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10. 13:01ㆍ산문
2020년 11월9일~11월10일 월요일 화요일
초 긴장의 순간에도 생명은 잉태하여 태어나고 삶의 역사는 잇는다.
제자리로 돌아와 이틀후 인터넷을 연결했다
장시간 비행과 시차 적응으로 시들해진 몸뚱아리를 이끌고 귀가하니
해외 입국 자가격리자란 딱지를 달고 집안에 갇혀
먹고 자고 싸고 감옥이 따로 없었다
하루에 두번 기본 건강체크를 앱으로 전달해야하는 의무와 함께
담당 공무원의 불시 전화와 위치 추적기로 이주동안 감시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레오가 태어났던 병원도 코로나를 피하지 못했고 내가 떠나는날 헝가리는
하루에 오천명의 확진자가 생기면서 모든 호텔과 레스토랑은 문을 닫고
야간통행금지를 실시하는 국가 비상상태에 돌입했다
그뒤의 일들은 어찌 될지 한치 앞을 모르는 상황이다
디 데이날이 돌아왔다
오늘 가면 언제 다시 올지,상상이 안가는 날
오려고 맘만 먹으면 항공권 끊어 언제든지 다시 올수 있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라 우리는 다시 이별의 아픔을 삼키고 헤어져야만 한다
다른날보다 이른 시각에 일어났는데 거실 창가로 비친 세상은 회색분칠해 놓은 풍광뿐이다
맑은날에는 앞동의 테라스에 있는 탁자와 의자들 심지어 꽃에 물을 주었는지 안주었는지도 가늠이 되는데
어제에 이어 오늘도 아침 안개는 아파트 촌을 안개속에 가두었다
오늘도 물론 아침 식사를 미역국말이밥을 해 먹는데 다른날보다 남은 찬밥까지 밥을 더해
배 불리 먹고 우유도 한잔 마셨다
딸네집에 있는동안 산모도 아닌 내가 전직 산모라는 이유때문만이 아니라
가기전 너무 긴장한탓에 먹으면 배가 더부룩 하고 안 먹으면 기운이 없는 신경성 위염을 달고 와서
헝가리식 아침은 먹을수가 없었다
산모와 같이 삼시세끼 미역국을 먹었다
내가 주로 먹고 남은 우유와 오렌지 주스는 냉장고에 남편이 자기전 한잔씩 마셨던 토카이 와인은
전자렌지 위에 올려 놓았다
술은 한잔도 안 마시겠다는 남편의 각오는 깨진지 오래고 앤서방이 가끔씩 사온 맥주와
한잔씩 마신 토카이가 천오백씨시 패트병 두병을 다 비우고 세병째다
집 떠난 고단함은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여 와인으로 하루를 마친셈이다
물갈이를 하였어도 설사는 커녕 오히려 변비로 고생한 편이라
열시간 넘게 앉아 있으려면 가기전에 대변도 봐야한다
그동안 덮고 사용했던 이불커버 베게 커버를 벗기고 침대 커버도 벗겨 수건과 함께 빨래감을
둥둥 싸서 모아놓고 우리 짐도 모두 싸서 트렁크에 넣었다
기내에 들고 탔던 작은 케리어에 자질구레한 짐들을 쑤셔넣어 큰 케리어에 집어넣었다
배낭하나에도 남은 짐을 넣어 다른 큰 케리어에 넣으니 올때 보단 짐 하나를 덜었다
수화물로 부칠 큰 케리어 두개와 기내에 들고갈 노트북과 카메라는 내가
남편은 등에 맨 배낭과 작은 백 하나로 단촐하다
아홉시쯤 아이들을 보러 가려던참에 앤서방이 와서 케리어를 밀고 함께 지원이네집으로 갔다
아침 먹고 난 그릇들도 아직 세척기에 넣지 못한채 식탁과 씽크대는 어질러져 있고
반 접어 말아놓은 침대 매트리스는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그와중에도 레오는 자고 있고
태오는 똥을 쌌는지 기저귀를 가는 중이었다
팔년전 앤서방 총각때 비싸게 구입했다는 세무가죽 소파는 혹시라도 태오가 더럽힐까봐 천으로 둘러쳐져 있어
여기가 새집인지 헌집인지 분간도 어렵고
거실에서 잠을자고 일어나 치우지 못한 이부자리로 더 정신 산란한 집을 보자니 치워주고 싶지만 마음만 있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흐트러진 물건들을 보고도 손이 움직여지지 않고 눈은 아이들만 보인다
뭐라도 재잘거리며 말을 하면 시간이 더디갈까,째깍째깍 이별할 시각은 어김없이 다가오는데
올사람이 없다는데 띵똥 누가 벨을 누른다
뚱뚱한 헝가리 남자 두명이 얇은 마스크를 쓴 채 들어오고 그동안 습기제거기로 말리고 있는 벽을
검사하러 왔단다
여태 도망다닌 헝가리 사람들을 집에서 만나게 되다니 후다닥 마스크로 코와 입을 막고
빨리 나가기만 기다렸다
앞으로도 짧아야 한달 느긋하게 올 연말은 되어야 가구들이 다시 제자리로 맞춰 들어가고
옷가지들이 정리가 될것 같다
이곳 사람들처럼 느긋하게 변하지 않으면 뒤로 나자빠질일이 한둘이 아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더니 지원이도 헝가리 아줌마로 살아야 살아 남을수 있다
그리곤 앤서방이 큰 트렁크 두개를 끌고 남편도 성큼성큼 뒤돌아보지 않고 긴 복도를 걸어갔다
태오를 다시 안아보고 레오를 다시 쓰다듬어 보고
나도 뒤돌아서는데 지원이는 찔끔거리며 주방으로 피신한다
울고 있는게 분명하다
나도 무슨 말이라도 해야 현관밖으로 나올수 있겠는데 애꿋은 태오만 바라보다
정작 지원이한테는 뒤통수에다 대고 울음반 말반 이제 아들 두명이나 두었으니 힘내서 살아야한다,
들었나 못들었나 나도 찔찔 짜며 긴 복도를 빠르게 벗어났다
우리가 살았던 아파트는 오피스텔 형식의 실내 복도식인데
지원이네 아파트는 현관문 있는쪽이 실외 복도식으로 되어 있다
두집을 지나고 복도를 돌아서면 엘리베이터가 나온다
태오때는 첫 출산이라 아무것도 모르는 젖먹이를 떼어놓고 오기가 발길이 안떨어졌어도
이번에는 두번째니 웃으며 헤어질거라 장담했었건만
그 예감도 틀렸다
앤서방 차를 타고 지원이가 자주 이용하는 두나 프라자에서 좌외전을 하여
공항으로 오는 한시간 내내 눈물은 저절로 흐르고 마스크속으로 콧물이 흐른다
어느덧 안개는 사라지고 화창한 햇볕이 쏟아진다
바람 없는 맑은 햇빛이 자동차가 가는길을 비추고 내 감정선이 보태진 차선은 흔들렸다
가로수에 달려있는 잎새들이 떨어질듯 흐트러져 보이고 중세풍의 고풍스런 건물들과
오래된 도로가의 가로등마저 이별의 서글픈색을 덧칠한듯 뿌옇게만 보인다
부다페스트 리스트 페렌츠 공항 주차장은 차가 십여대뿐 텅 비었다
공항이 거의 패쇄 되다시피 문을 닫은 상태니 당연한 결과다
공항에 들어서면서 마스크를 새것으로 바꾸고 프라스틱 방역 마스크도 덧씌워 썼다
트렁크 두개를 수화물로 부치고 검색대 앞에서 앤서방과 헤어졌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정이 들었나 앤서방을 안아주고 돌아서는데 또 할말은 안나오고 눈물이 먼저 나온다
나이들면 눈물샘의 잠금장치가 말을 잘 안듣는다
그린곤 쌩쌩 검색대를 통과했다
몸은 통과하고 내노트북과 남편배낭은 확인이 필요하단다
노트북은 손난로가 문제였나 직원은 손난로를 만지작거리며 오케이를 외치고
배낭은 공항 오면서 마시고 남았던 물이 들어 있었다
비행 탑승 시각 오후 두시반 그때까지 한시간 반이나 남았다
물 두병을 사서 들고 사람들 없는 좌석에 앉았다
때를 놓쳐 허기지면 이별의 슬픔이 두배로 찾아올지 몰라 사람을 피해 청승스럽게 빵을 쑤셔넣고
물을 마셨다
여행중에는 특히 코로나시대의 유럽에서는 문 닫는 가게들이 많아 비상식량으로
물과 비스켓이나 빵을 휴대해야 배고픔을 면할수있다
돌아다니는 몇몇 사람들은 유럽을 떠나려는 동양인들이고 띠엄띠엄 앉아 있지만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할만치 심각한 나라에서 떠나는거라 여기서 만나는 사람은
모두가 바이러스처럼 보여 무섭다
공항 안에도 식당은 아예 영업을 하지 않은채로 닫혀 있고 한두개 면세점과 간이 판매대만
물건을 팔고 있었다
올때마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던 페렌츠 공항이 왜 이렇게 작고 시설이 낙후되었다고 했었는데
오히려 오늘은 크고 썰렁하여 이리저리 둘러봐도 헝가리 직원들외에 나처럼 생긴 사람만 있을뿐
화장실에 가도 나 혼자이고 다른나라 사람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유럽이 심각단계를 넘어 거의 마비 수준인게 틀림없다
태오 레오 앤서방 지원이와 헤어진지 몇시간도 안되었는데
자식들 걱정은 뒤로하고 어서 우리나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다
다른때보다 유난스럽게 몇번의 출국심사를 마치고 마지막 항공권 검사를 하면서 개찰구로 들어가는데
컴퓨터로 자리 배정을 다시 조작하였는지 내 좌석넘버가 다르고 남편도
바꿔놓고 지네들 맘대로 좌석번호를 뒤죽박죽 해놓았다
기내로 탑승해보니 비지니스석도 텅 비고 이코노믹석도 한군데에 몰아서 앉혀 놓았다
반절도 못탔는지 텅빈 앞좌석으로 사람들은 하나둘 맘대로 빈좌석을 만들어 거리두기 하며 앉았다
우리도 세명의 좌석칸을 둘이 띄어 앉았다
허기사 언제 걸릴지 모르는 코로나로 이미 떠날사람은 다 떠나고 나처럼 어쩔수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뿐일테니
그럴만도 하겠다
승객이 차지도 않은채 비행기가 뜨는 이런일은 처음 보는광경이다
아침 안개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화창하게 비치는 햇살과 푸른 하늘이 배웅하는데
나는 왜 이리도 눈앞이 흐려지기만 하는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지원이와 재회했을때는 여름이 끝나갈 무렵 팔월말 그날도 많이 더웠다
끈 나시 원피스를 입고 배는 남산만해가지고 눈을 쑥 들어가고 광대뼈는 툭 튀어나오고
얼굴에 기미가 끼고 누가 봐도 피곤과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모양으로 나를 아프게 만들더니
이제 조금 사람 모양을 갖추게 되어지는 시점에서 다시 헤어져 버리다니
만날땐 기뻐서 좋았는데 헤어질땐 지랄맞게 슬퍼서 다시는 헝가리에 못올것만 같다
그러길래 누가 헝가리놈 만나 이런 먼곳에서 살줄 알았나,꿈에도 생각 못했던 일이다
비행기는 하늘로 올랐다
엔진 소리가 시끄러워 솜으로 귀를 틀어막았지만 붕 떠오르는 쾌감은 오래갔다
두나강이 길게 이어졌다 끊어졌다 하며 따라온다
이차세계대전 당시 유태인의 죽엄과 작년에 우리의 죽엄이 보태져 더 슬픈 강이
되어버린 두나강이다
내가 매일 산책길에 보았던 강가 아래 수초와 모래들을 파도치듯 때리던 강물은
희미한 물 비늘만 남기고
부다페스트는 점점 멀어져 콩알 만하게 보이다 점으로 보이다 아예 사라져 버렸다
도나우 또는 다뉴브 강이라고도 불리는 헝가리말로 두나강은
독일 슈마르츠 발트 삼림지대의 두개의 작은샘에서 발원하여 오스트리아 헝가리를 거쳐
유럽 대륙의 남동부로 약 2.850km를 흘러 흑해로 흘러들어간다
유럽의 제2강으로 옛부터 유럽의 중요 교통로로 이용되었고 지금도
어마어마한 큰 화물선이 수시로 지나다닌다
강폭은 작으나 유속이 빠르고 강물이 깊어 빠지면 살아날길이 없어 보인다
구름위에 뜬 내가 하늘을 나는지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지
나는 꿈속에서나 태오 레오를 만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머리는 어제 그제 일들이 아니 칠십여일전일들이 파노라마도
영상을 찍고 있다
햇볕 드는날 오후에는 두나강물에 돌을 던지고 텀블링을 할때면 강남스타일과 다이나믹스 노래
박자에 맞추며 뛰던 태오 모습
어찌나 하는짓이 빠르고 똘똘한지 내가 똘똘이라 바로 별명을 만들었던 둘째 손자녀석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 다르게 커가며 이제 갓 옹알이를 하기 시작하는 레오 모습
페인팅을 칠한다고 사다리에 오르며 땀을 흘리고 수비드 요리를 배우겠다고 진지한 앤서방 모습들이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보인다
지원이는 내가 낳은 딸이라서 엄마 잔소리를 이해할수도 있겠지만
앤서방은 차라리 말이 안통해 오히려 나았었던 때도 있었다
우리집에서 십분거리의 지원이네집까지 매일 두번씩 오가며 얘들을 돌봐야해서
체력뿐 아니라 기력까지 바닥으로 떨어져 행여 도움주러 왔다가 병이라도 날까
전전긍긍하며 조짐 오기도전에 미리미리 약을 먹으며 지냈어도
어찌나 씽크대가 높은지 내 가슴팍까지 올라와 늘 어깨와 등짝이 쑤시고 결렸다
양변기 세면대도 높은곳에 붙어 있어
양변기에 앉으면 발은 바닥에서 들어야 편하고 세면대는 등을 굽히지 않아도 되었으니
그건 그네들의 키에 맞춘거라 순전히 내 작은 키가 문제였다
나도 내가 하는말들이 얘들에게는 잔소리가 된다는것을 알아도 주책없이 주절댔던 말들이
이제는 하고 싶어도 들을사람이 없다
입을 꼭 막고 있는 열시간넘는 비행시간내내 한 숨도 못자고 밥만 두끼를 먹고 오줌만 두번
그리곤 사람 시체처럼 앉아만 있어야했다
기쁨과 슬픔과 고독과 두려움이 공존했던 그 시간들이 지나가고
드디어 한국땅으로 나를 태운 비행기는 상륙했다
인천공항 검역이 까다롭다는 얘기는 이미 듣고 내린터라 각오는 했지만
의경들과 직원들의 일사불란한 배치로 같은 비행기에서 내린 일행은 줄로 엮진 않했지만
줄줄이 이어서 방역 검사에 검사,작성할것도 조사할것도 많았다
우선 자가격리자 앱을 깔고 본인 스마트폰인지 직접 전화로 확인절차를 마치고
해외입국자 자가격리자로 판명되면 질병관리본부와 구청 동사무소로 신고되어
꼼짝없이 우리는 감시대상자가 되었다
따로이 행동 할수 없으니 화장실 갈 엄두도 못낸채 지정된 방역택시를 타고
곧 바로 보건소로 직행했다
드디어 내 나라에 도착한 안심과 함께 장시간 비행중에 한숨도 못잔터라
보건소 가는동안 택시안에서 거의 죽은듯이 잤나보다
보건소란다
오전에 도착했어도 이리저리 떠밀려 수속절차를 마치고 오다보니 벌써 한낮인가,
햇빛이 눈을 찌른다
그 도시에선 늦여름 햇볕은 살갗이 벗어질것만 같아 우산으로 가리고
가을햇볕은 우기와 건기가 번가라가며 찾아와 하루종일 햇볕 볼시각이 몇시간밖에
안되어 그시각을 놓치면 금세 어둠을 사랑해야만 견딜수 있었다
그네들이 가방에 담요를 넣어다니며 해가 뜨면 수시로 누워 햇볕바라기를 하는 이유를 알았다
그곳에서 벗어난 만 하루 우리의 햇볕은 따로이 돈을 주고 사는것도 아닌데
오래가고 따뜻하고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비타민 디가 코로나 예방에도 도움된다고 과학적으로 증명 되었다니
좌외선 차단제를 발라가며 굳이 막을 필요도 없게 생겼다
그러나 자가격리중에는 창가로 비치는 햇살만을 사랑해야한다
얼마나 그리웠던 고국의 파란 하늘이고 따스한 가을햇볕인지
기온마저 올라가 가을 풍경이 도로가에 아직 남아있어 단풍잎과 은행잎은 춤을 추었다
코로나 검사장은 가건물인듯 보건소 밖에 따로 설치되어 있었다
멀리 떨어진곳에 금을 그어놓고 마치 우리가 무슨 식인종 아니 식충 벌레인듯
멀찌감치 마이크로 손소독하고 장갑끼고 서류작성을 하란다
그리곤 화장실이 급하다고 하니 검사장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자동문이 열리지 않는다
알고보니 그문은 혹시라도 감염될까 염려스러워 발로 눌러야 열리는 문이었다
세번의 심사를 거쳐서야 음압실이라는곳에 마련된 검사물 체취실로 이동하여
목구멍과 콧구멍 두번을 긴 면봉으로 검사를 하는데 목구멍은 안아프고
콧구멍은 얼마나 깊숙히 꼿는지 통증이 있을정도다
콧구멍 검사시에 나도 모르게 기침이 났다 직원은 뒤걸음질을 하며 기침하지 말라고
호통을 친다
마치 내가 무슨 코로나 바이러스라도 뿜어대는지 사람을 바이러스로 바라보는게 기분은 별로였지만
직원들의 고충도 알아줘야 한다
하루종일 남의 목구멍과 콧구멍을 찔러대며 혹시라도 본인이 환자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결과만을 남겨놓은채 택시는 집까지 데려다 주고 구만원의 돈을 카드로 지불했다
평소같으면 외국인들 전용일 대형택시가 입국하는 외국인 대신 비상시 해외입국자를
태우는 나라에서 정한 방침이란다
방역 택시는 완벽한 비닐막으로 운전석과 승객석이 구분되어 있었다
그사이 구청과 동사무소로 자가격리자가 집에 갔다는 전갈을 받았는지
때르릉 전화가 온다
혹시라도 한눈 팔고 딴곳으로 세는지 수시로 감시하는가보다
스마트폰에 켜진 지피에스덕에 우린 꼼짝달싹 못하게 생겼다
담당 지정 공무원이 연결되고 세부지침 사항을 공항에서 듣고 보건소에서도 들었는데
또 들어야만 했다
내일로써 떨어지는 남편의 고혈압 내 고지혈증 약이 문제라고 하였더니
그것도 대리처방해서 갔다 준단다
친절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내일 방역 물품과 함께 처방약도 가지고 방문예정이란다
담당 공무원이 방문하면 커피가 좋을까 허브차가 좋을까 고민한 내가 미울정도로
물론 마스크를 썼겠지만 다음날 우린 사람 코빼기는 고사하고 눈도 못 맞추고
약과 방역물품만 받았다
유럽에선 국가 비상상태를 선포하고 호텔과 레스토랑 영업중단에 시민들은 자유를 달라며
거의 폭동이 일어날 수준인데
물론 우리는 세금으로 하겠지만 코로나 대응은 참 철저하고 시민의식도 높아
마스크는 이제 필수품이 된 대한민국이다
밤 아홉시가 넘은 시각 음성 이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이제사 안심이다 혹시라도 양성이 나오면 우리 아픈것은 감수하고라도 지원이는 저 때문에
엄마 아빠가 걸렸다고 엄청나게 자책 할텐데 얼마나 다행인가 모른다
음성이래도 이주간은 자가격리라 아예 땅 밟을 생각은 접어야 했다
헝가리에서 막혔던 인터넷 로그인을 다시 연결하고 일시정지 전화도 해지되었으니
세상과 소통도 열렸는데 따로이 힘들것도 없다
다만 여덟시간 시차적응도 해야하고 그동안 인터넷이 막혀 메모장에 남긴 일기도 정리해야한다
거기서는 맘에 여유도 없을 뿐더러 시간도 모자란데다 읽을거리가 딱히 없어
유신말기의 구로공단 산업체 특별채용 학교에 다니면서 체험한 자서전격인 신경숙의 외딴방과
제노포브스 가이드의 세계 문화 안내서를 편역한 일종의 문화 가이드인
유시민의 독일 문화기 두권밖에 읽지 못했다
읽는것도 많이 고파 돌아다닐수없는 감옥생활에는 역시 대하 소설이라 박경리의 토지를 뽑아 놓고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를 구입했으니
나름 집안에서도 심심하진 않을 것이다
가기전 내가 주로 보았던 일일 드라마와 주말 드라마는 이미 종료 됨으로
테레비젼 켤일도 별로 없게 되었다
오랜만에 뉴스를 켜보니 앵커는 아직이고 뉴스 내용도 그때처럼 코로나로 시작해서
각종 사건사고와 음해 투기에 미쳐가는 사회 현상들은 여전했다
코로나블루라는 명칭이 생길정도로 누구나 우울한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너무나 우리사회가 공포심을 유발시켜 또 다른 병을 키우고 있다는것도 나라밖으로 나가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는 역사저널 아침 마당 복면가왕 불후의 명곡 몇개 안된다
마침 역사저널 김대중 납치사건을 다루는 역사저널을 시청했다
군사정권당시를 되새김질하는 울분이 생기지만 오늘밤은 시차적응으로 잘수나 있을지
헝가리에서도 여기저기 돌아가며 찾아온 통증 유발도 문제였지만
가장 고통스러운것은 잠이 오지 않을때였다
지금쯤 태오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 혹시라도 레오 얼굴이나 할퀴지 않을지
두 아들내미 건사하느라 지 얼굴은 매만질 겨를도 없어 까칠해진 딸네미는
미역국은 챙겨 먹었는지 집안일이며 청소며 아이돌보는일이며 여자 남자 일 구분없이
잘도 하는 앤서방은 재택 근무가 많아 숟가락 하나만 더 챙기면 되는데
사위 밥까지 해야한다고 투덜댔었는데 오늘은 출근했는지
쓸데없는 잡 생각으로 밤이 더 길다
세계적인 대유행 펜데믹 상황에서 내딸이 아니었음 강행하지 않았을 먼 원정 출산 산후도우미 역활을
자처하고 돌아온 칠십이일만이다
그동안 여름가고 가을 가는동안 레오가 태어나고 지원이 생일과 앤서방 생일
그리고 우리 결혼 기념일까지 많은 기념일이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한시적 무비자 기간이 육개월로 연장되었다고 더 있으라는
지원이와 앤서방의 요구에도 아서라,물설코 낯설코 무엇보다 말이 서툴러
내 명 내가 단축시키려면 모를까 공짜로 살라해도 이쯤에서 헤어지는게 맞다
자식은 해약도 못하는 가장 악성 보험이란 영국 속담이나
무자식이 상팔자란 우리네 속담들은 그냥 넋두리일테고
각각 다르게 자란 자식들이 못 미더워 옆에 붙어 있을수만은 없다
내 품 떠난 자식 언제까지 애태우며 살수 없기 때문이다
새 와인을 땄으면 옛 와인은 잊으라는 와인 격언도 있던데
떠나온 장소는 왜 머리속을 헤집고 다니는지
눈으로 안보면 그만큼 걱정은 줄어들게야,라며 나를 위로하고 싶다
하루종일 달려 해가 질무렵 목적지에 닿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데
지원이는 달려도 아직 해뜰 무렵인데 벌써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건강하여
이보다 더한 복도 없을것이다
무시무시한 감염병 소굴에서 퍽퍽 쓰러지고 병원이 마비된 상태를 보니
우리 생은 유한하여 길게 산다해도 백년이라 어디서든 내 삶이 소중하단걸 절실히 느낀다
오기 전날밤 꿈에 열대여섯살 전후의 태오와 열살넘은 레오가 늙은 나와 재회하는 꿈을 꿨다
알베르 카위는 "한겨울이 되어서야 나는 내 안에 사라지지않은 여름이 있다는것을 깨달았다"라고 했다
내가 가을이 지나 이제 초겨울이면 지원이가 여름이고 손자들은 봄쯤 되겠지
아무리 늙어 빠져도 나의 손자 태오와 레오가 멀리서 나를 찾아 오려는 희망이 생겨
오늘밤 천지 사이에 있는 구름을 타고 강물길 끝나는곳까지 가는 꿈을 꾸려면
아무래도 수면제라도 삼켜야 하겠다
전쟁 같은 하루하루가 지나고 세월의 강은 흘러 그리움으로 남는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어제는
떠나오며 목숨 걸고
오늘은
죽으면서 사네요
내일은
꿈 같은 바람 불어오면
얼었다 녹았다
그래도,희망이다
2020년 11월 하순 씀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로나 바이러스 4 (0) | 2021.01.04 |
---|---|
코로나 바이러스 3 (0) | 2020.12.29 |
또 다시 쓰는 유언장 (0) | 2020.07.24 |
코로나 바이러스 2 (0) | 2020.05.15 |
코로나 바이러스 1 (0) | 2020.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