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9. 22. 10:19ㆍ백두대간
새벽 별과 달이 떴다
대피소의 밤풍경은 이미 지리산과 설악산의 두번의 경험으로
두렵지 않았다
전날밤 아홉시 소등을 하여 눈 감고 누웠어도 조명등은 환하고
종아리와 발바닥이 맥박뛰는 리듬에 맞춰 욱신거릴뿐
머리는 깨어 코 골고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귀를 때려 거의 뜬 눈으로 지새다
자정넘어 잠깐 잠이 들었다 새벽에 깨었다
생명은 추운몸으로부터 온다고 누가 그랬던가
히터로 담요가 필요없던 대피소에서 데워졌던 몸이 쌩하게 불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니
금세 몸이 식어 찌르릇 전기가 지나간듯 온몸의 핏줄이 긴장된다
검푸른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별이 생명의 온기로 반짝이다
영혼 하나 살리고 누군가 기억속으로 바람처럼 사라지고 말것이다
초록의 빛깔을 벗는 서글픈 광경이다
김광섭의 '저녁에'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을 밝음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유심초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로
추가 개사하여 부른 노랫말이 입안에서
뱅뱅 돌았다
살아있는 생물들도 죽은듯이 고요하고 어두운 산중의 새벽녘을 부산스럽게
가루 된장국에 뜨거운 물을 부어 밥을 말아 억지로 먹고 잠자리를 정리하고
길을 나서려니 검푸르게 밝아오던 새벽까지 깨어있던 별은
어느새 사라지고 한가위가 지난 달은 허옇다
인도의 시인이며 극작가인 칼리다사의'새벽을 맞는 인사'에는
"이하루를 잘 살피라 이 하루가 인생이고 인생중에 인생이니
그 짧은 흐름안에 들어있다
어제는 꿈에 지나지 않으며 내일은 예감일뿐
오늘에 눈을 돌리는것이 생명안에 생명이다"라고 말했고
에스키모 민족에는 "어제는 재이고 내일은 나무이다
오직 오늘만이 밝게 타오르는 불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 아침 어제밤 수상했던 어둠과 별빛은 잊고
찬란하게 맞이해야 한다
퇴계 이황이 말한 遊山如讀書 간판이 달린 삿갓재 대피소와 헤어졌다
요즘 매주 대간 타러 다닌다고 집 밖으로 나간다
가끔 가족 모임과 친구도 만나야 해서 살림은 설렁설렁 개판이다
산에 오르는일이 책 한권 읽는거나 진배 없다는 말이 맞아도
마음 편히 소파속으로 푹 들어가 책 한권 읽기도 벅차다
手不釋券이라고 운동하고 책 읽는것은 밥 먹듯이 습관들이기 나름이거늘
왜 이러고 사는지 내가 나를 보고 어색하여 이 가을이 오고 가기전에
나를 찾아야 한다
지하는 물론 땅에서도 길치인 내가 산위로 올라가서는 당연히 산치가 되니
지도를 펴놓고 다녀온 산길을 복기 하는것은 골이 아픈일이다
어제의 북덕유산에 이어 오늘의 여정은 남덕유산으로 가는길이다
남덕유산은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와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 전북 장수군 계북면을 경계지으며
솟아있다
예전에는 봉황산 또는 황봉으로 불렀다
봉우리는 하봉 중봉 상봉으로 나뉘는데 그중 동봉이 상봉이며
서봉은 장수 덕유산이라 부른다
남덕유산은 북덕유산과는 다르게 날카롭게 솟은산이다
남덕유산은 두개의 발원샘이 있는데 남쪽 기슭의 참샘은 진주 남강으로 흐르는 첫 물길이며
북쪽 바른골과 삿갓골샘은 황강의 첫물길이다
시작부터 바위계단을 오르려니 전날 잠을 못 잔탓에 다리는 무겁고 기운이 없다
일킬로 떨어진 삿갓봉에서 끝내주는 일출광경을 보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다가
삿갓봉 봉우리 올라서는 도중에 떠오르는 일출을 맞이했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박힌 정상의 정상석에는 1418m라고 적혀 있다
삿갓봉에서 몸을 솟구친 백두대간은 봉우리 아래 나무 데크길을 내려와 전망바위를 지난다
전망바위 우회로 길이 있나보니 출입금지로 되어 있어 할수없이
밧줄 잡고 올라서는 전망바위로 올라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먼저간 일행들과 조우했다
보기는 좋아도 오르기는 힘든 바위만 나오면 다리가 후들거려
바위없는 부드러운 흙산이 좋다
뒤로 잡풀들과 바위지대길을 지나다 전날밤 싸둔 도시락을 까먹고는
이러다 박카스 중독이 걸리면 큰일이여도 오늘 여정을 마치려면 할수없이
박카스로라도 기운을 돋구워야 한다
삿갓봉우리를 내려와 계속 내리막길을 가다보면 월성재가 나온다
월성치라고도 부르는 월성재는 장수군 계북면 토옥동 계곡과 거창군 북상면 월성계곡을 이어준다
이어 남덕유산 갈림길인 서봉 삼거리에서 남덕유산 정상은 약 십분거리에 있다
대간길에서 약간 비켜 있는 남덕유산 정상을 찍었다
정상석에는 해발 1507m로 적혀있다
검은 먹구름이 몰려왔다 몰려간다
서둘러 정상을 내려와 삼거리에 다시 접어든 대간길은 나무 사이로 박힌 바위길과 산죽밭을 지나
경사사면의 주목 군락지를 지나고 가파른 철 계단을 오른다
주목은 백두대간을 타고 점봉산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을 거쳐 바다 건너 한라산까지
태산 준령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다
표피가 단단하고 뿌리가 약해서 물을 잘 흡수하지 못하여 오직 스스로 노력으로
천년을 살다가는 나무다
낙랑 고분 관재로도 쓰여 죽어서도 천년을 지낸다
구멍이 숭숭 뚫린 철계단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로 뒤돌아 볼수도 없고
아래를 내려다 볼수도 없다
뒤돌아 폼 잡고 사진찍는 간 큰 사람들 뒤로 후둘거리는 다리에 힘주고
한손은 스틱을 다른 한손은 철 난간을 손바닥이 아프도록 잡지 않으면 떨어질거 같이
무섭다
높은 바위만 나오면 힘을 못 쓰고 속도가 늦어지니 아마도 고소 공포가 있는가보다
한겨울 눈보라와 뜨거운 햇살에도 불구하고 처연한 죽음으로 서 있는 철 계단 옆 한그루의 주목이
인상깊다
서봉이라고도 부르는 장수 덕유산에 올라서니 넓은 암반이 있어 쉬기 좋고 전망도 최고이다
파란 하늘에서는 흰구름이 춤을 추고 사방팔방 넘치는 마루금이 군데군데 놓인 암반 무대에서
춤을 춘다
이 광경을 보러 일박이일 강행군을 나섰는지 꿈틀거리는 마루금이 금방 살아서 일어날것만 같아
오그라들었던 손발이 나도 모르게 힘이 주어진다
주변의 바위와 녹음이 어우러져 와우 무섭고도 아름답다
스튜어트 매크리디의'시간에 대한 거의 모든것들'중에
"누구나 행복한 순간이 영원히 멈춰 있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그 순간은 지속되지 않는다" 처럼 구름속 꿈은 순간 사라지고
이제는 내려갈때가 되었다
헬기장을 내려서고 덕유 교육원 갈림길을 지나 잡목이 우거진 능선으로 이어진다
서봉에서 할미봉 가는길은 험한 만큼 주변으로 눈 돌아가는 풍광으로 지루할 틈이 없다
발바닥 한가운데는 아프고 지난주 병났던 엄지 발가락이 다시 도져 내리막을 내려칠때마다
통증이 살아난다
대간은 어깨 허리 무릎 발 통증과의 동행이다
넘어지면 일어나 통증을 데리고 걸어야 비로소 도달할수 있는길이다
유난히 정수리가 뜨거운 나는 두통까지 다스려야 하는 힘든 여정이다
가파른 암벽 밧줄구간이 나오고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 도착한 해발 1026m의 할미봉
정상이다
덕유산의 남쪽을 지키고 있는 할미봉은 피를 멎게 하고 아픔을 잊게 한다는 할미꽃이라도
피는 곳이던가 할미가 오르기에는 너무나 힘겹게 오르는산이다
함양군 서상면을 지나 전북 장계면으로 넘어가는 육십령 고개 바로 북쪽에 솟아있는 할미봉
정상석은 거무튀튀한 암석에 빨강색으로 할미봉이라고 적혀있다
할미봉에서 육십령까지 아직 걸어야 할길이 많이 남았거늘
덕유산맥 풍광에 풍덩 빠져 구경하느라 너무 시간을 소비하고
오전에 마사토에서 죽 미끌어졌던 왼쪽 무릎에 보호대를 차고도 발걸음은 점점 느려져
전날 중간그룹으로 대피소에 다달았던 실력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다시 제자리를 찾은듯
꼴찌에서 맴돌며 걸어갔다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오래 가려면 함께 가라"는아프리카 속담은 나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틀간 놀던 덕유산맥을 뒤로 하며 여러개의 잔봉을 넘나 들며 지루하게 내려서
비로소 26번 국도가 지나는 육십령으로 내려왔다
덕유산에 올라
백암봉 회색바위 솟아오른 푸른 물결위로
밀어올린 하늘아래 구름위에 서서
부서지는 햇살과 마주친다
파란 하늘 바라보니 흘러가는 가을강처럼
흰 구름 검은 구름 연달아
해가 서산에 기울어질때까지
더엉실 춤을 추며 날아간다
백두대간의 서남쪽으로 뻗어내린
덕유산의 높은 산꼭대기와 깊은 산골짜기에
가을이 저만치 다가와 넉넉한 가을이 깃들인다
2016년 9월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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