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8. 19. 15:29ㆍ영화
감독-장 훈
출연-송강호(김만섭)토마스 크레취만(위르겐 힌츠페터)유해진(황태술)류준열(구재식)등
1980년 5월18일 광주 민주화 운동을 취재한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회고록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는
한여름 열기만큼 뜨겁다
1980년은 이미 신군부가 최규하를 대통령으로 내세우고 과도적인 군사정부
체제였다
전두환은 최규하 대통령으로 하여금 자신을 중앙정보부장 서리겸 보안사령관으로
발령하도록 하고 권력과 무력을 쥐었다
그해 4월부터 대학가는 학생들의 시위로 휴강중이었고
전국 학생회 간부들은 수배중이거나 체포당했다
서울과 동시에 저항할 만한 인사들은 가택연금이나 체포된 상태였다
"5월17일 심야에 공수특전부대가 광주로 진입했다
5월18일 전남대 앞에서 공수특전대와 학생들 사이에 충돌이 있어났고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학생시위대는 시내로 진출하여 시민들과 합세하게 된다
계엄군은 광주 시내 각처로 번져가는 시위를 막기위해 곤봉과 투척등으로 맞섰다
상황은 공수부대의 과격한 폭력 진압에 대한 광주 시민의 생존권 투쟁으로 확대 되었다"
이상은 황석영의'수인'에 나온다
"그 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 그 소녀~"
경쾌한 리듬이 절로 흥을 돋는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부르며 만섭(송강호)는
신나게 서울거리를 달리며 영화는 시작된다
서울거리는 학생들의 데모와 시위로 곳곳이 막혀있다
택시운전사 김만섭(송강호)는
1973년식 브리사 택시를 몰며 금지옥엽 딸하나를 둔 가장이다
동료 운전사집에서 세들어 살며 십만원의 월세를 제때 못내서
주인집 아줌마에게 굽신거리며 사는 가난한 운전사다
만삭의 임산부를 태워 가까스로 막힌 도로를 뚫어 병원에 도착했어도
지갑을 놓고 왔다는 말에 요금도 못받고 태워주는 순진한 운전사가
광주로 가는 외국인을 태워 그날밤 서울로 돌아오는 댓가로 택시비 십만원을 받기로 했다고
자랑하는 동료얘기를 듣게 된다
고객을 가로챈 만섭은 과거 사우디에서 배운 단어 조합 영어실력으로
주행거리 육십만 킬로에 달하는 택시를 몰고 영화에서는 피터로 불리는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태우고 광주로 내려간다
광주에서 무슨일이 벌어진줄 모르는 만섭에게 가는 도중 검문검색이 심하고
광주가는길은 모두 막혀있다
광주 진입이 안되자 만섭은 서울로 돌아가려 한다
꼭 가야만 한다는 피터와 돌아가려는 만섭 사이에
의사소통은 눈치로 맞춘다
"노 광주 노 머니"
어떻게든 택시비를 받아야만 밀린 월세를 갚을수 있기에 만섭은
비즈니스 관계로 중요한 서류를 가지러 간다고 군인들을 설득하고
시골영감에게 길을 물어 광주로 가는 지름길인 산골짝 사이를 간신히 넘고 넘어
우여곡절끝에 녹색 브리사를 타고 광주에 도착했다
벼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산야는 푸르름으로 싱그럽기만 한데
광주는 살벌했다
광주 거리의 상가는 닫히고 길거리는 선전문구가 나뒹군다
트럭을 타고가는 학생들과 만나는데 그들은 계엄군과 항쟁하다 부상자들이 있는 병원으로
가는중이었다
피터는 카메라를 꺼내들고 인터뷰를 하며 그들과 함께 병원으로 향하고
일단 택시비 절반을 받은 만섭은 갑자기 유턴하여 서울로 향한다
그러다 거리를 헤매는 할머니를 지나치지 못한 만섭은 할머니를 태워 병원까지 데려다준다
피터는 택시에 놓고 내린 필름을 잃어 버린줄 알았다가 병원에서 만섭을 다시 만난다
돈만 밝히는 운전사로 오해 받은 서울택시 만섭과 광주 택시운전사들과 옥신각신 말다툼을 벌인다
그러나 서울집에 혼자 있는 어린 딸을 걱정하는 만섭은 다시 서울로 가려하나
이번에는 오래된 고물차가 고장이 난다
할수 없이 광주 운전사인 황태술(유해진)집에서 피터와 피터의 통역을 맡은 대학생 재식(류준열)과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밤사이 방송국이 불타고 광주의 시민들은 시내로 집결한다
피터의 행각이 사복 군인에게 발각되어 만섭과 피터 재규는 쫒기는 몸이 된다
렌즈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주우러 간 재규는 그들에게 잡혀 시간을 끄는 동안
피터와 만섭은 무사히 태술의 집으로 돌아온다
날이 밝아오고 만섭은 피터와 태술에게 미안한 맘을 전하고 광주를 떠나
순천을 경유하여 서울로 올라가려 한다
군홧발로 죄없는 시민들과 학생들이 짓밟히는 현장을 목격한 만섭이
아무일 없듯이 도저히 돌아갈수 없었다
만섭은 딸에게도 미안하다고 전화하고 다시 광주로 돌아온다
광주는 아비규환 전쟁이었다
광주의 심장부 금남로에서 계엄군이 휘두르는 곤봉에 죄없는 시민들이 두둘겨 맞아 쓰러지고
총검으로 찔려 죽어나가고 총으로 쏴 넘어지고 죽었다
대학가요제에 나가기 위해 대학생이 되었다며 피터에게 팝송실력 영어로 통역해주던 재식은
시신이 되어 병원바닥에 누워있다
반쯤 넋이 나간 피터를 다시 일으켜 카메라를 들게 하고 만섭은 그들을 돕는다
서울택시 만섭과 광주택시 태술외에 여러대의 택시와 트럭은 부상자를 실어 날랐다
광주 상황을 외부에 알리는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피터와 만섭은 그날
서울로 올라가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광주를 빠져 나가는것도 어렵다
외부로 나가는 길은 모두 통제되고 태술이 가르쳐준 샛길로 빠져 나왔는데도
어김없이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
삼엄한 경비에 트렁크에 넣어둔 서울택시 넘버가 들통났는데도
그를 조사한 군인은 통과시키라고 말한다
광주사태가 폭도들이 저지른 일이 아니란걸 아는 의식있는 군인이다
영화지만 가슴을 조리는 순간이다
외부에서 걸려온 전화로 곧 바로 들켜버린 만섭의 택시는 따라오는 사복군인들과
추격씬을 벌인다
아슬아슬 태술을 비롯한 광주 택시들이 사복군인들 차량을 가로 막으며 나타난다
유해진의 웃기는 외모가 믿음직스럽게 보이는 씬이다
그들은 아까운 목숨을 걸고 끝까지 만섭이 광주를 빠져 나가도록 돕는다
서울을 떠날때는 뒷자석에 탔던 피터가 다음날 서울로 돌아 올때는
조수석에 앉아 무사히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이미 보안사의 감시망은 그들이 내일 일본행 비행기 예약사실을 알아낸다
그러나 다음날 예약을 취소하고 그날밤 피터는 일본행을 감행한다
한국으로 꼭 돌아오겠다는 말과 함께 만섭에게 연락처를 받는데
만섭은 성냥갑에 적힌 사복이라는 가명과 다른 연락처를 적어준다
고급 과자통에 필름을 숨겨 공항수색을 무사히 통과했다
꼭 한번 만나고 싶다는 말이 담긴 실제 위르겐 힌츠페터의 생전 영상이 나오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위르겐 힌츠페터는
독일기자로 1963년 서독의 북부 독일 방송 카메라맨으로 입사하여
1967년부터 홍콩으로 발령나 아시아 지역 전문 기자로 활동했다
1969년 베트남전쟁 파견기자로 활동하다 사이공에서 부상당하기도 했다
이후 일본 도쿄지국의 특파원으로 17년간 근무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여러차례 한국을 방문 하여 군부독재시대 공안사건들을 취재하였다
1980년 5월18일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자
다음날 19일 일본에서 광주진입을 준비하여 20일 오전 광주로 왔다
위르겐은 광주에 오는도중 검문소에서 군인들에게 제지당하자
외국회사 주재원으로 위장하고 광주에 남은 가족을 데려가야 한다고 군인들을 설득하여
광주로 진입했다
광주의 참상을 낱낱히 카메라에 담을수 있었고 그로 인해 계엄군이 가해자이고
시민군이 피해자임을 밝혀졌다
23일까지 한국에 잠입하여 광주 참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촬영을 마친 위르겐은 필름을 독일 공영방송을 통해서 내보낸다
그해 9월'기로에선 한국'이란 다큐멘터리를 제작 방송되어 전세계로 나갔다
비밀리에 우리에게도 알려졌다
하지만 정부는 광주 사태의 원인을 공산주의 선동에 의한 폭동이라고 왜곡했다
독일을 시작으로 전세계에 방영된 필름은 오공화국 말기에 국내에 반입되어 진실을 알리는데
기여한다
1986년 위르겐은 광화문 시위를 취재하던중 경찰에 구타당해 중상을 입고
1995년 은퇴하였다
2003년 제2회 송건호 언론상을 받으며 수상소감으로
"내 눈으로 진실을 보고 전하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라고 말한다
위르겐은 광주 민주화 운동 25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광주 명예시민증을 수여받았다
지병인 심장병으로 2016년 독일에서 생을 마쳤다
광주에 안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긴 위르겐의 시신은 가족의 반대로 유해 일부만
5.18묘역에 안치되었다
"푸른눈의 목격자"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객관성을 확보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생전에 수차례 택시 운전사인 김사복을 찾았지만 끝내 만나지 못했다
아마도 택시 운전사는 가족에게 정치적으로 보복이 있을까봐 드러내지 않았나 싶다
아직 그의 행적은 밝혀지지 않았다
총과 검 그리고 공격헬기로 무참히 민초들을 공격했던 계엄군 처벌은 미진하고
발포 명령한자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현대사의 비극인 1980년 광주를 잊어서는 아니되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서 언론통제 했던 군부권력 하수인들은 처벌받아 마땅하다
소시민인 택시 운전사가 진실을 향해 유턴하듯
역사의 진실은 살아 남는다
2017년 8월 씀
글-이 정
사진-네이버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