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월

2023. 11. 17. 10:51산문

사라진달이 아닌달,아무것도 아닌달이 아닌달,십일월이다

작년 올해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지려는 몸을 간신히 부여잡고 견디며

두해를 보내고 있다

나이들면 체감상 계절이 한뭉텅이씩 지나 계절따라 살기도 버겁다지만

몸의 변화만큼 빠르지는 않겠다

몽글몽글 연초록으로 산야에 봄물 들어 잎사귀에 물오르던때가 있었던가,

봄꽃 피운 설렘과 흥분도 다 잊게 만든 올여름 뙤얕볕 무더위만 겪고 한해를 보내야 하는가,했더니

어느덧 계절은 나뭇잎을 떨어 뜨린다

수북히 떨어진 낙엽들의 감촉이 사그락거리며 발바닥으로 전해온다

가을도 겨울도 아닌 십일월에 나도 어정쩡 서 있는 중이다

노랗고 붉은 단풍이 예전만 못하다는 뉴스만 들려오지,맘처럼 눈호사를 못한 내가 한없이 초라하지만

세상엔 헛되게 보내고 되는일은 없을테니 노년의 삶을 돌보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제 늦가을 아침 이슬이 내려 찬바람 불어대면 추수 마친 들판에도 모처럼 평화가 찾아오고

조용한 낙엽손님 태운 주름진 강물도 어깨를 흔들며 흐르느라 부지런을 떨것이다

내가 산책하는 숲길에도 죽음보다 삶이 강하다는걸 보여주기라고 하듯

나뭇잎을 떨어뜨린 나무들이 휑한 가지사이로 늦가을 햇살을 받아내고 있었다.

한낮시간이 너무 짧다

나이 숫자만큼이나 빠르게 지나는 시간일지라도 요즘 수명은 길어져 백세세대란다

인생 칠십은 초로에 불과하고 팔십이 되어 중노인이고 구십을 지나야 비로소 망백의 황혼길에

접어든다는 말이 떠돈다

아프면서 오래사는건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고 그러려면 건강이 최고라는데

건강이 맘대로 지켜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해인 수녀의 '흐르는 삶만이'

"구름도 흐르고

강물도 흐르고

바람도 흐르고

 

오늘도

흐르는 것만이 

나를 살게 하네

.......중략

흐르는 세월

흐르는 마음

흐르는 사람들

 

진정

흐르는 삶만이

나를 길들이네."라고 썼다

흐르는 사계절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려면 봄부터 소쩍새와 천둥이 울어야 하고

대추 한알이 붉어지려도 태풍 천둥과 벼락 번개를 맞아야 한다지 않나

계절따라 산다는 것이 행복이자 고행이란걸 새삼 알게한다

계절이 끝나는곳에 또 다른 계절이 있듯 십일월 바통을 십이월이 이어받을테니

흘러간다는게 서글픈일만은 아니다

나도 흐르며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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