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13. 10:23ㆍ백두대간
일시-2016년 7월12일 화요일 흐림
장소-백두대간 백학산 구간 남진
코스-지기재(260m)-개머리재(295m 소정재)-백학산(615m)-윗왕실-개터재(옛고개)
-회룡재(340m)-큰재(320m)
백두대간 19.1km+접속구간 0km=19.2km를 7시간 걸림
새벽에 비가 내렸다
배낭매고 우산쓰며 집을 나섰다
한번 빠지면 맥이 끊긴듯 이어가는 발걸음이 익숙치 않을것이다
내가 나를 보니 무슨 청승인가 싶다가도 매번 다음길의 설렘이 생겨나니 대간길에 미치긴 미쳤나 보다
연일 찜통더위로 오히려 비가 반가워져 오늘구간이 바위 산행도 아니고
야산과 들판을 걷는길이여서 더운날 비 맞으며 걷는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거 같은
은근한 기대는 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사라졌다
비 올 확률이 칠팔십 프로라던 기상청 예보와는 달리 상주시 모서면 지기재는
비 한방울 오지 않고 바람 한점 없이 흐린 하늘로 찌뿌둥하기만 하다
대간길은 901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지기재에 도착하여 포도밭과 단수수밭 사이를 걸으며 시작된다
참깨밭과 고추밭사이를 지나 숲으로 들어서면서 대간길로 연결된다
가냘픈 아이보리색꽃을 줄줄 매달려 피는것인 참깨꽃이란다
먹을줄만 알았지 농작물의 성장과정을 제대로 알고 있는것이 없으니
농작물은 물론 야생화나 산야초들은 이름도 생소할 따름이다
고추밭에 실한 고추들로 고추나무 가지가 찢어질 지경이다
지기재에도 새벽녘에 살짝 비를 뿌렸나 들풀잎들이 아직 물을 머금고 있었고
습한 기운과 함께 물이 차올라 숲속의 여린 연두빛 색들은 싱그런 진초록으로
변하고 있었다
끕끕한 풀냄새가 온몸으로 스며들어 오늘도 들풀이 되어보기로 한다
지기재 지나고 갈림길에서 다시 삼십여분 걸어 지기재에서 2.5km 떨어진
개머리재에 도착했다
개머리재는 개의 머리 형태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소정재라고도 하는 개머리재는 주변에 배 과수원과 포도원으로 둘러쌓여 있고
상주시 모서면 소정리와 함박골의 비포장 도로선상에 있다
농로 사이길을 지나고 우거진 수풀을 헤치며 얕으막한 무명봉을 오르 내리면
임도 갈림길이 나타난다
임도 옆에 작은 계곡물이 찔끔찔끔 흐르고 있었다
임도를 걸어 대간길 표지기가 걸린 왼쪽 숲으로 꺽어 올라섰다
산행시작 두시간이 넘어서고 벌써 점심때가 다가오자
점점 오르는 한낮의 열기로 뜨거워져 폭발할거 같은 몸을 이끌고
별로 높지 않은 오르막을 힘겹게 올라 드디어 오늘의 최고봉인 해발 615m의 백학산에
다달았다
상주시 모동면에 있는 백학산은 학이 알을 품은 형상으로 하얀 학이 많이 모여 산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백학산에 학은 없고 넓은 정상에 앙증맞은 정상석과 굵은 참나무와 잡목들이
빙둘러쳐 있어 전망은 없었다
먼저간 일행들이 한자리에 모여 점심을 먹고 있었다
얼음 냉수를 밥에 부어 짭짤한 오이지를 곁들여 먹으니 술술 넘어갔다
이것저것 넣어 주먹밥을 만들어 먹어봤어도 기진맥진 하여 밥맛없는
까슬한 입에는 물말은 밥이 제일이다
후식하나 챙겨먹을 겨를도 없이 먼저온 일행들이 일어나는 바람에
허겁지겁 배낭을 챙겨맸다
식사후 한 삼십여분 누워 쉬었다 가고프지만 산악회 대간길에서는 언감생심
머리속에서만 쉬얼갈뿐이다
백학산 정상을 내려와 477봉을 지나고 가파른 내리막을 지나면 그나마 바람골인지
비탈길 안부에 바람이 불어온다
곧이어 윗왕실재가 나오고 동물 이동통로를 지난다
이동통로 아래는 풀들이 도로를 뒤덮고 있었다
이동통로 난간에 백두대간 선답자들의 안내지가 살짝 부는 바람에도 나풀거리고
구름낀 하늘 사이로 햇살이 살짝 내리쬐는 길 언덕에 무궁화꽃이 환하게 피어
웃고 있었다
윗왕실재에서 개터재까지는 지루하게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여 463봉을 지나고
474봉을 넘으면 안부에 다달은다
512봉을 지나서 비로소 개터재가 나온다
개터재는 상주시 공성면 효곡리와 봉산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옛고개라고도 하며
봉산재 또는 효곡재 왕실재라고도 불리며 부근의 개터골 왕실마을 사람들이
농사짓기 위해 넘나들던 고개란다
차량통행이 가능하여 동물 이동통로 밑 도로와 연결된다
개터재 능선 서쪽으로 내려서면 상주시 공성면 우하리와 효곡리에 걸쳐있는
상판 저수지가 나온다
1979년12월에 준공된 저수지에서는 잉어와 붕어가 자라고 겨울철에는 빙어가 많이
잡히는 곳이다
개터재를 지난 대간길은 부드럽게 이어졌다
푸른 나무들 사이로 산기슭에 기대어 사는 작은 마을이 풍경처럼 스쳐갔다
무명봉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면 사면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길을 지나고
상주와 공성면을 이어주던 길이었던 회령재가 나온다
회령재는 도로 기능을 하지 않은채 잡초속에 묻혀 있었다
15km 넘게 걸었다
이제 남은 거리는 3.8km 한시간 삽심여분이면 큰재가 나올것이다
회령재에 붙은 표지판에는 남은거리 3.9km 로 적혀 있었다
길은 좋아 발은 편한데 숨이 막히고 눈앞이 흐릿하게 보인다
이러다 열사병으로 주저 않을지도 몰라 연신 물을 들이키고 남은 사과 조각을
입에 넣고 먹으면서 걸었다
나무밑둥과 숲길에는 이름도 알수 없는 각양각색의 독버섯이 자라고 있었다
배 고프다고 따 먹었다간 응급실로 실려 간다는 독버섯들이 울긋불긋 지천에 시글시글하다
비라도 시원하게 내리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오라는 비는 안오고 어둑신한 숲속에 습기만 가득하여
좌외선이 차단 된다는 팔토시를 벗어 버리고 꾹꾹 찌르며 간질거리는 풀독이 오르거나 말거나
긴바지를 둘둘 말아 올린채 머리와 등짝에 물을 적시며 걸어도 뜨거워진 머리와 달구워진 몸은
한증막 수준이다
눈보라에 으스러지고 비바람에 뒤집혀도 좋으니 눈비오고 바람부는 날씨가 몹시도 그리워져
차라리 비와 눈이되고 싶은 심정이다.
더운날엔 추운날이 그립고 추운날엔 더운날이 그리우니 변덕이 죽을 끓는다
굴참나무 때죽나무 쥐똥나무 고로쇠 나무 별별 나무들이 이름표를 달고 있어
마을 가까이 왔음을 알수 있었다
회룡목장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벗어나 삼십분을 더 걸어 야산의 인삼밭과 약초밭을 지나
령이나 치보다는 낮은 고개로 특별한 규모나 성격상 기준은 없이 왠만한곳을 일컫는
다섯개의 재를 넘고 나니 마침내 옥산초등교인 인성분교가 폐교되고 그자리에
백두대간 숲 생태원이 자리잡은 큰재에 다달았다
해발320m의 큰재의 숲 생터원의 잔디밭이 눈부시게 푸르러 뒹굴고 싶어도 더위를 먹었나
피로감이 몰려오고 에어컨 바람이 그리워 버스속으로 몸을 집어 넣었다
생태원에 설치된 수도꼭지는 폼이여서 씻지 못한 일행들 땀냄새로 버스안은 거의 질식 상태였다
이럴땐 냄새맡는 코도 잠시 휴식하면 좋을텐데 덥고 냄새나고 머리 아프고 울렁울렁 토하고 싶어
눈을 감았다 떠보니 전골집에 도착하여 뜨거운 불앞이다
열불나는 내장속에 시원한 냉면이면 족할것을 전골남비 아래 올라오는 가스불을 보니 머리가
빙빙 돈다
일행들이 더운 음식을 앞에 두고 잔을 부딪치며 오늘 하루 안전산행을 기념하는 동안
기진맥진한 나는 탈진상태로 빨리 이 시간이 지나서 집에 가고싶은 생각뿐이었다
여름날 더위를 무릅쓰고 산행하는것이 왠만한 산꾼이 아니고서는 감당키 어렵다는 생각이 들고
일행중 선두 그룹은 고사하고 중간 아니 꼴찌라도 아프지만 않으면 좋으련만
시끄럽게 웃고 떠드는 일행들도 미워질라 하고 어질병난 허약체질도 속상했다
푹푹 쪄대는 더위로 불쾌지수가 아무리 높다 해도 사람끼리 개 돼지 곤충이라고 운운하는것은
순전히 영화를 많이 본 탓만은 아니다
솔직히 한번이라도 제대로 인간이 되어보지 못한채 사는 사람들이 많아
말 못하는 그들보다 말 잘하는 인간들이 못한 경우가 있는건 사실이지만
말 한마디면 천냥빚을 갚고 혀로 흥한자 혀로 망한다는 말도 있듯이 짜증나는 더위에
말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
허무러지는 술 좌석에서도 녹음은 필수라는 기자들과 놀지 않더라도 작은 공간인
버스에서는 상대를 배려하는 예의 바른말이 필수이다
전날 잡아먹은 토종닭이 약발이 없었던것은 무덥고 습한 날씨탓도 있지만
카페인이 함유 되었다는 박카스를 마시지 않아서 죽을맛 이었나보다
주사라도 맞아가며 쌩쌩하게 걷고 싶은맘이 굴뚝 같지만
도핑 테스트 거쳐야 하는 국가대표로 뽑혀 자랑질 할것도 아니니
일단 힘나는거라면 뭐든 먹고 마셔 잘 걸으면 장땡일것이다
가렵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뜨겁고 맛있는 피를 공짜로 주고 싶은데
귓가에서 연신 대간길을 따라 다니던 그녀석에게 팔 다리 네방을 물려 긁어도 시원치가 않다
고통 없는 성취는 오지 않는다는것을 실감한 하루였다
비밀회합에 가입해 활동하다 체포되어 시베리아 강제노역과 사형직전까지 갔던 도스토예프스키가
남긴 수많은 명언중에 "사람은 고통을 통해서 자기속에 새 인간이 탄생되도록 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오늘의 고통이 가치로 남길 바라며
다음 구간을 기대해야겠다
젖은 숲
한적한 여름 흐린산에 들어
숲길 가다가 숲길 돌아서니
먹빛 낀 하늘아래 구름갔다 구름오고
적은 숲이 젖은 숨을 토해낸다
분간할수 없는 고요속에 드니
구름 헤집고 숲은 밀려갔다 밀려오고
날개 접고 풀섶에 앉은 흰나비와
공연한 여름 산새만 지저귄다
어디선가
풀벌레 하루살이 산모기떼 노래 불러
어느날쯤
그 숲은 익어 절정을 살리라
2016년 7월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