돌무더기를 내려선다
너무 서둘렀나 한시간만에 88고속도로가 지나는 사치재까지 왔다
모래재 이슬재라고 불렀다는 사치재는 장수의 번암면에서 남원의 아영면를 잇는 고개였으나
지금은 동물 이동통로가 연결되어 도로위로 지난다
사치재 아래에는 우측으로 조금 떨어진곳에 지리산 휴계소가 위치한다
사치재 위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뜨듯하게 달구어진 등짝이 서늘해지는 느낌이다
이맛에 바람부는 마루금에 올라서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언덕의 철계단을 올라 마루금에 올라서 공터에 이어 693봉으로 향하는 능선은
구십년대 두번의 산불로 허허벌판이 되었다 치유된 산이다
전번 대간길에 산불감시 초소로 내려갔다 길도 없는 숲길을 헤치며 걸어가다
목덜미로 나뭇가지들이 꾹꾹 박혔다
가렵고 따갑다고 훌러덩 벗을수도 없는처지라 어깨쭉지만 비틀면서 걸었다
쉽게 내려 가려다 오히려 도로를 길게 걷고 유치재 삼거리로 내려왔던
알바가 생각났다
이제 이 구간에서 그런 실수는 없을것이다
693봉을 넘어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오목한 새맥이재가 나온다
새목이재는 남원의 아곡리와 장수의 논곡리를 이어주는 옛사람들의 고개로
진짜 새의 목처럼 잘록하게 들어가 있었다
새목이재에서 시리봉 삼거리까지는 약간의 급경사와 완만한 오름이다
키 큰 진달래와 철쭉 군락지가 군데군데 보인다
해발 고도 777m의 시리봉 삼거리에서 시리봉은 대간길에서 우측으로 약간 비껴 있다
이어 오늘의 최고봉인 781봉이다
봉화산이 철쭉꽃으로 유명하다더만 대간 능선은 복성이재를 지나고 치재를 넘어 봉화산인데
벌써부터 허연가지끝에 매달린 잎과 꽃이 연두와 분홍으로 금방이라도 밀고 나올거 같은
철쭉터널을 지났다
봉화산에 불탄 철쭉꽃이 벌써 기대된다
저수지를 품고 있는 남원 흥부의 성리마을은 봄 농사 채비에 분부하겠지만
겉으론 한가한 마을 분위기가 조망된다
곧 이어 아막성터가 나온다
섬진강의 계곡분리를 나타내는 지형상의 특색과 중요한 방어진지로
백제는 아막성 신라는 모산성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며
백제와 신라의 쟁탈지였던 아막성터에는 무너지고 남은 성돌만이
지난날의 흔적을 대신한다
이 지역을 지나는 대간꾼들이 하나둘 올려 작은 탑을 만들었다
백제 무왕 3년 602년에 아막성을 공격하여 신라 무은이 전사하자
아들인 화랑 귀산도 추항과 함께 나아가 백제군을 물리쳤으나
둘다 전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백제 30대 왕인 무왕은
우리에게 서동설화의 주인공으로 신라 진평왕의 선화공주를 왕비로
맞이한 왕이다
내외정세 악화와 선대왕들의 단명과 귀족간의 내분으로 왕실 권위가 약해진 시기였다
한강 이남에서 웅진과 사비성으로 도읍지를 쫓겨온 무왕은 익산천도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익산 미륵사지터는 미륵신앙을 통해 나라의 중흥을 도모코자 했던 흔적이다
무왕은 신라와 십여차례 전쟁을 치루었고 고구려를 견제 하고자 수나라와 당나라의 우호관계를
유지하였다
이곳 아막산성에서 대패하였으나 오히려 이로 인해 귀족세력을 제압할수 있는 명분으로
왕권을 강화하고 권력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41년간의 재위동안 백제중흥을 꾀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의 아들 의자왕에 이르러
백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졌다
남진으로 걸었을때 자세히 보지 못했던 아막성터가 북진으로 하니
작년 가을에 걸었던 길이기나 한건지 워낙 길치이다 보니 처음 밟는 길 같고
새롭게 보인다
아마도 조금 여유가 생겨서 그럴수도 있겠다
아막산 성터를 지나 아래로 내려서면 복성이 뒷재가 나오고
뒷재에서 산으로 조금 올랐다 내려서면 드디어 날머리인 진짜 복성이재에 도달한다
비록 십킬로가 채 안된 거리지만 네시간이 넘지 않는 빠른 걸음으로 대간 구간을 걷다니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발전이다
어젯밤에 이어 토종닭으로 마무리까지 몸보신이 황솔할 따름이다
식당 앞 마당에서 뜯은 쑥 한줌으로 다음날 된장풀어 봄을 끓였다
봄
겨울가고 봄이 왔다
구중궁궐속 리더가
권좌에서 내려오니
배는 수중에서 올라왔다
차라리 흔들리는 마음탓을 하지
웃어도 웃는것이 아닌 푸른 낯빛이
사소한 바람탓만 하였다
바람이 멈추고 파도가 멈추어
달이 지고 해가 뜨니
노랑 리본 구름이 지나 갔다지 아마
바다처럼 깊고 검푸른 들녘에도
연두로 여린 향기가 뜬다
쑥 캐고 싶은 봄이다
2017년 3월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