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22. 10:03ㆍ백대명산
일시-2019년 9월21일 토요일 비
장소-영광 불갑산
코스-불갑사 주차장-불갑사 화장실 뒷편 등산 진입로-덫고개-법성봉-장군봉-연실봉-구수재-해불암 갈림길
-불갑사-불갑사 주차장-물레방아 주차장
산행거리9.4km+접속거리 2.5km=11.9km를 4시간 20분 걸림
태리가 태어나고 집안은 새식구로 한가할틈이 없었다
그동안 삼일마다 미역국 끓이느라 아주 죽을 똥을 싼지 거의 한달이다
친정엄마가 아니면 그런 수고로움은 피하고 마는것이 요즘 세태던데
자청 산후조리원도 안보내고 내가 사서 내가 고생을 하고 있으니
아파도 참는수밖에 없다
올봄부터 목은 계속 안좋다
두달간이나 앓고 알프스 산행을 강행하며 더위로 면역이 떨어진상태라
다시 재발하는것은 어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약으로 겨우겨우 지내는 사이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볼이 탱탱하고
허벅지도 굵어지고 다리심도 생겼다
고개는 이미 빳빳해져 이리저리 돌리고 있으니 자라는것이 너무 빨라 매일 놀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집안에서 식모살이만 하다가 한달만에 외출이다
불갑산은 백명산으로 멀리 전라남도 영광까지 원정산행이다
버스로 왕복 여덟시간 집에서 부터 따지면 무려 열시간 차를 타야 한다
새벽에 일어나야한다는 부담감으로 전날밤 잠을 설쳤다
몇년에 걸친 산행으로 이제는 조금 잠잠해졌나 싶었더니 한달만에 다시 나가려니
도로아미타불이다
새벽 다섯시,아직 밖을 어둡고 하던대로 국말이 밥을 한술 떴다
싸늘한 기온이 아파트를 돌고 버스는 빠르게 지하철 환승역까지 왔다
오랜만에 나와보니 어디를 가는지 배낭맨 산꾼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주말이다
새벽부터 밀려드는 차들을 비껴 서울을 빠져나간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남부지방에 태풍으로 비소식을 듣고 가는판이라 걱정이 된다
검은 하늘이 서서히 밝아지고 잔뜩 찌뿌린 하늘에는 회색구름이 가려져 있어
더욱 서늘한 느낌이다
버스에서도 눈을 감아도 잠이 들듯 말듯 그동안 피로가 쌓여서 그런지 몰라도
노곤하기만 하다
빠르게 지나가는 차창으로 비친 들판이 어느새 가을색을 띄고
남부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들판의 색깔이 달랐다
길가의 달맞이꽃들도 찬이슬을 맞고 시들거리고
백일홍나무도 꽃들이 거의 다 떨어지고 있었다
전라도 땅으로 들어서고 영광이란 고장이 나오자 원불교의 동그라미가 훤하게 보인다
원래 원불교의 성지가 전남 영광이다
유난히 낮은 지붕의 마을이라 논둑보다 더 낮아 꼭 집이 땅속으로 기어들어가는 형색이다
불갑사 도착하기도 전에 논둑에는 꽃무릇이 나래비로 줄을 서서 피어 있다
노랗게 익어가는 벼들과 빨갛게 피어있는 꽃이 환상적이 조화를 이룬다
가을색감이 아름답다
아직 상사화 축제중으로 불갑사 주차장은 이미 만원이다
버스가 정차할만한곳도 찾기가 힘들어 농로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야 불갑사 일주문이 나온다
아침부터 축제장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일주문에서 불갑사 절까지 도로도 혼잡하고
거리곳곳에서 상인들의 호객소리와 노래가락이 흥겹다
축제현장에 갈때마다 자주 만나는 수와진도 기타치며 노래하고 있었다
절 입구에 피어있는 꽃무릇이 발길을 잡고 사진찍는 사람들과 구경하는 사람들을 간신히
피해 절 뒷편으로 난 산행도로를 따라 산으로 진입하면서 본격적인 불갑산 산행이 시작된다
산행초입의 언덕까지 핀 빨간색 꽃무릇에 넋을 빼느라 발걸음이 느려졌다
한두방울 내리던 비는 제법 뿌린다
그래도 산행나온 사람들은 오르고 올랐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노랫말에 나오듯이 비맞고 산행하는 산꾼들의 등짝이 무거워 보인다
난 스틱을 잡느라 우산을 접고 그냥 비를 맞았다
오히려 시원했다
더운거 보다는 추운게 낫다고 내 머리는 이미 물에 젖은 생쥐꼴이 되었어도
머리가 개운하다
완만한 오르막을 계속하여 닻고개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에서 해발고도 343m의 노적봉을 찍고 이어 해발고도 364m의 법성봉과 연이어 해발고도 418m의 투구봉이다
봉우리마다 정상석은 없고 단지 표지목이 봉우리를 알릴뿐이다
이름없는 동네산이나 다름없다
꽃무릇꽃이 없었다면 전국각지에서 많은 산꾼들이 몰려들 이유가 없어 보인다
이어 해발고도 447m의 장군봉을 찍고 백대명산의 인증장소인 연실봉까지 남은 거리 3.2km다
비오는 와중에서 곳곳에 비닐 천막을 치고 점심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때는 점심때가 지나고 나는 오렌지 주스로 배도 불리고 에너지도 챙기며
그냥 연실봉까지 직진이다
어려운 암릉길과 쉬운 흙길 두갈래길에서 흙길을 나두고 암릉길을 택했더니
이렇게 비오는날에는 삐긋하면 넘어질수 있으니 흙길로 갔어야 하는건데
암릉길에 부착된 쇠난간이 비에 젖어 손에서 미끌거렸다
비와 안개로 조망도 없는 암릉을 벗어나니 백팔개의 계단길을 올라서
드디어 영실봉이다
영실봉 가는 계단부터 이미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잔뜩 있다
모두다 백명산 인증을 하기 위해 비오고 바람불어도 이곳에 올라온 사람들이다
이미 온몸이 비에 젖어 이대로 기다리단 저체온에 걸릴지도 모른다
우의를 꺼내 젖은 옷위에 겹쳐 입고 서서 기다리는중에 빵으로 점심을 때웠다
삼십분이나 기다린끝에 내차례가 되어 부리나케 인증 사진 한장을 남겼다
그 와중에도 얌체족은 옆길로 파고들어 인증한다고들 난리다
어딜가나 자기만 편하길 바라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신체만 단련시키자고 산에 오는것도 아니거늘 심신 수양도 아니 일부러 수행도
해야한다
점점 비가 거세진다
태풍은 내일 한반도를 강타한다는데 비는 벌써부터 내리고 야단이다
안개가 잔뜩끼고 어두침침한 하늘에 비까지 내려 금방이라도 날벼락이 내릴것만 같다
영신봉 봉우리를 벗어났다
빠르게 구수재로 내려서 해불암 갈림길까지 내려왔다
오르고 내렸다를 수십번씩 하는 백두대간도 아니거늘 다 나앗다고 여겼던 왼쪽 무릎이 신호를 보낸다
도솔봉 갈림길에서 불갑사 까지 길은 아주 좋고 다시 꽃무릇이 침침한 길을 밝힌다
몇년전에 갔던 선운사 꽃무릇보다도 훨씬 많고 탐스러워 한번쯤은 구경할만한곳이다
불갑사 저수지가 나오고 빗물 저수지물 붉은 꽃무릇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스틱을 접고 우산을 받으려고 보니 구멍난 배낭 옆주머니에서 빠져 나갔나 우산이 없다
가져왔던 쓰레기도 고스란히 담아가서 버려야 하는건데 우산을 놓고 왔으니
큰일이다
어디서 떨어뜨렸는지 알수가 없다
누구든지 필요한 사람이 우산을 받고 내려왔으면 좋겠다
사실 영광 불갑사 고창 선운사 함평 용천사에 지금쯤 피는것은 꽃무릇인데
그냥 잎과 꽃이 영원히 만나지 못하여 이루어질수없는 사랑,슬픈 사랑의 꽃말을 지녀
상사화로 통털어 부른다
상사화는 잎이 지고난후 꽃이 피는데 칠팔월에 분홍색이나 미색으로 원추리꽃이나 백합처럼 피는데
줄기는 갈색이다
꽃무릇은 꽃이 지면 잎이 나고 구시월에 꽃잎이 뒤집혀 말리는 형식으로 불꽃 왕관모양의 붉은 꽃이다
원산지는 상사화가 우리나라이고 꽃무릇은 일본이다
붉은꽃을 하도 많이 보고 오던 밤길 비는 억세게 내리고 고속도로의 차량 불빛도 붉게 비쳐온다
젊은 기사분 운전대는 또 얼마나 터프하게 잡는지 버스가 흔들흔들
그날밤 가슴을 쓰러내리며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