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이 가네

2024. 4. 28. 12:39산문

온갖 꽃내음 흘리며 오는 봄날,왔나 싶어 꽃 구경이나 할까 했더니

더웠다 비왔다 꽃불 일어 타는 내 마음 갈곳 모르도록 사월이 요란스럽다

바람에 흔들리는 봄 볕에 그을리면 숨 막히는 가슴이 뚫어지려나

한 차례 봄비가 다녀가더니 애써 피워낸 벚꽃들이 후두둑 떨어져 버렸다

안그래도 화무십일홍이라 기다리지 않아도 떨어져 버릴것들,

봄꽃은 피고 지고 또, 피고 지고 나를 탓할까 계절을 탓할까

따라잡지 못하는 이 계절이 잔인하기만 하다

 

온갖 생물들이 부산스런 봄의 한가운데에서 나홀로 고독하기가 어려운 사월은

첫날부터 만우절이다.진짜보다 가짜가 더 진짜같은 요지경속에

제주 사삼사건과 사일육 세월호와 사일구, 올해는 국회의원 선거도 치뤄

이런저런 사건들이 가지가지로 많은 달이다

사삼사건은 광복 이후 미군정과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여 일어난 민중 항쟁을

군경이 무력으로 진압하며 민간인 삼만여명이 희생된 사건으로 한국 현대사에서

육이오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극심했다

무장대와 토벌대의 전투에 민간인들만 죽을 지경이라

낮에는 토벌대가 찾아와 무장대를 도왔다는 이유로

밤에는 무장대가 찾아와 토벌대를 도왔다는 이유로 학살했다

아직도 북한의 사주에 의한 폭동이었다고 여기는 정신나간 사람들이 있단다

선혈로 피워낸 동백꽃 모가지가 뚝뚝 죽음의 바람이 불어온 초봄도 지나

지금쯤 제주는 유채와 보리가 노랗고 초록바람으로 가는 봄을 재촉할것이다

그곳 지울수 없는 기억은 소설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소설로도 이야기된다

이종형 시인은 "사월의 섬 바람은

뼛속으로 스며드는게 아니라

뼛속에서 시작되는것..."이라 썼다

 

세월호사건은 벌써 십년전이다

당시 헝가리에 있었던 나는 노트북을 가져 갔어도 뉴스는 어쩌다 접할뿐이라

침몰된 세월호에서 그리 많은 어린 생명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걸 실감하지 못했다

두달이 지나 돌아와 보니 나라 전체가 우울에 갇혀 어둡고 암울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선장은 살아 나왔는데 아직도 진상규명과 처벌이 아쉬운 사건으로

배운게 있다면 어른 말을 안들면 살고 들으면 죽는다는 사실뿐이였다

가족을 잃고 슬픔을 견디며 살았을 강산이 변한다는 십년 유족은 죽어야 살아질 슬픔일게다

사건이 터지기 일년전 남편과 아들은 침몰되어 물귀신 쇳덩어리가 된 세월호 그 배를 타고 

한라산 등반을 다녀왔었는데 일년후였더라면 어쩔뻔했을지 상상으로도 끔찍하다

누구나 시한부 인생,생자필멸이라 법륜스님 말마따나 삶의 의미를 부여하지말고 그냥 살자면서도

물이 무서워 바다는 가지말고 산에나 갈까보다

아니다,육년간 동행했던 백두대간 대장이 눈 쌓인 대간길에서 꼬꾸라져 그대로 죽는걸 보니

산은 더 무섭다

하필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 서방을 얻으면 죽기를 반복하여 아홉명의 서방을 모셨다는 전설의 고개인

구부시령 코앞에서 죽을게 뭐람,구부시령은 강원도 태백산맥 줄기로 덕항산 가는길에 있다

일년뒤 추모산행 한번 하곤 그쪽으론 고개도 안돌리며 한동안 등산과 죽음이 화두였다

이제 넘어져도 괜찮은 들판으로 나물이나 캐러 다닐 나인가

봄이 오면 하얗게 핀 들녘에 당신과 나 단둘이서 봄 맞으로 가자고,노래하며

놀러가는것도 움찔 움찔하여진다

내일과 다음생중 어떤것이 먼저 올지 모르는 인생이라 그래도 놀러는 나가야한다는데

이놈의 노화된 귀가 말썽이라 이젠 걷는것도 살살 노는것도 살살이다 

"지금 먹고 마시고 놀아야지 나중은 없다,"고 황창연 신부는 말한다

놀다 놀다 지쳐서 죽을땐 꼴까닥 죽으라는 유머스런 강연이 귀에 쏙쏙 와 닿았다 

어쩌다 신부의 유트브를 켰더니 계속 강의가 올라오는 이상스런 스마트폰이라

거기다 구독을 누르면 코가 끼게 된단다

손가락 하나만 까딱 거려도 세상이 휘리릭 변하는 에이아이 시대가 눈앞인데

나 처럼 아날로그인은 이꼴저꼴 안보려면 일찍 가는게 나으려나

죽고 사는게 맘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사일구는 육십년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부정부패에 저항하며 부정선거를 계기로

시민들과 학생이 일으킨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기르기 위한 날이다

삼일오 의거에서 행방불명된 김주열 열사의 눈에 최루탄이 박힌 모습으로 떠오르면서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시위대에 실탄을 발포하여 많은 시민과 학생의 사상자가 났다

계엄령을 선포하고 사태를 모면하려 했던 이승만은 하야하고 하와이로 망명하였다

불의해 항거한 사일구 혁명 정신은 이후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진 계기가 된 사건이다

백성을 지켜야할 왕이 백성을 나두고 도망이나 가는일은 이전 조선시절에도 있었으니

나라를 팔아먹고도 권력을 놓지않은 위인들이 천지라 지금 전쟁이 일어나면 도망갈 위인들이

도처에서 나올것이다

역사는 이어지고 국회의사당에 입성할 삼백명의 국회의원을 다시 뽑았다

화장실 갈때와 나올때 달라진다더니 굽신굽신 조아리며 한표만 달라던 사람들이다

국회의원직의 특혜 없이 봉사직으로 바꾸어도 나라를 위해 일 할 사람이 국민을 대신할 진정한 일꾼일텐데

어떻게 변할지 눈 귀 열고 감독해야 한다

지긋지긋 이젠 당권싸움 그만하고 빨강 파랑 화이부동하였음 좋겠다

 

사월 하순을 넘어 오월 문턱에 다달으자 연초록으로 내려온 봄은 어느새 

버들가지 푸르러지고 들판에 잡풀도 진초록으로 눈이 시원하고

키 큰 나무에 손톱만하던 이파리도 커졌다

그 중에도 단풍나무잎들이 바람에 응답하며 유난히 나풀나풀 거린다

아름다운 연분홍 봄볕~무심히 왔다

강물 흐르듯~무심하게~봄 날이 간다

꽃 잎 떨어진 그 길 그 숲에도~봄이 왔다 봄이 간다

노을속에 꽃 잎 싣고~지난해 봄처럼 간다니

자유롭게 봄 바람 휘날리며~가거라

2024년 4월30일 이 정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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