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18. 14:32ㆍ백대명산
일시-2021년 3월17일 수요일 맑음
코스-원효사 주차장-무등산 옛길-제철 유적지-주검동 유적-물통거리-치마바위
-얼음바위 갈림길-목교-서석대-입석대-장불재-너덜길-규봉암-신선대 갈림길-꼬막재
-무등 산장-원효사 주자창으로 원점회귀
트랙 끄는걸 깜빡 잊고 원효사 충장사 충민사 절앞을 지나쳐 산길을 뱅글뱅글 돌다
도로로 빠지고서야 트랙을 마쳤더니 22.86km가 기록되었다
미세먼지와 황사로 답답했던 일주일을 보내고 전라도 광주로 내려온날
공기가 맑고 쾌청하여 완연한 봄날씨였다
무등산은 두번째다
2018년 1월 눈이 내려 주상절리에 눈꽃이 피었던날
맘먹고 인증하러 왔었는데 춥다고 입을 가리고 사진을 찍는 바람에 인증거부된 산이다
그날의 후기다
일시-2018년 1월23일 화요일 흐리다 맑음
장소-무등산
코스-원효사-서석대-입석대-장불재-중머리재-중심사
10.5km를 4시간 20분 걸림
한반도가 냉동고가 되어버린 한겨울이다
이제 삼한사온은 옛말이 되었다
연일 이어지는 한파로 전국이 꽁꽁 얼어 집에서 쉬고 싶었지만
일주일에 한번 산행하고자 했던 맘이 변할까봐 백두대간이 없는날은
백대 명산이라도 인증할겸 나섰다가 추위에 얼어죽게 생겼다
푹푹쪄서 숨쉬기가 힘들었던 여름을 생각한다면 춥다는 말은 하지 않해야할텐데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왜 이토록 추운지 모르겠다
무등산이 있는 전남 광주까지는 무려 네시간이 넘게 걸린다
예전같으면 차멀미로 어림없는 이동시간이지만 요즘은 그정도의 시간은
버텨낼 체력이 되었다
새벽 바람이 송곳으로 찌르듯 날카롭다
눈만 내놓은채 얼굴을 다 가려도 매섭게 찬공기가 옷속으로 스며들고
바람까지 불어댄다
오늘산행을 걱정하며 양재역에 도착하니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산행버스를 기다리는 한무더기의 산꾼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서 있다
더운 스팀 나오는 버스안이 천국이다
좁은 좌석에서 눈을 감았다한들 깊은 잠이 올리야 없겠지만
눈을 감고 두시간이나 지났을까 스르르 차분하게 굴러가는 버스탓에
잠깐씩 안락한 소파에서 잠을 자듯 졸다 말다 다시 몸에 기운이 빠진다
정신이 흐물거리고 오래된 기억들이 파편처럼 떠다니다
한번의 휴계소를 들르고 오전 열한시가 넘어서야 들머리인
무등산 원효사 공원관리사무소 입구에 도착했다
무등산에는 푸랭이 라고 불리는 암록색의 검은빛을 띤 수박이 유명하여
길가 곳곳에 수박모형이 눈에 띄었다
무등산 수박은 운림골에서 주로 생산하다 무등산 중턱에서 재배되는
재래종 수박이다
재배면적이 넓지 못하여 생산량이 많지 않다고 한다
무등산 옛길로 들어서며 산행은 시작되었다
옛길 2코스는 산죽이라고도 불리는 조릿대가 심어져 있었다
들머리 입구의 산죽나무가 내 키만큼이나 컸다
무등산은 산 자락인 충효마을에서 태어난 김덕령 장군이 의병활동을 했던 곳이다
무기를 만들었던 장소인 제철 유적지를 비롯해 곳곳에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안개낀 옛길이 무등산 산사람과 유령들을 인도하듯 잠잠하다
키 큰 낙엽송과 키 작은 산죽이 어우러져 신비스런 느낌이 드는
옛길의 물통거리는 예로 부터 나뭇꾼들이 땔감이나 숯을 구워 나르던 산중길이었다
1960년대에는 군부대가 보급품을 나르던길이 1980년대 이후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지금은 무등산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와 주민들의 산책로로 이용되고 있다
완만한 오르막을 꾸준히 오르다보면 산죽 크기는 점점 낮아지고 나무들은 울창해진다
산죽 이파리에는 포근히 눈이 쌓이고 나무들도 흰옷으로 갈아 입었다
오서산에 이어 눈꽃과 얼음꽃인 상고대까지 원없이 눈구경 하는 날이다
하늘과 구름도 윤곽이 어렵게 흰빛을 띤 잿빛 하얀색이고
나무와 땅도 하얀 백설가루를 뒤집어 쓰고 순백의 세상이다
소설가 한강은 '흰'에서 나와 그녀의 흰것과 모든흰것들을
졸린듯한 그녀의 눈으로 투명하게 바라 본것들은 기록했다
짧지만 강렬하다
강보,배내옷,소금,눈,얼음,달,쌀,파도,백목련,흰색,하얗게 웃다 등의
목록을 작성하면서 글이 완성되었다 한다
그중에 소제목인 '하얗게 웃는다'에는
"너는 하얗게 웃었지
가령 이렇게 쓰면 너는 조용히 견디며 웃으려 애썼던 어떤 사람이다"
이리봐도 하얀눈 저리봐도 하얀눈속에서는 어떻게 웃어도 깨끗하고
조금 쓸쓸하게 보일거 같다
'흩날린다'에서는 "사라질-사라지고 있는-아름다움을 통과했다.묵묵히"
거부할수없는 멋진 말이다
그래서 시인들은 차디찬 겨울날의 흰바람벽을 쓸쓸하지만 동경한다
울긋불긋 옷을 입은 산객들만 빼면 온통 하얀세상에서
흰 눈위에 다시 쌓인 흰 눈을 밟는다
서석대 오르는 목교 비상초소에서부터는 가파른 오르막이다
바람막이 겉옷을 입고 아이젠을끼고 완전무장한후 다시 오른다
정상부 서석대에 핀 눈꽃이 장관이다
조금만 기온이 올라도 사라질 하얀색 눈꽃이 검은 바위에 피었다
주상절리는 제주 바닷가에 있는것만 아니었다
산에 있는 원기둥 모양의 주상절리로서는 남한에서 가장 큰 규모란다
처음 오르막은 완만하여도 오를수록 빼어난 경관과 거대한 주상절리가
정상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웅장한 산세로 맞이한다
서석대 정상석이 있는 정상부에 오르니 구름이 빠르게 움직인다
멀리 광주시내가 안개속에 갇혀 뿌옇고 가을이면 억새가 장관이라는 산능성으로
하얀 눈발이 바람에 날린다
북쪽의 나주평야와 남쪽의 남령 산지의 경계에 있는 무등산은
광주와 전남의 진산이자 호남정맥의 중심 산줄기이다
광주시와 전남 화순군 전남 담양군에 걸쳐 있는 매우 큰산으로
2013년 우리나라의 21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비할데 없이 높고 큰 산'또는 '등급을 매길수 없을정도의 고귀한 산'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통일신라때 무진악 또는 무악으로 표기하다 고려때 서석산이란 별칭과 함께
무등산이라 불렀다
산세는 웅장하지만 산 정상부근의 암석을 제외하면 대부분 완만한 흙산이며
규봉 중턱에는 커다란 조약돌들이 약 이킬로미터에 깔린
너덜지대가 있다
최고봉은 해발고도 1187m의 천왕봉이나 군사보호구역으로
백대 명산 인증 장소는 1100m인 서석대이다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줄지어 서있는 기둥들이 위풍당당했다
가픈 숨을 몰아 서석대에서 인증하고 0.5km 떨어진 입석대로 내려왔다
입석대는 좀더 가까이 돌기둥에 다가갈수가 있다
오육각형보다 좀더 둥글게 보이는 돌기둥이 병풍처럼 둘러쳐 서있는 절경이 빼어났다
우람한 돌기둥을 고개 들어 한참을 감상하고 돌아섰다
멀리까지 오길 잘한거 같다
화순군의 백마능선이 시원스레 펼쳐진 능선을 바라보며 계속 하산하여
장불재에 다달았다
장불재는 광주시와 화순군의 경계가 되는 해발 990m의 능선고갯길이다
규봉과 입석대 서석대로 가는 등산로로 예전에는 동복과 이서 사람들이
광주를 오갈때 지나던 고갯마루에 있다
정상을 향해 좌측이 서석대이고 우측이 입석대 방향이다
이서면쪽으로 능선을 따라 돌면 규봉과 지공너덜이 나온다
너른 억새 초원지대가 하얗게 눈부시고 내려온 길이 훤히 보인다
바람이 거셌다
바람막이 지붕만이 있는 대피소와 자연친화의 거품화장실이 있었다
컵라면으로 점심 요기를 했다
옴몸이 벌벌 떨려 뜨거운 국물을 삼키니 몸이 조금 훈훈해진다
손가락이 끊어질듯 시려워 빨리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손난로가 없었다면 사진 찍을 엄두도 못냈을 추위다
겨울산에서는 제일 먼저 손이 시러오고 온몸이 데워진후 맨 나중에 손이 녹는다
이제는 내려갈일만 남았다
내리막길은 편하고 쉬운길이다
중머리재에 도달하니 추워 벌벌 떨면서도 눈 호강했던 산 정상부와
케이비시 방송 중재소가 아득히 멀어진다
중머리재에는 한두시간전 얼굴 동상 걸릴뻔했던 한겨울이 있었는가 의심스럽게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고 바람 한점없어 봄날처럼 포근하다
중머리재에서 증심사로 내려오는길은 비단길처럼 이쁜길이 질척하고 마른 흙을 드러냈다
그녀와 만나기로 한 시각이 서서히 가까워지고
벌써 그녀는 내가 타고왔던 산악회 버스옆에 와 있단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발길을 재촉하느라 평평한 흙바닥에서
깨꾸락지 낙법으로 한번 엎어지고 내려오면서 증심사는 일주문만
곁눈질로 흘기듯 바라보았다
아스팔트 도로를 경보하듯이 빠르게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오십년이 넘는 꾀복쟁이 친구는 사십년만에 한번 만나고 또 십년이 지나갔다
산 아래로 나오란다고 실제 나타난 그녀나 무턱대도 만나자고한 나나 세월앞에 장사없어
이제는 저나 나나 많이 늙었다
딱 한시간 얼굴보고 우리는 또 헤어졌다
다음날 무등산 정상 인증은 불가 판정을 받았다
남의 사진으로 대체하여 인증 신청하는 사람들 때문에 얼굴을 감싸고
특히 입을 가린채 찍은 사진은 무효란다
그런줄도 모르고 영하15도에 강풍까지 불어 체감온도 영하 이십도가 넘자
얼어죽지 않으려고 푹 뒤집어 쓴채 사진을 찍었다
동행했던 짝꿍은 인증되고 나는 불가여서 몇초간의 사이에도 다른일들이 벌어질수 있다
인증행사하는 회사와 산악회가 윈윈하는 상술임에도 불구하고
한 두번 따라 가다보니 이제는 어차피 운동할겸 꾸준하게나 하려고 신청한것인데
갑자기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회사 선전하는 수건들지 말고 태극기나 들고 다닐까 하다가도
어떤 넋빠진 늙은이가 산에까지 와서 태극기 데모 하는줄 알까봐 안되고
백개 명산 마치면 어서 통일 되어 백두산과 금강산 구경가게 한반도기나 들고
다녀야할 모양이다
백마의 갈기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백마능선의 억새와 지공너덜 지대를 볼겸
산행시간보다 두배나 긴 이동시간에도 무등산을 다시 찾아야 한다
푸근하고 완만하던 산의 자태가 오르면 오를수록 웅장하며
힘을 솟구치는 무등산에 정기가 대단했다
천지간에 생성된 한반도의 남쪽 무등산은 광주 학생운동을 비롯하여
수많은 애국지사와 문인 예술인을 배출시킨 정기가 넘치는 산이다
기억에서 가물거리다가도 후기를 다시여니 삼년전 무등산 겨울산행이 생생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다른 모습으로 산이 거기 있다는걸 실감한다
남녘의 봄은 향기와 색깔로 온다고 무등산 국립공원 언저리에 들어서자마자
버스 창너머로 매화꽃 향내가 퍼지는듯 하고 벌써 핀 몇그루의 벚꽃이 환하다
오늘 산행은 인증 장소인 서석대에 쉽게 올랐다 쉽게 하산하는 코스대신
원효사 주차장에서 무등산을 넓게 한바뀌 빙 도는 코스로 정했다
무등산 옛길로 들어서며 산행 시작이다
조릿대 사이길은 드나드는 많은 산객들로 산길은 넓고 반질거렸다
오늘은 양재역 대신 건대입구에서 떠나는 버스를 타러 나왔다가 차가 막힌다는 이유로
삼십분이나 서서 기다리는 바람에 아침부터 진을 뺐다
버스에서 졸아줬어야 하는데 눈을 감아도 이미 깨어난 정신은 말짱했다
산행 초반부터 발은 무겁고 기운이 나질 않는다
제철 유적지 주검동 유적과 물통거리를 지나는 동안 발을 질질 끌다시피
걸었다
걸은지 한시간이나 되었나 일찌감치 점심을 먹었다
그러길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아무리 길이 좋고 구경거리가 많아도
당뇨 걸린 사람모양 허기지면 신경이 날카롭게 솟는다
먹고 나니 기운이 났다
치마바위 얼음바위 갈림길을 지나 임도가 있는 목교 안전쉼터까지는 완만한 오르막으로
조금씩 고도를 올린다
완만한 흙길이 대부분이고 흙위에 너른 바위를 꼭꼭 박아 걷기는 무지 편안길인데
왜 이리 힘이 드는지 아무리 완경사 오름길이라해도 산 정상으로 오르는길은
고역의 시간이다
한 낮 기온이 오르면서 얼굴로 고스란히 내리쬐어 내리는 햇볕 때문이다
이마 얼굴 목덜미에 땀이 났다
춘삼월 아직 연두빛 새순이 트이기 전이라 둥치 가는 소나무만 초록으로 있을뿐
쉴만한 나무 그늘은 별로 없다
그래도 명산만 다니는 산꾼들은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오르는데
습관이 무서운거라 대간길 걷던 습관대로 밥 먹을때와 오줌 눌때 빼곤 쉬어 본일이 없다
8700만년 시간여행길인 지오트레일 1구간이란 표지목인 있는 목교 안전쉼터에 다달으니
임도가 나왔다
같은 버스에 동승했던 할머니 할아버지 일행등이 올라갔던 길로
임도로 쭉 걸어와도 이곳에서 만나게 된다
해발고도 삼백구십여미터의 산행 들머리에서부터 해발고도 구백여미터까지 올랐다
고지가 바로 가까이 남은 거리는 오백미터 고도는 이백미터만 올리면 되나
가파른 돌계단 오르막이다
여태 오르며 심장이 적응되니 딱히 숨고르기 할것도 없이 저절로 발이 올라가게 되고
숨도 차지 않는다
오히려 계단길이 편할줄이야 진 빠졌던 초반에 비하면 오히려 몸은 가벼웠다
희한하게 생긴 나무 기둥 돌 구경하느라 정신이 그곳으로 쏠려 그런갑다
이어 서석대가 나오고 병풍처럼 서있는 검은 나무기둥들이 장관이다
완경사의 토산이라더니 기둥 모양의 주상절리는 산 곳곳에 솟아 나 있었다
무등산은 광주 광역시와 전남 화순 담양군 사이에 있으며 삼십평방킬로가 넘는
넓은 산이다
동부의 산악지대와 서부의 평야지대의 결정점에 위치한다
노을이 햇살에 반사될때 수정처럼 빛나 수정 병풍이라고 불리는 서석대를 지나
이백미터를 오르면 인증 장소인 해발고도 1100m 서석대기점인 정상석이다
트랙에서는 1120m라고 알린다
너른 산정부근에는 칼로 자른듯 네모난 돌들이 무더기로 쌓인곳이 많았다
이곳에서 무등산의 최고봉인 해발고도 1186.6m의 천왕봉이 가까이에 있으나
군시설로 일반인은 갈수 없는 곳이다
정상석을 뒤로하고 해발고도 1017m의 입석대로 내려왔다
입석대 암자가 있었다는 석축 계단으로 올라 입석대를 바라보니
십미터 이상되는 돌기둥들이 반달같이 둘러 서 있었다
서석대는 풍화가 덜 진행되어 병풍모양이고 이곳 입석대와 규봉은 풍화가
많이 진행되어 기둥모양을 유지한단다
무등산의 암석은 생성과 풍화과정을 살펴볼수 있는 희귀한 자연유적이다
서석대와 입석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제 발은 저절로 빨라져 임도와 만나는 장불재에 불이나케 내려왔다
장불재는 해발고도 918m로 화순 이서와 동복 사람들이 광주를 오가기 위해 넘었던
지름길로 광주시와 화순군의 경계가 된다
원효사 주차장에서부터 임도를 따라와도 이곳에서 만난다
서석대 광석대 안양산 중머리재를 이어주는 고개다
너른 억새밭이 일품이나 메마른 줄기만 있는 이름 봄에는 오히려 삭막하다
이곳에서 산상연설을 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장소다
삼년전에는 보지 못했던 "아! 참 좋다 2007.5.19 노무현"이란 사인이 새겨진 현판이
장불재를 설명하는 현판과 나란히 있었다
부드러운 산세에 서석대 입석대의 주상절리를 볼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장불재 쉼터는 운동장 보다 넓다
화장실과 쉼터 그리고 야외 의자가 있다
코로나만 아니라면 북적거렸을 곳이 한가하기 짝이 없다
장불재에서 주차장으로 원점회귀해도 되나 무등산 정상을 두고 산 사면으로 한바뀌 돌아가려
전남 화순군 이서면쪽으로 방향을 틀어 호남정맥이 흐르는 백마능선을 바라보며
규봉암쪽으로 전진이다
백마 능선은 장불재에서 낙타봉 안양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고산 초원지대다
백마의 잔등을 닮은 지형위에 가을이면 억새가 바람에 휘날릴때
백마의 갈기처럼 보인다하여 백마능선이라 불린다
걸으며 바라보니 말이 엎드려 있는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찌 그많은 산마다 다른이름으로 불리워지는지
산야나 식물 동물 모든 생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것도 사람들이라
하여간에 만물의 영장은 사람이다
피안교를 지나 산길로 들어서면 평지길이나 다름없이 고도의 높낮이는 크지 않는데
초입엔 야자매트와 흙길이고 점점 너덜경이 나온다
하늘을 쳐다보고 서 있던 돌들이 이젠 땅을 바라보도 누운 격이다
삼십여분 지나고 석불암으로 오르는 입구다
석불암을 통과하고 규봉암까지도 계속 너덜바위길이다
끝도 없이 많고 덜커덩 거리던 황철봉 너덜과는 비교할수없게 적지만
산에서 쏟아져 내린 바위들이 쌓인 길을 지난다
지공대사가 법력으로 돌들을 깔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어 이름하여 지공너덜이다
이어 규봉안 기점이다
규봉에는 두바위 사이로 길이 나있는데 사람들이 드나들수 있어 문바위라 한다
김덕령 장군이 문바위에서 화순 청궁마을 살바위까지 화살을 쏘고 백마가 먼저 도착하는지 시험했다가
화살을 찾지 못하고 백마가 늦었다하여 백마의 목을 쳤단다
그제서야 화살이 날아와 바위에 꽂혔다는 전설이 있다
우뚝솟은 세개의 돌기둥이 마치 임금 앞에 나갈때 신하가 들고 있는 홀같이 생겼다하여
이를 한자로 취한것이 규봉이라 했다 한다
이끼서린 돌계단 오르면 규봉암 뒤로 광석대가 우뚝우뚝 보인다
서석대 입석대 광석대는 무등산의 삼대 석경이다
규봉암을 내려서 능선길은 이어지고 시무지기 갈림길을 지난다
신선대 갈림길까지 거의 평지길 수준이나 땅속에 콕콕 박힌 바위길이 많다
신선대 억새 평전 갈림길이 나오고 이곳에서 북동으로 신선대 북산이 가까이에 있다
발바닥이 아파올 즈음에 꼬막재에 다달았다
해발고도 738m의 꼬막재에서 원효분소까지는 2.0km 거의 다왔다
산정상부에서 볼수 없었던 메타세콰이어 나무숲과 산죽밭을 걸어 산길을 빠져나왔다
이 좋은 평평한 능선길에 굳이 돌들을 박아 놓아야만 했는지
능선길을 돈다고 쉽고 편하다고 생각했더니 역시나 산행은 한번도 쉬어본적이 없어
거저되는 일이 없다
걷는 내내 흙은 별로 밟지 못하고 지긋지긋한 바위만 밟아대느라 발바닥에 열이 났다
이어진 식당가를 지나 드디어 산행을 마쳤다
산천에는 봄이 와서 자꾸 오라 하는데 원정 산행을 하고 난후 이삼일은 나른하다못해
시들시들 운신을 못하겠다
귀가 버스에서 한숨도 자지 못한탓이 크다
앞좌석에 칠십은 되어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일행이 동승했는데
세번이나 걸려오는 할머니의 휴대폰 노래소리와
딸랑거리는 할아버지 워낭종소리가 내내 신경을 거슬렸다
정작 당신은 노래가 한참 흘러도 자느라 잘 못들으니 예민한 사람만 소음이고
배낭에 달고 다니는 딸랑이는 금속성 소리를 싫어하는 곰이나 야생 멧돼지의 접근을
막는 효과가 있어 홀로 야간 산행때는 도움이 될지언정 대낮에 뒤따르는 등산객들은
소음에 불과하다
늙으면 눈이 침침해지고 귀도 멀어진다는데 눈은 침침해지면서 귀는 왜 더 잘들리는지
늙을수록 남에게 피해를 주며 살지는 말아야 한다
원정 산행 여독은 회복이 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