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13. 00:39ㆍ친구
일시-2017년 12월12일 화요일 밤
장소-와라와라 사당2호점
이틀전 내린눈은 만져보지도 못한채 말끔히 치워졌다
한파가 몰아친 수도권이 종일 영하날씨라는 예보에도
집안에서는 그저 뉴스로만 여겼다
아파트 현관을 벗어나 쓰레기 분리수거를 마치고
백미터도 안되는 버스정류장까지 거리가 시베리아 공기를 쏟아놓은듯
차고 날카롭다
한 낮에 팽팽했던 태양도 고층아파트를 휘감고 도는 바람의 기세에
금세 기운을 잃고 시들어갔다
내복을 껴입고 나올걸,
사람 많은 전철안이나 식당과 관공서 실내 어디를 가도 요즘은 난방이 잘되어
덥다고 중간에 벗을수도 없고 해서 집안에서는 입었던 내복을 벗고 나왔더니
차디찬 쇠붙이를 등짝에 집어 넣은듯 찬기운이 피부를 파고들어 한기가 든다
구겨지면 한주먹밖에 안되는 털옷 하나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던지
몸 구석구석 숨겨서 보온할수 있는 핫팩이나 손난로를 가지고 다녀야지
하면서도 매번 깜빡 잊고 나와 후회를 한다
도솔봉에서 폭격기 바람소리가 나는 바람 맞고 걸린 감기몸살이 이제 겨우
나아가려는 참이라 지하철 편의점에 들러 핫팩 하나 사려고 들어갔더니
품절이다
약속된 시간보다도 삼십분이나 빠르게 도착 하겠다면서도
남편은 급하게 방금 도착한 차를 타기 위해 뛴다
산에서도 쫓아 가느라 숨차고 땅에서도 지하에서도 쫓아 가느라 숨이 차다
뛰어 내려 전철로 갈아타고 다시 환승하고 이제는 땀이 난다
내복 입지 않고 핫팻 사지 않은것이 천만다행이다
내복 입고 핫팩까지 붙였다면 너무 데워져 떠 죽을뻔했다
겨울을 그리워했던 날도 있었다
머리가 벗어질듯 뜨거웠던 여름날을 생각하면 춥다는 소리를 하지 말아야 하거늘
한두 시간만에 이랬다 저랬다 간사하기 짝이 없는 몸은 사당역에서 하차했다
다시 땅위에 서니 이제는 또 춥다
오늘밤은 얼어붙은 산 정상보다 따뜻한곳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와라와라에 도착했다
오라오라보다 어감이 강한 와라와라는 식당이라기 보다 주점이었다
그리고 하나둘 어색한 만남과 반가운 만남이 이루어졌다
매운 해물탕과 술기운으로 분위기가 오르자 가족같은 끈끈한 산우애가 살아난다
작은 고추가 더 맵다더니 우리의 청량고추보다 작은 태국고추를 넣었나
살다살다 눈물 콧물 쏟는 이런 매운맛은 처음이다
석산봉님에게 뿅 가서 산악회에 나왔다는 산우 말처럼
나도 석산봉님 보면 뿅 갈수 있으려나 했더니 그분은 안보인다
울트라 백두대간을 마친 산우분들과 함께 카페를 처음 개설하고
산악회 이름 공모할때 나도 부르고 듣기 쉬운 봉산악회가 좋다고 추천 했었다
그뒤로 많은 산우들이 가입하였다
이미 다른 산악회 산우들은 봉산악회에서 산행 간다고 하면 지례 겁을 먹을 정도니
산에서는 타고난 전사들임에 틀림없다
누군가 아내도 산행같이 하자고 하길래 마누라 죽일일 있냐,라고 답했다는걸 봐도
평지길도 아니고 산길을 이삼십킬로씩 걸어낸다는 것은
일반인들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처음 백두대간 갈때처럼 토하면서 죽기 아님 까물어치더라도 따라가면 갈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아니 영원히 부족할지도 모른다
삼사십년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취미가 같다는거 하나로
기분좋은 만남이 될수있는 현장을 목격했다
플라톤이 말하는 행복의 조건은 재산과 용모 명예와 체력 그리고 말솜씨가 완벽한거보다
약간 부족한것으로 여긴다
재산과 명예는 알턱이 없지만 용모와 체력 말솜씨까지 뛰어났다
건강한 얼굴색에 탄탄한 근육질 몸매의 봉전사들 모두에게 뿅 갈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좀 더 젊었을때 머리끄덩이라도 잡아 끌어 억지로 운동을 시키지 못한걸 후회하지만
운동이라는 글자도 싫어했던 내가 이 정도까지 될수있었던것도
여러 산우분들 힘이 크다
몹시 추운날에 뜨거운 만남의 일부가 서서히 끝이나고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오니 다시 춥다
카페 술집 식당 모텔 노래방의 휘황찬란한 조명은 춥지도 않은지 반짝이고
점점 내려가는 기온은 가벼운 바람도 더 차갑게 만들었다
사통팔달 사당역 주변의 밤 문화는 자연의 세계와는 격이 다른 문화라서
작년에 이어 두번째 경험은 충격이다
집 나온지 서너시간 지나자 빨리 집에 가고 싶다
발걸음은 빨라지고 다시 열이 나서 목도리를 벗었다 끼웠다 하면서 집에 와보니
머리묶은 고무줄은 어디로 빠졌는지 산발한채 집에 왔다
매운 해물탕으로 뜨끈해진 위장을 식히려 시원한 홍시 한개를 먹고
짧은 하루중의 밤시간을 함께한 정깊은 산우들을 떠올렸다
참으로 올 한해는 한반도가 다사다난했던 해가 아니였나싶다
남한은 무능했던 대통령이 탄핵으로 구속되어 새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지금은 적폐청산이 한창이다
북한은 핵확산을 앞세운 핵전쟁 모험으로 한반도뿐 아니라 동아시아
나아가 모든 국가에 전쟁과 평화를 시험하고 있다
주변국들의 간섭이 아닌 남과 북 우리가 주인답게 행동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도 정신없이 지나갔다
난생 처음 어쭙잖게 책을 출간하여 여러사람들을 만나고
둘째 딸은 헝가리에서 시집을 보냈다
이어갈듯 끊어질듯 하는 한북정맥을 마치고
거꾸로 백두대간은 희양산을 건너뛰고 소백산을 다녀왔다
시끄럽고 어지러운 세상에서도 각자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살다
산에서 만나면 반가울것이다
계절이 가고
또,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꽃 피고 새우는 봄인가 싶으면
여름이 와서 진액을 빼고
노랗고 빨간 단풍철인가 싶으면
겨울이 와서 춥습니다
격정으로 피어났던 봄이
텅 빈 겨울 하늘이 되기까지
바람도 물길도 거슬렀던 많은날들이
사계절에 녹아 내립니다
또, 이별을 해야 합니다
찬란하게 불사르던 가을이
한두달만 길었어도
부서졌던 꿈들이 눈을 뜰텐데
시간의 폐달은 돌고 돌아
아침이 오고 저녁이 오듯
이별의 아픔속에서 깊어진
사랑이 찾아 옵니다
또,그리워 해야 합니다
겨울이 되어서야
옷깃에 스민 어지러운 봄 꽃 그림자와
떨어진 낙엽 밟는 바스락 소리 들으며
마지막 잎새의 진자리를 느낍니다
이제는 내리자마자 녹는 함박눈과
얼음 풀린강에서 다시 푸른 봄빛을
기다려 봅니다
2017년 12월 13일 이정씀
'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년 경인 삼례초 송년모임 (0) | 2017.12.16 |
---|---|
재경 총전주여고 인수인계 모임 (0) | 2017.12.15 |
대학 동창 (0) | 2017.11.04 |
2017년 초등 동창회 (0) | 2017.10.22 |
여고 사십주년-1 (0) | 2017.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