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27. 11:57ㆍ백두대간
일시-2016년 1월26일 화요일 바람없이 맑음
장소-백두대간 황장산 구간 남진
코스-문경오미자 연구소-생달리 계곡에서 알바-생달리마을길로 하산-월악산 출입금지구역 오르막-촛대봉-수리봉-황장재-감투봉-황장산(1077.3m)-묏동바위-작은차갓재-차갓재-와인공장
백두대간길3.3km+접속구간길6.6km+알바길 3km=12.9km를 7시간걸림
한반도에 내린 최악의 한파로 간담이 서늘한 맹추위가
일주일째 기승을 부렸다.
겨울답게 코끝이 매서웠다
말이 영하 십팔도이지 바람부는 체감온도는 영하 이십도를 넘어
도심거리가 한산했던 주말을 보내고 정작 대간길 나서는 오늘은
영하 칠도로 아침 추위가 한결 풀어졌다
시작이 반이라고 벌써 삼십차로 들어서니 오늘 일정은
남한의 백두대간길의 딱 절반을 지나는 구간이다
초보자는 가급적 참가 하지 말라는 안내 문구를 보고 두려움도 없지 않았지만
오늘도 한반도 구부러진 허리 어디쯤 밟을 약간의 들뜬 기대로
새벽 잠을 떨쳐내 상하의 내복을 껴입고 중무장을 한채
집을 나섰다
빨강버스는 충청북도 괴산 휴계소를 거쳐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에 도착해
일행들을 풀어놓았다
빨강버스에서 검정버스 28인승으로 바뀌더니 다시 빨강버스 36인승이다
아무리 취미활동인 산악동호회에서 운영한다해도 영리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으니
사람수에 맞추어 버스는 지급되나 보다
당초 계획은 폐교된 생달분교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는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걷다
작은 소로길로 들어 나오는 계곡을 끼고 올라서면 촛대봉길로 오르게 된다
그러나 오늘 일정이 모두 출입금지 구역이라서 감시를 피하려고 오미자 연구소를 지나
밭을 끼고 산으로 들어섰다 촛대봉 오르는길을 놓치고 말았다
길을 찾느라 우왕좌왕 하는사이 발빠른 일행들은 먼저 올라가 버리고
남은 일행팀에 끼어 다시 하산하여 마을로 내려왔다
촛대봉 가는길을 찾느라 한시간여를 소비하고 말았다
소백산 구역을 벗어난 대간길은 월악산 구역으로 들어서는지
월악산 국립공원 출입금지 구역의 푯말이 있는 계곡으로 들어서니
얼음이 제법 얼은 계곡길이 나온다.
겨울산이 실감나는 장면이다
드디어 사진으로만 보았던 촛대봉의 뾰족한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마을 입구에서 고작 이십여분쯤 가까이에 있었다
고개들어 바라보니 촛대바위 정상위에 솟은 소나무 한그루가 하늘을 향해 솟아있고
촛대봉 뒤로 암릉바위들이 까마득하게 즐비하여 순간 아찔하다
촛대봉에 이어 낙타바위 수리봉 정상까지 크고 작게 이어진 바위들은
암벽등반 훈련코스란다
위험하여 출입금지구역으로 막아 놓았어도 이곳에서 릿지등반하다 추락한 산우들이 있고
여전히 바위좀 탄다하는 사람들은 즐겨 찾는곳이란다
촛대봉 바라보는것만도 어질한 나는 촛대봉 옆구리로 살금살금 걸어 우회하고
이어진 낙타바위도 옆으로 비켜 우회했다
너럭바위는 선등한 산우가 내려준 로프을 잡고 난생처음 암벽등반길을 엉금엄금 기어 올랐다
가지 말라는 길까지 다니면서 백두대간을 걷는것도 이해 불가이건만
대간길로 접어드는 접속길이 이렇게까지 험한 암릉길이 있을거라고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비로소 너럭바위에 올라서니 발아래 놓인 낙타바위와 손아래 놓인 촛대봉이
바로여서 뿌듯한 맘과 달리 두 다리는 후들 거린다
다시는 오기 힘든 전망좋은 곳에서 인증샷을 남겼다
그나마 어제보다 올라간 기온과 바람 한점 없는 날씨 덕분에 암벽은 쉽게 기어 올랐는데
수리봉 능선길에 접어들자 하나둘 내리는 눈바람에 아이젠을 꺼내 신고 걸어도
계단처럼 이어진 암릉길 아래로는 직각의 절벽이 아슬아슬 무서웠다
수리봉릿지 구간을 비켜 수리봉(841m)를 지나 암릉바위와 소나무가
희끗희끗 눈바람을 오롯이 맞고 섰다.
추위에 휘어진 소나무가 애처롭기만 하다
첩첩이 포개진 능선자락의 기암괴석 바위들이 행여 바스러질까 조심조심 걸어
암릉구간을 벗어났다
산행 시작 세시간을 넘겨 점심때가 지나고 나서 점심을 먹었다
보온통에 넣어온 주먹밥이 아직 따뜻해서 허기와 추위를 녹였다
오르락 내리락 걷기를 반복하여 마침내 황장재(985m)에 도달했다
이때까지 힘겹게 걸은길은 접속구간이고 여기서부터 백두대간길이다
황장재에는 눈이 제법 쌓여 운치를 더했다
하얀 눈밭에 누런김이 솟는 소변을 보고 내팽겨진 황장재 푯말을 뒤로 한채
감투봉 방향으로 올랐다
암릉능선위에도 하얀눈이 얇게 깔려 살짝 미끌거렸다
감투봉을 지나치고 내리막길 절벽이 또 기다리고 있었다
두개의 줄이 매달려 있었으나 일행이 미리 준비한 로프를 몸에 감고 내려오는데
앞서 올랐던 암벽보다 내려가는 암벽이 더 떨렸다
행여 떨어질까 두려워 너무 힘을 주었나 발이 바닥에 닫기도 전에 손과 발에
힘이 빠진다
수리봉과 촛대바위만 빼고는 장비없이 오르지 못할 바위는 황장산 어디에도
없다고들 하지만 이구간을 다시 하라하면 접속구간은 건너뛰고 싶은 심정이다
암릉구간을 지나면 표지판이 나온다
황장산까지 얼마 남지 않은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드디어 1077.3m의 황장산에 올랐다
황장산은 월악산 국립공원 동남단에 있는산으로 조선말기까지 작성산이라 불렀고
'대동지지'와 '예천군읍지'등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
또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천황의 정원이라 하여 황정산이라고도 하였으며
지금도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조선시대인 1680년(숙종6) 대미산을 주령으로 하는 이 일대가 나라에서는
궁전이나 선박등에 필요한 목재를 얻기 위해 나무를 심고 가꾸기에 적당한 지역을
선정했는데 대미산을 주령으로 하는 이 일대가 국가가 관리 보호하는 산인 봉산으로
지정된데서 산 이름이 유래하였으며 그 이유로 황장봉산이라고도 부른다
대원군이 이산의 황장목을 베어 경복궁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황장산 봉산 표석은 명전리 마을입구에 서 있다
백두대간 남한구간의 중간쯤에 우뚝솟은 황장산의 정상석은 준비중이라
가방안에 누워 있었다
가방안의 흰눈 맞은 정상석이 머지않아 서 있길 바라며 차갓재로 향하는데
황장산 정상을 벗어나기도 능선길은 호라호락하지가 않다
곧바로 묏등바위가 나오는데 큰 바위를 둘러맨 굵은 동아줄이 없다면
이 바위를 지날수가 없을거 같다
아슬아슬한 큰 바위덩어리 아래로는 거위 수직에 가까운 절벽이다
바위 덩어리에 몸을 달싹 붙이고 로프를 붙잡고 바위옆을 한발한발 내딛다
다시 오르막에 올라서 옆을 봐도 뒤를 봐도 아찔한 절벽이라 저절로 오금이 오그라졌다
스릴감이 넘쳐나는 이 구간을 조심하지 않고 자신감만 믿고 방정떨며 걷다가는 그대로
황장산이 되고 말것이다
팔은 로프를 잡는라고 긴장하고 다리는 헛발 딪지 않으려고 긴장하여
팔 다리가 후덜덜 떨려 하늘을 올려다 볼 여유도 없이 걷다 평지가 나오자
한숨 쉬고 하늘을 우러러 보니 엷은 회색구름이 커튼을 드리운채 무겁다
지나온 수리봉능선의 암벽과 소나무들이 줄지어 뒤 따라오고
투구봉 봉우리가 유난히 희눈을 뒤집어 쓴채로 서 있고
첩첩 산줄기가 수묵화의 한장면이다
묏등바위를 지나고 암릉을 내려와 작은차갓재로 내려가는길은
바위 왼쪽으로 구십도 방향을 틀어서 내려온다
대간길 걷는자들이 주로 방향을 잘못 틀어 알바구간이 되는 지점이란다
황장산에서 작은차갓재(816m)까지는 1.7km 쉽게 내려올수 있었다
작은차갓재에서 다시 이십여분 내려오면 송전탑이 나오고 차갓재(756.7m)가 나온다
이 지점이 남한구간의 백두대간길의 딱 절반이 되는 중간지점이다.
사계절의 변화무쌍한 자연을 감상하며 걸은지가 벌써 일년이 지났다
앞으로 남은 일년하고 몇달은 또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머리속에 그려지는 그림이 없어 기대와 두려움이 반반이다.
오늘 대간길 구간은 배보다 배꼽이 큰날이라 여기서 끝이나고
버스가 기다리는 와인공장이 있는 안생달 마을입구까지는 금세 내려왔다
이곳에서 오백미터 떨어진 곳에 오미자 와인 지하동굴이 있다는데 동굴엔 가지않고
콘테이너 박스안의 공장에서 준비된 와인을 시음하고 살수 있다는 말에
일행들과 모두 내려 공장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와인 오크통은 보이지 않고 즙을 짜는 기계인듯 멈춰 있는 기계몇대와
판매용인듯 소주병보다는 조금 큰 사이즈로 포장된 와인병만 진열되어 있었다
와인은 양으로 마시기보다는 분위기로 마시는게 제격이라
와인 동굴이 있었다면 혹시 모를까
숙성시킨 와인이 아니고 즙에 소주를 섞은건지
혀는 고사하고 입으로 가기도 전에 코에서부터 거부하는 알콜로 인해
시큼털털한 오미자주대신 달짝지근한 머루주만 한모금 맛본뒤 버스에 탑승했다.
매번 대간길에서 돌아오면 자연은 아름답고 때론 무섭다는 경외심을
일깨워주고 있다
영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스티븐슨은 신혼여행기를 엮은 단편 '실버라도 무단 점유자'에
와이너리를 방문 하고 나서 "강렬한 햇빛과 자라나는 포도나무 동굴안에 놓인 통들은 정신을 위한
즐거운 음악을 만들어 냈다."고 표현하고
"그토록 푸른 하늘밑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행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하늘은 그러한 방식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즐거운 전망과
모험들로 보답한다."라고 말했다
술잔과 음악이나 여행 모두 마음을 여는 마법이다
딱 한번뿐인 인생 여행길에 다리가 떨리기전 가슴 떨리는 지금이
즐거운 모험을 할 적기라 여기고 근육이 땡기는 기분좋은 느낌을 갖기에
너무나 충분했던 하루가 아니었나
훗날 길이 기억될것이다
겨울산
어디에서 나왔는지
절벽이 하늘과 맞 닿았네
얼마나 서 있었는지
장벽이 구름속에 갇혀 있네
그러나 건너지 않고는
이 길을 지날수 없다
바람 부는대로 달려도
가늘게 박힌 가시는
세월을 더디게 하네
한낮에 태양도 떨며
잿빛 하늘로 사라질때
번개처럼 걸어가고 싶다
잠시 스쳐 지난 발자취를
기억이나 할까,
인생길 수북하게 쌓인 흔적만
절벽으로 떨어져 버리고
어깨 허리 부러진 소나무 한그루만
하얀 눈길 위에 처연하다.
눈 부신 오색무지개 나올때까지
외로운 낙타등에 앉아
겨울 하늘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