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26. 20:00ㆍ영화
감독-양우석
출연-송강호,김영애,오달수,곽도원,시완,송영창,조민기등
웹툰 이야기 작가인 신임감독 양우석은
"졌지만 지지않음을 전달하고 싶었다"
"치열하게 살았던 부모님 또는 형님세대를 통해 현실의 한계를
깨트리고 나갈수 있는 치열함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다."
"우리사회가 이런 픽션을 충분히 이야기 할수있는 시기라 생각해
주저함은 전혀 없었다."
라고 말했다.
주인공인 배우 송강호는
"그분의 치열한 삶을 어찌 감히 담아낼수 있겠나,
최소한 작은 진심을 담아 연기했다."
"영화 외적으로 정치적으로 해석되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이념의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알고 있는 힘겨운 시대를
통과한 이들의 이야기라 부담없이 공감할수 있을것이다."
라고 말했다.
제작자인 대표 최재원은
"오로지 취업만이 목표인 대학 후배들을 보면서
삶이 그런건만 있는것이 아니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당시 인권변호사가 많지만 그 분이 가장 드라마틱했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양감독이 시나리오를 가지고 왔고 그래서 의기투합된것이다."
"그분의 전기 영화를 만드는게 아니기 때문에 그분의 색깔을 빼는거
그자체가 목표였다."
"이 이야기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허구의 이야기 입니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자막이 흐른다.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직업인으로서의 변호사 한사람이
상식과 원칙을 바탕으로 진심을 변론하는 변호인으로 태어나는
영화이다.
때는,5공시절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때 말한마디 잘못했다가는
안기부나 삼청교육대로 잡혀가서 병신된 사람 많았었다.
송우석(송강호)는 가난하고 배경없이 상고 출신이지만 법조인을
꿈꾼다.
갑작스레 아버지가 되면서 아내 수경(이항나)가 아이를 낳자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하느라 접었던 고시공부를 다시 시작한다.
우석은 마침내 고시에 합격하여 대전에서 지방법원 판사가 된다,
판사를 그만두고 고향인 부산에 내려와 가족의 생계와 안위를 위해
현실에서 제일 필요한 돈을 벌고자 나이트 클럽 호객행위 삐끼처럼
명함을 돌리면서 차가운 시선으로 손가락질을 받지만
부동산 등기 업무 변호사로 돈을 번다.
사무실을 넓혀 세무 관련업무까지 담당하며 오줌보가 터지기직전까지
생리현상을 미룰정도로 바쁘게 돈을 끌어 담는다.
부산에서 돈많이 버는 속물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고
쥐가 들끓는 주택을 벗어나 배고픈 시절 아파트 공사판에서
직접 작업한 아파트로 이사한다.
칠년전 배고픈 고시공부 시절 밥먹고 도망친 돼지 국밥집에 들러
"아지매 저 기억 안납니까 여기서 밥먹고 도망간 놈입니다"
"이런 문딩, 묵은 빚은 얼굴과 발로 갚는기라."며 성공한 송변을 용서하자
그뒤로 단골밥집이 되어 끼니때마다 찾는다.
돈 잘벌어 개인용 경주요트로 운동하면서 잘먹고 잘사는 송변에게
10대 굴지의 기업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앞두고
송변에게 변화를 가져오는 사건이 생긴다.
"오늘부로 송변 니는 니 편한 세상 니 발로 걷어 찬기다."
사무장(오달수)는 무게있는 영화속에서도 웃음을 선사한다
그 이전에 단골 국밥집에 상고 동창모임 술자리에서
신문사 기자인 이윤택(이성민)은 테레비에 나오는 데모하는 장면을 보고
삐툴어진 세상을 잘못 이야기하면 모든걸 잃을까봐
자신이 스스로 비겁하다 말하며 시국을 탓하는데
송변은"서울대까지 다니면서 공부하기 싫어 데모한다"말해
시국을 모르고 돈만 아는 고졸출신 송변과 이기자는 한바탕
몸싸움을 한다.
나중에 송변이 인권변호를 맡자 이기자는 누구보다 친구를
돕는다.
계란으로 바위치듯 사회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며
국밥집 아들 진우(시완)에게 데모하지 말고 공부나 잘하라며
깨진 유리창과 가구값으로 지갑을 여는데
"아무리 바위라고 해도 바위는 죽은것이고 계란은 산것인데
결국 계란이 바위를 넘는다."라고 말하는 진우가 이제는
공밥먹고 도망칠때 빤히 바라보던 어린 아들이 아니다.
그뒤로 국밥집과 소원하게 지내고 있는사이에
진우가 사라진것이다.
부산의 학림사건이라는 의미에서 부림사건이라 명칭하는 부림사건은
1980년 전두환 정권이 광주에서 민주화를 부르짖던 국민을 학살한 이듬해
부산에서도 혹시 모를 민주화 바람의싹을 자르기 위해 벌어진
조작된것이다
신군부 정권 초기인 1981년 9월 공안 당국이 사회 과학 독서모임을 하며
야학에서 노동자를 대상으로 공부를 가르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등 22명을
용공조직으로 엮어 영장없이 체포하여 68일동안 불법 감금하고
잔인한 고문으로 허위 자백시켜 실형선고한 사건이다.
27년만인 2009년 부산지법에 의해 무죄 판결로 마무리 되었다.
당시 부산 지검 공안 책임자로 있던 검사 최병국이 총지휘했다.
김광필 변호사와 함께 변호를 맡았던 노무현은 이사건을 계기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다.
진우는 잡혀가 모진 고문을 당하는데 엄마 순애(김영애)는 가게 문을 닫고
아들을 백방으로 찾아 다니나 헛수고이다.
재판날짜가 날라오고 면회조차 안되니 진우 엄마 아지매는 송변을 찾아와
"아이고 변호사님아"무릎을 끓고 도와달라 부탁한다
멀쩡하게 학교다니며 공부하던 아들이 느닷없이 빨갱이라니
미치고 빨짝 뛸일이지만 한사람 병신 만들기는 우기면 되는
세상 이었다.
빨갱이 타령은 종북이란 명칭으로 이름만 달리 할뿐
지금도 어디에서든지 일어나고 있다.
송변은 단지 안된다는 구치소 면회만 시켜볼라 했다가
진우의 온몸에 구타로 생긴 멍을 본다.
내아들 누가 때렸냐며 아들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았던
홀엄마 국밥집 아지매는 급기야 실신한다.
진우가 혐의를 받게된 역사학자인 에드워드 헬리트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등
교양서적등이 불온서적으로 둔갑한 책들을 밤새 읽어보고
"저 돈이나 벌라꼬예 저 속물아닙니꺼"하며 처음에는 정중히 거절하던
넉살좋은 속물 변호사가 굳이 진우 변호를 맞기로 작정한다.
한편,사라진 진우는 공안 경찰경감인 차동영(곽도원)에게
수도 공사 통닭구이 쇠파이프 매질등 무지무지한 고문을 당한다.
실제 아이돌 출신이라는 진우(시완)이 통닭구이 당할때 보니
남자나 여자나 근육질 몸매가 매력적인데
삼각팬티만 입은 진우 몸매는 보잘것없이 왜소했다.
차경감 아버지는 육이오때 돌아가시고 남북이 갈라선
냉전시대의 피해자의 아들로 보상이라도 하듯
대한민국 빨갱이를 색출하여 국가가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할뿐이라며
얼굴색하나 변하지 않고 사람을 파리 잡듯 패고 정신을 말살시킨다.
진우가 잡혀와 고문받았던 현장에서 송변과 마주친 차경감은
느닷없는 국기에 대한 차렷 자세 경례가 우스깡스럽지만
가해자인 차경감도 군부정권에 충성한 피해자인 셈이다.
5번의 재판은 영화의 중후반을 달리는데
없는죄를 이미 있었던 죄로 만들어서 형을 집행하려는
경찰과 검사를 향해
"무죄면 무죄 판결을 받아내야죠"
"절대 포기 안합니다" 변호사의 날카로운 재판이 볼만하다.
국가 보안법이 헌법보다 앞선다고 주장하며 국가를 위해서라면
국가가 시키는 어떤일도 한다는 잘못된 국가관을 가지고 있는
잔혹한 차동영이 미운걸보니 곽도원 연기가 뛰어나다.
자신의 불법 행위를 애국행위로 여겨 국가가 시켜서 잡아갔고
고문은 안했다고 우기는 경감에게
송변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즉 국민이 국가다,그런데 당신의 국가는 저 군부 정권이 아닌가."
라고 맞받아치는 장면은 명장면이다.
우리 사회는 시위로는 절대 바뀌지 않아 계란으로 바위치기 한다고
불편한 심기를 들어냈던 송변이 아무리 강해도 바위는 죽은것이고
계란은 산것이니 계란이 약해도 이긴것이라고 여기다니
송변이 변했다
부림사건 고문작전에 상부의 명령으로 합류한 군의관 윤중위(심희섭)이
고문이 있었다는 사실을 양심증언하자 차경감이 놀라
밖으로 나갔다 회심의 미소로 들어오기 무섭게
윤중위는 탈영병의 죄목으로 헌병에 의해 붙잡혀 나간다
공안검사(조민기) 공안경감 재판장(송영창) 그리고 방청객까지 모두
청년들의 무죄를 알고 있었으나 끝내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범죄자가 되고
군법 재판에서 윤중위가 당할 부당한 죄목도 짐작이 간다.
누군가를 범인으로 몰고 작정하고 만들어진 사건을 아무리
죄없다고 역설한듯 통하지 않았던 그시절의 영화가
대통령이 여섯번이나 바뀐 지금에 흥행 열풍을 일으키는지
개봉 날짜가 오년마다 돌아오는 대통령 선거 날짜에 맞춘 탓은
아닐거다.
고 노무현 대통령인 그분을 모델로 삼고 있지만 허구의 이야기라는 영화는
국밥집은 울산이고 변호를 맡게 된사람은 모르는 사람이란거만 틀릴뿐
부산 상고 출신이고 대전에서 판사 생활하다 부산에서 변호사 개업하고
부림사건에서 변호를 맡어 인권변호사의 길로 잡어들고
고 박종철 추모시에 최루탄을 맞고 요트를 탄것도 모두 같다.
2001년 대통령후보 경선당시 상대 후보로부터 호화 요트라며 공격받았으나
본인이 조립한 경주 요트로 밝혀졌다.
사람이 생로병사를 거쳐 자연으로 돌아가는것도 복이다.
누구는 총맞아 죽고 누구는 떨어져 죽었다.
법조인을 넘어 상식과 원칙이 부조리한 세상을 바꾸고자
정치에 투신한 그분은 분노하고 좌절이 넘치고 외로워도
조금만 참고 질게 살아남을 것이지 암튼 욱하고 성질 못이기면
세상과 상대에 지는것이다.
국정원 선거 개입과 민영화 바람 그리고 민주노총에 경찰개입하며
한동안 없어진 최류탄까지 등장하는 지금의 세대가 답답한 국민이
영화를 보면 그때 그시절 민주화 투쟁이 한창일때을 떠올리게 된다.
나처럼 세상 물정 모르게 답답한 사람도 신문검색을 당한때였으니
딱 한번 광화문 세종로거리에서 민증조사 당했었다.
그로부터 몇년이 지난후 1987년 고 박종철 열사의 추모행사 대열의
맨앞자리에 송변은 서있고 33번 번호를 단 수의를 입고 다시 법정에
들어선다.
그리고 참관한 변호인들의 호명에 참관인줄만 알았던 사람들 모두가
송우석 변호인으로 함께 나와 서있다.
99명 변호사가 아닌 변호인으로,
영화 전문가와 영화 평론가들은 최고점수를 주지 않고 신인 감독치고
탄탄한 시나리오 덕분에 비교적 잘한 평가만을 주고 있다는데
영화가 계사년에서 갑오년으로 넘어가는 추운 겨울에
꽁꽁 싸맨 국민 관객들만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국가위에 국민이 있다는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변호인 영화는
송변의 법정에서 열변과 엔딘씬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나온
변호인들 이름이 호명될때 송변의 눈물 머금은 미소를 보고픈 사람은
변호인 영화보면 후회하지 않는다.
2013년12월28일 씀
글-李 貞
사진-다음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