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12. 09:33ㆍTMB
일시-2019년 6월29일 토요일 맑음
코스-Refuge de la Croix du Bonhomme(2443m)-0.3km-Col de La Croix Bonhomme(2483m)-1.5km-
Col des Fours(2665m)-6.0km-Ville des Glaciers(1789m)-1.0km-Refuge de Mottets(1870m)-
5.0km-Co de la Seigne(2516m)-4.5km-Refuge Elisabetta(2195m)
TMB거리 18.3km를 10시간 걸림
전날 저녁 크로와위 본옴므 산장에서 먹은 멀건 스프와 콘 오븐요리 누린내나는 소고기스튜는
뭔 맛인지 모른채 고갈된 기력을 보충한답시고 꾸역꾸역 입으로 집어넣었었다
사람이란 동물이 대단하다는걸 보여주듯 억지로 먹은 음식도 아무탈없이 소화가 되어
나는 점점 산장 식사도 적응되어가고 있다
아침 식사로는 빵과 시리얼 우유 정도가 대부분이다
그걸 먹고 어떻게 하루종일 걸어낼까 걱정되지만 그것 또한 사람이라서 견뎌내는가보다
어제 내려왔던 고개마루까지 삼백미터를 다시 올랐다
아침 햇살이 눈밭에 비쳐 반짝거리고 바람이 찼다
좀 더 쉬운길을 택하려면 고도를 올리는 푸르고개를 넘질 않고 사피유마을로 내려가
차도를 따라 모떼 산장까지 가는 방법도 있으나
우리가 갈길은 크로와 뒤 본옴므 산장 반대편 언덕으로 올라서 푸르 고개를 넘는길을 택했다
눈길과 돌길을 지나 푸르고개 마루에 닿았다
바위벽에 푸르정상 위로 올라가는 표시가 나오는데 해발고도 2685m라고 적혀 있다
몽블랑쪽 전망이 훤히 보이고 햇빛은 눈이 부시다
푸르고개에서 계속 내리막으로 길은 걷는다
가파른 눈길에서는 아이젠을 꺼내 차고도 옆으로 게처럼 앞사람 발자국을 따라걸었다
군데 군데 녹지 않은 빙하눈이 쌓여 있고 녹은 빙하눈은 계곡물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이제 TMB길은 남서쪽 끝을 지나 동쪽으로 달려간다
글라시에 마을 다가가서는 습지와 초원지대 작은 자갈길 사이로 맑은 물이 많이 흘렀다
머리에 이고 다니던 빙하눈도 금새 녹아 아예 철철 흐르는 물속에 머리를 적시면서
다녔다
그래도 뜨거운 햇볕은 젖은 머리카락은 금새 말렸다
얼마쯤이나 걸었을까 푸르고개에서 육킬로가 왜 그리 먼지
멀리서 소 딸랑이 소리가 들린다
경사면에서도 소들은 미끌어지지도 넘어지지도 않고 잘도 풀을 뜯고 똥을 누고
한가하게 앉아 쉬고 졸고 한다
지그재그로 난 인도길까지 점령한 소들로 사람들의 출입를 막는 줄이 있어도
그길 말고는 풀밭을 가로질러 가야 하기에 소들 사이로 걸어가야 한다
행여 소뿔로 들이박을까 무서워 정신없이 소들을 피해 간신히 자리를 벗어났다
왜 그렇게 많은 소가 한꺼번에 나와 있는지
알프스에 가면 소들이 천국이다
드디어 작은 마을을 지나고 완만한 내리막을 내려서면
그리고도 몇분이나 지나서야 드디어 모떼 산장이다
모떼 산장에서 전날 보았던 한국남자 두분이 끓인 라면 한그릇을 얻어먹었다
라면국물 냄새를 싫어해 가끔 산에서나 먹지 집에서는 라면을 일년에 한두번 먹을까 말까하던 라면이
며칠간 니글거리던 속을 한방에 풀어 주었다
역시 집나오면 우리 음식이 그립다
정해놓은 시각은 짹깍짹깍 잘도 지나 삼십분의 휴식이 금방 날라갔다
모떼 산장을 뒤로 하고 다시 산언덕을 오른다
지그재그로 만들어진 언덕길은 쉴틈이 없다
밥도 먹었겠다 배낭만 없다면 뛰어 올라가고 싶은데 무거운 배낭이 자꾸 발걸음을 늦춘다
숨차고 힘들어 꽥꽥 거리고 올라가는 사이 저만치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는 자들이 하나둘 나타난다
청년들이다
그들의 용기가 부럽고 젊음이 부럽다
티엠비 일정은 자전거나 말을 타고도 하고 심지어 마라톤으로 뛰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해마다 팔월이면 산악마라톤대회가 있어 연습삼아 뛰는 사람들은 자주 목격하게 된다
모떼 산장에서 5km 두시간여를 걸어 드디어 해발고도 2516m의 세이뉴고개 마루 돌탑까지 올라왔다
두다리가 뻐근하다
고개에 올라서니 특 트인 풍광이 눈에 들어왔다
이맛에 산악인들은 오르고 오른다
발베니 계곡위로 몽블랑 남벽과 에귀 느와르 더 빼떠레의 침봉들이 춤을 춘다
더 멀리로는 페레고개와 그랑꽁방까지 하늘이 파랗고 맑아 풍경은 끝없이 하늘로 이어졌다
배낭을 벗어던지고 돌을 찾아 앉아쉬려니 나도 모르게 절로 아고고 곡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모습을 지켜보았는지 작은 체구의 여자가 달려와서 지 배낭에서 연고를 꺼내 내 무릎에다 발라준다
내가 많이 아파보였나 보다
이렇줄 알았음 악마의 발톱 하나 챙겨올걸 파스냄새가 진동하는 연고는 별 효과는 없었어도
그녀의 진심어린 마음씨가 고맙기가 그지 없다
서양인 남자와 함께 서있던 그녀는 싱가포르 사람이란다
알프스에서 오가다가 만나는 사람은 모두 인사말을 건내고 모두 친절했다
아직까지는 봉주르 인사말을 제일 많이 들었고 나는 헬로가 먼저 입에서 튀어 나왔다
세이뉴 고개를 지나면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로 넘어간다
이제 숙소로 찾아가기만 하면 된다
르 블랑쉬 계곡의 깊게 쌓인 눈사이로 난 길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되고 이내 완만한 흙길이 나온다
우리네 황토 흙색과는 다른 흙색이 검다
한참을 하산하여 산장이려니 했더니 La casermetta 라고 적혀있는데 자연박물관이란다
이내 평평한 길이 나오고 작은 기도처를 지나 지하수가 통나무 수통에 철철 넘치도록 나오는 물에 손을 씻고
식수도 받아 바로 보이는 에리자베타 산장으로 향했다
산장은 언덕위에 있어 막판까지 오르막을 올라서게 만든다
산장 입구에 작은 성모상이 먼저 반기고 앞서 걸었던 산객들은 웃통을 벗은채로 바위에 누워 썬탠을 즐기고 있다
햇볕이 그리도 좋을까
난 썬크림을 발랐어도 화상을 입었는지 종아리가 따끔거렸다
몽블랑 남벽이 바로 손에 잡힐듯 산장의 위치가 기막히게 좋았다
석양이 떨어지고 비가 내릴듯 하늘도 꾸물거린다
식탁이 모자라 저녁 식사 시간을 두 타임으로 나누어 먹었는데 우리는 일곱시 삼십분이라
안그래도 아침 점심이 부실하여 떨어진 기 때문에 죽는게 아니라 배골아 죽게생겨
비상식량으로 가지고 다니던 대추 말린것을 씹어 먹었다
저녁메뉴로는 치킨과 밥 야채를 곁들인 한접시인데 그동안 우리 입맛에 가장 가까워
생각보다 좋았다
본 옴므고개에서 오다가다 만났던 호주 신혼부부와 한국인 남자 두분과 저녁식사 시간에 다시 만나
반가움이 그지 없었다
우리는 친구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건배도 했다
피로한 내 몸은 점점 야생 생활에 길들여지고 그날밤 죽은듯이 잤다
엘리자베타 산장비는 94유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