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가야산(합천)

2021. 4. 7. 12:32백대명산

일시-2021년 4월6일 화요일 맑음

코스-백운동 주차장-백운동 탐방 지원센터-만물상-서성재-칠불봉-가야산 정상(1432.6m)

      -토신골 탐방지원센터-해인사-치인 주차장

 

봄 바람 휘날리며~봄이 오고 간다

지난주 유명 용문 두산을 연계했다

근교 산행이라고 얕잡아 보았다가 방전된 체력이 보충되기까지 나흘간의 휴식이 필요했다

용문산에서 힘들었던 너덜 하산길이 잊혀질 즈음 경남 합천 가야산으로 갔다

고속도로에서 59번 국도로 빠져나온 버스는 백운리 가야산 역사 신화 공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일주일을 안넘기고 자주 버스를 타다보니 울렁울렁 차멀미는 사라졌어도

좁은 차안에서 서너시간 말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숨도 가만가만 쉬어야 하는게

고역이다

버스 밖으로 탈출하다시피 빠르게 나와 마스크 벗어버리고 공기를 흡입하니

살것만 같다

먼지낀 공기라도 입 벌리고 숨쉬고 싶어 죽겠는데

콧구멍도 막아라 주둥이도 닫아라 내 맘대로 못하는것이 많다

오늘처럼 맑은날에는 어디 숨어서라도 마스크는 호주머니에 넣어 버려야 겠다

허기사 오르막 산행중에 마스크 그것도 황사와 코로나 바이러스도 차단된다는

구십사를 쓴다는것은 숨 막혀 죽을수 있는 행동중 하나다

코로나가 두번의 봄을 앗아가다 보니 일어나면 확진자 숫자를 파악하던 나도

숫자에 둔감해지고 있다

연일 오육백명을 넘어 칠백명에 육박하자 사차 유행이 시작될테니

최고 안전지대는 집구석이라는데 봄볕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자가 얼마나 될지

모를일이다

가야산 산행은 가야산 정상과 남산 제일봉 소리골 홍류동계곡 세코스로 나뉘어져 있어

가야산 일행만 풀어 놓고 버스는 남산 제일봉과 소리길 탐방하는 일행을 태운채 쌩하니

황산 주차장으로 갔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며와 이는 턱을 들고 살짝 목을 비틀어 올려야 제대로 멜로디가 살아난다

뱅뱅 맴돌며 하필 그 구절만 반복되다니

이어웜이란 귀벌레 증후군이다

우측의 가야호텔과 좌측의 가야산 야생화 식물원으로 가는 도로에는 만개한 벚꽃이 환했다

백운동 탐방 지원센터에서 사인을 하고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백운동에서 가야산 정상 가는 만물상 코스는 미리 인터넷 예약제로 하고 있으나

현장에서도 예약이 가능했다

사전 예약을 하였기에 사인만 하고 곧바로 만물상 탐방로 산길로 접어들었다

들머리 해발고도가 오백여미터나 되어도 고도를 구백여미터를 올려야 정상에 도달할수 있다

단단한 각오가 아니면 오르지 못할일이다

항상 그랬듯이 몇시간뒤의 일은 까마득히 모른채 시작할때 컨디션은 좋은편이다

초반에는 토산인데 상당히 가파른 오르막이다

가볍게 백여미터를 올라 산능선에 올라서니 반달가슴곰 출현주의 플랑카드가 나부끼고

심장 안전쉼터 표지목이 서 있다

다시 백여미터를 올리고 바위옆에 심장 안전쉼터 표지목이 꼿꼿히 서 있다

초반부터 급하게 백미터 이백미터 오르면서 자기 심장이 건내는 소리를 알아듣지 못한채

남들 발에 맞추다 보면 자칫 심장마비가 올수 있어 하는 경고문이다

천천히 숨고르기 하며 올려도 이마에서 얼굴로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들머리에서부터 삼백미터 고도를 올렸는데 걸은 거리가 이제 겨우 육백미터

앞서 올라가다 헉헉거리며 땀 고르는 산우가 있어 추월했다

들머리에서 날머리까지 꼴지를 못 면했던일이 태반인 나도 이런날도 있다

그네들도 가야산 만물상 코스를 나처럼 머리털 나고 처음 밟는지 힘들어 보였다

암릉바위을 올랐다 내렸다 하는 산행은 초보산꾼이나 날다람쥐 산꾼이나

힘든것은 매일반이고 다만 경험이 있나 없나 차이가 있을뿐이다

쉽다고 건방 떨다 다친 산우를 많이 봤다

조금이라도 에너지 소모가 덜 되려면 입은 가만히 닫고 가야되는데

저절로 끙끙 앓는소리가 나오니 나도 내가 모를 노릇이다

이내 이어지는 암릉과 계단길은 번가라 오르락 내리락 거리며

꾸준히 고도를 올린다

 

당신의 심장과 무릎을 위해 천천히 걸으라고 슬로우 탐방구간이라는 슬로건이

곳곳의 거리 표지목에도 붙어 있듯이 빨리 갈래야 빨리 발을 뗄수가 없는게

암릉과 계단이 무섭고 위험해서도 그렇지만

고개가 절로 돌아가는 풍광때문이다

미끄럼주의와 낙석주의 표지가 곳곳에 있어 발은 긴장되도 눈은 초롱해진다

예전에는 밧줄이 달려 있었다는 바위에는

가파른 나무계단 가운데에 나무송판을 한개씩 더붙여 놓은 계단과

스틱 부딛치는 날카로운 쇠소리가 나는 철계단이 놓여 있었다

다리심만 좋으면 얼마든지 경치 감상하며 눌루 날라 노래부르며 갈테지만

평소에 아파트 계단운동을 하고 고기를 먹어줘도

다리심이 그냥저냥 늘어날줄 모르는 나는 수십번 나오는 계단 앞에서

휴 한숨 한번 각오 한번 두번의 숨을 몰아야 겨우 올라갈수 있다

사람의 손길로는 도저히 만들어낼수 없는 신기한 바위들

떨어질듯 위태하게 붙어있고 업혀있고 머리에 이고 지고 신기하기만 하다

용문산 하산길 바위들이 날카롭게 섰다고 투덜댔더니

그건 바위라고 말하기도 민망할정도다

설악산도 아닌것이 바위 덩어리를 흩어 놓은듯 하지만 꼭 있을자리에 콕 박혀서

움직일줄 모르니 죽은듯 살은듯 혼이 서린거만 같다

수많은 다른 모습의 바위들이 길을 안내하여 만물상이라 하는가보다

지금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이나 쇼핑몰에서 온갖것들을 살수 있는 세상이지만

예전엔 온갖 것들을 다 파는 만물 상회라는것도 있었다

이럴줄 알았음 심원골이나 용기골 계곡으로 쉽게 올라올걸 그랬나 싶다가도

바위와 바위사이 가느다란 숨구멍에서 피어난 진달래를 보노라면

살랑거리는 바람에 땀도 쏙 들어가고 심약했던 맘도 쏙 들어간다

 

해발고도 천미터가 넘었다

천미터 고지위로는 소나무와 바위뿐이다

바위와 바위 사이를 비집고 살아남은 소나무 한그루 가지끝에 달린 잎은 누렇게

변했는데 얼마나 더 버틸수 있을지

아프니 밟지 말라는 문구를 매달고 있었다

서성재를 앞두고 일일구 구급함도 있을 정도로 가야산 만물상 구간은

위험이 도사리는 코스다

서정재 전에서 허기를 참지 못하고 점심을 먹고

가야산 여신인 정견모주와 하늘신인 이비가지가 노닐던 전설을 담고 있는 상아덤을 지난다

상아덤이란 달에사는 미인의 이름인 상아와 바위를 지칭하는 덤이 합해진 이름이다

끝이 뾰족하지 않은 긴 바위들이 나래비로 걸어가듯 정겨워 선남선녀가 놀기에는

딱이다

신도 바람도 쉬어간다는데 사람도 쉬어가는게 맞는 바위길 위에서 지친 산꾼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어 서성재다

서성재는 경북 성주군 수륜면과 경남 합천군 가야면을 잇는 고개로

가야산성의 서문이 위치에 있었다 하여 유래된다

해발고도 1130m 높은 고개는 너른 공터로 쉼터 의자와 평상이 있다

겨우 3km로 오는데 2시간이 소요되었다

칠불봉까지 남은거리 1.2km 정상까지는 1.4km 남았다

쉬지않고 이어진 길은 산죽과 잡목이 섞힌 사이의 너른 나무계단을 지나고

너덜지대를 지나고 다시 바위길이다

천이백 천삼백 고도를 올릴수록 바위는 커지고 색깔도 진해졌다

 

이어 상왕봉 조망점인 칠불봉이다

좌측으로 조금 비껴 있는 벼랑의 칠불봉은 예전에는 강심장만 오를수 있어

위험했다는데 계단이 놓여있어 쉽게 올랐다

해발고도 1433m의 칠불봉에 서니 파란 하늘에 구름 한점 없고

햇볕은 눈이 부시도록 찬란하게 빛났다

올라오는자만이 느낄수 있는 환희다

지도상에는 해발고도가 1390m로 표기된다

가야산 산신과 하늘신이 낳은 형제중 첫째는 대가야의 왕이 되었고

둘째 아들이자 금관 가야의 시조 수로왕은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과 결혼하여

왕자를 열명이나 낳았다

그중 일곱이 신불봉 봉우리 아래서 삼년간 수도끝에 생불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상왕봉까지는 이백미터 거리를 두고 있다

손에 잡힐듯 풀 한포기 없는 가야산 정상부의 바위군들이 장관이다

칠불봉을 내려와 다시 암릉 바위길과 마지막 계단을 올라 가야산 정상에 섰다

해발고도 1430m 상왕봉이다

정상석에 표기된 높이로는 칠불봉이 삼미터 높다

소머리 모양을 닮아 우두봉이라고도 하는 상왕봉은 원래 칠불봉과 하나였다가 갈라져

뚝 떨어진듯 솟아있다

 

택리지에서도 가야산을 예찬하며

"경상도에는 석화성이 없다

오직 합천에 가야산만이 뾰족한 돌이 줄을 잇달아서 불꽃 같으며 공중에 따로 솟아서

극히 높고 빼어나다"라고 했다

가야산은

경남 합천군 가야면과 경북 성주군 가천면 수륜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주봉인 상왕봉 칠불봉과 두리봉 남산 단지봉 남산제일봉 매화산등 천미터 내외의 연봉과

능선이 둘러 있고 동남방의 홍류동 계곡쪽을 제외하고 모두 급사변을 형성하며

우리나라 삼대 사찰중 하나인 해인사와 그 부속 암자들이 자리한 산이다

예로부터 해동 십승지 또는 조선 팔경인 가야산은 1972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숫자로 셀수 없을만큼 산이 많은 우리나라 그중 남한만 하더라도

이름 붙은 봉우리가 대략 사천사백여개가 넘는다 하고

산이 있는 명당자리 그곳에는 꼭 절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중에 삼대 사찰로는 양산 통도사 승주의 송광사 합천 해인사를 일컫는다

상왕봉 정상에서 바라보면 산맥은 멀리 서쪽으론 덕유산으로 흐르고

남쪽으론 지리산으로 향한다

지질은 화강암과 화강 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부에는 우비정이란 바위샘이 있는데 높은 곳에서 샘물이 나온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그러고 보니 높은 바위틈새로 조금씩 물이 흘러내리는곳이 곳곳에 있었다

어떠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우비정의 소머리의 코에 해당되는 부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비단 개구리가 살았다고 전해지는 우비정에는 작은 벌레 한마리도 없고 상당히 깊고

고인물은 푸르렀다

옆에 프라스틱 바가지가 놓여 있었다

한번 마시면 청량감이 가슴을 찌른다고 적혀 있으나 차마 마시진 못했다

들머리에서 서성재까지 삼킬로는 힘들어도 뒤따라오는 만물상군들 경치 구경하고

사진 찍느라 많이 지체했다

다시 서성재에서 가야산 정상까지 일킬로는 급하게 소진되는 체력으로 계단오르기가

느려져 산행시작 세시간만에 정상을 밟았다

경사가 급하고 긴 계단은 곰처럼 네발로 기어 올라갔다

가야산에서 잠들어 있을 곰이 깨어나면 안되니 살금살금

정상에서 두리봉 수도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비법정 탐방로이고

나는 사킬로 남은 해인사로 내려갈일만 남았다

정상에서 하산길 초반은 바위가 크고 미끌어 조심해야한다

역시 계단과 바위 이제 지겹다는 소리도 안나온다

국립공원답게 탐방객들은 생각한 벼랑 데크길까지 놓여 있다

정상에서 육백미터를 내려오면 좌측으로 오십미터에 석조 여래 입상이 놓여 있다

집이 없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롯이 맞고 서 있을 부처님은 보물이다

가야산 대피소 기점을 지나고 길은 점점 편안해진다

얼마만에 만난 흙길인지 발바닥이 부드러워 만물상 오르내리며 쥐났던 오른쪽 발가락도

잠잠해졌다

계곡물과 만나고 토신골 계곡길이다

낮은 산죽과 얼레지 군락길을 지난다

산 위에서 허옇고 회색 바위덩어리하고 시름하다 산 아래로 내려오니

이제사 봄이 환하게 피어나 그리 무거웠던 발걸음이 가벼워지니

여기가 천국이다

쉴만한 의자와 너른 공터가 나와도 팔만대장경을 보려면 쉴 여유가 없다

계곡물은 철철 빠르게 흐르고 수량도 풍부했다

 

드디어 육백여미터 고지에 앉은 해인사다

해인사 경내를 후문으로 들어가 곧바로 세계문화유산인 팔만 대장경이 있는

장경판전으로 갔다

고려 고종때 무려 십오년에 걸쳐 완성된 팔만 대장경은

부처의 힘으로 외적을 물리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데

바람 구멍이 숭숭난 건축물에 보관되어 있었다

공기의 흐름으로 습도와 온도가 자동 조절된다니 옛건축이지만 과히 과학적이다

해인사 일주문을 빠져나와 버스가 서있다는 치인 주자창까지 일키로오백쯤 되는

시멘트 도로를 거의 경보 수준으로 걸어도 왜 그리 길게만 느껴지는지

십킬로여 조금 넘는 산행이 다섯시간 삼십분이나 걸렸다

너른 버스 주차장에 달랑 한대 버스만 서 있고 어느새 해인사에서 나왔다는 자가용 한대

해인사 땅을 딛은 사람은 삼천원 입장료를 내란다

산꾼들은 주로 하산길에 절을 들렀다 오는 경우가 많아

정문도 아니고 후문으로 들어갔다 정문으로 빠져 나온것을 어찌 알았을꼬

여태 산을 내려와 절을 통과해도 입장료를 받지 않던데

해인사는 앞에서 들어가나 거꾸로 들어가나 돈 없인 구경 못한다

빨주노초 연등이 나부끼는 일주문을 내려오면서 해인사에 압도되었나

만약 중이 된다면 해인사에서 수도승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미친 생각이었다

중생을 구한다는 선한 자비로 무료 입장하라면 시주는 몇배가 될것이다

가야산이란 명산이 있었기에 해인사가 거찰이 되었을텐데

사찰이나 교회나 종교도 요즘은 돈이 중한 기업이다

오후 햇살이 따끈거리는 주차장에서 창창한 바위군들을 쳐다보니

방금전 산에서 놀다온게 맞나 까마득하기만 하다

만물상으로 오르며 뒤돌아 갈수도 없어 극심한 공포로 긴장했던게

몇시간전이다

내려와 보니 안전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어느 국립공원보다도 안전한 산인데

순전히 내 체력이 모자란탓이다

아마도 수십개의 계단이 바위와 바위를 이어주고 있었던거 같다

후덜거리면서도 정상에 올랐다가 무사하게 내려온것이 천만 다행이고

잘한일이다

투덜거리면서도 바위에 점점 길들여 지는가

가야산 산행 여독은 만 하루만에 회복되었다

태백산맥이나 소백산맥을 떠나 있으면서도 그 산의 높이가 높고 수려하여

유람과 풍류의 이상향인 가야산 품으로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입산을 한다

가야산에 입산후 다시는 세상에 나타나지 않은 최치원 뒤에도

김일손 김종직 강희맹등 많은 선현들이 가야산을 유람하며 시와 문장을 남겼다

강희맹은 "가야산 좋단 말 십년 동안 듣기만 했네

내가 오니 구름이 짝이 되고

중이 누웠으니 사슴이 벗하네

손의 베갯머리엔 차가운 시냇소리 말고

향반엔 고요한 밤 깊었구나

다생을 고화속에 괴로워하던것

왜 이다지고 부끄러운가"라고 썼다

 

버스는 빙빙돌아 영험한 가야산을 빠져 나오고

눈을 질끈 감았다 떠보니

봄 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어느새 바이러스가 득실대는 세상에도

꽃잎이 휘날렸다

 

가야산에서

 

하늘신과 가야신이 뛰어 놀던 만물상에

기암괴봉 불쑥 솟구치네

 

벼랑길과 바위길에 불꽃 담아

낮은곳 높은곳 자유자재로 흘러가네

 

높고 빼어난 그 자태

닮을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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