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58차 후기

2016. 12. 7. 22:19백두대간

 

일시-2016년 12월6일 화요일 맑음

장소-백두대간 고남산 구간 남진

코스-매요마을-유치재-통안재-고남산(847m)-방아재-여원재

        백두대간 10.4km+접속구간 0km=10.4k를 3시간40분 걸림

 

 

 

 

백두대간길 치고는 누워서 떡 먹기만큼 쉬운구간을 마치고 돌아와 하룻밤을 자고 나니

요즘 정국답게 미세먼지 가득찬 하늘아래 밤새 내린 진눈깨비가 희뿌옇다

올 겨울들어 첫 눈은 얼마전 서울 하늘에서 내린 눈 발이 땅에 떨어지지 못하고

공중에서 뱅뱅 돌다 흩어져 버렸다

아직 눈 다운 눈 구경은 못했는데

계절은 계절을 이기지 못하여 어느덧 대설이다

 

솔 향기가 나를 이끌었다

 

이제 백두대간도 끝자락으로 치닫는다

눈썹 같이 이쁜 새벽달을 보고 집을 나섰다

대간걷기의 한구간인 십여킬로를 걷기위해 서울에서 멀리 전라도 남원까지

이동거리가 만만치 않다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고속도로 휴계소에서 한번 쉰다

커텐 두르고 눈감고 자지 않으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버스에서 내렸다

부드럽고 낮은 산들로 둘러싸여 인적 드문 매요마을은 구름 한점 없이 하늘은 맑고

오늘부터 몹시 춥다는 일기예보와는 다르게 바람도 없이 따스했다

매요마을 회관을 지나쳐 마을로 들어가서 대간길은 고남산 가는 방향으로

숲에 들어선다

오늘 대간길은 백두대간 분수령과 지리산 태극능선 끝자락에 안긴 운봉고원을 빙둘러

소나무가 많은 고만고만한 숲길로 이어져 있어

상쾌한 공기 마시며 걷기 편한 길이다

운봉은 목기와 벅수 그리고 판소리로 유명하다

키 큰 소나무가 햇빛을 가린 대간길 아래로 멀리 저수지를 옆에두고

낮은 산자락에 앉은 마을을 바라보며 대간길은 이어졌다

시멘트길인 임도가 지나는 유치재를 넘고 오르락 내리락 금새 통안재에 다달았다

그동안에 마주치지 못했던 대간타는 개와 점심시간에 만났다

주인 말 잘듣는 영리한 개를 보고 있으니 그동안 내 손을 거쳐간 개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초롱이가 죽었다.

강렬한 햇빛이 내리쬐는 칠월의 마지막날 정오에 숨을 거둔

초롱이는 우리집 애완견 이었다.

 

불암산 자락밑에서 살았던 십칠년전,

유난히 화창한 오월의 주말 이른 점심을 먹고

아이들과 함께 불암산에 올랐다 집으로 돌아오는중  

동물병원 쇼윈도우에 금방 이발과 목욕을 한듯

하얗고 앙증맞은 강아지 한마리가 바깥 세상을 구경하고 있었다.

유리벽 사이를 두고 우리식구는 토끼처럼 두귀가 하늘로 쫑긋선

희한한 강아지를 보고 가던길을 멈추고 섰다

초롱 초롱 반짝이는 두눈에 홀려 안으로 들어가

"이거 파는 겁니까?"

"맞벌이 하는 부부가 키우기 힘들어 파는거니

오만원에 가져 가세요."

개도 쌍커풀이 대세인지 동물병원 원장님 한말씀 더 한다.

"잡종 이래도 쌍커풀이 아주 이뻐요."

 

그리하여 무슨 종인지 알수 없지만 생기발랄한 육개월 초롱이와 인연 되어

초중고 대학 애들 클때 같이 자라고 같이 뒹굴며 함께 울고 웃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다 늙었다.

놀이터 시소며 철봉까지 두려움 따윈 없는놈 처럼 천방지축 날뛰던

강아지가 늙어가면서 귓볼에 생긴 혹과 독감으로 한두번 고생한일 빼곤

특별히 병치레 안하고 천수를 누린 동물이다.

자연사 한일은 고마우나 눈과 귀가 멀어지고 똥 오줌 못가린채

먹고 자고 싸고를 반복한지 칠개월만에 고통의 시간을 보낸

지난 이틀간 마지막 순간은 끔찍했다.

 

동물은 저 죽을 자리 봐둔다고 하는 말이 빈말이 아닌 모양인지

팔딱팔딱 몇분간의 경련이 끝나면 지쳐 쓰러져 자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냉장고와 벽틈 사이를 들어갔다 나오고 세탁기와 벽틈 비좁은 사이를

파고들어 끙끙앓는 모습을 지켜보기란 괴로웠다.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하게 진통제를 갈아 꿀에 재어

입에 넣어주니 그래도 아직 혓바닥을 낼름 거린다.

형제같은 아이들이 아무도 없어 그런지,

안아주면 아프다고 울부짖는 소리가 덜하다가도

온몸을 비트는 발작증세와 비틀거리며 걷다 넘어지기를

반복한다.

생명의 끈을 놓기 어려운 고통을 바라보는 나도 두통에 시달리다

안락사를 시켜줘야 되겠다 생각할 즈음에

초롱이는 세탁기 뒤로 들어가 숨을 거뒀다.

 

그날 오후 뒷동산 봉산 양지 바른곳에 미리 파놓은 무덤 자리에

묻어주고 돌아서 산길을 내려오는데 산모기와 이름모를 풀벌레의

아우성이 초롱이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들린다.

칭찬하면 좋다고 꼬리치고 야단치면 풀죽어 눈치 보던 애교많은

초롱이는 그렇게 내곁을 떠나고 흙으로 돌아가던날 늦은 오후

남산길은 허전함과 해방감이 몰려온 헛헛한 발걸음 이었다.

 

남산은,지금이나 되니까 남산 간단 소리가 웰빙으로 들리지

얼마전까지만 해도 남산 다녀 왔다고 하면 국가 안전기획부라는

무서운 곳에 끌려가 고문받고 반병신 되든지 정신병자 되어 왔단 이야기로

알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참,격세지감이다.

서울 살이 하는 사람에게는 고향같은 남산에서

옛 고향 동창을 만나 잊어버린 고향말씨와 정을 느껴

웰빙이 힐링으로 이어진 남산 걷기가 끝나고

고단한 하루가 지나간다.

 

비록 하찮은 동물일지언정 가슴속에 큰 사랑을 심어주고 떠난

집안은 초롱이 썩어가던 냄새가 곳곳에 스며있어 금방이라도

식탁밑으로 걸어와 킁킁 날 찾을것만 같다

냄새 나는 늙은개 씻기고 걸레 삶아 대는 번거로움이 없어져

몸은 편한데 맘이 허해,아이들이 왔다가 떠날때처럼

다시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앞으로 개새끼를 키우면 이씨 성을 갈아 버린다고 다짐을 해보지만

지켜질지 나도 모른다.

 

"한개의 별이 바다에서 배를 인도 할수 있고

한번의 악수가 영혼에 기운을 줄수 있고

한송이 꽃이 꿈을 일깨울수 있다."는

틱낫한의 말처럼 하나의 작은 생명으로 우리곁에 와서

친구로 때론 웬수로 지내다 별이되어 영혼을 기쁘게 해주고 떠났다 

초롱이가 죽었는데 왜 내가 힘이 빠지는지

한꺼번에 몰려오는 피로한 무기력과

무더위에 휴가 나온 아들덕에 부산함이 겹쳐

일주만에 걷기 흔적을 남긴다.

전국이 폭염으로 들끓는데 벌써 입추라니

가을이 저만치 다가오고 있다.

2013년 8월 7일 씀.

 

네마리의 개와 인연을 맺은뒤 그뒤론 개를 기르지 않고 있다

대간타는 개와 동행도 잠시 오후엔 개보다 못한 발걸음으로 개를 뒤쫓는것은

불가능했다

양지바른 통안재 도로위에서 식사을 했어도 쉬기만 하면 손끝이 시려오는걸보니

이제는 진짜 겨울은 겨울인갑다

시멘트 도로를 조금 올라서 오른쪽 숲으로 들어갔다 다시 도로로 나오면

고남산의 통신탑이 보이고 이어 다시 숲으로 올라서 고남산 바로 아래

헬기장에 이른다

이어 매요리에서 5.1km 떨어진 거리의 오늘의 최고봉인 고남산에 도달한다

해발 고도 847m의 고남산은 운봉의 북서쪽을 지키는 전략 요충지이다

고려 우왕 6년(1380년)왜구가 인월역에 진을 치고 약탈을 일삼았다

왜구를 토벌하기 위하여 고려군을 지휘하고 운봉에 도착한 이성계는

이곳 고남산에 올라 석축으로 제단을 쌓고 필승의 산신제를 올렸다고 한다

남아있는 석축제단은 그때 쌓은 제단의 흔적이라고 한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태조봉 혹은 제왕봉이라고도 불린다

정상석에는 846.4m로 적혀 있었다

통신대 좌측으로 내려가면 권포리에서 올라오는 포장도로가 있다

정상에 서니 운봉 분지와 산동면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석을 뒤로하고 한차례 올라서면 산불감시초소가 나온다

두사람이 지키고 있었다

88고속도로와 송신탑이 내려다 보이는 초소를 지나 나무 계단을 내려서고

뜀바위를 지난다 

백두대간 남진에서 마지막 로프 구간인듯 짧은 내리막 로프가 매어 있다

사고는 자신감이 펄펄날때 일어나는 거라 겸손하지 않으면 안되는줄 알면서도

건방지게 로프 잡는 시늉만으로 가볍게 내리막을 내려섰다

이어 소나무 군락지가 온통 사방을 에워싸 바닥은 낙엽진 솔가지로 푹신하고

은은한 솔향기가 옴몸에 스며들어 발걸음도 빨라진다

785봉을 넘고 얕으막하게 오르고 내려 낮은 봉우리를 넘나든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조용한 동학농민혁명 유적지인 방아치라고도 부르는 방아재를

지나친다

이어 오르 내림을 한차례 더하여 마을길로 내려섰다

논두렁과 밭두렁 사이를 걸어 키 큰 감나무 한그루에 달린 홍시를 흔들어 따먹었다

농작물 훼손죄로 잡혀가면 홍시감값보다 몇배로 벌금을 내야 할텐데

간덩이가 부었는지 아님 비위가 좋아져 넉살이 생겼는지

이제는 대간타고 다니다 별의별일도  겪어본다

 

고남산에서 여원재까지 거리는 5.3km이다

밭둑을 걸어 무덤이 많은 산길로 접어들어 한차례 가파르게 오르고

서서히 내려서면 드디어 돌벅수가 유명한 여원재가 나온다

여원재는

전북 남원시 운봉읍과 이백면의 경계를 이루고 더 나아가 영남과 호남을 연결해주는

해발 고도 477m의  백두대간의 고개로 산줄기는 고남산과 수정봉을 잇고

물줄기는 낙동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이다

전략적으로 가치가 있어 임진왜란이나 왜구의 침입같은 전쟁이나 반란이 있을때마다

쟁탈의 대상이 되었다

반봉건과 반외세를 외치던 동학군이 영남지방으로 진격을 시도하기 위해

노렸던 곳이다

김개남은 동학군 일만명을 이끌로 여원재로 진격했지만

동학군의 움직임을 깨뚫고 있는 관군에게 여원재에서 패하는 바람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동학군은 많은 희생자를 낸채 남원으로 물러섰던 곳이다

여원재란 명칭은 태조 이성계가 하사한 이름으로 이성계가 황산전투에 임할때

어느 노파가 꿈에 나타나 고남산에 올라 삼일간 기도하고 출전하라고 알려주어

대승을 거둘수 있었다 한다

이성계는 꿈속에 나타난 노파가 고갯마루에서 주막을 하다가

왜구의 괴롭힘으로 자결한 주모였다고 믿고 노파를 위로하기 위하여 고갯마루에

사당을 지어 여원이라 불렀는데 그때부터 이 고개 이름이 여원치 또는

여원재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주민들은 연재라고도 부른다

 

돌벅수 운선대장군의 운성은 운봉의 옛이름으로 높고 험한 천혜의 수비성이란 뜻이다

돌벅수 뒤쪽으로 지리산 성삼재로 가는 대간길이 이어진다

여원재에서 주촌마을까지 걸으면 백두대간도 끝이다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는 전념 하나로 기온이 떨어지고 찬바람이 불어와도

푸르스름한 잿빛 시멘트 광장이 주말이면 촛불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이제는 평일에도 여기저기 사람 모이는 곳이면 뜨거운 양심을

토해내는 민중들의 열기가 가득하다

민주주의 희망은 살아 있다는 믿음을 잃고 싶지 않으니

국정을 진심으로 걱정하여 혼돈의 정국사태를 타개할  청렴한 인물이 어디 없을까?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이제야 저 숲 너머 하늘에 작은 별이 하나 나오지 않았습니까?"

신석정 시인의 '아직 촛불을 켤때가 아닙니다"의 마지막 구절이다

어둠이 걷히면 반드시 태양은 떠오르기 때문에

오늘밤 짙은 어둠속에서 반짝이는 별들을 보고 싶다

 

어두운 광장에서

 

리더 잃고 나는 봤다

 

사내와 여자가 번가라가며

어설픈 목소리로 소리쳐도

군중들은 박수치며 환호하는것을

 

밤 도시 빌딩은 차가워도

번들거리는 유리창 안은 뜨겁고

유리창 밖에는 찬 물이 흐르는것을

 

마른 나뭇가지속에 꽃을 피워

봄이 숨은 겨울에도

가는 눈 비가 내리는것을

 

2016년 12월 초순 씀

글 사진-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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