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9. 13. 14:48ㆍ백두대간
일시-2016년 9월12일 월요일 비오다 흐림
장소-백두대간 응복산 구간 남진
코스-구룡령-약수산(1306.2m)-마늘봉-응복산(1359.6m)-만월봉(1280.9m)-신배령-두로봉-두로령
-상원 탐방지원센터
백두대간 14.8km+접속구간 8.2km=23km를 10시간 걸림
새벽 다섯시가 되고 아직 잠에서 덜깬 산속의 새벽녘은 고요하기만 하다
비가 그쳤다
이제 하나둘 떨어지는 빗줄기는 오히려 시원하게 맞을수 있을거 같다
새벽밥으로 된장찌개를 먹고 도시락에 담아준 밥과 김치를 싸들고
마지막 일정을 소화하러 나섰다
민박집 안주인이 구룡령까지 실어다 주었다
민박집 안주인은 아직 어린 두아이의 엄마로 바쁘고 활기 넘치는
좋은 인상을 남기고 헤어졌다
많은 용이 뒤엉킨것 같다하여 이름붙은 구룡령에는 금방이라도 용틀임을 일으켜 날아갈듯
자욱한 안개속에 잠겨 있었다
아침 안개가 꽉낀 구룡령 표지석을 다시 카메라에 담고 산림전시관 옆으로 대간길은 들어선다
원래는 구룡령 휴계소였던 건물이 동물이동하는데 불빛이나 소음으로 방해될까봐
산림전시관으로 바꿔졌다던데 전시관은 굳게 문이 닫혀 있었다
처음부터 돌계단과 나무 계단으로 오르락 거리는 능선길이다
1280봉을 지나고 쉼터를 지나 가파르게 올라서 구룡령에서 1.4km 떨어진
약수산에 다달은다
강원도 홍천군 내면의 해발1306m의 약수산 정상은 동판으로 되어 있다
약수산이란 명개리 약수라 불리는 이산의 남쪽 골짜기의 약수에서 유래되었다
명개약수외에도 이산에서 발원한 미천골계곡에 불바라기 약수라고도 하는 미천약수가 있다
약수산과 갈전곡봉 사이 구룡령계곡에는 갈천약수도 있다
물좋고 산좋은 강원도에서도 물이 얼마나 좋으면 산이름까지 약수산이라 했을지 짐작이 간다
강원도 물은 수도물이건 계곡물이건 그냥 떠서 먹어도 상관 없다 하여 어제도 오늘도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생수를 병에 담았다
짙은 어둠이 깔린 마루금에 다시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진다
약수산을 찍고 비에 젖고 있는 능선을 따라 걷다가 전망대라 여기는곳에 섰다
방금 올라온 구불거리는 56번 국도만 간신히 보이고 허연 구름속에 백두대간은
희미하다
1280봉과 1261봉을 지나고 잡풀 더미속의 마늘봉에 다달았다
통나무 계단길을 길게 올라서 1281봉을 지나면 명개리 갈림길이 나오고
또 통나무 계단길이 셀수 없을 만치 많이 나온다
통나무 계단길은 틀림없이 대간길을 한번도 걸어보지 않은자들이 만든것임에 틀림없다
둥근 나무의 반을 가라 평평하게 만들어야 걷기 편하거늘 통나무를 통째로 올려놓은 계단은
미끌거리고 발가락에 힘을 주지 않고 걸었다간 넘어지기 싶상이다
생각만 해도 징글징글한 통나무 계단이다
응복산에 오르면 진고개15.29km구룡령6.71km라고 적힌 이정목 아래에
1359m 응복산 정상이라 적힌 금속판이 놓여 있다
응복산 정상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가 사람이 사람보고 놀란다고 깜짝 놀랐다
높은 배낭을 둘러맨 남자 한명이 올라온다
전날 진고개에서 출발하여 두로봉 정상에서 비박한후 알바하여 두로봉 표지석까지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는중이란다
어디서 언제 길을 잃고 헤매다 실종될수도 있는 백두대간길을 혼자서 걷는다는것은
대단한일이 아닐수 없다
인증사진을 한장 찍어주고 구룡령까지 간다는 남자와 서로 헤어졌다
백두대간길에서 사람 만나기도 쉽지 않은일이여서 그제 숨겨졌던 두개의 배낭과
열명쯤 줄지어 내려오는 사람들을 봤을 따름이다
어제는 한사람도 보지 못하다 오늘 딱 한사람을 만났다
사람이 귀한 산속에는 귀신이라도 튀어 나올듯 비안개만 자욱하여 으시시하다
고도를 내려 1281m의 만월봉에 도달하니 그림과 함께 자세하게 적힌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작은 빗줄기에도 꺼냈다 넣었다 하면서 빗물 조심을 하던 카메라가 먹통이라
할수 없이 스마트폰으로 인증샷을 남기며 걷기 시작했다
어젯밤에 잠결에 누군가 엎지른 물이 카메라를 적신 모양이다
오르고 내리고 평탄한 길을 번가라 걸으며 신배령에 다달았다
신배령에서부터 두로봉까지는 출입금지 구역으로 밧줄이 쳐져 있었다
단체로 몰려온것도 아니고 일부러 시간내어 땜빵하러 온것이라 잡혀서
벌금 물어야 되는 상황이 되더라도 통과해야만 한다
조심조심 밧줄을 넘어 출입금지구역으로 들어갔다
조금씩 내리던 비는 잠잠해지고 걷기는 좋았다
나뭇가지에 맺힌 빗방울이 걸을때마다 튕겨져 얼굴로 흘러 시원하다
키 작은 산죽밭 위로 거대한 고목과 낙엽송들이 터널을 이루어 햇빛 쨍쨍한날에도
시원한 그늘을 이루는 구간이다
올여름 얼마나 더웠으면 마르고 타죽어 버린 나무들은 비를 흠뻑 맞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기세로 서 있고 죽은 고사목은 속을 텅 비워 누운채로 버섯의 양분이 되어
마지막을 보내고 있었다
바로 곁에서 새생명을 틔워내 건강한 초록으로 들숨과 날숨을 쉬는 나무들이 공존하는
자연 체험의 깊숙한 현장이었다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아도 언젠가는 건강한 자연으로 돌아올것이다
생채기난 사람의 맘과 몸도 부작용 없는 자연치유가 최고이다
그러기에 아끼는 무언가를 얻으려면 기다리는 연습부터 해야된다
어김없이 평평한 지역이 나오면 멧돼지가 밭을 갈아 엎어놓은 밭갈이 흔적이 나온다
배낭에 달린 호루라기가 달려 있나 확인하고 오작동 없나 한번씩 연습해보면서
빨리 걸었다
삼일째 아직까지 네발로 기어 다니는 멧돼지는 고사하고 오지산골에는 흔하다는 다람쥐
청솔모 말고라도 쥐새끼 한마리 만나지 않아 너무 조용한 산속에서 오히려 무섭기까지 하다
걸어도 걸어도 나무와 풀숲뿐이고 그나마 야생화만이 가끔씩 길을 연다
1234봉을 지나고 위풍당당 서있는 주목 몇 그루를 만나고는
가파른 암벽과 나무 뿌리들로 엉킨 오르막을 올라서야 두로봉이다
행여 두로봉 정상에 감시원이 나와있을지 조용조용 올라와 출입금지 경고판 철책을 넘어
1421.9m의 정상에 섰다
뿌연 안개낀 넓은 공터의 두로봉 헬기장은 적막하고 벌써 시각은 오후 세시가 가까워지고 있다
두로봉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과 홍천군 내면 강릉시 연곡면 사이에 있는 산이다
비로봉 상왕봉 호령봉 동대산등과 함께 태백산맥의 지맥을 이루는 오대산맥중에 솟아있는 고봉인
산은 동사면을 흐르는 연곡천과 서사면을 흐르는 홍천강의 발원지를 이룬다
상원사와 미륵암은 계곡과 더불어 명승지를 이루는데 최근 오대산 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다
이틀전 대간길은 설악의 남쪽을 의젓하게 지키고 있는 점봉산 아래에서 시작했다
오색삼거리에서 시작으로 단목령을 거쳐 북암령 조침령 갈전곡봉 구룡령 약수산 응복산 신배령을 지나
두로봉까지 48.7km를 걸었다
두로봉까지 끊어진 백두대간길을 잇고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일만 남았거늘
차 편이 있는 상원 탐방지원센터까지 내려가는길이 만만치가 않다
접속길인 8킬로미터를 꾸준히 내려가야하는 길이다
지난해 일월 함박눈이 쌓였던 오르막길을
걷다 쉬다 걷다 쉬다 눈 구경하려다 머리아프고 토하고 반쯤 죽어서 집에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 길을 반대로 내려서는 길이다
집 나오면 개고생 이라고 이틀간 민박에서 나름 편안한 밤을 지냈다고 하여도
하루종일 산속을 걷고 남의 집에서 자는 이런 쌩고생이 없어 빨라 집에 가고 싶다
비록 자갈 섞인 비포장 도로여도 내리막길이라 두시간이면 내려갈수 있을것이다
예상을 깼다
경보수준의 빠르게 걸어도 겨우 오후 다섯시가 다 되어 상원사 입구에 도착했다
꽃잎과 꽃받침이 뒤로 젖혀지지 않은채로 꽃이 피는 청보라의 과남풀꽃 몇송이가
상원 탐방지원센터 가는길에 눈부시게 환하다
방금 떠난 버스를 놓치고 삼십여분 기다린끝에 진부까지 나와
저녁을 먹고 서울로 돌아왔다
'열자'에 실린글중
"사람이 휴식을 취하여 자연의 이치를 위반하지 않는 사람은
장수와 명예 지위 재물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과 귀신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그는 천하에 대적할이가 없으며 운명을 지배하는 힘은
자신의 내부에 갖고 있다."라는 글이 있다
실로 오랜만에 휴식기간이 돌아온 착한 아들은 "이건 산이 아니라 산중에 최고로 힘들다"며
투덜댄다
부모가 걷는 대간길에 동행하여 지금은 자연의 고마움과 이치를 깨달을수 없더라도
훗날 자연만큼 큰 휴식이 없다는걸 안다면
비맞으며 질퍽했던 길들이 고생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첫날 아들의 봉침으로 불길한 예감을 뒤로 하고 무사히 삼일간 일정이 마무리 되어
감사할 따름이다
삼일동안 66,4km를 걷고 나니 오른쪽 발가락이 물이 잡히고
발바닥이 아파와 서울에 도착해서는 절뚝발이가 되었다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는 책도 있더만
주구장창 비박하며 한달내내 걸어서 백두대간길을 한꺼번에 걷는 다는것은
통증과 싸우는 일 일것이다
삼일간 걷고 나서 반병신이된 나에게는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새벽을 깨우는 젖은 이슬을 맞으며 떠났다가 비와 안개낀 산속에서 삼일을 살고
산 아래로 내려와보니 추석 명절로 분주한 세상이다
어둠과 동행하여 죽을만치 힘든 기억보다 걸을수 있어 행복했던 추억으로 기억될것이다
동행
땅 울리고 하늘 열려 산신령은
용을 타고 떠났다
신배령 넘어 첩첩산중 싱싱한 산죽밭길에
구름사이로 반짝이는 별이 비출때까지
살랑살랑 얘기꽃을 피우며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으면
지루하지 않다
날이 개어도 아무도 없는 오르막과 내리막길
갈팡질팡 길을 잃은 갈림길에
산봉우리 구불구불 구름속에서 나올때까지
앞서거니 뒷서거니
나는 나로 너는 너로
홀로 서야 한다
2016년 9월 중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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