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25. 14:19ㆍ백두대간
일시-2016년 5월24일 화요일 비
장소-백두대간 속리산 천왕봉 구간 북진
코스-갈령(443m)-갈령삼거리-형제봉(829m)-803봉-피앗재-639봉-667봉-703봉
-천황봉(1058m)-비로봉-신선대-문장대(1054m)-화북 탐방지원센터
백두대간 11.3km+접속구간 4.9km=16.2km를 7시간 30분걸림
몇일전까지만 해도 한여름을 방불케하던 날씨가 오늘은 비가 내려
시원해졌다
논두렁 밭두렁이 푸르고 장미꽃 향기가 풍기는 오월이 비에 젖는날이
많아지고 있다
엘리뇨와 라니냐라는 이름도 어려운 이상기온 변화가
지구촌 곳곳이 폭우와 가뭄 폭설에 한파 산불까지 가져온다고 한다
날씨마저 세상에 없는 새로운 계절을 만들어 미친 세상이 되어 가는가보다
오랜만에 찾은 극장에서 한국판 샤머니즘과 오컬트 그리고 좀비를 결합한 영화를 보고 왔다
아름다운 섬진강 곡성마을을 살인 범죄마을로 탈바꿈 시킨 감독의 정신상태도 의심 스럽고
비 내리면 미세먼지는 사라지려나 비오고 어두워지는 곡성은 이해못할 비극이다
마음이 푸근해지고 상상력이 풍부하여 눈과 귀가 동시에 즐거운 영화를 보고 싶은데
스크린 독과점으로 대부분 상영관이 같은 영화를 하는통에 맘대로 골라 볼수 있는 영화가 드물다
힘 없는 관객은 힘 있는 그들이 보라는 대로 보는 이런 이상한 구조는 변해야 한다
여자들은 공중 화장실도 맘대로 드나들지 못하게 만드는 괴상망측한 뉴스가 판치고
자고나면 없던 건물이 올라가고 인공지능이 사람구실까지 하는 복잡다단한 시대에
나이만 먹었지 변해가는 세상을 따라가지 못해 이렇게라도 심신을 단련시키지 않고
정신줄 놓고 살다가는 나도 미친년이 될까 두렵다.
지난번에 이어 두번째 우중산행으로 위험한 바위구간은 다음으로 미루고
갈령삼거리로 올라 문장대로 이어 나가기로 변경했다
요즘 인기프로에서 탈을 쓰고 부른 섬세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장미를 좋아하는 여배우에게 사랑에 빠진 러시아 무명화가가
자신의 삶을 꽃으로 바꿔놓은 이야기는 오늘처럼 비내리는
장미의 계절인 오월에 들으면 숨소리마저 노래가 되고 장미향이
빗물에 녹아있는거 같다
"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면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며
나 홀로 쓸쓸히 빗방울 소리에 마을을 달래도~"
'봄비'의 노랫말 답게 마음을 울려주는 비가 언제까지 내릴지 오늘도 비를 맞으며
갈령 표지판을 벗어나 숲으로 들어서니 물 먹은 진한 흙냄새와 나무향기가
훅 올라온다
해발 443m의 갈령 표지석에서 백두대간길의 시작점인 갈령삼거리까지는 1.6km로
삼십여분쯤 고도를 올린다
갈령삼거리에서 능선길 따라 걷다보면 0.7km 떨어진 형제봉 봉우리가 나온다
형제봉 정상석을 밑으로 피앗재 방향으로 틀어 대간길은 가파르게 내려선다.
봉우리 갈림길에서는 자칫 다른길로 접어들수 있는 지역이라 조심해야한다
빗길에 가파른 너덜바위를 딛고 내려오기는 만만치가 않다
803봉을 지나고 피앗재에 도달하면 형제봉에서 1.5km 천왕봉까지 5.6km라고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지도에는 5.3km로 나온다
기장이라고도 하는 피가 자란다는 피앗재에서 구간 종주를 마치는 경우에는
이십여분이면 왼쪽의 만수동 방향으로 내려가는데 교통이 아주 불편하다고
종주 경험자들은 말한다
피앗재에서 참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우거진 능선길로 가파르게 내려 639봉을 지나고
헬기장에 다달아 주먹밥을 먹는둥 마는둥 더욱 거세지는 비로 허겁지겁 먹었다
그야말로 행동식이다
화북면과 내속리면을 가르는 대간능선은 방향이 좌측으로 꺽어 725봉을 지나고
산죽밭 사이를 걷는다
다시 703봉을 넘어 전망바위를 지난다
얼마 남지 않은 거리에 천황봉 정상이 다가오는지 점점 가파르게 오르다
다시 내려서니 봉우리 하나만 남겨놓은 천황봉 바로 밑이다
이정표가 나오고 이곳에서 대목리로 하산 할수있다
정상적인 싱그런 오월이라면 지금쯤 한낮의 뜨거운 햇빛이 나무 이파리 사이사이로
날카롭게 비출 시각일텐데 점심을 먹은것은 분명하건만 시간도 빗속으로 스며들었나
낮인지 저녁인지 배는 더 허기지고 서면 춥고 걸으면 더우니 몸과 맘 어디하나
편한것이 없다
빗 줄기가 거세졌다 약해졌다 바지 가랑이에 묶은 비닐 봉다리가 너덜너덜 해지고
우의를 겹쳐 입었어도 비는 들어와 빗물인지 땀물인지 축축하다
물이라면 넌덜머리가 나면서도 몸은 물이 필요하다는 아우성에 이온음료 오백미리를 마셨더니
이제는 오줌물을 밖으로 내보내겠다고 신호를 보내온다
똥 마려운것이 아니라 천만 다행이지 비 맞으며 젖은땅에 바지 내리고 오줌 누기도
참말로 번거롭고 거시기 했다
지난주 맞은 백운대 백신 덕인지는 몰라도 겁도 없이 쉴새없이 오르락 내리락
또 오르다 보니 선두일행 뒷꼭지를 바로 앞에 두고 걷고 있었다.
일행속에 묻혀 걷는다해도 온전히 내 발로 걸어가야 되는 길어여서
숨 고르기를 잘해야 하건만 옆구리가 콕콕 찌르도록 약간 무리했나보다
다시 들숨과 날숨을 발걸음에 맞추어 걷다보니 천황봉이 가까이에 있다
마지막 깔딱고개를 넘어 드디어 올라선 오늘의 최고봉인 천황봉(1058m)이다
한반도 산줄기의 근원을 이루는 십이종산에 해당되는 속리산은
비구름속에 잠겨 있고 내 눈은 희미한 천황봉 정상석에만 꽂힌다
천황봉은 한강과 금강수계를 나누는 분수령인 한남금북정맥이 분리되는곳이다
물이 세갈래로 갈라지는 삼파수가 흐르는 봉우리로 천왕봉에서 빗방울이 떨어질때
남쪽으로 흐르면 금강으로 동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으로 서쪽으로 흐으면 한강으로
흘러 간다
오늘처럼 빗물이 정상을 중심으로 많이 내려올때는 제각각 지 갈길을 찾아갈것이다
높은 정상에 철쭉꽃이 아직 피어 있었다
인증 사진찍는다고 꾸물꾸물 시간을 허비하다 보니 어느새 선두 일행은 앞서가고 없다.
뒤쫓아 오는 사람없이 이제사 발걸음을 되찾은듯 내 발밑만 바라보고 걸어갈수 있었다
비는 온 자연을 한없이 적셨다
일찍 개화된 함박꽃이라고도 하는 산목련이 하나둘 얼굴을 들어내놓고 비를 맞고 있고
터질듯한 두툼한 봉우리는 마치 솜뭉치를 뭉쳐놓은거 같기도 하고 새 주둥이 같기도 하여
어두침침한 능선길에 환한 흰색으로 오묘한 신비감이 더 했다.
자연을 모르면 세상 물정 모르는것보다 더 무섭고 멍청한짓이란걸 이제야 조금 알것 같으니
이슬처럼 사라진다해도 인생 여행길이 아직 멀어 배우다가 죽을거 같다
"여행은 나로부터 밖으로 나가는것이 아니라 이 땅의 무수한 삶을 찾아 헤매는 절실함으로
내 안으로 들어가면서 사색하는 행위일터이다."안치운의 '그리움으로 걷는 옛길'에 나온다
그림자도 없이 빗물 담은 발자국만 남기며 떠나는 오늘 같은 길이 고독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사색하며 걸을수 있다
또 길이나 산에서 스쳐가듯 만나는 사람이 수시로 바뀌어서 한번의 인연으로 끝이 난다해도
세상을 배우는 공부가 될것이다
신록에 투명한 빗방울이 외롭게 달려 있다
빗방울이 모자를 타고 우의로 떨어지는 소리가 쿵광거리는 심장소리보다 시끄럽다
천황봉에서 문장대까기는 3.8km로 오르락 내리락 속리산의 비경인 천황석문을 통과하여
비로봉을 지나고 임경업 장군이 세웠다는 표지만 바라본채 입석대를 지나쳐
휴계소에 다달았다.
운무속에서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길이여서 기이한 바위들 감상은
무리였다
그중에 모자인듯 모녀인듯 두 공룡바위가 인상깊었다
보통 신선대 휴계소에서 휴식을 취하며 식수를 구한다는데 굳게 문이
닫혀 있었다
휴계소 앞마당에서 참외 한개를 깍아먹고 스스로 기운 내지 않으면
누가 대신 걸어줄것도 아닌것을 알기에 다시 기운을 냈다
바위를 깍아만든 가파른 돌계단을 지나 문수봉 봉우리는 넘어
문장대 휴계소로 내려왔다.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와 바위가 계단이 될때까지 수고의 손길이 느껴지는
바위 계단이 많았다
어느사이에 서서히 비는 그쳐가고 빗물 고여 젖은 길은 작년 가을 낙엽이
여기저기 뒹굴다 이제사 온전히 흙이 되는 더딘 순환으로 미끌거린다
흔적없이 사라진 낙엽 아래에서는 새 생명이 움틀것이다
가끔씩 새 우는 소리 들려오고 빗물 젖은 이파리들이 바람에 날린다
오르기 쉬운 낮은 돌계단을 올라서면 문장대의 옛 표지석과 새 표지석 두개가
나란히 서 있다
다시 가파른 철계단을 올라 구름속에 앉은 문장대의 바위에 섰다.
문장대(1054m)는 원래 큰 암봉이 하늘높이 치솟아 구름속에 감추어져 있다 하여
운장대라 하였으나 세조가 속리산에서 요양을 하고 있을때 꿈에 나타난 귀공자가
"인근의 영봉에 올라서 기도를 하면 신상에 밞음이 있을것"라는 말을 듣고 찾았더니
정상에 삼강오륜을 명시한 책 한권이 있어 세조가 그 자리에서 하루종일 글을 읽었다 하여
문장대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속리산은 신라 선덕여왕 5년에 김제 금산사에 머물던 진표율사가 속리산의 옛이름인
구봉산에 미륵불을 건립하라는 미륵불의 계시를 받고 구봉산에 들어가려고
보은에 이르렀을때 들판에서 밭갈이 한던 소들이 무릎을 끓고 율사를 맞이했다한다
이를 본 농부들이 감화하여 스스로 머리를 자르고 세속을 떠나 출가하여 진표율사의
제자가 되었다
그후 많은이가 세속을 떠나 이곳으로 들어오니 사람들이 속리산이라 불렀다는
이야가가 전해진다
속리산은 아홉개의 커다란 봉우리가 충청도쪽으로 휘어져 있어 구봉산이라고도 불렀으며
설악산과 지리산보다 많은 서른 다섯개의 봉우리가 있다
천황봉을 중심으로 비로봉 길상봉 문수봉 보현봉 관음봉 묘봉 수정봉의 8봉과
문장대를 중심으로 입석대 신선대 경업대 배석대 학소대 봉황대 산호대의 8대와
8석문이 있다
봉은 산의 중심 봉우리를 뜻하고 대는 큰 바위로 형성된 봉우리를 뜻한다
작년에도 있었고 그 오래전에도 그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문장대에 난생 처음
올라서 보니 기묘하다는 그많은 바위들은 몽땅 사라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운무속에 갈길 잃은 방랑자가 된듯 순간 구름바다에 빠지고 싶다
허기사 이런 미친 날씨에 무엇을 보겠다고 문장대에 오를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산신령이 피워댄 담배 연기인지 하늘님이 뿌려놓은 우유 목욕탕인지
조수 시켜 그린 화가 말고 한장을 그려도 진솔한 화가의 손길이 닿으면
어떤 그림이 나올지 속리산의 모든 비밀을 이 많은 운무가 가져갔으니 말이다
비라도 그친것을 감사해야 할 따름이다.
정상에는 생명의 탄생신비를 일러주듯 알이 부화한 둥글게 파인 흔적에 물이
고여 있었다
문장대에 세번 오르면 극락왕생할수 있다는 전설이 내려오니 두번은 더
올라서야 될거 같다
발 아래 펼쳐진 구름 세상에서 빠져나와 대간 잇기는 여기서 끝내고
탐방 지원센터로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탐방 지원센터까지 3.3km중 처음 일키로여미터 하산길은 가파른 돌계단이다
테이핑을 하였어도 장장 일곱시간이 넘어가자 무릎이 시끈거려
이제는 돌계단뿐아니라 돌덩이만 봐도 이쁘기는 커녕 신물이 날 지경이다
계곡 물소리와 함께 나머지는 국립공원답게 내려가는 길은 잘 다듬어져 있어
수월했다
내려오면서 뒤돌아보니 비로소 속리산의 빼어난 경치가 눈에 들어온다
속리산의 속살은 깊었다
그 밤 신열로 이브프로펜 한알을 삼키고 죽은듯이 잤다.
속리산의 구름
어둡다
비 내리는 숲은 적막했다.
땅은 빗물 받아 먹느라고 크게 울리고
연녹색 생명들이 춥다고 떨었다
하얗고 분홍색꽃들이 회색으로 변하고
봉우리는 안개옷을 입고 있었다
무섭다
빗물이 베인 상처에 뚝뚝 떨어졌다.
내 눈은 사방팔방 바라보고 있어도
아득히 멀어 찾을길이 없다
산줄기는 은빛 용이 꿈틀대다 사라지고
온 세상이 구름 세상 되었다
외롭다
구름이 그대로 스며와 만물을 적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