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47차

2016. 8. 24. 09:58백두대간

 

 

일시-2016년 8월23일 화요일 약간 흐리고 맑음

장소-백두대간 황악산 구간 남진

코스-괘방령(330m)-여시골산(620m)-운수봉(680m)-갈림길-백운봉(770m)-황악산-(1111m)

      -형제봉(1040m)-바람재(810m)-여정봉(1030m)-삼성산(986m)-우두령(720m)

      백두대간 12.5km+접속구간 0km=12.5km를 5시간50분 걸림

 

 

 

 

 

綠陰芳草 勝花時節에

나의 백두대간길은 더위와 가뭄 사이에 있었다.

 

연암 박지원은 평소 청나라 문명을 동경했다

청나라 황제인 건륭제 고희연의 만수절 축하 사절단 사신들중 그의 삼종형인 박명원이 있었는데

연암은 박명원의 개인 수행원 자격으로 따라 나섰다

음력 오월말경에 길을 떠나 압록강에 도착했으나 큰비로 계속 강물이 넘치는 바람에

열흘 넘게 발이 묶였다 비로소 강을 건넌 화려한 중국 여행길은

"길이란 강과 언덕 그 사이에 있다"가 처음으로 던진 화두였다 

많은 여행자들은 자신만의 화두를 들고 길을 떠나는데

화두는 커녕 생각이란것을 멈추게 만드는 폭염으로 지친 나는 백두대간 여정길에 나서서

선선한 가을만 동경하다 온 하루였다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는 뭉게구름 타고 와

더위를 처분한다는 처서에 대간길 출정날은 또 돌아왔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과 열대야로 하루하루를 어떻게 지냈는지

반정신 나간 상태로 살아낸거 같다

선조들중 서민들은 남자 여자 할거 없이 쑥을 태워 모깃불을 피우고

호밀짚으로 만든 밀대방석을 깔고 야외에서 잠을 청했다 한다 

양반 남자들은 대청마루에서 죽부인을 껴안고 자고

양반집 여인들은 마루에서 자는게 예법에 어긋난다하여 잠 못 들다

야심한 시각에 우물물을 끼얹으며 더위를 식혔다고 한다

양반이 쓰던 죽부인은 부인이나 아들이 물려쓰지 못하고 아버지가 죽으면

죽부인도 태우는 풍습이 있었다니 선조들의 지혜와 함께 양반님네들 이기심이

하늘을 찔렀다

요즘은 거꾸로된 세상이라 날고 뛰는 여인네가 넘쳐나 남정네들은

여자가 덥다면 부채질이라도 해줘야 할판이다

에어컨 설치를 못해 선풍기만 틀어놓고 삼베 적삼과 인조 고쟁이에 쿨 수건으로 허둥대며

지낸 팔월이 머리는 멍청해져 책을 읽어도 집중이 안되고 신문은 제목만 보이고

손발은 굼떠서 음식 조리는 간단하게 하여도 시간은 더걸려

한달만에 일년은 늙어버린 느낌이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밥 한술을 뜨고 샤워하고 등산차비 분주하게 서두르다 보니

어제 보다는 시원해도 등줄기에 땀이 난다.

버스로 이동하여 지하철로 갈아 타자 마자 아차 싶었다

등에 맨 배낭말고 갈아입을 옷을 넣은 검정 가방이 없다

방금전까지 들고 있던 가방이 어디로 갔는지

다행이 한 정류장 되돌아가 보니 지하철을 기다린다고 앉았던 의자에 검정 가방은

얌전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양재역에 도착한 전철을 빠져나와 부랴부랴 화장실에 들렀다 뛰어

대간길 가면서 처음으로 나를 기다리는 버스에 올랐다

땀구멍이 싹 오그라드는 시원한 청량감이 오랜만에 들었다

 

오늘의 여정은 괘방령에서 우두령까지 12.5km이다

들머리인 977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괘방령(330m)에 도착했다

안그래도 가뭄이라 숲에 사는 모든 생물들이 목말라 하는 판국에

숲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농수로인듯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삼년 가뭄은 살아도 석달 장마는 못산다는 속담도 있지만

비는 안 와도 걱정 너무 내려도 걱정이다

싱싱한 풀냄새로 가득찬 잡목숲으로 들어선 대간길은 계속 오르막의 연속이다

사오십분이나 올랐을까 괘방령에서 1.5km 떨어진곳에 여시골산(620m)이 나온다

여시 골짜기에 여시가 살았는지 실제 굴이 깊게 파여 있었다

여시는 여우의 고어로 경상도와 전라도 방언이다

 

몇개의 무명봉을 오르락 내리락 넓은 공터의 운수봉(680m)에 다달았다

이어 운수봉 갈림길은 직지사로 갈라지는 곳으로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듯 반들반들

길이 다듬어져 있다

충북과 경북의 경계를 가르는 대간길은 백운봉(770m)를 넘고 점만 찍듯 점심을 마치고

고도를 높여 잡목과 수풀더미를 헤치고 올라서면 비로소 오늘의 최고봉이 나오는데

황악산 정상에 오르는 길목에는 며느리들이 시위라도 하듯이 며느리밥풀꽃들이

떼로 모여 피여 있다

백대 명산에 속하는 황악산(1111m)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우람한 황악산 표지석과 삼각점 백두대간의 해설판이 있다

정상석 뒤면에는

"황악산은 추풍령에서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으로 비로봉 신선봉 백운봉 운수봉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줄기 중간에 가장 높은 산으로 큰 산악에 한반도 중심에 위치한다 하여

다섯방위를 상징하는 오방색의 중앙을 가리키는 黃자를 딴것으로 황악산이라 하며

정상에 오르면 하는 일들이 거침없이 성공하는 길상지지의 산이다."라고 자세하게

표기되어 있다

예로부터 학이 많이 찾아와 황학산이라고 불렀으나 직지사 현판과 택리지에는

황악산으로 적혀있다

황악산 동쪽 아래에는 한국 불교 천육백여년의 역사와 그 세월을 같이한 고찰이

안겨 있다

고구려 선교사로 신라에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이 418년 창건한 직지사는

손가락으로 절터를 가리켜 짓게 함으로 직지사가 되었다는 설과

능여대사가 절을 확장하면서 손으로 측량한데서 유래했다는 전설이 있다지만

직지는 불교 용어로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불성을 똑바로 가리켜 깨치면 부처가 된다는

'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불경의 가르침이다

정상에서 내려서면 쉴만한 공간도 없는 길목에 형제봉(1020m)가 나오고 갈림길이 나온다

형제봉 아래 영동방향에는 영화 '집으로'를 촬영한 장소인 지통마 마을이 있다

소나기라도 한바탕 쏟아지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오뉴월 볕은 솔개만 지나도 낫다더니

그나마 뜨거운 태양과 그늘이 번갈아 가며 길잡이가 되어 다행이다

천미터 고지에도 가뭄과 더위에 지친 엉겅퀴와 씀바귀 으아리등 야생화들이 죽은듯이

바짝 엎드려 있고 활엽수의 넓은 나뭇잎들은 붉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직지사로 내려가는 길목인 신선봉 갈림길에서 대간길은 알바를 조심해야 한다

이어 바람재 표지석에 도착한 대간길은 바람재 정상을 향해 가파르게 올라서야 한다

땀 흘리며 힘겹게 올라서자 바람을 몰고온 정상에는 시원한 황악산 바람이 불었다

오뉴월 바람도 계속 불면 차갑다지만 길고 지루한 여름 대간길에는 바람이 보약이다

땀을 식히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내려가는 길에는 몇일만 아무도 다니지 않으면 금세 길을 못 찾을 정도로 싱싱한 억새풀과

미역줄기나무 칡나무에 뒤엉킨채 우거져

스틱으로 잡풀 줄기들을 내쳐가며 걸었다

잡풀들의 생명력이 대단해 긴팔과 긴바지를 입고도 콕콕 살을 찌른다

여정봉(1030m)에 도착하여 전망대를 지나면 삼성산은 금방이다

삼성산(986m) 정상은 대간길에서 약간 비켜 있었다

이제 남은 거리는 4.4km 길게 내려갈일만 남았다

우두령으로 내려가는 대간길에 고비와 잡풀들이 말끔하게 깍여 정비가 잘되어 있었다

숲길에서 빠져 나오니 비로소 소를 형상한 조형물과 동물 이동통로가 설치되어 있는

우두령(720m)이다

579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우두령은 경북 김천시와 충북 영동을 이어주는 고갯마루이다

질매재라고도 불리는 질매라는 이름은 이고개의 생김새가 마치 소등에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때

안장처럼 얹는 길마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질매는 길마의 이고장 사투리이다

이말을 한자화하여 우두령이라 불린다

우두령에서 김천쪽 아래로 질매재라는 또 다른 고개가 있다

우두령이 소머리이고 질매는 목부분쯤으로 여긴듯 지도에는 두 이름이 별개로 표기되어 있다

백두대간 우두령에는 하얀소 한마리가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내려 땀 냄새 벤 배낭을 매고 피로를 줄여 보겠다고 노약자용

엘리베이터를 탔다

잠시 방향을 잃고 땅위로 나오는 출구대신 다시 지하철 타러 가는 입구로

티켓팅을 하는 실수를 하였다

오늘 일진이 사납다며 가락시장역에서 두번이나 실수를 저지른 남편 뒤만

졸졸 따라 다니다 보니 지하철 두번 탄 가격으로 엘리베이터 승차요금을 지불하고

귀가했다.

 

뜨겁기만 하던 여름도 이제 물러 나려나 어젯밤 한달만에 마루바닥에서 침대로

기어 올라가 이불을 잡아 당겼다

이러다 낙엽지는 가을과 눈 내리는 겨울이 오고 가면 또 다시 꽃 피고 새 우는 봄이 오는

속일수 없는 만고불변의 진리라 믿었던 한반도의 날씨가 이상스레 변할지 모른다

벌써 내 맘은 파란 가을하늘 아래 서 있다

당나라 두목은

"무더위는 혹독한 관리 떠나듯 물러가고 맑은 바람은 옛 친구 찾아오듯 불어오네"라고

'초가을'시에 표현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벌써 초가을이 창문앞에 서성이며

바람조차 가을을 기다린양 아침 저녁 바람결이 달라졌다 


 

 

바람 불어

 

더운 바람이 분다

 

내가 바람을 업고

바람이 나를 업어

나는 대간길을 가고

바람은 바람길을 간다

 

바람 부는대로 인연 스치고

붙잡을수 없는 인연 다하면

뙤얕볕에 숨이 차도록

멀리서 가을이 오는 바람소리만

들려온다

 

구절초 핀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바람이 전하는 말 

바람아 사랑아.

 

2016년 8월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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