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2. 11. 11:02ㆍ산문
친구가 죽었다
친구는 가끔 모임에서 만났다
이름자에 큰형이 들어 있다며 지가 우리보다 세 살 많다고
농담을 진담처럼 했던 친구가 사망이라는 문자가 날라왔다
농담인줄만 알았다
허망한 하루 이틀이 지나고 친구는 진짜 저 세상으로 떠났다
작년 가을에는 백두대간을 동행하는 일행중 산객 두명이 산이 되었고
한달전에는 갑작스레 일흔의 안사돈이 돌아 가셨다
지난주 황장산을 오르면서 천미터고지의 바위능선에서 아찔한 경험을 하고
유언장이라도 써놓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오래전에 썼던 유언장을 들쳐보니 당시 심정이 고스란히 배여
유언장도 그때그때 다르겠다고 느껴진다
내 나이 벌써 耳順이다
이순은 공자의 말을 기록한 논어의 '위정편'에 나로는 말로
사람 나이 예순살에는 인생의 경륜이 쌓이고 사려와 판단이 성숙하여
남의 말을 받아 들이는 나이라 했다
철 없이 살다보니 나이 먹는줄도 모른채 몸은 점점 늙어가고 맘만 아직 청춘이다
환갑이면 오래 살았다고 잔치상 받던 시절은 가고
지금은 환갑이면 꽃띠나 다름없이 좋은 세상이다
가정이라도 죽었다고 생각하니 벌떡 일어나 더 살고 싶고 슬프다
자식들 낳고 기르면서 한평생 길다면 길게 짧다면 너무 짧은 생을 살았다
그동안 어찌살았는지 눈깜짝 할사이 지나고 남는건 하나도 없다
불교 게송에는
"生也一片浮雲起요 死也一片浮雲滅이고
浮雲自體本無實요 生死去來亦如然이다
세상에 태어남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자취없이 사라지는것이다
뜬구름이란 그 본래 실체가 없느니
삶과 죽음 또한 이와 같다" 란 말이 있다
법당이나 예배당에는 가지 않아도 너른 자연속을 걷다보면
사계절이 지나가듯 사람도 각자의 시를 짓다 사라진다는것을 알수있다
무한하고 위대한 자연속에 나는 살때도 작은 티끌같은 존재라서
죽고나면 금세 잊혀지게 될것이다
空手來 空手去 是人生이라지만
그래도 후회는 남는다
좀 더 재미나게 살았으면
좀 더 배풀고 살았으면
좀 더 지혜롭고 현명하게 살았으면
이제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훨훨 날아 갈일만 남았다
이 나이 먹도록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권력과 부와 지위와도
담쌓고 근근히 살았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았어도 남은 욕심과 집착이 있었나보다
특히 잘못한일은 없어도 아쉬운일은 많았다
낳았다고 다 어미냐만은 부족해도 자식들 잘 되라고 기도했고
재산 싸움 만들일은 안했으니 잘한일이고
바르고 정직하라는 정신적 유산을 남겼으니 그것도 잘한일이고
너희들 삼남매 모두 건강하게 사회일원 되었으니
그것 또한 잘한일이라 내 자식들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남편
어쩌다 그많은 남자와 여자중에서 짝이 되어 삼십오년을 함께 살았으니
억겁의 인연이 있었나 보다
한번에 꽥 같이 죽으면 행운이겠지만 사고가 아닌이상 네살이나 적은내가
당신보다 일찍 죽는다는것은 어려운 사건이다
하나에서 열까지 안심을 못하고 나를 챙기던 사람이라
어차피 죽으면 물귀신같이 또 만날거 같다
아내없는 홀아비는 이가 서말이라는데 꼬질꼬질 집에만 있지말고
사는동안 팔 다리 성할때는 부지런히 운동하다가 왔으면 좋겠다
결혼 문화처럼 장례문화도 나라마다 다르고 유행을 따르는거 같다
요즘은 이박삼일 장례식장에 있다가 화장시켜 납골당이나 수목장에 안치시키는것이
보통이더군
자식들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고
저승 백년보다 이승 일년이 좋다지만
죽음은 현실이다
어미는 시끄럽고 화려한것은 딱 질색이니 조용히 장례절차를 마치도록하자
어미 잃고 슬픈 감정 추수리는 시간은 필요하겠지
이박삼일 엄마와의 지난 기억들을 떠올리며 서로 위로하고
홀로 남은 아빠에게 한번이라도 더 기쁜일이 있도록 하자
뼈와 살은 불로 그을려 재로 만들면 한 줌 밖에 안된다
납골당에 안치하든 수목장으로 나무밑에 안치하든 죽어버린 나는 그걸 감지할 의식이 없으니
너희들 몫이다
행여 산행하다 죽으면 그자리에 남은 재 조금이라도 날려주면
산새 되어 봄엔 봄꽃 여름과 가을엔 녹음과 단풍 겨울엔 눈꽃위를 나르고 싶다
남은 가족과 이별이 아프다
이제는 정말 떠나야할 시각이다
2018년 2월 12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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