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13. 14:50ㆍ백두대간
일시-2016년1월12일 화요일 맑음
장소-백두대간 벌재 구간 남진
코스-저수령(850m)-문복대(1074m)-들목재-벌재-폐백이재-황장재(985m)-작성산성-방곡리
백두대간 10.5km+접속구간 5km=15.5km 7시간 걸림
산천을 유람하는것이 좋은책을 읽는거와 같고 등산 한번 하고 나면
보약 한재 지어 먹는거나 진배없다고들 말한다
그동안 봄날같이 따뜻하여 제주도를 비롯한 남녘에는 봄꽃이 계절도 모른채
피워낸다는 소식이 들려오다가 올들어 최고 추위라는 뉴스를 접하고는
산행에 나서기가 망설여졌다
삼주만에 돌아온 백두대간길 여정이여서 그런지 새벽에 나가려는 부담감으로
자다깨다 잠을 설치고 새벽 자명종 소리보다 일찍 깼다
전날 삶아 먹은 토종닭 국물로 끓인 미역국에 밥말이밥을 후루룩 집어 삼키듯 먹어 치우고
우유 한잔까지 든든한 새벽밥을 챙겨 먹었다
남들은 일어나자 마자 도저히 밥이 안들어가서 굶고 온다 하던고만
나는 굶고 차를 타면 등산에 앞서서 어질어질 멀미부터 하니 억지로라도 먹고
집을 나서야 한다
발열내의를 꺼냈다 넣었다 몇번을 반복하다가 언젠가 겨울 등산에서 내복입고
오히려 행동이 둔했던 기억으로 도로 집어넣었다
무릎에 테이핑을 돌려붙이고 종아리는 토시로 감싼채 허벅지는 반바지로 아랫도리를
무장했다
웃도리는 겨울티와 바람막이를 겹쳐입고 위에 방한속옷이 붙은 자켓을 입고
모자와 목 스카프에 장갑으로 마무리하고 나섰더니 겨울채비를 너무 잘했나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오는데 춥기는 커녕 시원한 청량감이 들었다
이른 새벽에 나서는 부지런한 출근길의 몇몇 사람들이 탑승한 버스는 쌩쌩
도로의 추위를 가르고 달려 경복궁에서 하차했다
지하철 삼호선으로 갈아탄뒤 히터달린 의자에 앉으니 엉덩이가 따뜻하게 구워지면서
눈꺼풀이 저절로 내려갔다
요즘은 지하철에 앉은 승객들은 너도나고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는데
이른 새벽이라서인지 모두들 잠들어 있는듯 했다
자다가도 내려야할 목적지가 다가오면 벌떡 일어서는 이른아침 지하철내 풍경이
신비했다
나도 양재역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무 서둘렀나 산악회버스 도착시간이 삼십분이나 남았다
화장실에서 십분간이나 소비하고 느긋하게 노닥거리며 대기하는 여유를 부리다
약속된 시각에 도착한 버스에 탑승했다
처음에는 일이십분 어기는것을 당연시하던 버스가 요즘은 약속을 잘지키는거 같다
애초에 지키기 어려운 약속은 만들지를 말어야지 신뢰의 기본인 약속은 지켜야 함이
당연하다
아침부터 순조로운 약속이행으로 오늘 하루 즐거운 대간길이 될거같다.
큰 버스 운전기사는 정신을 바짝 깨운상태로 운전하겠지만
나는 두런두런 안부를 묻는 소리가 들리고 아침해가 창가로 비춰와도 비몽사몽 자다보니
어느덧 중간휴계소에 들렀다
휴계소에서 아침으로 인절미를 먹고 넘기기 어려운 뜨거운 물을 억지로 들이켰다
간단 양치와 손을 씻은뒤 탑승한 버스는 금세 저수령에 도착했다
저수령(850m)은 우리말로는 낮은 머리고개로 펑퍼짐한 언덕이다
소백산군에서 가장 낮은 고개로 남진으로 볼때는 소백을 빠져나오는 고개이고
북진으로 볼때는 소백으로 들어서는 고개이다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와 단양군 대강면 울산리사이에 위치한
충북과 경북의 도의 경계로 573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고개이다
'여지도서'내용에 의하면 조선후기에는 회령으로 부른것으로 보인다
저수령이란 이름은 이 고개를 넘는 외적들은 모두 목이 잘려 죽는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지나갈만큼 무섭고 험한 고개라는 뜻으로 추측된다
죽령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죽령보다 붐볐다고 하는데
지방도로가 개설되기 전까지는 험난한 산속 오솔길이었다
대간길로 접어드는 짧은 계단을 오르면 도로에서 가까운 제단석이 있다
나무로 만들어진 해맞이 제단석을 지나고 용두산 갈림길 이정표를 지났다
지난 연말에 헝가리에서 육개월만에 휴가나온 지원이랑 노느라고
잠시 백두대간을 잊었다고 초반 오르막부터 종아리가 땡겨오고 숨이 차오른다
쉼없이 고도를 높여 저수령에서 2.3km거리인 문복대에 올랐다
문복재(1074m)는 백두대간이 죽령 도솔봉 향적봉 저수령을 지나서
문경시 관내로 들러오면서 처음으로 솟구친 산이다
옛이름은 운봉산이나 석향리 사람들은 문복대라 부른단다
잠시 휴식을 취한뒤 발걸음을 제촉하여 1020봉을 지나고
다시 내리락 오르락 들목재를 지난뒤 823봉을 찍는다.
녹음과 단풍으로 뒤덮혔던 낙엽송이 옷을 모두 벗고서도 군락을 이뤄 위풍당당했고
추운겨울이 닥쳐도 푸른기백으로 서있는 잣나무 군락은 푸름름이 더했다
내리막길로 사십여분이 지나 벌재에 도착했다
문복대에서 3.5km이고 저수령에서부터는 5.8km떨어진곳이다
벌재(625m)는 문경시 동로면과 단양군 대강면을 잇는 고개로
적성이재의 적자가 붉은적이어서 붉은재가 된것을
이고장말로 벌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또는
고갯길 개척사업으로 도로예정지였던 울창한 황장목 나무를 벌목하여 나르던 고개라서
벌재라고 한다.
황장목은 임금님 관을 만드는 질 좋은 소나무를 일컫는다
59번 지방국도가 지나간다
군데군데 오미자 나무 터널이 많아 이 근방에는 오미자 농원이 꽤 있었다
오미자는 경북에서 전남까지 폭넓게 서식하는데 사월에서 유월까지 꽃이 피고
팔월에서 구월까지 신맛이 강한 붉은송이 열매가 맺힌다
열매를 말리면 주름이 지면서 검은색을 띤 진홍색으로 변한다
어린순은 나물로 먹고 과실이 성숙하면 열매 껍질을 제거한뒤
시루에 쪄서 햇볕에 말려 차로 우려마시고 술도 담근다
열매에서 다섯가지맛이 난다고 해서 오미자라고 부른다
성악하는 지혜목에 좋다하여 몇해전에 담궜던 오미자즙이
냉장고에서 지금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벌재 북쪽으로 내려서면 단양팔경의 절경을 손꼽는 단양고을이다
포암산 마골치에서 시작된 20.8km벌재까지 자연보호 출입금지 구역이다
백두대간길중 출입금지 구역을 빼고나면 그리 험한길이 아닐텐데
우리 일행은 국공의 감시를 피하면서 굳이 출입금지구역까지 지나가고 있어
한반도의 등줄기를 쭉 이어나가기도 쉽지 않다
국공 감시초소는 굳게 문이 닫혀 있고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로위에 동물 이동경로를 통과하면 대간길이 바로 연결되는데
도로아래로 내려와 길손들이 쉬어갈 정자를 지나 커다란 표석을 지나고 도로를 건너
다시 감시초소위로 올라서 대간길에 들어섰다
시각은 열두시를 넘어 점심때가 넘어가자 기운이 슬슬 빠지는데
오르막을 한참동안 올라서 산 능선에 다달았다
내리막길이 있으면 반드시 오르막이 있어 쉽게 내려간다 좋아할일도 아닌것이
능선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걷는길이 우리내 인생살이와도 흡사하다
이백여미터 고도를 올려 헬기장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제 주먹밥으로 한끼 때우는일도 별로 어려운일이 아니다
십여분간의 식사를 마친후 928봉을 지나자 아침부터 해결못한 대변으로 발이
더 무겁다
작은 바위아래 낙엽이 수북한 땅을 파고 대소변을 해결했다
큰일 보는일이 무박 산행때 한번 이번이 두번째로 산 아래에서는 길거리에
대소변을 싸면 경범죄로 잡혀갈일을 산에사는 동물처럼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있다니
나도 나를보고 놀라고 있다
배설물을 배출하고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폐백이재에 다달았다
폐백이재는 새색시가 시부모님께 폐백을 드리는 광경을 떠올려서 붙여진 이름인데
예전에는 이 근방에서 귀신이 나온다고 마을 사람들이 절대 혼자서는 지나가지 않았던
고개란다
폐백이재를 지나고부터는 바위 암릉길이 나온다
오르락내리락 고도를 높여 1004봉의 치마바위에 올랐다
선바위와 책바위를 지나는동안 공덕산과 천주봉 봉우리가 멀리서 내내 따라온다
조심하면 누구나 암릉길도 통과할수 있지만 한치의 실수도 허락하지 않는곳이
암릉길이다
출입금지답게 구간구간이 바위와 바위틈에서 자란 소나무가 빼어난
경관을 보여준다
무사하게 큰 바위몇개를 지나고 편한길로 접어들어 988봉을 지나고
오늘의 대간길 끝인 황장재에 다달았다
벌재에서부터 4.6km떨어진곳이다
황장재(985m)에는 황장산과 벌재방향을 가리킨
이정표가 무슨죄가 있길래 똑바로 세우지 않을거면 치우던지 해야지
쓰레기보다 우스깡스럽게 뽑힌채로 저 만치 떨어진곳에 방치되어 있었다
이제 남은 거리는 5km 기다리는 버스에 탑승하기까지 접속구간거리이다
생수를 들이켜 수분을 보충하고 달달한 사탕을 입에 넣어 당분을 보충하면서
내려오는데 바닥에 쌓였던 눈이 얼지않은채 낙엽과 버무려진 콩가루처럼 잘게
부서졌다
산죽밭과 얼음골인 계곡길로 내려와 작성산성을 지났다
작성산성은 작성산 정상부와 계곡상부를 쌓은 둘레가 천백미터의 성으로
고려시대 토석혼축 산성이라고 정의하나 발굴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않아
축조시대가 불분명하지만 신라의 유물이 확인된것으로 보아 고대 축성이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있단다
길고 두툼한 하나로된 돌덩이가 성문인지 지붕처럼 이고 있는게 신기할뿐
나머지 산성벽은 거의 허무러져 산성인지 가늠하기도 어렵게 생겼다
산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계곡길로 돌탑을 지나쳐 삼십여분을 내려오니
방곡리로 들어가는 도로가 나온다
아스팔트 도로를 걸어내려가다 후미로 뒤쳐진 우리를 태우러 오는 버스에 올라탔다
기대했던 겨울 설산은 없었어도 육산과 바위산의 백두의 능선길을 걷고 나니
주어진 시간보다 삼십분을 초과했다.
버스에서 김밥으로 이른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와 신김치를 곁들인 국밥과
시원한 대봉감으로 마무리하여 멀리 다녀온 피로를 풀었다
매번 백두대간이 처음 가보는 길이여서 긴장과 호기심이 극에 달해
하루에 무려 다섯끼를 먹어주어야 기운 내서 걸을수 있다
류시화가 옮긴 '인생수업'중에 "삶은 하나의 모험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 가슴 뛰는 삶을 살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말이 나온다
가슴뛰는 모험을 하기에는 아직도 체력이 모자란다
겨울산
낙엽쌓인 겨울산이 적요했다.
무거운 허영을 떼어내고
추운몸으로 선 나무는
허한 가슴으로 찬바람을 맞는다
나뭇가지에 앉은 까지 한마리
찬바람에 하늘로 쓸쓸히
날아갔다
낙엽쌓인 겨울산이 적막했다.
정결한 영혼마저 훔쳐내고
흙으로 돌아가는 나뭇잎
순한 가슴으로 찬바람을 맞는다
가도 가도 따라오는 산줄기에
봉우리만 남겨놓고 외로히
내려왔다
저 만치 얼어붙은 계곡따라
겨울산에 생명이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