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2. 08:53ㆍ백두대간
일시-2016년 5월31일 화요일 맑음
장소-백두대간 문장대 구간 남진
코스-늘재(371m)-경미산(696m)-밤티재-암릉-휴계소-문장대(1054m)-정상 휴계소
-법주사-공영버스 주차장
백두대간 7.3km+접속구간 8.3km=15.6km 7시간20분걸림
바위가 날 잡았다.
찔레꽃 꺽어서 청보리밭으로 뛰어 들어 가고픈 오월의 끝
봄날은 가고 쨍 하고 해튼날이 돌아왔다
해발371m의 49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늘재에 내리자 미세먼지가 여기까지
쫓아왔나 뿌연 도로위로 햇빛이 눈을 찔러 더운 하루가 예상된다
늘재 표석 길건너 한강과 낙동강 분수령 안내판 좌측의 들머리에서 가파르게
산길을 오르면서 오늘의 일정은 시작되었다
내 페이스를 찾을때까지는 서서히 올라야 하는데 대간 종주자들은 모두 선수들이라
특별한 준비운동 없이 오르므로 처음에는 그들 따라가기가 숨이 차다
629봉을 지나 696봉의 경미산을 지나서 늘재에서 3.2km 떨어진 밤티재에
한시간 삼십여분 걸려 내려섰다
해발 500m가까이 되는 밤티재는 997번 이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고개로
현재 개발중인 문장대 온천을 연결하는 도로이다
화북면 중벌리 자연부락인 밤치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철망 아래로 내려서 길을 건너 감시초소가 있는 우측 고갯마루쪽으로 걸어 올라서면
대간 마루금으로 연결된다
밤티재에서 문장대까지는 출입금지로 국공들이 감시하는 초소에 아무도 없었다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텐데 일부러 이런곳만 찾아 다니는 등산객은
오늘 같은날을 기다려 합류하건만 나는 걱정이 앞선다
희양산 조령산 밧줄도 잡아 봤는데 걱정도 팔자다
행여 잡힐세라 빠르게 밤티재를 벗어나 숲속으로 들어가 완만한 오르막을 올라섰다
한반도의 백두대간길은 명당터인지라 곳곳이 많은 묘들을 만난는데
하나의 묘를 지나고 말 안장처럼 잘룩한 안부를 지나 또 묘가 나온다
삼천리 방방곡곡 경치 좋은데는 죽은자가 누워 있어 땅 덩어리도 작은 우리땅이
무덤으로 뒤덮힌다 생각하면 끔찍하고 다행이 요즘은 화장 시키는게 대세라서
화장시켜 새장같은 남골당에 가두는것도 못쓸일이고 자연으로 돌아감이 맞는거 같다
시어동 갈림길을 지나 다시 가파르게 오른다
걷기 시작한지 두시간여가 지나고 한낮의 열기는 훅훅 달아 올라
등에는 땀이 배이고 정수리는 뜨겁다
가끔씩 능선 아래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땀을 식혀 그나마 다행이다
흙비탈 산중턱과 계곡아래로 새로운 잎들이 푸릇푸릇 온 산을 투명한 초록으로
아름다워 눈이 시원하다
햇빛과 바람 한점으로 쑥쑥 크는 나무 이파리들이 서로서로 햇빛 나눠받는지
서걱 거린다
"뒤에서 날아오는 돌은 숙명이고 앞에서 날아오는 돌은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나무에게 땅에 묶여 사는게 숙명이라면 뿌리를 내린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것은
운명이다 "라고 자칭 나무 의사인 우종영씨가'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에 말했듯이
주어진 자리에서 평생 살아가야할 그들의 운명이고 숙명이라면 매연을 마시며 사는
가로수보다는 백두대간 능선길에 뿌리 내리고 사는게 훨씬 낫겠다
산세가 험한 계곡 비탈길에 서 있는 나무들이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끝이 없을거 같은 오르락 내리락 힘겨운 걸음에 바람골의 바람 맞으며
다시 기운을 얻어내 걷고 또 걷는데 미스김 라일락이라고도 하는 정향나무 향기가
진하게 올라온다
녹색빛을 한껏 뽐내는 나무그늘을 찾아 휴식과 식사를 동시에 할겸 두다리를 쭉 펴고 앉아
점심을 먹고 얼음물로 입가심을 했다
이제는 얼음이 필요하다
몇달전까지만 해도 추워서 오돌오돌 떨던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사이 한여름이 되고 말았다
햇빛 뜨겁다고 지난주에 내린 시원한 빗줄기가 그리워지다니
간사하기 짝이 없다
앞으로 남은 암릉지대는 말로만 들었던 개구멍을 통과해야 한다는 구간이다
로프를 잡고 오르는길 옆으로 개구멍이 나 있어 쉬어 보이길래 구멍을 빠져나오니
사방이 막힌 바위 덩어리 아래여서 다시 바위위로 올라서야 하건만
로프도 없어 위에서 잡아주지 않으면 올라서기 힘들다
꾀 부렸다 되려 시간만 지체하여 그냥 옆에 달린 밧줄이 나을뻔 했다
간신히 한개의 구멍을 통과하고 이제 남은 두개는 어디에나 있을지
위로 아래로 크고 작은 바위들이 길을 만들어 위태위태한 산끝에 서서 걷는 느낌
누구는 짜릿하여 감동이라 다시 생각나는길이라 한단다
커다란 바위덩어리 두개를 붙여놓은듯 둥근 바위덩어리 위에 핀 녹색의 생명이
신비롭게 살아있고 칼끝으로 내리친듯 날카로운 절벽이 위태로운 큰 바위위에
서서 사진찍는라고 난리 법석들이다
바위만 나오면 신이나서 폴짝폴짝 뛰어 다니는 그네들은 좋아서 오줌을 지린다면
바위절벽 위에만 서면 오금 저리는 나는 무서워 오줌을 지릴판이다
앉아서 설설 기어 가신히 사진 한장 찍고 바위를 벗어나 앞에 펼쳐진 푸른 산을
바라보니 속리산의 깊은 경치가 신비롭게 열리고 있었다
전망바위를 벗어나면 또 다시 오르막 바위가 나온다
두개의 바위가 벽을 이루는 바위에 또 바위, 바위가 빡세다.
박카스 한병에 반짝하는 기운으로 대간길에 도움되라 마시고 시작했건만
바위 덩어리에 오뚝하니 서서 사진찍는다고 긴장했다 내려오기를 서너번 하다
한꺼번에 기력은 소진되고 말았다.
비행기 타고 붕 틀땐 기분이 좋은거 보면 고소 공포증은 아닌거 같은데 바위 공포증인가
제발 바위에서 사진 찍겠다고 서서 폼 잡으란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다시 나온 바위길 앞에서 두병째 박카스를 털어 마시고
로프를 잡고 암벽을 올라야 되는데 발 디딜만한 자리가 없다
이럴줄 알았음 양재역에서 그녀들이 하던 다리 찍기라도 열심히 해둘걸
다리는 벌어지지 않고 두 발은 후들거린다
위에서 손 잡아 주고 밑에서 엉덩이 밀어주면 한방에 훅 올라서겠고만
남편이 하나만 있어서 힘들다.
그렇다고 남편이 둘이여선 큰일날 일이다
죽을힘을 다해 올라섰다
힘들게 수직바위 로프를 잡고 올라서면 사방이 트인 암봉이 나와 다시 보상을 해주고
끝인가 싶은면 또 다시 바위가 나온다
두번째 개구멍은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산부인과 구멍이라고 할만치 앞으로 들어갔다가
옆으로 살살 몸을 비틀면서 뚫어야 나온다
첫딸은 임신중 입덧으로 먹은것보다 토한 횟수가 더 많다가
열두시간 산고끝에 난산하여 머리에 기계자국 남기며 나오고
둘째딸은 유산기와 조산기에 열달내내 누운채 키워 배갈라 나와
남편은 조석준비는 물론 열달동안 약숫물 떠다 김밥 싸고 출근하느라 똥 빠지게 힘든일을
젊어서 가능했던일이다
친정도 없어진 마당에 집 나가야 갈곳이 없어졌지만 그때의 수고를 생각하면
서운해서 집 나갈일이 생겨도 꾹 참아야 한다
아빠의 정성이 다았는지 둘째딸은 아빠만 쏙 빼닮았다
세째로 아들은 재왕절개는 하였지만 뱃속에서 있는둥 없는둥 삼겹살 먹으면 좋아서 발길질 할까
순하게 살다 나온것처럼 세번째 개구멍은 로프를 잡고 오르다 바위사이 내리막길로 이어져
쉽게 미끌어져 내려오듯 빠져 나온다.
조망하기 좋은 널찍한 바위를 지나고 바위틈새를 빠져나와 사람키만큼이나 큰 산죽밭 사이로
내려서 헬기장에 다달은다
감시 카메라가 있어도 출입금지 안내판 옆으로 올라서니 문장대 철계단이 보이고
비로소 문장대로 오르는 오솔길과 만나게 된다
지난주에 구름에 갇힌 문장대에 이어 두번째 문장대 방문이다
문장대에서는 남쪽으로 문수봉과 좌측으로 이어지는 칠형제봉 서쪽의 관음봉등
속리산의 수려한 바위와 푸른능선이 겹겹이 풀어져
"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 俗離山"최치원의 싯구대로 기묘한 바위봉우리들이
초록물결위에 떠서 속된 세상을 멀리 떠나고 싶은 깊은 산임에 틀림없다
나희덕 시인은 '속리산에서'
"세속을 벗어나도 세속의 습관은 남아있는 나에게 산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산에 오르고 있지만 내가 넘는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속에 갇힌 시간일것이다."라고
시를 썼다
뙤얕볕에 문장대 너럭바위 패인곳까지 바짝 말라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속리산에 갈수 있어도 속리산에서 도를 깨우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칡넝쿨과 할미꽃 모기가 없다하여 三無산이라 한다는데 노랑나비 검정 얼룩나비들은
속리산에서 무슨 볼일이 많은지 바쁘게 날아 다녔다
대간길 여정은 7km 이것으로 끝이 나고 접속길 여정이 대간길만큼이나
길게 내려가야 되는 길이여서 오후 세시가 넘어가므로 긴 휴식을 할수없음이
아쉽게 되었다
해발1054m의 높은 고지에서 법주사까지는 마냥 내리막길이라
항상 먼저 통증을 느끼는 왼쪽 무릎에 무릎 보호대를 차고 화강암 계단길을 내려서는데
일행들은 벌써 달음질쳐 사라지고 언제나 그랬듯이 남은건 둘 뿐이다
마지막까지 남은 체력 삼십프로를 남겨놓고 산행하는게 정답이라고 알고 있지만
항상 내 체력은 고갈되어 이프로 부족한 상태이다
한시간 삼십여분 넘게 내려서 세개의 휴계소를 지나고 나야 비로소 아스팔트 평지가 나오고
법주사로 내려왔다.
시원한 얼음 아이스케키 하나 먹으면 불타는 열기가 가라앉을듯 싶은데 없단다
탬플스테이로도 유명한 법주사는 속리산의 청정한 산속에 자리잡아 바람도 쉬어갈만치
아름다운 장소였다
수박 겉핥기로 들린 법주사에는 금동 미륵대 불상이 압도적인 크기로 눈에 들어오고
둥근 얼굴에 잘록한 허리의 마애여래의상의 잔잔한 미소가 돋보였다
팔상전과 석련지를 비롯하여 국보와 보물급 문화재가 많은 속리산 법주사에는
천오백여년 향기를 품고 긴 세월의 발자취를 지닌 이땅의 미륵신앙의 요람으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절이다
법주사 경내의 오래된 절 구경도 잠시 애끗은 절 마당물만 한바가지 들이킨채
대웅보전까지는 가지도 못하고 돌아서야 해서 시간이 아쉬울 따름이다
법주사를 나오는 영쪽 길옆으로 초록 잔디밭에 그림같은 소나무들에 정신을 파는 동안
어느새 주어진 약속시간이 지나 부랴부랴 주차장으로 달리다 보니
조선 세조가 법주사로 가던중 왕의 가마인 연이 지날때 스스로 가지를 들어 지나가게 하고
법주사에서 나와 소나무 옆을 지날때는 갑작스런 소나기가 내려 비를 피할수 있게 하여
지금의 장관급인 정이품의 벼슬을 하사 받았다고 배웠던 정이품송은 어디쯤에 있는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오월 날씨가 한여름을 방불케하여 오후 다섯시가 넘어가도 식을줄을 몰라
몸은 기진맥진 머리는 무겁고 손발은 뜨겁다
하면 할수록 쉬어지는게 아니라 어려워지는 대간길 여정이 고행길이라
오늘처럼 하늘과 가까운 바위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연속으로 몇번만 더 하면
대간길에서 심장이 멎을지도 모른다
박카스 두병에 심장이 놀랐는지 밤새도록 내 심장은 두근두근 울렁울렁 쏴하게
일렁거리고 머리에 열이 난다
청계산 아래에서 주말농장하는 친구와 약속으로 상치쌈에 고기 먹으려면
내일 낮에 나가야 되는데 육년전 처음으로 숨은벽 능선 올랐다 내려와 밤새 끙끙 앓았던
그때처럼 눈을 감으면 생생하게 사진찍던 절벽 바위 벼랑끝이 나타나서
눈만 떴다 감았다 잠 못이루는 밤을 지새우고 새벽녘에 되어서야 진정 되었다
새들은 사랑인줄 모르고 죽지를 파고 든다더니
절벽인줄 모르고 나섰다 죽음 직전이 어떤 맘인줄 알았던 하루였다
모든게 마음먹기에 달렸다지만 俗離하기가 만만치 않아
먼훗날 백두대간길을 떠올린다면
다른 사람들은 늘재에서 문장대의 짧은 거리가 가장 쉬운 구간일지 몰라도
나는 가장 힘들게 올랐던 구간으로 기억 될것이다
솔바람 따라
끝없이 푸른빛 하늘 아래 산 줄기에
주름진 겹겹의 봉우리가 하늘을 뚫어
절벽은 흰구름 끌어안고 무너지네
이길 저길 인연따라 속리산에 눌러 앉아
솔 향기가 지천인 천오백년 사찰에서
떠 다니는 마음 안식 얻었네
온 몸으로 봄을 쓸어 담는 찰나
산 그림자 길게 늘여 해 떨어지고
솔 바람 따라 봄날이 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