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17. 14:26ㆍ백두대간
일시-2016년 2월16일 화요일 눈
장소-백두대간 대미산구간 북진
코스-박마을-부리기재-대미산(1115m)-눈물샘 갈림길-문수봉 갈림길-981봉-차갓재-안생달마을
백두대간7.0km+접속구간 3.5km=10.5km 5시간40분걸림
작년 올해 독감예방접종을 걸러 뛰었어도 심한 감기는 없었다
살짝 맛보기로 몰려온 감기증세는 운동과 식이로 거뜬히 이겨냈다.
체감온도 영화 이십도의 기온과 설 명절의 노동에도 무사히 넘어가나 싶었더만
콜레스테롤 약처방지를 받으러 지난주에 들렀던 보건소에서 바이러스가 옮겨 붙었나
약을 사들고 안산에 올랐다 내려와 사십여분을 걸어 집으로 돌아온밤부터
목이 까끌까끌 기분이 찜찜하였다
그러고 보니 보건소와 약국에서 콜록콜록 기침소리가 유난했다
다음날은 엄마가 입원해 있는 삼성병원 중환자실 오전면회를 하고 일반병실로 옮기느라
저녁까지 병원에 있었던게 무리였다
십여년전부터 심장수술로 인해 심장 박동기를 가슴에 달고 그동안은 외래치료만으로도
거뜬히 유지하였으나 작년여름부터 부쩍 쇠약해지고 하체에 부종이 점점 심해졌다
급기야 숨쉬기가 어려운 구십이세 고령의 엄마는 설 연휴에 응급실을 찾았다
응급실에서 치료는 십년전 처음 응급실을 들렀을때나 같은 처방으로 산소를 주입하고
이뇨제로 폐와 온몸의 부기를 빼냈다.
며칠간의 치료덕분에 코끼리 다리모양 부어있던 다리는 홀쭉해지고 숨쉬기도 편안해졌는데
가래에서 인플렌자 바이러스가 검출되었다며 환자와 면회자 모두 마스크를 쓰라 한다
하루종일 마스크를 쓰고 조심했어도 한번 몸속으로 들어온 바이러스는 나갈 기미를 모르고
밤부터 기침이 나오다 다음날 인후통이 시작되고 목이 잠겼다
컨디션 난조로 포기 하려다 빠진구간을 챙겨 걷기가 쉽지 않다는것을 알기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몇십프로는 부족한 컨디션으로
긴 산행후에는 씻은듯이 감기가 뚝 떨어진다는 설에 희망을 품고
억지로 새벽밥을 한술 뜨고 집을 나섰다
새벽바람끝이 차갑게 느껴졌으나 온다는 눈소식은 없었다.
양재역 지상으로 올라오니 눈발이 하나둘 어둠을 거치고 있었다
양재역에서 기다리던 산악버스는 약속시간보다 십오분여 늦게 도착했다
감기약을 입에 털어넣고 두툼한 목폴라로 목을 감싼채 부족한 잠을 보충했다
밤차 타며 떠나는 대간길도 힘들겠지만 새벽잠을 설치고 나와야 하는 대간길도
힘들긴 마찬가지이다.
나이 먹어가며 작은것이라도 새롭게 도전한다는것이 쉬운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나마 한달에 두번은 떠난다고 하기가 무색하게 일주일에 한두번씩 산행을 떠나는사람이
내가 속해있는 대간 산우들중에도 있다
여간 부지런한 사람들이 아닐수가 없다
날고 뛰는 그네들이 어찌하든 내 의지와 체력이 감당하는한 대간길이나 무사히 종주하길
바랄뿐이다
비몽사몽 세시간이 금세 지나 오전 열시가 되어 들머리인 문경 중평리 박마을에서
일행을 풀어 놓았다
금세 비나 눈이 쏟아질거 같이 찌뿌둥한 하늘과 조용한 산골마을이 을씨년스럽게 생겼다
날씨가 풀어졌다해도 겨울은 겨울인지라 써늘한 한기가 옷깃을 파고 들었다
포장도로를 따라 십여분을 걷다 가을걷이가 끝난 돌멩이가 많은 밭길을 지나고
산길로 접어들었다
새로 구입한 고어텍스 등산화를 북한산 종주 한번으로 길들였다고 자신있게 신고 왔는데
무거운 신발 때문이지,감기약 때문인지 초반부터 숨이 차올랐다
이러다 심장과 폐가 밖으로 튀어 나오면 죽음이라 숨고르기를 하면서 걷다보니
내 뒤에는 겨울까치만 까악까악 따라오지 사람은 없었다
양지바른 산등성이에는 명당이어서 무덤이 많았다
어느 정도 올라가면 가파른 산길이 나오는데 누가 처음 길을 걸었는지 모르지만
산길은 구불구불 갈지자 오르막길이여서 자연스레 왔다갔다 숨고르기를 하며
올라갈수있다
삼십여분이 지나고 익숙해진 숨소리에 맞춰진 발걸음은 한결 부드러웠다
오르막에 온몸이 후끈 데워져 외투를 벗어버리고 티셔츠만 입어도 추운줄을 모른다
허기야 상의 내의를 입고 목뒤에는 핫팩을 붙이고 있었으니 더운게 당연하다
흔들어주면 뜨거운 열을 내는 손난로와 여기저기 붙이기만 하면 따뜻하게 데워지는
핫팩난로를 일본제품이 많은걸 보니 일본사람이 발명했나 암튼 겨울 외출시에
톡톡히 효과를 보고있다
박마을에서부터 2.5km를 올라와 부리기재에 다달았다
879m의 고도의 부리기재는 평퍼짐하여 쉬어갈만한 곳이었다
예전에 짐을지고 가든 사람들이 짐을 부리고 쉬었던 고개라서 부리기재라고 불렀다
또한 신유사옥과 기해사옥때 충청도 지방의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에 숨어들려고 넘어오던 고개이다
부리기재에서 대미산 정상까지는 1.2km남았다고 이정표에 쓰여 있었다
물한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대미산 정상으로 발길을 돌렸다
한두방울씩 내리던 눈발이 제법 눈다운 눈을 뿌려 나뭇가지에 앉았다
올해 재대로된 눈을 맞은게 처음이다
작은가지에 핀 상고대가 처음부터 흰가지인양 자연스럽고
하얀솜사탕을 받아들고 서있는 나무잎은 바람 한점에도 미끌어질듯 보인다
하얀 설국 터널에서서 백설의 시각을 멈추고 싶었지만 순간을 만끽하는 즐거움도 잠깐이고
대미산 정상은 바로였다.
1115m의 대미산은 충북 제천시와 경북 문경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영 정조때 발간된 문경현지에 의하면 눈썹먹대와 눈섭미자를 쓴 黛眉山이라고
등재되어 있는것으로 보아 먹으로 그린 아름다운 눈썹 같은산이라 비유하고 있다
대미산을 중신으로 동쪽 여우봉에서 서쪽 포암산으로 이어지는 1062봉까지의
능선이 눈썹같은 형상의 산세라 한다
반면 퇴계 이황은 크게 아름다운산이라는 뜻으로 大美山 이라고 명명하여
그뒤로 이렇게 쓰인다
문경지역에서 모든 산의 주맥이 되는 산인 대미산은
남으로 운달지맥이 분기하고 북으로는 등곡지맥이 분기하여
충주호로 스며든다
울창한 숲과 돼지골 삼마골 용하구곡등 계곡이 유명하다
천미터 높은 고지의 대미산 정상석은 작고 앙증 맞았다
정상에서 바라보니 단양의 도락산과 문수봉 봉우리가 가까이에 있고
그동안 걸었던 황장산 너머 소백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장쾌한 마루금에도
허연 눈발이 쌓여갔다
뒤돌아 다음구간에 걸을 포암산을 바라보고 대미산 정상을 벗어났다
이곳에서 대간길은 북쪽으로 구십도 방향을 회전하여 하산해야 한다
삼십여분 하산하면 대간인들의 젖줄인 눈물샘에 이르게 되어 대미산이
눈썹산임을 증명하는 셈이다
눈물샘은 대간로에서 서쪽으로 칠십미터 밑에 있고 이길로 탈출하면
생달리 마을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십오분여를 오르면 1051봉 갈림길이 나온다
출입금지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이정표는 뽑혀졌다
이곳에서도 방향을 틀지 않고 직진했다가는 문수봉으로 가게 된다
오른쪽으로 구십도 방향을 틀어야 대간길로 이어진다
낙엽송과 억새풀과 잡풀로 뒤덮힌 헬기장에서 점심을 먹었다
지도대로 걷는다면 차갓재에서 부리기재 방향으로 걸어야 남진 연결이 제대로 그려지겠지만
인솔자의 지시아래 좀 더 편한길을 선택하다 보니 남진했다 북진했다 헷갈려
따라가기 바쁜 나같은 길치는 지도를 보지 않으면 북으로 가고 있는지 남으로 가고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백두대간길을 걸어갈수밖에 없다
길은 편했다.
백두대간길이 이렇게 편한길이 있어도 좋은지 헷갈릴만큼 길은 안전한데
이길이 출입금지 구역이라는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새목재를 지나 826봉 981봉을 지나 923봉으로 내려오면
평택의 여산회 백두대간 종주대가 포항 셀파 산악회의 측정자료를 인용하여
오석의 표석에 백두대간 도상거리 734.65km중 367.325km지점이라고
중간표석을 세워놓았다
송전탑이 있는 잣나무가 우거진 잣나무 군락지로 내려오면 차갓재에 다달은다
지난주에도 이곳에서 대간길 걷기를 마쳤다
여기에도 백두대간 실측거리인 이분의일지점이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접속구간 제외한 대간 734km중 367km이다.
도상거리와 실측거리가 어떻게 다른지 자세하게 알수가 없지만
두개의 중간표석이 차갓재주변에서 대간인들을 기다린다
백두 대장군과 지리 여장군은 망가진채로 길가에 쓸쓸하게 버려져 있었다
백두대간길을 만들어놓고 한반도의 등뼈를 직접 밟으며 우리땅의 생김새와
지리 역사를 배우려는 사람들을 막고 잡히면 벌금을 물게 하는지 알수가 없다
산림혜손과 등산객의 안전을 위한 명분으로 출입금지구역을 지정한다지만
국립공원의 유명하다는산은 입구부터 반질반질 넓은 도로를 만들어
차량의 매연으로 공기를 오염시키고 경관을 무시하면서까지 곤도라와 케이블카를
여기저기 설치하는것도 자연을 혜손하는일이다
다리품 팔지 않고 관광객을 산위로 올려놓는것은 한발 한발이 모여 마침내
정상에 오를수 있다는 땀의 소중함과 성취의 기쁨을 앗아가는일이고
자연혜손에 가담하는일이다
자연은 보는 사람에 따라 모든것이 예술이여서 본래의 것을 유지하는게 최상이다.
황장산의 묏동바위의 암릉구간은 비탐방지정이 필요한 구간임이 납득이 가지만
오늘처럼 부드러운 육산의 대간길이 비탐방이라니 이해 불가이다.
산길은 부드럽고 바닥은 쌓이지 않은 눈과 낙엽의 비빔밥처럼 어우러진 폭신함이 살아있어
사각사각 소리와 발바닥 느낌도 좋았다
눈발은 그치고 바람없는 포근한 날씨가 여전했다
걷기에는 이만한 날씨가 없어보인다
비탐방구간을 들락거리는 대간 종주자를 잡아 건당 십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국공의 퇴근시간을 기다리다 슬슬 한기가 들어 거위털을 꺼내 입고
찻갓재에서 이십여분을 숨어 떨다 생달리 마을을 향해 내려왔다
다행이 지키는 국공들은 보이지 않았다
생달리는 경상북도 문경시 돌로면의 마을로 황장산과 대미산 사이에 위치한 산간 오지마을이다
산과 달만 바라볼수 있는 두메산골이라는 뜻이다
십여킬로의 짧은 거리를 휴식시간 포함하여 빠른시각인 다섯시간사십여분에 끝나 아직 대낮이다
희뿌연 구름속에 갇힌 마을로 하얀눈이 펑펑 쏟아진다.
큰 눈썹 아래 고즈넉한 생달리 마을이 겨울속에 풍덩 빠져 버렸다.
산골마을이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서울로 돌아오는길은 빨랐다
진눈깨비 내리는 고속도로에서 차선을 밟고 옆으로 서있는 자가용을 비켜나 차사고를 피했다
하마트면 큰 사고로 이어질뻔 했던 아찔한 순간이 지나갔다
매번 느끼지만 백두대간길 걷는일보다 서울에서 들머리까지 날머리에서 서울까지
오고가고 차타는게 더 힘들고 무섭다
무사히 마감한 하루가 감사하여 서울의 환한 도심속 지하철 시끌벅적 풍경이
오히려 정겹게 다가온다
집으로 가는길에 잊고 있던 감기가 목구멍으로 기어 올라오고
살아 있음에 안도의 숨을 토해냈다
두메나 산골
산과 달이 마주치는 두메산골에서
허수아비도 모르는 참새가 까치뒤를 쫓고
산 그림자 내려와 달이 뜨면 밤이되는 마을에는
오래도록 달과 별이 살고 있다
눈썹하나 빼어내서 만든 산속의 오지에서
재잘대는 아이소리 들어본지 까마득한 옛날이라
사람소리보다 산새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마을에는
오래도록 달과 별이 살고 있다
산과 바위가 울고 웃는 첩첩산중에서
나그네의 발걸음이 쉬어갈 재를 넘고넘어
구름 부르는 지붕아래 풍경소리 요란한 마을에는
오래도록 달과 별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