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6. 4. 16:41ㆍ친구
일시-2017년 5월27일~28일 이틀 연속 햇볕 쨍쨍
코스-서울-전주여고 졸업 사십주년 행사-전북 교육문화회관 작품 관람-한벽루 아래에서 저녁식사
-르윈호텔에서 일박-한옥마을 산책-익산 보석 박물관-왕궁리 5층 석탑-예지원에서 점심식사
-나바위 성당-귀경
버스는 장미 향기 나는 오월이 가기전에 전주로 달렸다
천년 역사를 간직한 도시를 반기기라도 하는듯
오월 햇살에 삼백여미터 낮은 기린봉 푸른 줄기가 눈부셨다
전주는 후백제 견훤이 세운 백제의 마지막 수도이자 조선 왕조 오백년을
꽃피운 조선 왕조의 발상지로 유네스코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판소리의 본고장이다
또한 전통 생활양식의 근간인 한옥, 한지, 한식을 계승하여 전통문화를 담고 있는
도시이다
전주 구시가지로 들어서니 우후죽순 신도시들이 넘쳐나는 세상 이거늘
높은 건물이 없이 고만고만 변함이 없었다
지나 다니는 몇몇 사람들도 시간을 거슬러 예전 사람들이 튀어 나온듯 모두 비슷하다
미국물 오래 마시면 미국인과 비슷해지고 일본물 오래 마시면 일본인과 비슷해진다더니
지역에 따라 사람이 변할수 있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인후동 모래내 개천은 복개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너른 공터와 논 밭둑을 걸어 다녔던 학교 주변은 주택과 상가로
다소 복잡했다
교정 떠난 사십년 세월이 흘러 졸업후 처음 밟는 교정은 아담했다
아침밥 먹고 책가방 들고 등교하여 하루종일 짜여진 틀속에 갇혀 있다 하교하는
다람쥐 쳇바뀌 돌듯 공부 하고 시험보고 학교 생활은 지루했다
아무리 힘들었다 한들 그때는 코스모스 한들거리는 모습에도 웃고 울고
덕진공원의 연분홍 연꽃에 취해 연못속으로 빠져 죽어 연꽃으로 환생하고픈
철 모르게 낭만이란 단어가 살아 있었는데
요즘 얘들은 사람이기전에 스팩 쌓는 기계처럼 부속품 인간이 되어지는것 같아
우리때 보다도 더 불쌍하단 생각이 든다
그래도 영혼을 묶는 갑갑한 학창시절로 되돌아 가려면 아니 갈것이다
그런데 철 없는 그때가 한 없이 그리운것은 또 무슨 조화속인지 알다가도 모를일이다
모래와 잔돌 섞인 운동장은 푸른 잔디로 폭신했고 칙칙했던 회색 교실벽은
파스텔톤으로 화사하여 격세지감을 느꼈다
네번의 강산이 변할 시간인데 꽃과 나무같은 우리 동창들만 변하는것도
무리는 아니다
양갈래 머리와 단발 머리 두번의 경험 모두 했던 여고시절 그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변했건만 강당에 모인 육십의 여자들이 시끄럽게 떠든다
해도 해도 끊임없이 나오는 수다와 말은 영락없이 그때 그시절이다
여고시절에는 통통하고 수더분하던 여자가 사십년만에 날씬하고 우아한 여인으로 나타나
눈앞에 있다니 학창시절보다 십여킬로는 느는것이 예의로 여긴것은 착각에 불과했다
내 유년시절 술래잡기 하고 쑥 캐던 공동묘지가 변한 연구실로 출근 한다니
그동안의 안부가 한방에 날라갔다
프라스틱 책 가방 보다 대나무 쑥 바구니를 더 좋아했던 어린 시절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답고 그리운가,다시 못올 지난 세월들이
파란 하늘에 흰구름 밀려가듯 파노라마로 스쳐간다
이어 졸업 사십주년 기념 행사와 강당에 차려진 부패로 점심을 먹었다
2부 순서는 '즐거운 마음과 행복한 우리'라는 타이틀로 각반 장기자랑을 하여
서먹했던 동창들은 가까워지고 친했던 동창들은 더욱 두터운 정을 다지는 시간을
보냈다
동창들의 끼 넘치는 가무로 보는 이도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저절로 일어나
몸을 흔들며 서로의 눈높이가 딱 여고생으로 돌아갔다
다음 순서로
전북 교육문화 회관에서 전시하는 친구들 작품 관람을 했다
그동안 어찌 살았는지 작품속에 그들의 안부가 녹아 있었다
해질무렵 숙소를 배정받고 한벽루 아래 식당으로 이동했다
물가에 앉은 우리는 오모가리탕으로 저녁을 든든히 먹었다
민물고기와 민물새우가 마른 시래기와 만나면 이런 맛을 낼수 있을까
매콤하고 칼칼한게 시원한 고향의 맛이다
시인과 묵객이 따로 있던가
한벽루 물가 아래 앉으면 너와 내가 시인이고 묵객이다
눈썹같은 초승달이 보일락 말락 하늘은 까맣고 물도 까만 밤이 되어 그 많은 인원들은
반별 모임으로 흩어졌다
밤 바람이 싸아 옷깃으로 스며들 즈음 한옥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찻집으로 이동했다
멀리 떠난 시간 만큼 사는 것과 사는 곳이 다르지만 삼년간의 고향 인연은 금세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아름다움은 단 한 순간도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눈을 감고 있을뿐이다
감았던 눈을 뜨기만 하면 세상의 아름다움이 온통 소나기처럼 쏟아질것이다."
라고 헤르만헤세는 말했다
코끝에 닿은 찔레꽃 향기가 몸으로 들어와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오월 마지막 주말
우리의 아름다운 우정은 숙소로 까지 이어져 채워지고 있었다
전주에서 아름다운 밤은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삼십년 되었다는 르윈 호텔 시설은 낡았고 빨간 모자 아저씨들이
삼삼오오 모여 피운 담배 연기로 메케했다
호텔에서 담배라니 뒤떨어진 시민의식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을 새워도 못 다한 이야기는 끝날줄 모르지만 내일 일정을 위해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야 한다
이른 새벽 호텔 뒷마당으로 보이는 한옥마을이 적막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본놈들은 지네가 땅 덩어리도 큰데 굳이 전주까지 들어왔다
주로 천민이나 상인들이 거주하는 서문밖 전주천변에서 살았던 일본놈들은
1907년 군산항을 거쳐 일본으로 양곡수송 하기위해 전군도로를 개설했다
이에 서반부 성곽이 강제 철거되고 그뒤 남문을 제외한 성곽이 모두 철거됨으로
전주 부성은 사라졌다
이를 계기로 일본놈들은 성안까지 진출한다
일본인들의 세력확장에 우리 조선민들은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팔각지붕과 휘영청 곡선의 용마루가 명물인 한옥을 짓기 시작한다
이는 민족의 자존심이자 자긍심의 표시였고 한옥마을의 역사이다
전주 한옥마을이 한국 관광 백과사전에 오르면서 이제 세계에서도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낮에는 체험과 쇼핑하는 단체 관광으로 북적이고 밤이면 연인들과 개인 관광으로
불야성을 이룬다
작은 골목에 빼곡히 들어선 개조된 한옥 상가들도 그렇고
정체 모를 중국산 제품과 유명한 관광지 어디서나 맛볼수 있는 길거리 음식은 눈쌀을
찌푸리게 만든다
가장 한국적인 도시가 이상 야릇한 도시로 탈바꿈할까 두렵다
고요한 아침 한옥마을 산책은 힐링의 시간이다
해장할 일도 없는데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더니 조금 긴장하고 피로했나
시원한 콩나물 국밥 한 뚝배기를 깨끗이 비웠다
조선 후기 남문밖 시장이 흥성하면서 콩나물 국밥과 콩나물 비빔밥이 태동했다
17세기 말 남부시장에 시전이 발달하면서 전국 팔도의 상인들이 몰려 들었다
시장은 점점 커지고 매일 장이 서는 상설시장 기능을 하면서
시장 음식으로 콩나물 국밥과 콩나물 비빔밥이 호황을 누려
전주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음식이 되었다
어릴때 너무 먹어 질렸나 아님 시장이 반찬인데 배 골아 본적 없으니
입이 짧아 먹성이 그닥 좋지 않은 나는 꼭꼭 씹어야 하는 콩나물 나물은
즐겨먹지 않는다
또 어차피 배속으로 들어가면 비빔밥 되어 지는데 굳히 미리 비벼야 하는 비빔밥도
별로이다
그래도 오방색으로 눈을 즐겁게 하는 먹기전 비빔밥은
밥 이전에 예술이다
서동왕자와 선화공주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오는 마한 백제 문화 고장인 익산으로
이동했다
보석 박물관에 내리자 프랑스 르부르 박물관에 들른듯
피라미드풍 유리건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2002년에 개관한 보석 박물관에는 진귀한 보석이 기획 전시관과 상설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고
판매도 한다
화석 전시관과 공룡테마 공원등 여러 볼거리가 많아도 시간이 부족하여
들를수가 없다
몇 개 있는 반지와 목걸이 귀걸이도 차고 걸고 다는것이 귀찮아서 서랍에 처박아 두고 있건만
휘황찬란한 색깔로 여기저기서 유혹하니 눈알이 빨갛게 충혈되어 피로가 몰려온다
보석 매장을 빠져나와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어떤 보석색깔도 하늘만한 색상이 없다
1월 석류석인 가넷 2월 자수정 3월 산호 4월 다이아몬드 5월 에메랄드
6월 진주 7월 루비 8월 페리도트 9월 사파이어 10월 오팔 11월 토파즈 12월 터키석으로
월마다 탄생석이라는 보석이 따로 있어 이쁜걸 좋아하는 여자들 그냥 가기 어렵다
햇살이 점점 뜨거워져도 왕궁리 성지로 옮겨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백제 후기의 왕궁터는 발굴 작업과 정비 작업이 진행중이었다
2015년 미륵사지와 왕궁리가 세계문화 유네스코 문화 유산에 등재 되었다
무왕이 조성한 왕궁은 의자왕대에 사찰로 변신했다가 고려시대에 사찰이 없어졌다
국보로 지정된 오층 석탑 자리에는 목탑이 있었다
현재의 오층석탑은 고려 전기의 석탑으로 1965년 해체 보수하여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 되었다
한옥 건물과 정원이 아름다운 예지원에서 한정식은 근사했다
전주로의 여행에서 대접 받는 기분이 든 멋진 맛이다
어디를 가든 먹는 즐거움이 있어야 즐거움이 배가 된다는게 진짜인갑다
"새로운 세상을 보기 위한 여행을 떠나는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뜨기 위해 떠나는것"이라는 명언대로
맑고 건강한 눈으로 넓고 깊은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현지 음식 먹는것을 빼놓을수는 없다
민어 지짐이로 야채와 곁들인 맑은탕은 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고급스런 풍미가 났다
작은 생조기도 짭짤하니 엄마가 해주시던 밥위에 찐 황석어 맛도 나면서
맛있었다
반찬 가지수가 너무 많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만 배 터지게 생겨 남길수밖에 없다
전주 한정식은 낭비가 많다
나바위 성당으로 이동중 버스창가로 뜨거운 태양이 앉는다
날카롭게 눈을 찌르는 햇살로 썬그라스를 귀에 걸었다
모내기가 끝난 연초록 어린 묘가 나래비로 서 있고
모내기 전 논에는 가두어둔 물이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화산의 끝자락에 있는 넓은 바위인 나바위에 위치한 성당은
전라도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작은 바위 동산위에 넓은 너럭바위가 있어 나바위라고 했다 한다
1845년 헌종 11년때 중국 상해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귀국한 김대건 신부가
강경포 부근에 상륙한것을 기념하기 위해 베르모렐 신부에 의해 1906년 시공하여
1907년 완공 되었다
당초에는 목조 건축이었는데 중축하면서 한양 절충식으로 고딕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국가 지정 문화재로 지정된 성당은 공사를 중국인들이 맡았다고 하더니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팔자형 창틀과 성당안에 남녀석을 구분짓는 기둥도 여덟개 이다
한지로 된 창으로 투사한 오후 햇살이 부드럽게 흘러 들어왔다
우측 제대 감실에는 김대건 신부의 유해중 목뼈가 모셔져 있다니
경건함이 절로 든다
성당 뒷켠으로 나바위에 오르는 계단 입구에 김대건 신부의 입상이 서 있고
나바위에 오르면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순교비가 세워져 있고
백여미터 화산과 농촌 마을의 주변 경관이 어우러진 망금정에 서니
유유히 흐르는 금강이 고요하기만 하다
망금정을 떠 받들고 있는 나바위 뒤편에는 마애삼존불상이 희미하다
금강 줄기의 강바람과 나바위의 솔바람이 솔솔부는 이곳이 종교를 불문하고
기도처로는 그만이고 신성한 성지임에 틀림없다
오래된 성당의 첨탑 종루가 소나무와 함께 한폭의 그림이다
만경지맥과 호남정맥 금남정맥의 푸른 산 너울 아래 찬란했던 백제 문화 유적과
성스러운 땅을 빠져나와 이제 서서히 여행은 끝이나고 있었다
고향 친구들과도 헤어질 시간이다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의 고장 전주와 익산과도 이별의 시간이
바짝바짝 다가온다
맛과 멋을 잊지 않는 내고향 땅이여
영원하라
청춘은 가고
젊은날은 희미한 희망과 절망이
흩어졌다 모았다를
반복 했었네
이슬 머금은 풀잎에서 희망이 싹텄고
풀꽃 반지 까맣게 시들때 절망은
극에 달했네
고향 언덕 고향 수풀에서
잎이 나고 꽃 떨어져 열매 맺는
사시사철 감동으로 위로가 되었네
고향 강가 고향 연못에서
빽빽한 청춘 실어 보내니
허술한 사랑만 남았네
이제야 조금 알것도 같네
달콤했다 고통스럽다 변덕 떠는
청춘이 떠나가도
자유로운 지금이 최고인것을
2017년 6월 초순 李 貞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