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차 첫째날 뻬재에서 육십령까지

2019. 5. 9. 06:36백두대간

 

일시-2019년 5월7일~5월 8일 일박이일

장소-백두대간 빼재에서 육십령까지 남진

코스-신풍령(빼재)-갈미봉-대봉-지봉(못봉)-횡경재-백암봉-동업령-무룡산-삿갓재 대피소 일박

      -삿갓봉 우회로-월성재-서봉 삼거리-남덕유산-서봉 삼거리-서봉-할미봉-육십령

      첫째날 19.5km를 8시간 40분 걸리고 둘째날 14.5km를 6시간 30분 걸려

      대략 총 34km를 15시간 10분 걸림


덕유산 종주다

북진하면서 지리산과 봉화산을 지나 진즉에 걸었어야할 덕유산 구간이다

백두대간 입문한지가 오년째로 벌써 세번째로 밟는 긴 구간이라 각오가 필요하다

당일 산행때보다 하루치 먹을양식과 식수를 챙기느라 배낭이 묵직했다

산장에서 이천원씩 사는 담요대신 몽블랑 갈때 쓸라고

미리 산 거위털 침낭까지 배낭속에 집어 넣고 등에 매니 등짝이 낙타등이 되었다

오렌지 주스 오백씨시와 간식주머니 카메라 가방을 옆구리에 차고

육백그람밖에 안된다는 침낭 하나 더 넣었다고 배낭은 이미 포화 상태

무거운 내몸까지 합하니 산행 출발도 하기전에 나가 떨어지게 생겼다

코펠과 바너 후라이펜에다 라면 밥까지 더 넣은 남편 배낭에 비하면

새발에 피여서 무겁다는 짹소리도 못내고 이른 새벽 먼길 떠나느라

다른때보다 이십분 빠른 여섯시 이십분전에 집을 나섰다

아침저녁과 낮기온 차가 무려 십도가 넘어 새벽 기온이 제법 살쌀했다

데워지지 않은 버스의자에 닿는 엉덩이의 감촉이 써늘하게 찼다

잔듯 깬듯 몽롱한 상태로 양재역에 다달아 지하에서 땅위로 올라오니

어느새 여명이 트이고 질주하는 차량들로 거리는 벌써 부산스럽게 변했다

해가 많이 길어졌나보다

차와 사람들로 우글거리는 서울을 벗어난 버스는 경기도를 거쳐

충청도를 지나고 경상도로 진입이다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 개명리의 727번 국도가 지나는 빼재에 다달을때즈음

해는 중천으로 떠오르고 기온도 점점 올라갔다

추풍령을 본따 새로운 고개라 해서 이름지어진 신풍령이라고도 불리는 빼재는

거창과 무주를 잇는 고갯길이다

이부근에 도적과 사냥꾼들이 많아 동물뼈가 많아서 뼈재라 했던것이

경상도 발음으로 빼재가 되었었다

고개 이름을 한자로 옮겨적으면서 정상석에도 빼어날수로 적혀있다

엄밀히 말하면 잘못된 표기다

또 다른 이름은 고갯마루 무주에 있는 상오정마을에서 빌려온 이름인 삼오정 고개이다

고개 하나가지고도 전설도 많고 이름도 많은것이

우리네 풍속이다


오늘과 내일 걸어낼길은 들머리인 이곳에서 날머리인 육십령까지는 남진으로 이어진다

덕유산은 전북 무주와 장수 경북 거창과 함양에 걸쳐있는 넓고 큰산이라

하루이틀만에 덕유산을 다녀간다고 그속속들이 알수가 없다

크고 넉넉한 산이라는 덕유산은 임진왜란때 백성들이 산속으로 숨어들면

찾지를 못할정도였다고 한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흙산인데 구천동이 있어 천석이 깊숙하다'고 적혀있다

주봉인 해발고도 1614m의 북덕유산인 향적봉을 중심으로 해발 천삼백미터의 장중한 능선이

남서쪽을 뻗쳐있다

북덕유에서 무룡산과 삿갓봉을 거쳐 해발고도 1507m의 남덕유산에 이르는 주능선의

길이만도 30km가 넘는다

덕유산에서 발원한 계류는 북쪽의 무주로 흘러 금강의 지류인 남대천에 유입된다

설천까지의 28km 계곡은 푹포 담 소 기암절벽 여울등이 곳곳에 숨어있는

무주구천동이 있다


들머리인 빼재에서 새로 구입한 가벼운 스틱을 펼치고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고

한발을 내딛는다

해발고도 930m의 빼재에서 고도를 높여 천미터 능선으로 올라왔다

발아래 마을이 점점 작아지고 산능선이 보이는 천미터의 마루금을 걷는다

산 아래에는 연두빛이 초록으로 무성하게 변하고 있건만

높은산에는 아직 겨울나무가 산을 지키고 있었다

1039봉을 지나 첫번째 인증 봉우리인 해발고도 1211m의 갈미봉이다

블랙야크 인증은 이미 한 상태라 그냥 지나쳤다

수건챙기고 인증하는게 번거로웠나 한결 수월하다

대봉을 지나고 덕유산 휴게소로 하산할수 있는 월음령고개를 지나

해발 고도 1302m이 지봉이다

지봉은 못봉이라고도 불리어 지봉 정상석옆에 작은 못봉 정상석이 있었다

이어 표시판도 없는 싸리동재와 횡경재를 지났다

싸리동재에서는 송계사와 백련사로 하산할수 있고

횡경재에서도 소정리로 하산길이 있다

횡경재 고개는 작은 바위덩어리가 덕지덕지 붙어 있어 앉아 쉬기 편한곳이다

바람은 살랑살랑 불어도 기온이 점점 올라 덥고

점심은 먹었어도 벌써부터 허기가 진다

그러길래 소화가 안되면 걷는것이 소화제보다 낫단말이 진짜다

해발 고도 1455m의 귀봉을 지나가고 천오백미터 의 고도를 올라서서 대간길은 이어진다

드디어

산행 시작 11km를 지나자 백암봉이 나오고 덕유평전이 눈앞에 펼쳐진다

덕유평전 위로 곧장 직진하면 북덕유산 향적봉이 나온다

북쪽의 향적봉 봉우리가 눈앞에서 손짓하지만 갈길이 아직이고 발은 느리고

체력이 딸려서 대간길에서 비껴선 향적봉은 세번이나 눈으로만 인증하고 그냥 지나쳐야만 한다

해발고도 1503m의 백암봉은 안성방면으로 하얀 암봉을 내리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안성방면으로 피라미드처럼 삼각형으로 솟아오은 가새봉이 그아래 망봉까지

지능선 꼴리를 늘어뜨리고 서 있다

향적봉과 중봉 덕유평전의 남쪽에 있는 봉우리인 백암봉은 덕유산의 한가운데이다

남진 대간길은 백암봉에서 동쪽으로 꺽어졌다가 북향하고 남으로는 지리산으로

연결된다

많이 지쳤다

칠십대 부부와 육십대 우리부부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산 그리메와 어울리는 두쌍이다

삼세번으로 끝을 내려고 맘먹고 있는데 칠십대 부부는 이번이 네번째로

끝을 내려고 한다고 한다

나이만 다르지 그러고 보니 예상이지만 마지막 백두대간길을 동행하고 있었다

무사히 완주할지 도중에 하차할지 내일일도 장담할수 없는데 앞일은 더더욱 알수가 없다

간단 점심 한끼와 간단 간식 한번 먹는다고 쉬고 하루종일 걸으면서

십년세월 선배에게 이것저것 배울점이 많다

동엽령이다

덕유산의 옛고개중 동엽령은 깊은 산중에 있는 덕에 그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한자로는 겨울잎이다

오월임에도 동엽령에는 이제 막 잎이 삐져나오는 나뭇잎이 태반이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토산품을 교역하기 위해 넘나들던 이 고개에 옛날에는 주막이 많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다 옛날 이야기이다

대신에 넓은 고갯마루에는 몇년전에는 없었던 응급상황시 쉴수 있는 대피소가

새로이 설치되어 있었다

키큰 나무가 없는 덕유평전에 겨울찬바람이 불때는 도움이 되는 장소가 아닐수없다

걸어온 능선이 까마득하게 멀어져 가고 덕유평전에서 내려온 길들이

부드럽게 출렁거렸다

잠깐 쉬어갈까 하고 대피소문을 열고 들어서니 찜통이다

차라리 해볕들더라도 바람부는곳이 한결 나았다

동엽령에서 안성면이나 병곡리로 하산할수 있으나 병곡리 하산길은 현재 출입금지로

되어 있었다

동엽령에서 오늘 구간의 마지막 산인 무룡산까지는 4.2km

다시 무룡산에서 오늘 숙소인 삿갓재까지 2.1km 빠르게 걸어도 세시간걸리는

만만치 않은 거리다

오른쪽으로 몇발 떼면 전라북도 왼쪽으로 몇발 떼면 경상남도의 마루금이다

다리펴고 주저앉아 쉴시간이 없다

동행한 언니는 대피소에서 한약든 봉지를 뜯어 마시고

나는 오렌지 주스와 물을 들이켰다

다리는 견딜만한데 체력의 한계점에 달한건가 머리가 띵하다

양갱 한개를 먹어주고 누룽지를 튀겨서 가져왔더니 딱딱해도 먹을만했다

입안에 넣고 씹으면서 걸었다

시야가 트인 너른 능선길이 이어지고 이내 바위와 흙길이 조화롭게 이어진다

길고 지루한 길이다

지칠대로 지쳐있는 지금부터는 걷는 즐거움보다는 끈기와 인내심의 테스트이기도 하다

행복은 하늘이 푸르다는 사실을 발견하는것만큼이나 단순한것이다 라고

어느 철학자는 말했다

구름 한점 없는 파란 하늘아래에서 봄볕에 나무 이파리가 꿈틀거리며

연두색으로 나온 이파리가 점점 초록색으로 변하는것을 볼수있다는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도 모르고 빨리 고통스런 순간이 끝나기만 고대하고 있다

숨차고 땀나서 냄새나고 끈적거리는 이순간은 행복이고 행운이고

그런 고상스런 단어는 떠오르지 않고 어서어서 지루한 시간이 지나

숙소에서 무거운 등산화를 벗고 싶을뿐이다

가도가도 무룡산이 멀다

한낮에 뜨거웠던 태양빛은 사그라지고 이제 남은 태양이 서서히 지고 있다

아침나절에 시작했던 산행은 저녁나절이 되어가고

작은 바위길과 계단길을 올라 드디어 무룡산이다

정상석을 들어 패대기치고 싶을 심정만큼이나 숨을 몰아쉬며 올랐다

오줌도 마렵고 다리도 아프다

동물처럼 자연스레 볼일을 보고  일어나는데 아고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해발고도 1491m 이제 내려갈일만 남았다

길게 내려선 산능선이 부드럽게 이어지고 나무데크계단으로 정비가 잘되어 있어

걷기 편했다

걷기 시작하여 장장 여덟시간 사십분만에 산 그림자가 내려와 어둑해질 무렵

삿갓골재에 있는 대피소에 다달았다

하루종일 걸은거 같다

다리는 무겁고 머리는 띵하고 어깨는 땡기고 눈은 침침하고

입안은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발가락은 욱씬거리고

어디하나 성한곳이 없었다

오전에 빼재에서부터 걸어온 우리와 달리 곤도라 여행으로 향적봉을 가볍게 올라갔다 내려온

일행들은 산장에 놀러와 고기구워 먹으러 온 사람처럼 모두 쌩쌩하다

그네들보다 무려 십킬로정도를 더 걸었으니 몰골이 비교가 될만도 하다

돼지고기 한점을 입에 넣으니 이제사 살것 같다

죽으라 땀빼며 운동후에는 단백질 보충재료인 돼지고기만한것도 없다

배고프고 기운 딸린김에 정신없이 먹었나보다

집에서는 초저녁인 아홉시도 못되어서 하루 일과를 마쳤다

산장의 소등은 아홉시에 강제 소등이다

진통제 한알을 삼키고 화장실에 다녀와서 나무침대에서 시체처럼 자야한다

그날밤 대피소는 군불을 너무 뜨겁게 해주는 바람에 더워서 죽겠고

밤새 잠을 못이루다 새벽녘에 잠깐 잠들었나 했더니

남들보다 일찍 떠나는 산객들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밤새도록 덕유산이 떠나가도록 코골이 소리로

미칠뻔했다

수면제 한알만 먹었어도 그런 고통에서 해방되었을텐데

집 나오면 잠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