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2-2차

2017. 3. 8. 13:37백두대간

 

일시-2017년 3월7일화요일 바람 많고 맑음

장소-백두대간 수정봉 고남산 구간 북진

코스-노치마을 회관-수정봉(804.7m)-입망치-여원재-방아채-고남산(846.8m)-통안재-매요마을 회관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이라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서시 초선 양귀비와 함께 중국의 사대 미녀로 손꼽히는 왕소군을 그리며 쓴

소군원이라는 오언 절구에 나오는 글귀이다

가난한 왕소군은 어린나이에 후궁으로 들어왔다

한나라의 원제는 화공 모연수로 하여금 여인들의 초상을 그려 올린것을 보고

후궁을 불러 들였는데 뇌물을 바친 후궁은 왕에게 점지되고 뇌물을 쓰지 못해 밉게 그려진 

왕소군은 흉노의 세력이 강해져 약탈과 위협을 일삼은 흉노왕은 미인을 요구하자

흉노왕에게 팔려 몽골초원으로 건너갔다

비파를 연주하는 그녀 모습에 반한 기러기가 날갯짓을 잊어 땅에 떨어져 落雁미인이라는 칭호를 얻은

그녀가 오랑캐 나라에서 정식 왕비와 대비가 되어 권력을 누렸음에도 고향을 그리며 살았다

해마다 변덕스런 봄날이 오면 생각나는 글귀이다 

 

입춘도 지나고 눈이 녹아 비와 물이 된다는 우수와

동면하던 동물들이 깨어 꿈틀대기 시작하는 경칩도 지났다

우수 경칩 지나면 대동강물이 풀린다는 말대로 수도꼭지의 찬물도 차갑지가 않다

며칠째 한낮에는 나뭇가지에 수런스런 물 오르는 소리와 꽃 망울 커지는 소리가 들려

봄이 성큼 와 있었는줄 알았더만  밤이 되면 다시 겨울이 되어 쌀쌀한 바람을 불어대니

변덕스럽기 짝이 없다

낮은 봄이고 밤은 겨울인 요즘 엊그제 밤새 느닷없이 강원도와 충청 전라 지방에

봄을 시샘하는 눈발이 내렸다

 

새벽 등산차비 하고 나가는일이 익숙한줄 알았더니

알람 시각이 두시간 이나 남았거늘 잠이 깨어 스마트폰을 껴니 세시다

다시 눈을 뜨니 네시 자다깨다병이 도져 아무리 이불을 둘러쓰고 눈을 감아봐도

머리속은 벌써 도치샘을 지나 소나무밭을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이러다 꿈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수도 있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된장국을 데우고 사과와 우유까지 아침을 너무 먹었나

볼일을 봤어도 빵빵한 윗배가 아픈것도 아니고 아직 차도 타지 않았는데

더부룩 하고 울렁거린다

양재역에서 묽은변을 싸고 조금 시원해진 기분으로 다시 정암 휴계소에서 묽은 변을

또 쌌다

싸늘한 배에 핫팻을 붙이고 나자 진정이 되는 느낌이다

들머리인 노치마을 회관앞에 내리자 전날 내린 눈은 길바닥을 얇게 덮고

차디찬 바람앞에 마을 수문장처럼 지키는 느티나무가 여전하다

화장실에 들러 다시 묽은변을 쌌다

먹은것도 별로 없는거 같은데 네번씩 똥질로 장을 비우다니 몸은 가벼워졌다

 

입구에 들어서 노치샘을 지나고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소나무 언덕에 오르는동안

분명 사람 사는 마을임에도 주민 한사람이 안보이고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마을을 지키는 소나무 언덕인 당산제전에는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듯 굽어보는 수령 오백년을 훌쩍 넘긴 소나무 네그루가 멋지다

내 몸보다 두꺼운 나무 기둥을 안아 소나무의 기를 받고 솔향기가 가득찬

대간 숲으로 들어섰다

계속 오르막으로 이백오십여미터의 고도를 올리면 수정봉에 다달은다

해발 고도 804.7m의 수정봉은 이백리에서는 650m의 높은산이지만

주촌리에서 오르면 250m의 낮은산이다

예전에 수정 광산이 있었다고 하여 수정봉이라는데 수정은 없고

발 아래 덕산 저수지와 적산 마을이 평화롭기만 하다

운봉의 주촌리와 이백의 과립리를 경계로 성의 평면이 표주박 형태를 이룬

남아 있는 양지산성 흔적과 고인돌을 남진때는 보았는데 오늘은 보지 못한채 지나쳤다

수정봉 정상석을 1.3km를 벗어나 내려서면 입망치가 나온다

운봉의 엄계리와 이백의 과립리로 내려갈수 있다

고개에서 다시 올려 대간길은 소나무길이다

오늘의 대간길은 소나무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여서

연신 나오는 소나무와 야릇하게 내려앉은 히끗히끗 하얀눈이 행여 녹을세라

발걸음을 재촉하며 빠르게 걸었다

대간길 중에도 난이도가 하에 속하는 길어여서 길은 쉽다

그러나 복병은 언제나 있다

낙엽밑에 얼은 땅은 언제든 튀어나와 미끌거렸다

소나무 숲에서 밭두렁과 논두렁을 지나고

이어 수정봉에서 4.4km 떨어진 여원재에 도달했다

작년 가을에 만났던 돌벅수 운성 대장군을 만나니 어찌나 반가운지

운봉과 남원을 잇는 24번 국도변의 여원재는 왜구와 이성계의 전설이 서린

백두대간의 고개이다

고려말 남원과 운봉 함양을 오고가던 길손들이 들리던 고개에 왜구들의 침략이 잦았다

왜놈한테 손찌검을 당한 주막의 주모는 왼쪽 젖가슴을 잘라내고 자결했는데

왜구를 물리치기전에 들른 주막에서 이성계는 노파가 꿈에 가르쳐준 대로

남원 황산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

노파를 죽은 주모라 여기고 위로하기 위해 사당을 짓고 여원이라 불렀는데

이때부터 고개를 여원재라 불렀다고 한다

대간길 연결은 쌩쌩 지나는 차량들을 피해 도로를 건너 숲으로 올라간다

여원재 주변 밭 곳곳에 묘가 있다

가깝고 낮은 언덕배기여서 관리가 잘된 묘들이 많았다

김해김공종수지묘와 여러 묘지들은 명당인 대간길을 끼고 있다

이어 동학농민유적지인 방아치를 지난다

백이십여년전 김개남이 이끈 동학군들이 목숨을 내놓고 농민운동을 했던

백두의 길에도 허리 굽고 다리 꼬인 소나무들만 대신하고 있고

을씨년스런 바람만 쌩쌩 불어 머리를 날린다

다시 올려 561.8봉 595봉 615봉을 넘고 785봉 봉우리를 지나야 고남산 산줄기에 오른다

고남산 정상에 오르기 직전은 빙판 암릉이 있어 밧줄도 살짝 얼어있어 조심스럽다

이어 암봉 옆으로 난 대간길을 지나 경사가 급한 철계단을 오르고 산불감시 초소가 나온다

산불 예방기간이 아니여서 초소는 굳게 닫혀 있었다

초소아래에 있는 오늘의 최고봉인 해발 고도 846.8m에 고남산 정상에 섰다

고남산은 고려말 이성계가 왜구를 격퇴기 위해 이곳에서 산신제를 올렸다 하여 태조봉 또는

제왕봉이라고도 불리는 산이다

넓은 정상 앞에는 헬기장이과 뒤쪽으로는 방송통신 시설 안테나가 있다

정상부에 삼국시대에 축조된것으로 추정되는 고남산성 흔적과 제단석축 흔적이 있다는데

찾아보지 못했다

두번째 걸어가는 길이건만 빠트리며 지나는 것이 한둘이 아니여서 예습이 필요하다

정상에서 벗어나 내려서면 도로가 나온다

이어 다시 숲으로 들어서고 다시 도로로 세번째 아스팔트 도로를 쭉 내려오다보면

통안재 라는 팻말과 함께 숲으로 이어진다

작은 돌부처가 암봉 위에 올곳이 서서 그대로 절을 이룬 봉우리인 주지봉은

대간길에서 비껴 있다

쉼없이 걸음으로 유치재 다시 낮은 재 하나를 넘어 매요리 마을로 내려왔다

이 구간은 유난히 많은 소나무 구경하느라 지루할틈이 없고 운봉의 우리가락 동편제 한마당이

흐르듯 길은 순조롭다

내리막에 쌓인 눈과 얼음길로 아이젠을 찼다 벗었다 웃옷을 입었다 벗었다

길고긴 대간길 걷는길이 숨차고 무릎 시끈거려 누구나 벅차지 않을수 없다

힘들고 귀찮은 대간길에 또 다시 도전장을 내밀고 따라나선 두번째 여정도

무사히 마쳤다

 

겨울 소나무

 

능선위에 쌓인눈이 바람에 날려

겨울은 산모룽이 지나간다

 

마지막 남은 겨울

솔향기와 흰눈으로 숨이 멎는다

 

이리붙고 저리붙는 칡넝쿨이 아닌 그대

여러해동안 들풀 한 잎과 들꽃 하나에도

격한 흥분과 감동으로 자지러져 숨이 꺽일때까지

나뭇가지 날개를 파르를 떨며 살았다

 

제 그림자에 휘청거리며

가난하게 서 있어도 길이길이 빛나

투명한 푸름으로 푸르게 터지리라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너의 세상이 되리라

 

2017년 3월 중순씀

 

 

 

 

 

 

 
















































































'백두대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두대간 2-4차  (0) 2017.04.05
백두대간 2-3차  (0) 2017.03.22
백두대간 2-1차  (0) 2017.02.15
후기  (0) 2017.02.05
머리말  (0) 2017.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