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39차

2016. 5. 11. 15:11백두대간

 

일시-2016년 5월10일 화요일 비

장소-백두대간 청화산 조항산 구간 북진

코스-늘재-정국기원단비-청화산(984m)-시루봉 삼거리-갓바위재(헬기장)-조항산(951.2m)-고모치

      -889봉(마귀할멈통시바위,둔덕산 갈림길)-집채바위-밀재-월영대-용추폭포-대야산 주차장

      백두대간 11.5km+접속구간 4.2km=15.7km를 7시간20분 걸림

 

 

 

 

봄비가 내린다

새벽비에 희미해진 가로등은 졸고 있고 비에 젖은 아스팔트 위로

빗물 담은 진분홍 철쭉꽃이 어지러워 하나둘 떨어지고 있다

어제 저녁 딸내외가 집에와서 특별나게 준비한것도 없이 불고기에

된장찌게로 밥 한끼 먹고 반찬 몇가지 챙겨줬을뿐인데

피곤이 영력한 토끼눈으로 집을 나섰다

 

서울을 떠난 버스는 비 내리는 컴컴한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차창가를 때리는 빗방울은 도르르 물줄기로 흘러 금방 그칠비는 아니다

운전석 유리창은 연신 와이퍼가 작동중이다

매번 서울을 떠나 대간 들머리 입구까지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버스없인

당일 대간길은 엄두도 못할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운전기사들의 목소리가 어쩜 산행리드하는 대장만큼이나

높아져 있는듯하다

빗길에 약속시간 십여분 늦는것은 애교라 치고 도로공사 한답시고 가다서다

지체한 차량이 어디를 어떻게 돌았는지 뱅뱅 돌았다는 말과 함께

무려 들머리 도착시각을 얼추 두시간은 까먹고 열두시 십분전에 도착했다

이십오명 이상을 싣고 떠나는 선장은 분명 기사인걸 다른 사람에게 목적지를 묻는것도

이해 불가이고 사전 공부가 없었다는 핑계는 말이 많았다

말보다 안전운전을 부탁하고 싶다

아침으로 먹은 찰떡이 울렁울렁 넘어 오려는 순간을 간신히 참고 늘재에서 내리자

오히려 시원한 비가 반가웠다.

 

이곳 사람들이 늘티라고 부르는 늘재는 해발 380m로 992번국도가 지나고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로 늘재 넘어 입석리까지 경북 상주시이다

위풍당당한 백두대간 표석과 한강과 낙동강 분수령의 안내판과 성황당이 있다

비 내리는 와중에 스틱 빼고 인증샷 한후 일행들이 사라질까 처음부터 분주한탓에

삼백오십년의 엄나무가 있다는데 찾을겨를도 없이 성황당을 지나

어려운 하루가 될것을 예감하며 대간길 숲속으로 들어갔다

선명한 연두빛 속으로 들어간 오늘의 여정은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면서 시작하여

이십여분 지나자 정국기원단이 나온다

정국기원단은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는 비석과 함께 양쪽에 두개의 대리석

향로가 있다

조선말기 의병장이었던 이강년장군의 공덕비란다

기원단에 서니 한눈에 보인다는 속리산은 구름속에 파묻혀 온데간데 없다

앞으로 청화산까지는 2.6km로 한시간 이상 고도를 올려야 한다

늦게 시작한탓에 청화산도 오르기전에 이미 점심때가 넘어 배가 고파온다

부드러운 능선길과 암릉길을 번가라 올라서 헬기장을 지나

드디어 984m의 청화산에 올랐다.

 

정상석에 파랑색으로 적힌 높이는 970m였다

힘겹게 올라선 청화산 봉우리에는 비를 흠뻑 맞고 초라하게 서 있는 정상석이 너무 작고

발 딛고 서 있을 공간도 협소하였다

십리밖 어디에서 바라 보아도 항상 푸르고 화려하게 빛나고 있어 청화산이라는데

비맞은 청화산 주위에는 뾰족뾰족 들어난 암릉과 암릉에 기대선 나무도 으시시

어두컴컴하여 무서웠다

택리지에"청화산은 내선유동과 외선유동을 위에 두고 앞으로는 용유동을 가까이에 두고 있다."

라고 적혀있다 

청화산은 속리산같이 험준한 바위가 없어 속리산을 남성미라면 청화산은 여성미를

가진 산으로 속리산만큼 험한곳은 없다니 앞으로 가야할 속리산 구간에는 단단한

각오를 해야겠다

풍수지리에서 소의 뱃속을 닮았다고 하여 우복동이라는 하는 조선제일의 명당터가

남쪽으로 한자락을 차지하고 있다.

블랙야크 백대 명산 도전을 신청하고 밟은 백대 명산중의 최초산이다

본인의 스마트폰으로 찍은 인증사진만 승인이 된다는 말에

배낭을 내려놓고 스마트폰을 꺼내려는데 비옷속 배낭도 축축하다

알고 보니 카메라로 찍은 사진도 인증 가능했다

비바람이 부는 청화산 정상 주위의 바위는 미끌거려 높고 좁은곳에서 삐끗하면 황천길이건만

성질급한 남편은 빨리 서지 않는다고 야단이다

손발은 굼떠 간신히 사진 한장 남겼는데 이번에는 뿔난 남편이 백대명산 인증샷 안한다고

난리다

높고 험한 이곳을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는데 온김에 찍어야 된다는 요구에 마지못해  

남편은 인상쓰고 수건을 들었다

유럽배낭 여행중에도 사진때문에 먼저 집에 가겠다하여 하마트면 이산가족 될뻔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진찍자하면 그대로 몸치가 되어버리는 모델과 여러포즈를 구하려는 찍사와의 어긋난 핀트로

찍사와 모델 어디하나 쉬운것은 없다

나중에 남는것은 사진밖에 없다지만 세상이 너무 좋아져 전국민이 사진전문가가 된 요즘은

어쩜 여행이란것이 사진 찍기위해 떠나는 여행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청화산 정상석 뒤로 내려선 대간길은 다시 오르막을 오른다

시루봉 갈림길에서 대간길은 좌측으로 급격하게 꺽어진다

다시 걷기 편한 능선길을 나오고 858봉으로 내리막길 암봉을 지난다

빗줄기는 점점 거세져 그칠줄을 모르고 밥은 먹어야 걸을수 있겠고

하는수없이 평평한 능선길가에 자리를 잡고 쪼그려 앉아 빗물 들어간

닭가슴살 김치 볶음밥을 먹었다

내 돈주고 시간 허비하면서 비 맞은 생쥐꼴로 살겠다고 꾸역꾸역 숟가락을

입에 넣자니 갑자기 울컥해진다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지만 노년의 문턱에 다달아서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봄비는 날 적셨다.

허기사 요즘은 가지각색의 수저론이 등장하여 젊어 고생은 중병으로 이어지는

세상이다

엄마가 이꼴을 멀리서 보고 있노라면 우산이 될것이다.

구십두해 평생 참 길게 살았다고 남들은 말하지만 나하고 인연은

내 나이만큼이라 엄마가 이세상에 없는 사람이고

이제는 만날수 없다고 생각하니 살아생전 엄마랑 같이

밥 많이 먹을걸 후회와 함께 울기 싫은데 밥때가 되면

저절로 목울대가 뜨거워진다

 

부생모육이여서 은혜가 태산보다 높고 커 살아생전 효도가 정답이나

내 자식 똥오줌은 맨손으로 주물러 키웠으면서 마지막 가는길에

대소변이 내 차지가 될때면 코를 막고 냄새가 지독하다고

나는 투덜 댔었다.

기골이 장대한 엄마 육체가 한줌의 가루밖에 안 되었다

 

그리고 마흔여덟번의 낮과 밤을 보내고 세상 천지가 꽃들로 뒤덮힌 오월오일

엄마가 죽어 가루가 된후 사십구일이 되어 엄마의 종교대로 천도재를 지내

이제 나는 고아가 되었다.

 

입가심할 충분한 휴식 없는 점심을 진짜 점만 찍듯이 후다닥 해치우고

한낮이 되어도 검푸른 산속에 뿌옇게 보이는 앞선 일행을 따라갔다

이런날 혼자서 대간길을 걸을려면 보통 담력이 없으면 안될거 같다

 

 

오르락 내리락 부드러운 흙길과 바위길이 섞여있는 빗길 걷기는

어디 한군데 편안한 발걸음이 되지 못했다

감기중에 대간길 걸으면서 신경이 날카로워진 남편은

열번을 잘하다가 한번 욱하는 성질로 그동안 쌓은덕을 한방에 무너뜨리는 성격이라

행여 야단맞을까 쌩쌩 먼저 앞서 나갔다

한참을 가다 아이고 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그만 넘어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기를 잠시뒤 또 넘어진다

걸으면서 다른생각을 하다가 넘어졌다는 핑계대로 걸을때는 온전히 걸음에만

집중해야한다

거꾸로 누가 누굴 걱정하는 꼴이 되어 몇번을 뒤돌아보다 나도 질척거리는 흙길에서

쭉 미끌어져 흙범벅 바지가 되었다

역시 뒤따라 다니는것이 편하긴 편하다

정국기원단에서 무사기도를 안드리고 온게 후회가 되었다

비는 점점 거세져 계속 걷지 않는다면 저체온증에 걸려 죽게 생긴 날씨가 바로

이런날이란다.

바람에 비옷은 날리고 나무 이파리들도 날렸다

능선길에서 가끔씩 만나는 철쭉과 진달래가 비를 쫄딱 맞아 오히려 분홍색이 선명해

연보라빛을 띄었다

철쪽꽃은 신라 성덕왕시절 순정공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여

절세미인인 아내 수로부인과 함께 가던중 일행은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었다

근처 까마득한 절벽에 핀 철쭉꽃이 수로부인의 눈에 띄었다

"누가 저 철쭉꽃을 꺽어다 주겠소?"라고 물었으나 모두 뒤로 물러났다

그때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한 노인이 부인의 말을 듣고는 꽃을 꺽어와

"나를 아니 부끄러워 하신다면 꽃을 꺽어 바치오리다."라는 삼국유사에

헌화가의 배경설화가 전해진다 

진달래는 피 흘리며 쓰러져간 젊은 학생들이 사월이면 피는 붉은 진달래를 닮았다하여

사일구혁명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옛날 진씨인 나뭇꾼이 억울하게 죽은 딸 달래를 부둥켜안고 울다 지쳐

죽은자리에서 피어난 꽃이라 해서 진달래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진달래는 잎보다 꽃이 먼저 피지만 철쭉과 산철쭉은 잎과 함께 꽃이 핀다

꽃받침이 없는 진달래는 참꽃이라하여 먹을수 있고

꽃받침이 있는 철쭉은 개꽃이라 하여 먹을수 없다

우리가 흔히 보는 정원에 있는 영산홍은 일본에서 철쭉을 개량한 종으로

왜철쭉이라고 칭한다.

 

비바람에도 불구하고 이웃 큰 나무들이 무성한 그늘을 만들기전 종족을 퍼트리고

살아남기 위해 꽃을 피우는 벅찬 숨결이 들리는듯 비속에 진달래와 철쭉이 애처롭다.

능선길 가장자리에 키 낮은 이파리 밑으로 줄줄이 이어져 핀  아이보리색 작은꽃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수수하든지 화려하든지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그냥 몸짓에 불과하다는 시인말마따나

이름을 부르고 싶어도 그냥 이름모를 야생화처럼 몰라서 부르지 못하는게 태반이다

발도 느리면서 해찰 말자는 나는 금방 들어도 그때 뿐이다

산에서 내려와서도 머리속에 맴도는 아이보리 줄줄이 이름은 동굴레꽃이란다

 

티셔츠에 얇은 바람막이와 비옷을 겹쳐 입었더니 춥지 않았다

매번 산행시마다 정수리의 숨구멍인 백회 혈자리에서 솟는 열로 두통에 시달리던 나는

머리로 때리는 빗물이 모자속으로 스며들어 오히려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 들고 시원했다

"하늘과 땅사이에서 아직도 길을 가고 있는 행복은 자신이 깃들일

밝은 영혼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니체는 말했다

영혼이 있다면 뜨거운 날보다 오히려 빗물에 씻기운 나뭇잎과 풀잎이 아름다운

이런날에 불쑥 찾아오지 싶다

산아래 도심에서는 우산없이 비 맞고 돌아다니면 미친년인게 분명하고 비 맞을일 없을텐데

비맞고 걸어 다니는 묘한 기분은 처음이다

801봉 전망대가 나왔으나 희뿌연 구름과 안개와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올거 같아

누구하나 전망대에 올라설 사람은 없었다

직벽으로 내리는 암벽을 타고 769m의 갓바위재에 도달했다

갓바위재 좌측으로는 의상저수지로 가는길이 나오고 우측으로는 상궁리로 이어진다

갓바위재 위에 있는 헬기장을 지나고 다시 암릉길이 나온다

가파른 급비탈 오르막을 힘겹게 올라서 드디어 오늘의 두번째산인 조항산인걸

정작 조항산 근처에 와서는 정상을 지나칠뻔했다

 

지도에는 953.6m로 표시되어있으나 정상석에는 951m로 표시되어있었다

조항산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과 경북 문경시 농암면을 가르는곳이다

농암면쪽으로는 암벽으로 되어있다

홍수때 물에 떠있는 정상부가 새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조항산이라 하고

마귀할멈 통시바위에서 보면 갓바위봉은 새의 부리로 보이고

조항산 정상부는 새의 머리로 보인다고 한다

사방으로 조망이 제일의 절경이다는 조항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속리산과

북쪽의 희양산과 마귀할멈 통시바위와 둔덕산은 고사하고 몇걸음 앞에 있는 길조차

가물가물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고 걸었다간 금방 미끌어져 조항산이 되고 말것이다

조항산 동쪽의 궁기리는 견원이 활을 쏘며 무예를 키운 마을이란다

조항산을 떠나서는 길은 수월했다

오백미터쯤 이르러서는 의상저수지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오면 알바를 조심해야한다

급경사 내리막을 지나 737봉을 지나 고모치라고도 하는 고모령에 다달았다

 

고모령은 남편없이 남매를 키우는 어머니가 있었는데 어느날 이집의 가난은

전생에 덕을 쌓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스님의 말에 남매와 어미는

덕을 쌓으려 흙으로 산을 쌓았는데 현재의 모봉 형봉 재봉 이라는

세개의 봉우리가 되었다

동생과 형이 서로 높게 쌓고자 시샘하고 싸우는것을 보고 어미는 집을 나와

하염없이 걷던길이 지금의 고모령이다

또는 궁기리 뒤편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문경에서 충북을 연결하는 준령이 있는데

고모와 부모없는 질녀가 오두막에서 가난하게 생활하였다 한다

질녀가 병사하고 고모는 슬픔에 못이겨 식음을 전폐하고 험준한 준령 상봉에 올라

질녀의 이름을 부르며 수일을 지내다 고모도 그자리에서 죽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이넋을 달래기 위해 고모치라고 이름지었다 한다

고모령에서 오른쪽으로 10미터를 내려가면 석간수로써 조카들은 잃은 한이 서려있는

고모샘이 있어 물이 콸콸 솟아나온다는데 하루종일 빗물로 샤워한탓에 대간길만

열중하기로 했다

삼천리 방방곡곡이 전설없이 태어난 마을이 없듯이 믿거나 말거나 고모령 아래에는

고모리 마을이 있다

고모치에서 밀재까지는 3.0km를 한시간 삼십여분이면 갈수있다

다시 능선을 타고 오르면 마귀할멈통시바위와 둔덕산 갈림길인 889봉에서

대간길을 재촉한다

완만한 내리막과 오르막을 올라 854봉과 849봉을 지나고

집채바위 옆을 돌아 밀재로 향하게 된다

화창한 날씨에는 그 어떤 산보다도 능선위에 솟은 바위와 울창한 나무들로 풍광이

뛰어나다는 구간이건만 풍광대신 비바람에 쫓기듯 15여 km를 빗속 대간 능선길에서

무사히 빠져 나오니 빗줄기가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한다

밀재에서 동쪽의 다래골로 접어들자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거세졌다

월영대를 지나 노랑밧줄로 위험을 알리는 용추폭포에 이르자 성난 폭포의 하얀 물거품이

용틀임을 연상케 한다

계곡은 점점 어두어지고 많은 물이 흐르자 세상 모든것들이 물소리에 잠긴거 같아

지난번에 이어 두번째 하산길임에도 무서워 서둘러 하산했다.

뜨거운 햇빛속에는 생명수나 다름없던 시원한 물이 이제는 천덕꾸러기가 되어

물이 없는 사막으로 날아가고 싶으니 사람만큼 간사한 동물도 없다

하루종일 하늘아래 구름과 안개속을 헤매이다 주차장 땅을 밟고 서니 

비로소 운무의 무거운 기억에서 깨어난듯 두다리가 휘청거린다.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때 나는 무진 10km라는 이정비를 보았다."

의미없는 삶에 의미를 비쳐 보는일로 소설을 쓴다던 작가가 뇌졸증으로 쓰러져 투병한후

현재는 소설의 무대였던 고향인 순천에서 화가로 변신한 김승옥이

1964년에 발표한 무진기행 첫문장이다

제약회사에서 전무승진을 앞둔 희중이 어머니 묘와 젊은날의 추억이 있는 고향을 찾으며

겪는 짧은 단편으로 어두운 기억에서 속물스럽지만 일상의 해를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가 생각나는 하루였다

 

비에 젖은 축축한 산행의 피로와 함께 비 그친 서울에 도착하여

바지가랑이로 스며든 물로 탱탱 불은 새끼 발가락이 쑤셔 절뚝거리며

늦은밤 귀가했다

먼훗날 청화산 조항산을 떠올리면 비와 안개속 기억으로 가물거릴것이다


 

 

비와 구름

 

구름위에 둥둥 떠서

비 내리는 산마루에 올라섰네.

 

신의 하늘과 인간의 땅 중간에서

골짜기 열고 물줄기도 여니

운무에 산자락은 사라지고 

어둠이 깔리네

 

빗물 젖은 푸른 계곡에서

엄마도 울고 나도 울어

등뒤로 따라오는

물소리만 시끄럽네

 

숨결도 멎은 시각되어

비바람만 가슴 두드리고

별이 되려 비가

구름밖으로 떠나네

 

빗물 들어 꽃 떨어지는

대지로 내려오니

바람타고 빗방울도 사라져

봄이 뒷짐 지고 가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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