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0. 19. 15:33ㆍ참고
졸업 40주년 기념행사 이 윤정(48회)
올 한해는 사십이라는 숫자가 늘 따라 다녔다.
갈래머리 소녀티를 벗고 여고를 졸업한지가 사십 년이라니
세월이 유수와 같다.만물이 생동하는 오월,
육십이 되어 우리는 다시 만났다.
혼자서는 독서를,둘이면 대화를,셋이면 노래를 한다고 적혀있는
졸업 40주년 기념행사 팜플렛을 다시보니 그날의 감회가 새롭다.
사십년 만에 만나 정답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노래하고 춤추며 지낸 일박이일이 짧게만 느껴졌던
그날의 추억을 더듬어 본다.
버스는 장미 향기 나는 오월이 가기전에 전주로 달렸다
천년 역사를 간직한 도시를 반기기라도 하는듯
오월 햇살에 삼백여미터 낮은 기린봉 푸른 줄기가 눈부셨다.
전주는 후백제 견훤이 세운 백제의 마지막 수도이자 조선 왕조 오백년을
꽃피운 조선 왕조의 발상지로 유네스코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판소리의 본고장이다.또한 전통 생활양식의 근간인 한옥, 한지,
한식을 계승하여 전통문화를 담고 있는 도시이다.
전주 구시가지로 들어서니 우후죽순 신도시들이 넘쳐나는 세상 이거늘
높은 건물이 없이 고만고만 변함이 없었지만 인후동 모래내 개천은 복개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너른 공터와 논 밭둑을 걸어 다녔던 학교 주변은
주택과 상가로 다소 복잡했다.세월이 흘러 졸업후 처음 밟는 교정은 아담했다.
모래와 잔돌 섞인 운동장은 푸른 잔디로 폭신했고
칙칙했던 회색 교실벽은 파스텔톤으로 화사하여 격세지감을 느꼈다.
네번의 강산이 변할 시간인데 꽃같았던 동창들이 변하는것도 무리는 아니다.
양갈래 머리와 단발 머리 두번의 경험 모두 했던
여고시절 그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변했건만
강당에 모인 육십의 여자들이 시끄럽게 떠든다.
해도 해도 끊임없이 나오는 수다와 말은 영락없이 그때 그시절이다.
다시 못올 지난 세월들이 파란 하늘에 흰구름 밀려가듯
파노라마로 스쳐간다.
이어 졸업 사십주년 기념 행사 1부 순서를 마치고
2부 순서로 '즐거운 마음과 행복한 우리'라는 타이틀로 각반 장기자랑을 하여
더욱 두터운 정을 다지는 시간을 보냈다.
교정에 식수한 우산모양의 반송옆에 서서 정다운 친구들과
사진을 남기고 전북 교육문화 회관에서 전시하는 친구들 작품 관람을 했다.
그동안 어찌 살았는지 작품속에 삶이 녹아 있었다.
해질무렵 숙소를 배정받고 한벽루 아래 식당으로 이동했다.
물가에 앉은 우리는 오모가리탕으로 저녁을 든든히 먹었다.
민물고기와 민물새우가 마른 시래기와 만나면 이런 맛을 낼수 있을까,
매콤하고 칼칼한게 시원한 고향의 맛이다.
시인과 묵객이 따로 있던가,한벽루 물가 아래 앉으면
너와 내가 시인이고 묵객이다.눈썹같은 초승달이 보일락 말락
하늘은 까맣고 물도 까만 밤이 되어 그 많은 인원들은 반별 모임으로
흩어졌다.밤 바람이 싸아 옷깃으로 스며들 즈음 한옥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찻집으로 이동했다.멀리 떠난 시간 만큼 사는 것과 사는 곳이 다르지만
삼년간의 고향 인연은 금세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코끝에 닿은 찔레꽃 향기가 몸으로 들어와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오월 마지막 주말
우리의 우정은 숙소로 까지 이어져 채워지고 있었다.
전주에서 아름다운 밤은 깊어만 갔다
다음날 고요한 아침 한옥마을 산책은 힐링의 시간이다.
팔각지붕과 휘영청 곡선의 용마루가 명물인 한옥은
민족의 자존심이자 자긍심이다
이제 전주 한옥마을은 한국관광 백과사전에 오르면서
세계에서도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이어 서동 왕자와 선화 공주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오는
마한 백제 문화 고장인 익산으로 이동했다.
보석 박물관에 내리자 프랑스 르부르 박물관에 들른 듯
피라미드 풍 유리 건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2002년에 개관한 보석 박물관에는 진귀한 보석이 기획 전시관과
상설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고 판매도 한다.
보석 매장을 빠져나와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어떤 보석색깔도
하늘만한 색상이 없다.
햇살이 점점 뜨거워지고 왕궁리 성지로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2015년 미륵사지와 왕궁리가 세계문화 유네스코 문화 유산에 등재 되었다.
현재의 오층석탑은 고려 전기의 석탑으로 1965년 해체 보수하여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 되었다.
발굴과 정비작업이 진행중인 백제 후기의 왕궁터를 빠져나와
나바위 성당으로 이동중 버스창가로 뜨거운 태양이 앉는다.
모내기가 끝난 연초록 어린 묘가 나래비로 서 있고
모내기 전 논에는 가두어둔 물이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화산의 끝자락에 있는 넓은 바위인 나바위에 위치한 성당은
전라도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당초에는 목조 건축이었는데 중축하면서
한양 절충식으로 고딕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국가 지정 문화재로 지정된 성당에 한지로 된 창으로 투사한 오후 햇살이
부드럽게 흘러 들어왔다.
우측 제대 감실에는 김대건 신부의 유해중 목뼈가 모셔져 있다니
경건함이 절로 든다. 성당 뒷켠으로 나바위에 오르는 계단 입구에
김대건 신부의 입상이 서 있고 나바위에 오르면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순교비가 세워져 있다.
백여 미터 화산과 농촌 마을의 주변 경관이 어우러진 망금정에 서니
유유히 흐르는 금강이 고요하기만 하다.망금정을 떠받들고 있는
나바위 뒤편에는 마애삼존불상이 희미하다.
금강 줄기의 강바람과 나바위의 솔바람이 솔솔부는 이곳이 종교를 불문하고
기도처로는 그만이고 신성한 성지임에 틀림없다.
오래된 성당의 첨탑 종루가 소나무와 함께 한폭의 그림이다.
만경지맥과 호남정맥, 금남정맥의 푸른 산 너울 아래 찬란했던 백제 문화 유적과
성스러운 땅을 빠져나와 이제 서서히 여행은 끝이 나고 있었다.
고향 친구들과도 헤어질 시간이다.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의
고장 전주와 익산과도 이별이다.
맛과 멋을 잊지 않는 내고향 땅이여,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