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59차 후기

2016. 12. 16. 11:18백두대간

 

일시-2016년 12월13일 화요일 약간 흐림

장소-백두대간 수정봉 구간 남진

코스-여원재(470m)-주지사 삼거리-입망치(570m)-수정봉(804.7m)-노치샘(550m)-노치 마을회관- 덕치 보건소

      -고기리 선유산장 식당에서 종주패 수여식

       백두대간 6.6km+접속구간 0km=6.6km 3시간 걸림

 

 

 

길에서 길을 물은 대간길 여정은 참 대간했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내 삶이 조금은 더 달라졌을까

드디어 백두대간의 마침표를 찍는날이 돌아왔다

여명이 트기전 이른새벽에는 잔잔한 미풍에도 이파리 없는 나뭇가지가 떨리고

밤새 거리를 불 밝히던 가로등도 추워 졸다 움추리는 십이월이다

두툼한 겨울채비로 집을 나섰더니 생각보다 공기는 차갑지가 않다

화요일이 아니었음 지금쯤 침대속을 빠져 나오지 않했을 시각이건만

도로에는 라이트를 켠 차량들이 많고 새벽 출근하는 부지런한 사람들로

지하철이 붐빈다

노랗고 파란색보다 익숙한 빨강색 버스에 올라타자

지난 대간길의 힘든 여정을 함께 했던 산우들이 이제는 가까운 친척마냥

정겨운데 오늘이 마지막이라니 서운하기만 하다

불빛 찬란한 서울을 벗어난 버스는 젊은 기사 운전솜씨가 어찌나 좋은지

고속도로와 지방도로를 스르르 이리저리 잘 도 달린다

가을걷이가 끝난 황량한 들판에는 건초더미가 뒹굴고

물기 마른 낮은 산야는 적막하여 어느새 멀리 가버린 가을이 아쉽기만 하다

아침으로 떡 한 조각을 먹어치우고 비몽사몽 눈을 떴다 감았다 몇번을 자다 깨다 했더니

드디어 24번 국도변의 돌벅수가 서 있는 해발 고도 480m의 여원재에 도착했다

돌벅수 뒤로 난 계단을 올라 잘 다듬어진 묘소옆으로 대간길은 이어진다

숲으로 들어선 대간길은 임도와 야트막한 숲길을 번가라 올라서

주지암으로 가는 삼거리에 다달은다

다시 소나무 향기를 맡으며 숲으로 들어선 대간 능선길은 좌우로

남원군 운봉면과 이백면을 두고 능선이 오르락 내리락 이어진다

곧 이어 여원재에서 3.3km떨어진 해발 고도 570m인 소로가 뚜렷한 입망치에 도달했다

입망치는 운봉읍 갓바래 마을과 이백면 과립리 입촌 마을을 넘나드는 고갯길이다

이어 1.3km 떨어진 거리의 수정봉을 향해 잡목들이 많은 오르막을 오르게 된다 

수정봉 아래 넓은 안부에서 아침에 나눠준 떡과 사과로 요기를 하였다

이어 해발 고도 804.7m의 수정봉에 도달했다

입망치를 사이로 양지산성 남쪽에 위치한 수정봉은

남원 운봉읍 주촌리와 이백면 과립리의 경계를 이루는 봉우리로

산 중턱에 수정이 생산되는 암벽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섬진강 유역과 낙동강 유역의 분수계가 되며 이백면에서는 650m의 높은산이

운봉읍 주촌리에서는 250m의 낮은 산이 된다

수정봉을 지나 고인돌 모양의 바위돌 옆으로 대간길은 이어진다

이어 소나무가 많은 내리막길로 내려오다 가재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수령 이백오십년이 넘는 거대한 네그루의 노송을 만난다

기품 있게 솟은 노송언덕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통로로 마을을 지키는 제사터인

당산제전이다

이어 마을길로 접어들면 길가의 담벼락에 붙어 있는 노치샘이 나온다

아스팔트 포장도로의 마을길은 마을회관앞의 느티나무에서 지리산 둘레길과 갈라지고

대간길은 노치 마을을 지나고 덕치 보건소를 지나 730번 지방도로를 따라

고기리 삼거리에서 마친다

 

백두대간이란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동해 해안선을 끼고 남쪽으로 흐르다가 태백산 부근에 이르러

서쪽으로 기울어 남쪽 내륙의 지리산까지 이르는 거대한 산줄기로

이땅을 대륙과 이어주는 뿌리이자 줄기의 역활을 하고 있다

보통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뻗어나간 한반도의 등뼈라고 말한다

총 길이 약 1625여 킬로미터이고 남한구간은 지리산에서 향로봉까지

약 735여 킬로미터이다

대간 기둥에서 뻗어나간 산줄기를 정간 정맥으로 분류하여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나뉜다

표시된 15개의 산줄기들은 10개의 큰 강에 물을 대는 젖줄이자 구획하는 울타리이다

조선 영조때 실학자인 이중환이 현지 답사를 기초로 저술한 '택리지'가 뿌리로

"대간은 끊어지지 않고 옆으로 뻗었으며 하나의 맥령을 이루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백두대간과 백두정간이란 말을 처음 사용했다

여암 신경준이 지은것으로 추정되는 '산경표'에서는

山自分水嶺인 산이 곧 분수령이라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는 원리에서

유래하여 백두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산맥을 체계적으로 표로 정리했다

대간을 중심으로 여러갈래로 뻗어나간 산줄기들은 지역을 구분짓는 경계선이 되어

각지의 고어와 습관 풍속들과 부족국가의 영역을 이루었고 삼국의 국경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행정경계가 되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도 자연스런 각 지방의 분계선이 되었다

백두대간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 환경을 이해하는 바탕이 되고

이 땅의 지세를 파악하고 밝히는 근본이다

 

두 발로 백두대간의 이어진 마루금을 밟는다는것은

누구나 할수 있지만 또 아무나 할수 없는 인내와 체력이 요구되는

힘든 여정이다

무더운 여름날에는 얼음을 머리에 이고도 숨이 턱턱 막히고

차디찬 겨울날에는 손끝이 떨어질듯 아렸던 기억들이 파노라마로

스쳐 지나간다

백두대간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눈 구경 하고 싶어 불쑥 따라 나섰던

백두대간길이 이렇게 많은 추억을 남겼다

연칠성령에서 길을 잃고 하늘 가까이에 있는 하늘문으로 들어서는 바람에

천국행이 될까봐 놀라 겁 먹었던 일과

황철봉 너덜 바위에서 오도가도 못해 다리가 후덜덜 떨렸던 기억

덕유 삿갓재 대피소에서 쏟아지는 별들로 그밤이 행복했고 새벽녘 달과 별에 소원 빌었던 일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 지리 천왕봉에서 감격에 겨워 아예 눈을 감고 숨을 참았던 순간

속리 문장대에  오르면서 암릉바위에서 두 다리가 풀렸던 아찔한 순간을 모면 하려

한나절만에 박카스 두병을 들이키고 그날밤 홈통바위 전망바위 입석바위 덮개바위등

집채만한 바위 덩어리들이 아른거려 뜬눈으로 날 밤 샜던일

땜빵 구간 보충하러 간 미시령에서 국공 몰래 출입금지 팻말앞에서 월담을 강행한일

단목령에서 두로령까지 이박 삼일일정으로 동행한 아들내미가 초반부터 벌에 쏘이고

비와 물안개속에서 미끌거리는 도토리만 원없이 밟다 내려온일

삽당령에서 비가 눈이 된 함박눈을 맞고 산죽밭에서 즐거웠던 순간과

대관령 바람의 언덕에서 칼바람 맞고도 쓰러지지 않았던 기쁨들

지난 이년간의 여정이 매번 갈때마다 첫 경험으로 한번도 거저 되는 일은

없었다

엉덩이와 허벅지에 멍이 들고 무릎이 시끈거리고 발바닥이 찌를듯이 아프다가

발가락에 물집 생기고 한개의 발톱이 빠졌다

고통스런 순간도 횟수가 거듭되면서 사라지고 길들은 자연스럽게 몸으로 흘러 들어왔다

아직도 산행 시작 대여섯시간만 지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두통은 날 괴롭히고 있지만

대간길에서 얻은 영광의 상처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새살이 돋아나고

내 몸과 맘도 새로운 근육이 돋아 나고 있다

집이 아니면 먹는것도 싸고 자는것도 싫어하던 예민한 성격이

변화하고 있으니 말이다

 

T.S 엘리엇의 '리틀 기딩'에서

"우리는 탐험을 그치지 않으리라

모든 탐험의 끝은 출발했던 장소로 돌아오는 일이요

그 장소를 처음으로 알게 되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매번 갈때 마다 오지를 탐험하듯 설렘두려움으로 밟았던 대간길이 몸은 피로했지만

다른 풍경과 다른 감동으로 머리와 가슴속에서 충격으로 부딪쳐 

머리는 신열로 뜨거웠고 가슴은 들떠 들숨과 날숨으로 벅찼다

 

존 러스킨은 "인생은 흘러가는것이 아니라 채워지는것이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보내는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으로 채워가는것이다"라고 했다

어차피 삶의 여정은 누구나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어가는것이 정해진 길이다

들판의 이삭이 피기전에 연두빛 생명으로 트여낸 봄의 나무

솔가지 사이로 보이는 구름 한점 없는 파란 여름 하늘 

거친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홀로 피워내는 바위틈새의 가을 들꽃

흰 눈속에 노란 한그루 복수초의 경이로운 겨울 눈속의 꽃

봄 여름 가을 겨울 변하는 사계절일랑 생각조차 없이

자연을 잃고 산다는것은 영혼의 일부를 도려내는일과 같건만

세상 사람들의 대부분은 소유욕에 불과한 부와 권력만을 쟁취하려고

자연을 멀리하고 남들에게 보여지는 나로만 살고자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실거리와 지도상 거리 또 이정표 거리와도 조금씩 다른 백두대간길 734.5km에 

접속구간 거리180km를 포함하여 914.5km를

하루에 약15여km씩 걸었다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 소백산 대미산 속리산을 거쳐 추풍령과 삼도봉을 지나

덕유산 영취산 지리산에 이르기까지 많은 산길을 걸었다

햇빛 한 조각과 바람 한점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았고

나무와 꽃과 바람 비와 구름 나는새와 곤충 모두 서로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

서로 잘 보이려고 잘난체 하지 않고 서로 차지 하려고 집착하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세상 천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 이란걸

알아가는 여정이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백두대간 걷는 기간에도 대내외적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유럽연합에서 탈퇴한 영국과 예상을 뒤엎고 트럼프를 당선시킨 미국도 세상을 놀라게 했다

작년에는 중동 호흡기 증후군인 메르스 바이러스 유행 확산으로 온 나라가 메르스 공포로

마스크 쓰고 기침만 하여도 걸어다니는 바이러스로 몰아 사람이 사람을 거부했다

올해는 권력을 등에 업고 국정을 농단한 최씨 일가와 끝나지 않은 재작년의 세월호 침몰사고

책임을 묻는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와 급기야 대통령의 손발을 묶었다

백척간두의 어려운 시기에 위정자들은 대통령 탄핵을 당리당략과 입신출세에만 이용하려 든다

십년전만 해도 나침판과 지도를 들고 백두대간길을 걸었다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속의 네비가

길을 찾아주는 세상이다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알수없는 급변하는 세상이라 나처럼 아날로그 감성인 사람은

점점 살기 힘들겠지만 아무리 날고 뛰는 스마트한 세상이 올지라도

보통의 사람은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정의가 살아있는 세상을 원한다 

사람만 인플렌자에 노출 되는줄 알았더만 사람 먹이감에도 인플렌자에 전염되어

추운 겨울이 얼마나 더 추울지 모르겠다

나에게도 크고 작은일들이 있었다

엄마는 죽어 영영 돌아올수 없는 길로 가셨고 늦둥이 아들은 대학 졸업후 입사하고 

집도 이사 했다

몸은 가벼워져 발걸음은 빨라졌지만 흰머리와 잔주름이 늘고 눈도 침침해진 나는

영락없이 늙어 가는것이 보인다

마지막 남은 한장의 달력을 떼어내면 내 나이 육십이다

지난 이년동안 백두대간이 힘들어 때려 치울까봐 평소에는 족욕물을 대령하고

대간날에는 이인분의 먹을거리와 식수로 남들보다 두배 무거운 배낭을 짊어졌다

남는것은 사진밖에 없다며 찍사와 길라잡이 역활을 자청했던 남편의 응원이 없었다면

바삐 서두르는 일행들을 따라 잡기가 힘들어 포기 했을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도 힘들게 지나갔을 그 길을 길이 이끄는데로 따라가니

끝나지 않을거 같았던 나의 첫번째 남한구간 백두대간 종주가 끝이 났다

이문재 시인의"땅끝이 땅의 시작이다"처럼

나의 백두대간은 이제 시작이다

 

 

백두대간

 

산은 산을 품고

봉우리는 봉우리를 품고

능선은 능선을 품은 마루금을

길이 이끄는데로 걸었다

 

바위에 앉아 시원한 바람 맞고

산줄기와 산마루에 걸친 구름 보고

느리게 빠르게 아무 생각없이

온 몸으로 걸었다

 

바람과 새들이 길을 열어

꽃 피고 꽃지는 소리 들으며

비 오면 빗길을

눈 오면 눈길을

고통과 기쁨이 함께

걸었다

 

언제나 변하면서도 

같은 그 길인

한반도 등뼈는

살아 있었다

 

2016년 12월 중순 씀

글 사진 - 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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