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노치마을~매요마을

2018. 11. 7. 13:52백두대간


일시-2018년 11월6일 화요일 미세먼지 자욱

장소-백두대간 남원 운봉의 노치마을에서 매요마을 까지

코스-노치 마을 회관-수정봉-입망치-여원재-방아재-고남산-통안재-매요마을 회관

      백두대간 16.9km를 6시간 걸림


어제 아침운동을 하지 말걸 조금 과했나 밤에 목이 칼칼하고 기침이 나와

약을 먹고 잤다

다른날보다 더 이른 새벽녘에 일어났더니

잔기침이 나오던 목은 가라 앉았는데 머리가 맑지 않다

그래도 약속된 대간길은 걸어야 되기 때문에 느긋하게 전날 끓여둔 닭 미역국에 밥말아 한술뜨고

배낭을 둘러매고 집을 나섰다

새벽 기온이 꽤나 쌀쌀하다

미세먼지 잔득낀 대기는 뿌옇고 이제 얼마쯤 있음 떨어져 버릴 가로수잎들도

뿌연 안개를 뒤집어쓴듯 하다

집 나서 남부 지방까지 왕복 열시간이나 차를 타야 하기에 산행보다 오히려 고역인게 차타는것이지만

하기 싫어도 기꺼이 즐길줄 알아야 한다

울렁울렁 차멀미 안하는것만도 장족의 발전을 한것이라 여기고

오늘도 산꾼들이 타고 있는 버스에 올라탔다


오만분의 일의 지도상에는 노치마을이 가재마을로 나온다 

옛날부터 이지역의 물맛이 좋다고 하더니 마을회관을 지나면 곧바로 노치샘이 나온다

동네 뒷산에는 소나무 네그루가 얼마나 멋있는지 찍사들이 탐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수령 이백오십년이 넘은 소나무는 이지역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는듯 마을을 굽어보고 서 있다

기온이 십오륙도가 넘는다길래 여름 바지에 발토시만 하였는데 시작도 하기전에 벌써 덥다

토시를 벗고 여름차비를 하고 산행시작이다

소나무 동산을 벗어나

550m의 마을에서 804.7m의 수정봉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다

처음부터 날다람쥐 모양 쉬쉭 올라서는 일행들을 따라가다가 숨막혀 죽는줄 알았다

수정 광산이 있었다는 수정봉에는 커다란 정상석만이 덩그런히 서 있었다

17킬로에 주어진 시간은 여섯시간 삼십분인데 초반부터 너무들 빨리 달려간다

백두대간 대장정이 새로 시작되어 아직 서먹서먹한 일행들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무섭다

대간길 걷는것이 심신 단련은 기본이고 자연을 보고 생각하고 절로 터득하여 배움의 길이 되여야 하거늘

친구가 강남간다고 나도 따라 나선격이 되어 오늘 여정이 피로하게 생겼다

"멈추지 않는 이상 얼마나 천천히 가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공자의 말대로 남들이 가든말든 내길만 걸으면 될것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수정봉 봉우리에서 선두에게 길을 양보하고 한숨 돌렸다

오렌지 주스로 목을 축이고 남은거리 15km이제부터 시작이다

잡목들의 나뭇잎도 우수수 떨어지는 길을 서서히 내려 입망치이다

우마차가 다녔다는 낮은고개인 입망치까지는 들머리에서 수정봉까지 애써 오른 고도를 그만치

내려서는 길이다

오른만치 내리고 내린만치 올라서야 하는 대간길은 오르락내리락 인생길과도 비슷하여

힘들때도 있고 쉬울때도 있어 길을 걸으며 인격을 쌓는 고된 수양이다

다시 남원의 운봉과 이백면을 잇는 여원재까지는 조금 오르고 조금씩 내리면서 꾸준히 걷는다

덥다

만추의 끝자락이건만 봄처럼 따끈하며 온 몸이 후꾼거린다

모자도 벗어버리고 바지도 정강이까지 올려도 더워 등짝과 이마에 땀이 송글거린다

이 지역은 유난히 소나무가 많았다

너무 다닥다닥 심어 아름들이 소나무가 되려면 솎아내줘야 할거 같다

소나무 향내와 낙엽냄새가 코끝으로 들어와 폐부까지 기분은 좋았다

미세먼지 자욱해서 덥고 습하지만 않다면 길도 편하고 푹신해서 참 좋았을것을

하여간에 몸이 뜨거우니 만사가 귀찮다

걷는 수행길이 고역이다

여원재에 다달았다

뒤로 보이는 황산이 그 유명한 백제의 계백장군의 전쟁터였던 황산벌이다

고려말 왜구의 무리들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주모가 자결하고 훗날 이성계에 꿈에 나타난 노파가

주모의 원신이라 여기고 여상과 산신각을 지어 주모의 넋을 기렸다고 전해져 여원이란 이름이 붙었다

눈이 크고 얼굴이 동그란 운성대장군을 뒤로 하고 24번 국도를 건너 대간 숲길로 들어선다

남원평원과 운봉고원을 가로지르는 방아치를 지난다

1894년 갑오년 동학농민혁명때 김개남 장군이 농민군을 이끌고 영남지방으로 진출하려

운봉현을 공격했으나 패하고 많은 농민들의 사상자를 낸 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동학혁명의 한이 서린 곳곳에 표지판이 있다

마을을 지나는 여원재 고개 부근에는 마을주민들의 무덤도 많다

배추밭에 김장배추가 푸르게 속이 차오르고 이미 무우밭은 추수를 끝낸 상태다

낮은 언덕에도 한해의 곡식을 걷어들이는 추수로 분주한 마을이다

이어 고남산까지는 다시 오르내리며 고도를 올려야 한다

고남산 정상 가기전 산불감시초소가 있는데 이곳은 고려 우왕 1380년 당시 왜구가

인월역에 진을 치고 주민들을 괴롭히고 약탈을 일삼아

이곳을 지나던 이성계가 고남산 높은곳에 석축 제단을 쌓고 산신제를 지냈던 곳이다

지금은 산불 감시초소가 있고 늘상 지킴이가 돌아가면서 지키고 있다

뒤로 보이는 산과 산아래 앉은 낮은 마을이 정겨우나 먼지끼어 흐리멍텅하게 앵글에 잡힌다

이어 몇발자욱 조심스럽게 암릉바위를 내려서면 고남산 정상석이 나온다

정상석 주변으로 햇볕이 고스란히 비쳐 억새꽃이 유난히 반짝였다

이제 얼마남지 않으면 모두 떨져 버릴 하얀꽃술이다

이성계가 산신제를 지내고 나서 왜구를 격퇴하였다고 하여 태조봉이나 제왕봉이라고도 불린단다

삼국시대에 축조되었다는 고남산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하는데 좀전에 암릉길이었던가

잘모르겠다

고남산에서 통안재까지 하산하는 길은 통신탑을 지나고 세번의 임도를 지나고나서야

고개를 넘는다

오후 햇살이 점점 사그라지려고 하고 벌써 걷기 시작한지 다섯시간이 넘었다

이어 통안재가 나오고 5킬로를 더 걸어 내려와 매요마을 회관 오늘의 날머리에 다달았다

회관아래 오랫동안 대간길 걷는자들에게 라면과 술을 판매했다는 매요할머니집에서

라면을 먹었다

뜨겁고 매운 라면이 싫지만 긴 시간동안 귀경할려면 뭔가를 먹어줘야 그나마 어질병이 덜하기에

다른 식당이 없어 할수없이 라면을 먹으려니 그것도 고역이였다

굳이 백두대간길을 상중하로 따지자면 하에 속한다는 오늘 여정도 힘들어 겨우 마쳤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한달두달 지나고 점점 세월이 지나 그런지

할때마다 한번도 쉽게 넘어가는 대간길이 없다

그래도 무릎 테이핑을 깜빡 잊고 안하고 걸었는데도 멀쩡한 무릎이 고맙기만 하다

산 아래로 내려와보니 산도 붉고 나무도 붉고 사람도 붉었던 가을이 떨어지며

앙상하게 가지들을 보이고 있다

다녀온지가 벌써 이틀이 지났는데 길위에 떨어진 낙엽과 폭신한 솔향이 전해오는듯 하다

지리산 갈때 가져갔던 아이젠까지 들고왔건만 미세먼지로 인해 기온을 올라

더워 미치는줄 알았던 하루였다

미세먼지는 언제쯤 사라지려나 대간길 가는날부터 며칠째 답답한날들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