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9. 7. 14:19ㆍ백두대간
일시-2016년 9월6일 화요일 흐림
장소-백두대간 석교산 구간 남진
코스-우두령(720m)-석교산(화주봉 1207m)-1175봉-1089봉-밀목재-1124봉
-삼마골재-물한계곡-물한계곡 주차장
백두대간 10.5km+접속구간 4.8km=15.3km를 6시간 걸림
지긋지긋한 불볕 더위가 하룻밤 사이에 이별해도 되는지
밤 사이 가볍게 내린 비로 새벽녘 공기는 시원해졌다
여름 끝자락에 불놀이하듯 피는 고창 선운사의 꽃무릇과
봉평의 소금을 흩뿌린듯 피는 메밀꽃은 환한 구월을 기다렸다
지금쯤이면 선운사에는 눈물처럼 붉게 터졌다 후두둑 지고 남은
초록 동백나무 아래 붉은 융단같은 꽃무릇 꽃이 아름답고
봉평의 메밀밭에는 길고 긴 산허리의 메밀꽃이 아름답다
선운사는 송창식의 노래에서"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라며
가슴을 때리는 애잔한 목소리를 듣고는 가보지 않을수가 없는 절집이고
메밀밭은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렵'에서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듯이
흐뭇한 달빛이 숨이 막힐 지경이다"라고 표현하여
시푸른 달빛을 머금은 은빛 메밀꽃이 장돌뱅이 허생원의 스산한 현실과
동이 어미를 찾을 부푼 설렘으로 펼쳐져 한번쯤 가보고 싶은 밭이 되었다.
예년 같았으면 머리가 벗어질듯 뜨겁던 태양도 팔일오 광복을 지나면서부터는
조금씩 부드러워 초가을 기운이 들더고만 올해는 그것도 비켜갔다
영화 덕혜옹주를 봤다
지독한 일본놈들 학대보다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하는 친일파인
한창수를 그린 한택수가 폭염만큼이나 더 얄미웠다
수많은 생명들을 죽인 나라의 수괴였던 일본 천왕족은 신성시되어 아직도 건재하다
광복이 되고 나서도 우리의 황족은 사라져야만 했던 슬픈 역사다
안그래도 잡아 먹을듯이 더워 죽겠는데 김지하 시인의
"땅 끝에 서서
더는 갈곳 없는 땅 끝에 서서
돌아갈수 없는 막바지
새 되어 날거나 고기 되어 숨거나
바람이거나 구름이거나 귀신이 거나간에
.............." '그소 애린50'의 표현처럼 한줄기 가느다란 햇살보다
연약한 마지막 황녀의 아픈 실화를 담은 영화로 가슴을 태운 여름을 보냈다
더위가 제아무리 버티고 서 있어도 팔월 지나 구월되니
숨 쉬기가 한결 편해지고 이제야 머리속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사과가 붉게 물들어 가고 포도가 영글어 가는 고장으로 버스는 달려
오늘의 들머리인 해발 720m의 우두령에 도착했다
경상북도 김천시와 충청북도 영동시의 갈림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크게 적혀 있었다
소의 동상 뒤쪽으로 대간길은 들어서서 시작된다
우두령에도 전날밤에 살짝 비가 내린듯 땅은 촉촉하고 나무들은 물기를 먹어
진초록 기름을 바른듯 번들거리며 알싸하고 비릿한 나무향기가 퍼져온다
여름꽃은 지고 가을꽃이 피어 여름숲은 가을을 맞이하고 있었고
산 앵도나무의 붉은 열매가 술집 작부 입술 보다 빨갛고 탐스럽게 익었다
삼각점이 있는 815봉을 넘고 1062봉 헬기장을 넘어 긴 오르막을 올라
우두령에서 3.6km떨어진 오늘의 최고봉인 해발 1207m의 석교산에 도달했다
석교산은 원래 무명봉이었는데 전란시에 이곳으로 피난온 주민들이 화전을 일구며
살았던 시절에 화주봉이라 불러 지금도 화주봉으로 많이 불리워진다
정상에는 조그마한 정상석과 함께 미세먼지가 끼었나 맑지 않은 조망이고
우리를 기다린듯 하루살이 벌레들만 우글우글 날라다녀 오래 있을수가 없다
석교산 정상을 내렸다 다시 암릉구간의 오르막이 나온다
오랜만에 밧줄 잡는 짧은 오르막을 올라서고 삼십여분 더 올라 1175m봉우리에 올라서니
앞뒤로 보이는 푸른 산마루금이 넘실거린다
지나온 우두령 능선과 가야할 삼도봉 능선이 구불구불 이어지고 멀리 민주지산과
그 넘어 희미한 덕유산 능선까지 출렁거려 벌써 마음은 덕유산 능선길을 걷고 있다
오르막에서 흘렸던 땀이 식어 금세 쌀쌀한 기운마저 드는 사방이 탁 트인 봉우리는
대여섯명이 앉을 만한 좁은 암봉이다
뾰족한 암봉끝에 엉덩이를 간신히 붙이고 점심을 때웠다
하늘아래 높은곳에서 물말은 밥은 술술 잘도 넘어갔다
하나둘 작은 바위지대와 흙지대를 걸어 다시 내려 1111봉을 지난다
가지각색의 지 모습대로 자라는 나무들은 부딪쳐서 죽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 했다
서로 잘 살자고 다른 두 나무가 껴안고 한몸으로 살아가는 연리지 연리근 이라는것도 있더만
굵은 다리 여러개가 마치 문어 다리 모양으로 뻗은 희한한 소나무 옆를 지나고 대간길은
미역줄기 덩쿨이 정글수풀을 이룬 긴 내리막을 내려간다
등로 주변에는 폐광지역이라 지반이 안정되지 않아 땅이 꺼질수 있으니 통행시
서로 이동간격을 오미터 이상 떨어지고 등산로를 이탈하지 말라는 김천시장의 당부말이
적힌 푯말이 부착되어 있다
행여 땅 꺼질까 두렵다고 백두대간 정진하다 돌아 갈수도 없는 일이라서 빠른 걸음으로 벗어나
밀목재에 도착했다
부항면 대야리와 영동군 상촌면을 넘나드는 고갯길인 밀목재에는 예전에 나무가 울창하게
빽빽하여 밀목재라고 불렀다는데 지금도 우거진 나무들로 여름의 초록이 무성했다
밀목재 부근에는 등로 옆으로 띠를 둘러 불법 채취금지 푯말이 있다
산야초와 버섯을 불법으로 채취했다간은 십년이하 징역과 이천만원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는
푯말은 값 나가는 약재가 많다는걸 알리는 표시가 되어 약초 도둑에게 알리는꼴이 되는
지역이다
대간길은 다시 억새꽃이 길을 붙잡고 키보다 큰 덩쿨들이 얼굴과 목언저리로 감긴다
스틱으로 길을 내며 한참을 걷다보니 가볍다고 즐겨 가지고 다니면서 좋아했던
스틱 아래 한단이 어디서 빠진지도 모르게 빠져 쓸모없는 알루미늄 덩어리로 변했다
무엇이든 쉽고 편한건만 찾다보면 이런 불상사도 생기는가보다
잡목들이 우거진 능선으로 치고 올라 1123.9봉의 이정목을 지난다
한참을 내려서 정글지대를 뚫고 걸어나와 헬기장이 나오고 드디어 오늘의 대간길 종점인
삼마골재에 도달해보니 얼마나 열심히 수풀더미를 뚫고 걸어왔는지 옷에 여기저기
가시들이 달라붙어 있다
한때는 화전민들이 숯을 구워 팔아 먹고 살았던 삼마골재는 삼마골에서 이름이 유래됐다는데
원래 산막골이었던것이 변음이 되었다 한다
삼도봉과 밀목재 해인리 물한계곡으로 갈라지는 삼마골재에서
4.8km 물한계곡 가는길은 아름다운 길이었다
물한계곡은 음주암골 쪽새골 무지막골 각호골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합치는 계곡이다
한천마을부터는 초강천이라는 이름을 얻어 흘러간다
삼도봉에서 갈라져 나온 백두대간의 지맥인 석기봉 민주지산 각호산등 천미터가 넘는 산들로
둘러싸여 있어 계곡은 깊고 수량이 많은 맑은물이 흘러 용소와 옥소폭포 의용골 폭포 음주골 폭포가
어우러져 경관이 뛰어나다
남한의 마지막 남은 원시림지대인 물한계곡일대에는 고라니 오소리 삵 고슴도치등이 살고
각종 희귀새들이 서식한다
일제히 하늘 향해 쭉쭉 뻗은 잣나무숲이 산림욕장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발빠른 일행들은 민주지산을 놓칠세라 삼도봉을 거쳐 민주지산 정상을 찍고 하산하고
대간길도 벅차 항상 꼴찌를 못 면하는 나는 오롯이 대간길에만 정신집중 하기로 맘 먹고
굽이치는 물줄기가 제법인 폭포와 시원한 물 흐르는 소리 들으며 물한계곡길을 걸어 내려왔다
1994년 물한계곡과 민주지산 일대에 스키장과 골프장을 건설한다는 개발계획이 발표되고
이를 반대하는 지역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계속해서 개발 저지운동을 펼치고 있단다
황룡사 절에 들어 서려고 다리를 건너니 출렁출렁 다리가 흔들린다
흐르는 계곡물 위로 출렁다리 중간에 구멍이 나 있어 출입금지로 되어 있는지도 모른채
건너고 보니 금지된 다리를 건넜다
백두대간길을 걸으면서 수없이 많은 금지지역을 지나 다니다 보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는지
무섭지도 않게 다리를 통과하여 황룡사로 들어갔다
동전이 얹혀있는 바위가 눈에 띈다
황룡사의 장군바위는 물한계곡안 한천팔경중의 하나로 옛날 장군이 삼도봉에서부터 내려오면서
이 장군바위를 딛고 뛰어서 대웅전앞의 바위를 딛으며 무술연습을 하였다하여 장군바위 또는
뛰엄바위라 한다
아들이 없는 사람이 지극하게 정성을 들이면 아들을 점지하여 준다는 신통력있는 바위란다
바위에 생긴 이끼위에 살짝 얹어놓은 동전이라서 동전을 떼어 다시 붙여보니 땅으로
떨어지고 만다
하늘도 무심하지 오죽하면 바위에 구걸하여 아들을 낳고 싶었을까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
절집을 지나 마을 입구로 나오는길에는 스키 플레이트로 마을길 담장을 만들어 놓았다
민주지산을 넘던 특전사 부대 일원이 산악훈련중 갑작스런 폭설로 얼어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뒤돌아 보니 첩첩이 겹쳐진 산들이 무섭게만 올려다 보인다
겨울이면 눈이 많이 올것 같은 예감이 드는 마을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빨강 버스까지
비교적 어렵지 않게 한구간을 마무리 하였다
일찌감치 집으로 갈수 있다는 희망이 무사히 귀가만 할수 있도록 기도로 변한것은
순식간이었다
새로운 기사님이 운전하는 대간버스는 왔던길을 돌아서고 뒤돌아 제자리를 맴돌다
탱글탱글 여물어가는 애꿎은 감나무 가지만 찢어 떨어 뜨리고는
이미 어둑해진 산속에서 두시간여를 소비하고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순전히 키 큰 버스가 키 작은 노근리 터널을 통과하지 못한 탓이다
노근리 쌍굴다리가 유명해진것은 1950년 7월 26일 한국전쟁중
조선 인민군 침공을 막고 있던 미군이 노근리 경부선 철로위에 피난민을 모아놓고
기관총을 발사하여 이에 이들이 철로밑 굴다리로 숨어들자 무차별 사격으로
양민 이백여명이 숨졌다
믿었던 미군이 민간인들을 학살한 엄연한 전쟁 범죄였다
죽이고 나서 잘못을 빌어도 죽은자는 말이 없고 억울하기만 하여
이 세상에 믿을 사람은 눈 씻고 찾아봐도 드물다
낮에 걸어 다니던 피로보다 버스에서 다섯시간을 보낸 피로가 더 크게 몰려왔다
그래도 오늘안에 집으로 돌아올수 있어 감사했다
피로한 하루가 벌써 추억으로 넘어간다
여름산이 가고
산그늘 찾아 밀려가다
산에 들어 산을 보니
빼곡한 나무들이 아우성거린다
나무숲에 가린 산등성이 하나 오르고 나면
또 하나의 산이 앞을 가로막고 서서
아득해진다
한여름 몽상을 깨웠던 나무와 나무를 메우는 매미소리 대신
후두둑 나뭇잎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소리와
어디선가 날아온 산새들이 나뭇가지 사이에서
바삐 지저귄다
툭
발아래로 떨어지는 도토리
가을산이 온다
2016년 9월초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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