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2017. 10. 7. 17:27영화

 

가을 단풍 후기

 

 

 

감독-황동혁

출연-이병헌(최명길) 김윤석(김상헌) 박해일(인조) 고수(서날쇠) 박희순(이시백)등

 

경기도 광주와 하남 성남시에 걸쳐 있는 남한산성은

고전소설인'박씨전' 수필집인'산성일기 '김훈소설인'남한산성'

글의 소재가 되었다

 

'고려사'에는

"온조왕 13년에 이르러 한산 아래 책성을 세우고 위례성에 민호를 옮기고

마침내 궁궐을 세워 여기에 거주하였다

이듬해 도읍을 옮겨 남한산성이라 불렀다" 라고 나오고

'삼국사'에는

"신라 문무왕이 비로소 한산에 주장성을 쌓았다" 라고 나온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남한산성은 안쪽은 낮고 얕으나 바깥쪽은 높고 험하여서 청이 처음 왔을때

병기라고는 날도 대지 못하였고 병자호란때도 성을 끝내 함락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인조가 성에서 내려 온것은 다만 양식이 적고 강화가 침략된 때문이다"라고

적혀 있다

 

영화는

김훈의 원작소설을 영상에 담았다

왕의 파천은 강화도로 가고자 했다

 

음력1636년 인조 14 병자년12월14일(양력 1637년 1월9일)

종묘사직의 신주와 함께 봉림과 인평 두대군와 세자빈등 이백여명은

강화도에 도착했다

"전하 적병이 개성을 지났다 합니다"

그날밤 인조도 세자와 함께 강화도에 가려고 남대문에 다달았으나

강화도로 가는길이 막혀 왕은 밤늦게 남한산성으로 들어왔다

성안에는 일만삼천여명의 군사와 오십일분의 식량이 비축되어 있었다

청군은 남한산성 밑의 탄천부근에 포진했다

전국에서 구원병들이 출병했지만 산성에 당도하기도 전에 궤멸당했다

인조는

1624년 이괄의난때 공주산성으로 1627년 정묘호란때 강화도에 이어

세번째 도성을 버리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간다

 

역사는 역사가 모여 이루어진다

 

조선의 왕은14대 선조시대였다 

환란의 시기였던 임진왜란의 칠년간 긴 전쟁을 명이 보내준 구원병과

이순신 장군의 지략으로 일본을 몰아냈다

대륙은 북방의 여진이 강성해져 후금이 된다

15대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고

광해군은 대북파를 기용하여 명과 후금사이에서 중립외교를 실시하였다

적자가 아니었던 광해군은 이복동생인 어린 영창대군만 죽이지 않았다면

반정의 명분도 없었을테지만 형제들을 죽이고 대비를 유폐하여

광해를 비판했던 서인 세력의 불만이 컸다

인조반정으로 조선은 광해군을 폐위하고 능양군을 왕위에 올려

임금을 바꿨다

16대 인조가 왕이 되었다

한편 자신들과 실리외교를 했던 광해군을 몰아냈다는 이유를 들어

후금은 단 열흘만에 평양으로 쳐들어 온다

인조는 강화도로 숨었다

후금은 명과 전쟁중인 상황이라 조선과 형제맹약을 체결한후

1627년 정묘호란은 막을 내리게 된다

그후 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명은 점점 약해지고 후금은 강해졌다

후금의 칸이었던 홍타이지는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스스로 황제라 칭한다

그가 바로 청의 2대왕인 태종이다

청은 조선과의 관계를 형제관계에서 군신관계로 요청하며 세자를 인질로 보내라는

최후 통첩을 한다

조정의 의견은 주화파와 척화파 두갈래로 나뉘어지고 인조는 고민끝에

척화파의 손을 들어 청과 전쟁을 준비하면서

1636년 병자호란이 시작된다

청은 단 오일만에 서울 근처에 당도했다

십오만이 넘는 청의 대군에 남한산성은 포위 되었다

 

영화로 돌아가

강은 꽁꽁 얼고 찬바람이 몰아쳤다

송파 나루를 건너는 김상헌(김윤석)에게 늙은 뱃사공은 남한산성 가는길은

서문이 빠르다고 길을 안내해준다

어제 어가를 얼음위로 인도하고도 좁쌀 한줌 얻지 못한 사공이

내일은 청병을 인도하고 곡식이라도 얻어볼 요랑이라던 뱃사공은

배고픈 백성일뿐인데 김상헌은 사공을 단칼에 베어버리고 서문으로

남한산성에 들어온다

성안과 성밖은 겨울눈이 많이 내리고 있었다

조정이 들어오는 바람에 눈치 빠른 성안의 백성들 또한 불편해도

어디다 대고 하소연할곳도 없다

겨울 바람만이 더 쌩쌩 얼굴을 때릴뿐이다

산성안에서 조정 대신들의 의견은 두갈래로 갈린다

지금의 외교부 장관인 예조 판서 김상헌과

지금의 인사혁신처 처장인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이

절체절명 위기에서 숨막히는 갈등이 시작된다

 

STILLCUT

척화를 주장하는 상헌은

임진왜란때 원군을 보내준 명나라의 의리를 저버릴수가 없고

밖으로는 근왕병을 모으고 청과 결사항전을 하자고 한다

"신은 가벼운 죽음으로 죽음보다 더 무거운 삶을 지탱하려 합니다"

상헌의 곧은 절개와 신념이 돋보인다

주화를 주장하는 명길은 의리를 지키는것은 사람 사이이지

국제관계는 적용할수 없다며 화해하여 훗날을 도모하자고 한다

"죽음은 견딜수 없고 치욕은 견딜수 있습니다"

명길의 실리를 추구하는 뼈 아픈 말이 돋보인다

춥고 배고픈 산성안에서는 엇갈린 주장만 살아있고

무능한 인조와 우유부단한 영의정 김류를 비롯 대신들은

갈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서날쇠는 아내와 쌍둥이 아들 둘을 성밖으로 내보냈다

영화에서는 대장장이 서날쇠의 아들대신 딸로 표현된다

실제 대장장이 이름은 서흔남이었다

서흔남은 파천도중 임금과 신하 모두 지쳐 있을때 근처에서 나무를 하다 달려와

인조를 등에 업고 산길을 걸어 남문으로 들어왔다 

소원으로 얻은 곤룡포를 간직하다 무덤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인조와 서흔남의 동상은 송파 도서관 마당에 설치되어 있다 

성안에는 지방 관아와 포도청 장터 방앗간과 술도가와 서낭당등이 있어

어느 산골지방이나 다름없이 민초들은 자족하며 살았던 조용한 마을이었다

그곳에서도 봄이되면 꽃이 피고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면 곡식을 거두었다

어린 생명들이 태어나고 짝을짓고 살다 죽고 자연스런 삶과 죽음의 땅이었다

임금의 어가행렬이 들어오고 나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하고 곤궁해졌다

성안의 남자들과 군졸들은 성첩과 성벽을 지키고 서 있는데

꽁꽁 언 얼음바닥과 매섭게 부는 바람으로 손과 발은 얼고 동상이 걸렸다

가마니를 하나씩 나누어 주면 그나마 추위를 피할수 있지 않겠냐고

의견을 말했던 서날쇠는 비뚫어진 조총과 병장기들을 수리하여

힘을 보탠다

상헌은 뚝심좋은 그런 날쇠를 눈여겨 둔다 

충정 전라 경상도의 삼남에 격서를 보내야 하는데 성밖은 청병들로 막혀있고

적군을 뚫고 나갈자가 조정에는 아무도 없었다

성밖에는 온통 적들이 깔렸다

 

적들이 깔린 성밖에서 김상헌이 죽였던 사공의 어린딸은 성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상헌이 어린딸은 거두고 만감이 교체되는 심정이다

한편 최명길은 정명수가 통역관으로 와 있는 청의 진지로 가서

조선이 나아갈길을 알아 본다

정명수는 지난날 조선의 노비였였다

"세자전하를 보내지 않으면 화친은 없을것이라 하옵니다"

명길이 인조에게 말한다

적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서라도 삶을 지탱하자는 명길은

죽을 각오면 화친은 할수있다고 한다

하지만 오랑캐에게는 죽어도 무릎을 끓을수 없고 오히려 명길의 죄를 다스려

군사의 사기를 올리자는 상헌의 팽팽한 대결로 한치의 양보도 없다

김상헌은 서날쇠에게 삼남지방에 격서를 전달하라고 성밖으로 내보낸다

책에서는 전라 감사에게 전한 격서가 여러군진들에게 전해졌다

충청과 경상도 강원도 군사들이 남한산성 가까이에 진격하였으나

청의 군사들에게 죽고 흩어졌다고 나오지만

영화에서는 도원수에게 전달 하기도 전에 중간에서 격서를 가지고온 서날쇠를 죽이려 든다

그러나 서날쇠는 책임을 회피하여 빠져 나갈 궁리만 하는 벼슬아치를 믿지 않는다 

 

여전히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병사들은 성첩에 있다

격전다운 격전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군병들은 얼어죽고 동상걸려

죽을 지경이다

실제로는 북문밖으로 출병하였으나 적들이 싸우지 않아 날이 어두워지자

오히려 우리병사들이 사상자를 낸일도 있었다

김상헌이 적진에 나아가 죽기를 원해 서문으로 육박하는 적들은

수어사 이시백이 힘을 합해 물리친일도 있었다

주화 척화 아무쪽도 아니고 다가오는 저을 잡을뿐이라는 이시백은

장수다운 장수의 기백이다

 

명길은 설날을 맞이하여 소와 돼지 술을 들고 청의 진영에 갔다

성안에서 굶주리는 니네 왕과 백성이나 먹이라는 민망한 말만듣고

선물과 함께 되돌아온다

송구의 예법이 무시되고 점점 성안에서는 말싸움만 하다가

시간을 흘려 보낸다

이제 더 이상 나아갈곳도 물러날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산성에

임금은 갇혔다

 

군병들이 덮었던 가마니는 말먹이로 빼앗기고 동상 걸린 손발은

돼지기름으로 발라봐도 떨어져 나간 손가락으로 총을 들수가 없다

참혹한 광경이다

실제 그해 겨울은 혹독한 추위였다고 한다

굶어 죽은 말의 고기는 사람이 먹었다

그래도 배는 고팠다

굶어서 죽으나 싸우다 죽으나 죽기는 매한가지

허연 쌀밥은 아니래도 배터지게 한번 먹어보던지

아님 싸움이라도 실컨 한번 해보고 죽고 싶다는 군졸들 모양새는 거지꼴이다

 

삼십만 대군을 이끌로 청나라 홍타이지가 조선으로 들어온다

1월22일 강화도가 함락되었다

강화도에 피신해 있던 왕자와 군신들이 청군의 포로로 잡혔다

청병들은 망월봉에 포진지를 꾸리고 화포를 행궁쪽을 바라보고 설치한다

북경을 향해 명의 천자에게 망궐례를 행할때도 가만히 지켜보던 청이

망월봉에서 홍이포를 발사하여 행궁마당에 떨어지고 행궁의 담을 무너뜨렸다

성안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전쟁에서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다만 한마리 파리목숨이다

조선은 더이상 버틸힘을 상실했다

 

STILLCUT

문장가는 많았지만 칸에게 올릴 국서를 지을 대신들은 없었다

책에서는 어명을 내린 정육품 수찬은 아파서 정오품 교리는 심장병으로 죽어서

정오품 정량은 미친척해서 국서를 짓지 않았다

명길의 국서는 글이 아니라 길이었다

글을 밟고 길을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명길의 글은 여러번 수정되었다

"나는 살고자 한다" 인조의 말과

"신은 이제 만고에 역적입니다"명길의 말이다

산성을 빠져나온 명길은 말은 달렸다

그리고 우리는 치욕을 감당해야했다

 

척화를 주장한 윤집과 오달제를 묶고 최명길이 임금을 모셨다

인조은 임금의 옷을 벗고 죄인의 옷인 푸른색옷을 입고

서문을 통과하여 성밖으로 나왔다

임금은 청의 칸앞에서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를 행했다

三排九鼓頭禮 삼배구고두례의 항복의식을 취하고

1637년1월30일 해질무렵 도성으로 돌와왔다

양력으로는 2월24일 흙냄새 나는 냉이꽃이 필 무렵이다

47일만에 귀성이다

2월2일 임금은 전곶장에 나가 칸을  전송했다

소현세자 봉림대군 빈궁과 오달제 윤집 홍익환이 인질로 잡혀

선양으로 끌려갔다

치욕스런 삼전도비는 현재 석촌호수변에 서 있다

영화는 실제 역사와도 비슷하고 책에 나온 날카로운 문장을 보듯

거의 같았다

 

임금은 남한산성의 서남쪽인 남문을 통과하여 성안으로 들어갔다가

남한산성 북동쪽의 문인 서문을 통과하여 성밖으로 나왔다

남문인 至和門은 유일하게 현판이 남은 문이다

국정을 다스리는 행궁의 좌측인 동문은 左翼門이고

송파나루와 가까우나 경사가 급해 우마차는 드나들기 어려운 서문은 右翼門이다

성의 북쪽으로 해발365m지점인 북문은 戰勝門이라 불린다

서고동저의 기복을 형성한 남한산성은 천혜의 요지로

주봉인 해발고도 482.6m의 청량산을 중심으로 북쪽의 467.6m의 연주봉과

동쪽으로 남한산의 주봉인 522m의 벌봉과 502m의 망월봉

남쪽으로 414m의 한봉의 봉우리를 연결하여 쌓은 성이다

바깥쪽으로 경사가 깊은 반면 안쪽은 완만하여 방어에 유리하고 적의 접근이

어렵다

내성과 봉암성 한봉성 신남성의 세개의 외성을 비롯하여

다섯개의 옹성과 함께 경고한 방어막을 구축했다

지금의 형태는 인조시대에 증축되었다

성안에는 유사시 거처할 행궁도 건축되고 수문과 장대를 설치했다

현재 남아있는 장대는 다섯개의 장대중 서쪽의 서장대인 수어장대뿐이다

은밀하게 식량과 무기운반을 하고 원군이나 척후병들이 들락거렸던 16개의 암문을 비롯하여

백제시조 온조왕의 위패를 봉안한 숭렬전과 당집인 청량당과 연못인 지수당과 사찰등이 있다 

초소건물인 군포지와 물자를 보관하던 별창은 터만 남았다

병자호란 이후 남한산성은 조선말 의병활동 거점지가 되었고

일제 강점기때는 항일민족운동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해방후에는 공산주의 운동 중심지 역활을 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때 성벽과 성내 건물이 파괴되고 훼손되어

복구했다

현재 도립공원으로 성남시와 광주시 양방향으로 남한산성을 관통하는 도로가 나있고

2014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현재에 이른다

 

"사직을 위해 죽는것이 신의 뜻입니다"라던 김상헌은 어린 나루를 서날쇠에게 맡기고

활복 자살한다

책이나 실제와도 다른 표현이다

책은 조카들이 보는 앞에서 목을 매나 사직을 윤허한다는 뜻을 전달하러온

도승지에 의해 가까스로 살아난다

실제도 김상헌은 자결에 실패하여 후에 심양으로 끌려갔다 돌아온다

죽을고비를 넘기고 성안으로 돌아온 서날쇠는 대장간을 다시 열고

영화는 끝이난다

 

그후

김상헌은

인조의 어가를 따르지 않고 안동의 학가산에 들어갔다

1639년 청이 명을 공격하기 위해 지원병을 요구했지만 출병반대 상소를 올려

1641년 청에 압송되어 투옥되었다

사년후에 소현세자와 함께 풀려났다

그는 82세까지 장수했다

조선말기 세도가인 안동김씨일가가 그의 후손들이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수상하여 올동말동 하여라"

청으로 압송되어 가며 지은시다

한편

최명길은 영의정이 되어

임경업을 통해 명과 비공식적인 외교를 하려다 발각되었다

반청사실이 알려져 스스로 청에 인질로 지원하여

1642년 심양으로 압송되어 투옥되었다

소현세자와 김상헌과 함께 풀려났다

그는 오랜 지병으로 61세에 죽었다

주화론과 항복론을 주장하여 대한제국이 멸망할때까지 비판의 대상이었으나

후대에 주화론은 재평가 되었다

 

김상헌

"이제야 서로의 우정을 되찾았으니

문득 백년 의심이 풀리는 구나"

 

최명길

"그대의 마음은 돌같아

끝내 돌이키기 어렵지만

내 마음은 둥근 고리같아

때로는 돌아간다오"

 

애국하는 방법이 다른 두 신하는 심양에서 억류생활을 하면서

마음을 터 놓고 서로를 이해했다

 

명에서 청으로 교체되는 그시대와

미국과 중국의 세력다툼이 한창인 요즘과 한반도의 어려움이 겹친다

두번 다시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것은

그시대의 백성인 서날쇠나 지금의 백성인 나나 같은 마음이다

"양 극단에 있는 두 인물을 둘 다 충신으로 평가하는데

사백년이 걸렸다"고 김훈은 말했다

올곧은 상헌에게 힘을 보탰으면 영화는 상업적으로 변했을텐데

조금 낯설지만 다른점을 인정해주는게 훌륭했다

책을 읽어내듯 내뱉어내는 김상헌역의 김윤석 연기보다

최명길이 살아 돌아온양 이병헌의 자연스런 연기가 좋았다

아마도 개인적으로 최명길의 실리외교쪽으로 맘이 기울어져 있었나보다

 

봄에는 민들레꽃 피는 성벽위로 벚꽃잎이 날리고 여름이면 노란 딱지꽃과

보라색 제비꽃이 많은 성벽을 따라 올라가면 수어장대 아래에서

솔바람이 불어온다

수어장대에 올라서 바라보니 백제의 중심지였던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의

화려했던 지난날 역사는 땅으로 스며들어 한강물에 유구히 흐른다

잠실벌에 마천루는 하늘로 치솟고 강너머 아차산과 불암산이 손에 잡힐듯 가깝다

물길은 송파나루로 산길은 검단산으로 이어져 동서남북 천혜의 군사요지였던

남한산성의 그해 겨울은 몹시 추웠다

얼은 땅에 다시 눈이 내리고 쌓여 길은 미끌었다

깊고 높은 서북쪽 성벽밑은 얼어붙은 한강이 녹아야 땅이 풀어진다

갈길 잃은 왕과 백성의 탄식이 들리는 남한산성에

이제 붉은 물이 들었다

성의 남문밖에는 그날의 치욕스런 아픔을 함께한 늙은 느티나무도

가을옷으로 갈아 입었다

가을이 깊어간다

 

 

 

남한산성

 

바람이 분다

성안으로 성밖으로

 

물길과 산길이 흐르는곳으로

보이지 않는 바람의 숨결이

영원히 흐른다

 

슬픔과 고통

고독과 허무

고립과 단절

 

거친 들판과 안락한 왕좌에

살점이 얼어 떨어지고

시린 뼈가 썩어 문들어져도

생성과 소멸은 거듭 되었다

 

오백년 우주의 시간이 걸려

전쟁의 참화를 딛고

민들레꽃이 피고지고

푸름으로 무성해졌다

 

치욕

아픔

갈등

견디어 내고

환하게 불타오른 

단풍든 이파리를

이제 떼어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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