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5. 09:27ㆍ백두대간
일시-2016년 10월 4일 화요일 흐림
장소-백두대간 대덕산 구간 남진
코스-덕산재(644m)-얼음골 약수터-대덕산(1290m)-삼도봉(초점산 1250m)-소사고개(690m)
-덕유 삼봉산(1254m)-호절골재-된새미기재-수정봉-빼재(심풍령 930m)
백두대간 14.1km+접속구간 0km=14.1km를 7시간 걸림
가을빛은 청명하게 하늘은 높고 햇빛은 투명하여 반짝여줘야 하는데
아직 가을이 오는 도중인지 쓰잘떼기 없는 태풍 비바람만 분다
남부지방이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는 속보가 달갑지 않다
파란 가을 하늘이 그리웠다
대간길 가는 여정이 점점 남쪽으로 멀어져 서울을 출발한 버스는
오전 열한시가 가까워져 목적지인 덕산재에 도착했다
지난주에 덕산재에서 삼마골재까지 잇고 그 전주에 빼재에서 육십령을 걸었으니
오늘의 일정은 빠진 덕산재에서 빼재까지를 이어가는 날이다
비 올 확률 이십프로가 안된다는 날씨는 우중충하고 찌푸등 흐리다 개이다
하늘은 변덕을 떤다
곳곳의 고개마다 백두대간 표지석이 너무나 크고 위풍당당해 사람이 초라해질
지경이다
덕산재 표지석도 내 키 두배보다 높이 서서 대간꾼들의 인증사랑을 독차지 한다
앙증맞고 튼튼한 인근의 돌덩이를 이용해도 손색이 없을 표지석을
굳이 어마어마하게 크게 세워둘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안고
대간길로 접어드니 숲은 풍성하고 땅은 촉촉하여 걷기 편하다
해발 644m 덕산재에서 고도 육백을 푹 올렸다가 다시
해발 690m의 소사고개까지 푹 내렸다 또 다시 육백을 올린뒤
해발 930m의 빼재로 내려와야 한다
산에서 길게 푹 올리고 푹 내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다는 각오로 출발이다
서서히 숨고르기를 하면서 오르막을 시작한다
쉼없이 올라서 한박자 쉬었다 가고 싶을때 한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는 얼음골 약수터를
만난다
높은곳에 약수터라니 물 맛이 달달하고 시원했다
다시 오르막의 연속이다
숲과 숲이 연결된 나무 데크를 지나고 가파르게 올라서서
헬기장이 있는 대덕산 정상에 섰다
내 앞으로 스쳐 지나간 개 한마리는 벌써 정상석에서 폼을 잡고 서서
일행들과 인증사진을 찍고 있다
저나 나나 네발 되어 걸어가는 산길에서 그뒤로는 따라갈수가 없었다
해발 1290m의 대덕산 정상석은 두개가 있다
"대덕산은 남서쪽의 삼봉산(1254m) 덕유산(1614m) 북쪽의 민주지산(1242m)등과 함께
높이 솟아 있는 산으로 영 호남의 분수령이며 많은 덕을 품고 있는 산으로
거대한 봉황이 날아가는 형상이다
지금까지 이 산에서 기를 받고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라고
큰 정상석 뒷면에 쓰여져 있다
덕이 많은 산이라서 그런지 산세가 부드러우면서도 웅장하다
정상에 서면 수도산과 가야산 마루금과 삼도봉 삼봉산 마루금
덕유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는데 운무속에 묻혀버린 파노라마는
개봉할 기미가 없다
대덕산 서쪽 계곡에 흐르는 물은 금강의 최상류 발원지이고
동쪽 방아골 얼음폭포의 물은 낙동강의 발원지가 된다
대덕산 사면은 싸리나무와 억새군락으로 되어 있다
대덕산에서 간단 점심을 먹고 덕스런 기를 잔뜩 받아 내려가는데 아직 채 피지도 않은
억새의 온 몸이 바람에 흔들려 독무보다는 군무가 멋진 억새춤에 절로 흥이 났다
초원지대의 내리막길을 길게 서서히 내려서 좌측으로 잠시 올라 해발 고도 1249m의
삼도봉에 다달았다
거창 삼도봉은 경남 거창과 경북의 김천 전북의 무주를 가르는 봉으로
삼도 화합기념탑이 위치한 영동 삼도봉의 남쪽에 이웃한 대덕산을 지나면 곧 바로 만난다
원래 이름은 억새가 뒤덮여 있는 봉우리라 하여 초점산인걸 거창사람들이 삼도봉이라 불러서
그리 된것이다
개인적으로 초점산이란 이름이 호감이 가지만 부르면 이름 되어지는것도 사람뿐 아니라
산도 마찬가지인가보다
지리산 삼도봉까지 세개의 도가 경계하는 봉우리가 세개나 된다
두개의 정상석이 있는데 초점산이라 적힌 큰 정상석은 1249m로 적혀 있고
초점산과 삼도봉이 같이 적힌 작은 정상석은 1248.7m라고 적혀 있다
이정표에는 대덕산 1.4km 수리봉 0.6km 덕산2리 마을 2.8km로 표시되어 있었다
수도산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수도지맥 능선이 이곳에서 흐르고 있다
다시 대간길은 삼도봉의 잡목과 초원지대를 벗어나 내려서 묘지를 지나
좌측 능선으로 내려서면 임도가 나온다
과수원과 배추밭 고추밭이 있는 마을 입구까지는 한참을 길게 내려온다
마을 입구에서 다시 대간길 마루금으로 올라서야 되는것을 아스팔트길로 계속 내려서다 보니
대간길을 조금 비켜 걸은채로 어느새 민박과 수퍼를 같이 한다는 무풍고개 밑에
탑선수퍼가 보이고 소사 고개가 나온다
소사고개는 무주군 무풍면 덕지리와 거창군 고제면 탑선마을을 잇는 이차선 아스팔트로
도로위에 생태 터널이 있다
목을 축이고 소사고개를 벗어나 오른쪽 언덕으로 올라 전나무숲으로 들어갔다
대간길은 다시 고랭지 채소밭으로 이어진다
이미 수확이 끝난 배추밭과 고구마밭은 더 이상 경작을 하지 않은채로 방치되어 있어
온갖 풀들이 자라나 푸른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높은 산자락에 앉은 푸른밭이 어우러져 한폭의 수채화를 이루고 있어 감상하기는 좋았으나
경작할 사람이 없이 놀고 있는 땅들이 거져 줘도 일구지도 못하면서 아깝다는 괜한
생각만 드니 그것 또한 욕심이다
풀들이 자라서 내 키만큼 뻗어 내린 밭 두렁을 간신히 빠져나와 농장의 철문너머
다시 숲길로 들어서 크게 한숨을 쉬고 다시 오른다
오후 네시가 가까워지고 점점 체력은 방전되기 시작한다
점심밥을 똑 같이 먹어도 오분이면 식사 끝나는 남편 따라 다닐려니
밥때만 되면 꾸역꾸역 집어 넣고 딸꾹질 하느라 제대로 먹지 못하여
도시락에 남긴 밥을 꺼내 마저 먹었다
산악회 대간꾼들을 따라 뒤쫓아 가려면 걷는것도 먹는것도 쉬는것도 심지어
싸고 자는것도 뭐든 빨리빨리 해야해서 안그래도 굼뜬 나를 바라보며 속이 터지고
나는 아주 경을 치게 생겼다
어쩔때는 숨도 쉬다 말고 다시 내뱉어야 한다
부부는 전생의 원수나 은인이 칠천겁의 인연이 쌓여 이어진다 하더고만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똑 같은거 하나 없이도 삼십삼년을 잘 살고 있으니
신기하다
독일 신화에서는 남자는 물푸레 나무에서 여자는 느릅나무에서 만들어졌다고 하고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 라는 책도 있는걸 보면
남 녀가 너무 맞는것도 이상한것이다
성질 급한 남편은 산행도 앞장서 가고 대간 후기도 따끈따끈 기억이 남아있을때
하루 이틀만에 간단히 쓰라며 궁금해 한다
미화된 언어로 포장시킨 호사스런 글이 아니라 일기 형식의 느낌이라
그리 어려운 작업은 아니지만 다녀온길 복기하는 기쁨이 없다면
돈이 나오는거나 밥이 나오는것도 아니여서 내가 프로 작가도 아니어서
쓰고 싶으면 쓰고 쓰기 싫으면 안쓰면 그만이다
살다보면 좋든 싫든 해야 할일 하면서 살아가는게 당연하지만 나이 들어간다는게
좋은 이유가 굳이 하기 싫으면 접어도 되고 관계 맺기 거북한 인연은
억지로 만들 필요가 없이도 편안 해질수 있다는것이다
자고 나면 휙휙 변하는 새로운 세상 풍경이 궁금하여 아직까진 가늘고 긴 똥 누며
길게 살고 싶으니 스스로 건강 챙기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794.3봉을 지나고 한시간여쯤 올라 갈림길이다
안부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한뒤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 나온다
혜민 스님은 어지러운 생각의 감옥에서 나오는 방법으로"내 몸안에 이미 있는 느낌을
느끼는데 집중하면 생각을 쉬게 한다"고 했다
질리도록 바위와 돌계단과 밧줄을 잡고 오르다보면 숨은 차고 다리는 무겁고 발바닥도 아파
내 한몸 건사하기도 정신 사나워 머리속은 텅빈 상태로 쉬지 않고 걸어가야 목적지에
다달을수 있으므로 그냥 걸을뿐이다
걸으면서 생각하고 걸으면서 시를 짓는 사람들은 위대한 사색가임에 틀림없다
거무튀튀하고 무시무시한 바위 덩어리가 앉혀진 능선을 지나고서야 도달하는
해발 고도 1254m의 삼봉산이다
삼봉산에는 삼각점이 있고 산경표에는 여기부터 봉황산인 무룡산까지 덕유산이라고 나온다
삼봉산은 거창의 진산으로 봉우리는 세개이며 그 중심 봉우리를 멀리서 바라보면 피어나는
연꽃 모습 같단다
가뭄이 들면 삼봉산 금봉암에 있는 용머리 바위에서 기우제를 올렸다고 한다
산기슭에 금봉암이라는 절이 있는데 절과 산 모두가 나한도량이라 하여 기도처로
이름나 있다
금봉암은 백오십여년전 해인사 여신도가 백일기도 끝에 점지 받은 자리에 세운 암자로
금빛 찬란한 봉황이 기도처를 세번 왕복 하였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하루종일 파란 하늘을 보여주지 않고 가을이 묻어오는 소리만 실은 바람 맞으며
삼봉산을 내려섰다
올 여름 폭염에 가뭄까지 겹쳐 비쩍 마른채로 물들어 가는 단풍 몇그루가 그나마 계절을
알리고 있었다
삼봉산에서 빼재까지 남은 거리 4.1km는 내리막으로 한시간 삼십여분이면 충분하다며
내려오는데 여태 동행했던 산우들은 뛰어 내려갔나 안 보인다
산 그림자가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하고 미역줄기에 얼굴을 맞아가며
산죽밭을 지나고 두서너개의 봉우리를 넘어 호절골재와 된새기미재를 지났다
잊혀진 고개인듯 애써 이정표를 찾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두개의 재이다
미끌어져 넘어지지 않으려고 아래만 바라보고 아무 생각없이 내려오다
수정봉이 지난줄도 모른채 빼재의 도로 시멘트벽에 내려와 앉아서는
두다리가 한참동안 멍청하게 자동으로 흔들렸다
빼재 아니 뼈재에서 내 다리뼈를 묻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보니
아이고 곡소리가 절로 나온다
가을
운무 내려와 더욱 그리워질지니
파란 가을 하늘이어라
구름 몰아낸 산 언덕에 피어날지니
은빛 가을 억새이어라
불 꺼진 가슴에 살아있을지니
들꽃 같은 가을 친구이어라
바람 불어 가을 향기 흐르는날
덕유평전 풀과 함께 눕고 싶어라
2016년 10월 초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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