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29. 10:34ㆍ백두대간
일시-2016년 10월 28일 금요일 맑음
장소-백두대간 상봉 신선봉 구간 북진
코스-미시령-상봉샘-암봉 전망대-상봉(1239m)-화암재-전망대-신선봉 갈림길-신선봉(1204m)
-신선봉 갈림-대간령-890봉-병풍바위-마산봉(1052m)-알프스 스키장 리조트-진부령
백두대간 16.6km+접속구간 0km=16.6km를 8시간 걸림
사라졌다
그동안 컴퓨터 오 작동이 되었어도 썼던 글이 없어지는 경우는 없었는데
한번의 실수로 미시령에서 진부령까지 복기한 글과 사진이 몽땅 날라가고 말았다
키보드 자판 엉뚱한곳을 누른 손가락이 잘못이라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첫 문장이 뭐였더라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엮어 나갔는지 도통 생각이 나질 않는다
멍하니 한나절을 보내고 다시 컴퓨터를 열었다.
가을이 사라질 무렵 걷기는 몰입이었다
이제 백두대간이 몇구간밖에 남지 않았다
그동안 살악산에 눈이 오기전에 백두대간 남진의 시작점인 진부령의 곰을 만나러 가야 한다는
생각이 늘상 떠나지 않다가 백담사로 가는 첫 버스에 올랐다
두시간 삼십여분만에 백담사 휴계소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함께 내린 등산객 네다섯명은 만해가 '님의 침묵'을 탈고한 백담사로 향했는지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에 휴계소는 텅 비어 버리고 주인장의 강원도 특유의 이북 말투가
낯설다
미시령 가는 버스는 없다길래 원통에서 달려 오는 카카오 택시를 불렀다
기사양반 택시에 타자 마자 요금은 비밀이란다
안 그래도 삼만원이 비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미터계를 이용 안하느냐고 묻기도 전에 요금 부터 받아 챙긴다
백두대간의 들머리와 날머리로 대려다 주는 택시 요금은 부르는게 값이다
미시령 지킴이 센터가 있는 공터에 내려준 택시는 날가듯이 쌩 가버리고
택시에서 내려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수첩을 든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이 나타났다
굳게 닫쳤던 초소문을 슬며시 열고 나오는 직원도 분명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거늘
진부령에 서 있는 설악의 곰이 살아나서 만난것처럼 순간 놀랐다
그동안 이리저리 대간길에서 한번도 마주친적 없는 말로만 듣던 국공과의 대면이다
설악산 정기를 먹고 사는 남자들은 잠도 없나 오전 여덟시 조금 넘었는데 일찌감치도
출근했다
그러게 보통의 대간꾼들은 무박으로 와서 새벽녘에 이곳을 통과한다
사정사정 해봐도 아저씨 맘을 돌리기에는 어림없는 일인거 같아 뒤돌아 가다가
표지석에서 인증 사진이라도 찍고 가려고 다시 올라와서 사정해도
이제는 카메라에 얼굴이 찍히는데 자기 체면이 뭐가 되냐며
오히려 그 아저씨가 날 보고 사정한다
허기사 임무에 충실한 그 남자가 정상이고 법을 어기려는 내가 비정상이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발길을 돌려 백여미터를 내려가니
대간꾼들이 넘나들던 담장위의 철조망은 아래로 구부러져 있었다
그리고 출입금지를 지금입출로 거꾸로 읽고는 간판앞의 담장을 넘었다
처음부터 개처럼 뛰어 통과 했으면 될뻔했다
백두대간 다닌다고 하다하다 미친 월담까지 별짓을 다하고 다닌다
미시령 사면을 힘겹게 올라 미시령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마루금에 발을 딛고 보니
때로는 미친 짓거리가 쾌감을 준다는것도 알았다
가을옷을 입은 잡풀 사이로 반질거리는 미시령 마루금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상봉과 신선봉 앞으로 전진이다
멀리 미시령 초소와 감시 카메라가 위를 올려다 보는거 같았다
해발 고도 767m의 미시령은 눈보라가 내리면 제일먼저 통제되는 고개로
거세기로 유명하다는 바람은 다 어디로 갔는지 바람 한점 없이 고요하고
높이 오른 파란 하늘에서 가끔씩 꾸르르쿵쿵 천둥소리만 들린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에서 고성군 토성면으로 넘어가는 미시령 옛길은
한계령과 함께 설악산 서쪽의 인제와 동해안의 외설악을 이어주던 교통로이다
조선시대에도 백두대간의 동서를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로 이용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미시령의 옛이름을 미시파령으로 적고 있다
이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가파른 뜻으로 해석된다
미시파령으로 불렸던 험준한 고개가 현재의 미시령길로 1960년에 개통되었다
1970년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한때는 설악산으로 왕래하는 자동차로 붐볐으나
2006년 미시령 터널이 뚫린 이후 한가해졌다
지금은 고갯 마루 휴계소도 철거 되었고 대간꾼들이나 이용하는 고개가 되었다
미시령 표지석은 이승만 대통령이 제호한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시령 정상에서 북쪽으로는 신선봉 대간령 진부령이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설악의 주능선인 황철봉과 마등령 공룡능선을 이어주고 있다
본격적인 대간길로 접어들어 무명봉을 지나 마루금으로 오른다
갈림길에서 암봉의 좌측길로 올라서면 상봉샘이 나온다
가을 채비를 하였어도 날씨는 더워 생수 한병을 다 마시고
다시 물을 채웠다
진부령 구간을 걸을때는 굳이 많은 물을 가지고 올 필요가 없다
너덜길이 나오고 너덜 중간에 바위 전망대에서 뒤돌아보니
구불구불 미시령 고갯길 너머로 어마어마한 너덜 바위옷을 입은 황철봉과
오래전 울산에서 올라오던 바위가 금강산으로 가다가 시간을 맞추지 못해
머물렀다는 전설을 가진 울산바위가 하늘을 찌른다
다시 너덜지대를 지나서 헬기장과 군참호가 나오고
너덜 바위위에 작은 바위돌로 만든 돌탑이 상봉 정상이다
해발 고도 1239m의 정상에 서니 가슴이 뻥 뚫린다
북으로는 남녘 대간의 신선봉 마루금과 그너머 향로봉이 이어지고
남으로는 지나온 대간길이 미시령을 넘어 황철봉으로 이어진다
서로는 용대리쪽으로 산줄기가 흐르고 동으로는 속초 앞바다까지 조망된다
상봉 정상을 벗어나면 로프구간이 나온다
내리막과 암릉길은 군데군데 로프 잡고 길게 내려간다
다시 암봉 하나를 치고 오르고 다시 밧줄과 너덜지대를 지나
길게 내리면 군인들의 막영지가 있는 화암재에 다달은다
화암재는 우측으로 고성군으로 내려갈수가 있는데 계곡을 타고 두시간이면
화암사까지 내려간다
화암재에서 숨고르기를 마치면 신선봉을 향해 위로 길게 오르막이다
신선봉 갈림길이 나온다
신선봉은 대간길에서 동쪽으로 약간 비껴 있다
정상에는 헬기장이 있다
해발고도 1204m의 신선봉은 금강산 제일봉으로 알려져 있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에 자리잡은 신선봉은 설악산 주능이 황철봉을 지나
미시령에서 잠시 숨을 멈추고 북단의 진부령 금강산으로 향하다
마지막 절경을 빚어낸 곳으로 국내의 비경중 숨어 있는 비경이다
정상에 서니 능선으로 이어지는 기암에 걸친 노송은 세월을 잊고 서있다
고성쪽으로는 도원 저수지가 보이고 구불구불 진부령으로 올라오는 도로와
바다와 잇닿는 청초호가 동해바다와 어우러지며 시원스런 절경을 연출한다
능선 높은 곳에는 계절을 모르는 철쭉꽃이 피어 있었다
신선봉 신선대 자락 아래 자리잡은 화암사는 금강산 일만 이천봉 팔만구암자중
첫번째 암자로 알려져 있고 금강산의 시작점인 신선봉은 금강산 일만이천봉중에
첫번째 봉우리이다
황철봉 너덜바위처럼 신선봉으로 오르고 내릴때에도 지 멋대로 생겨
지 멋대로 놓아진 너덜바위가 있다
자칫 발끝을 삐끗 했다가는 크레바스로 빠질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새벽밥을 먹은지가 일곱시간이 지나고 뱃속에서 꾸르륵 꾸르륵 거리고 목도 탔다
너덜 바위에 앉아 주먹밥과 즉석우동으로 점심을 먹고
설악의 높은 바위 덩어리인 울산바위와 황철봉을 원없이 눈과 가슴에 담았다
다시 신선봉 갈림길에서 암봉을 만나 좌측으로 우회하며
떨어져 내린다
길게 아래로 내리는데 바위길과 너덜길이다
1094봉 갈림길에서 암봉을 지나고 우측으로 떨어져 내려간다
키작은 관목 지대를 지나 내려가다 아래로 길게 내려 대간령이 바로 아래인데
웅성웅성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난다
미시령에서 대간령까지 출입금지 구간이라 오전중에 한사람도 만나지 않다가
공단 직원이 또 감시하러 나왔나 싶어 도둑 고양이 마냥 살금살금 내려왔다
출입금지 밧줄을 넘고보니 파란 옷을 똑 같이 입은 아저씨 셋이서
작은 새이령에서 마장터로 올라왔다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대간령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석파령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대간령과 새이령 또는 샛령이라고도 부른다
해발고도 641m으로 신선봉에서 3km거리 떨어진 대간령까지
육백미터쯤 고도를 내렸다
대간령은 강원도 인제군과 고성군 간성읍 사이에 있는 고개로
신선봉과 마산봉을 연결하는 백두대간의 안부에 해당한다
진부령 미시령과 함께 영동과 영서를 잇는 동서 교통의 주요 통로였으나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서 간성으로 넘는 진부령과 용대리에서 속초시로 넘는 미시령이
포장되면서 이고개는 옛날의 소로에 그치고 있다
예전에는 고갯 마루에 서낭당이 있었다
여기저기 돌담은 당집과 나그네들의 쉼터인 주막터의 흔적이다
대간령 왼쪽으로는 작은 새이령에서 용대리로 내려갈수 있어
대간길을 소구간으로 끊을수 있는 지역이다
대간령에서 잠시 숨고르기를 한후 대간길은 다시 고도를 올린다
어느새 머리 뒤꼭지로 내려앉은 햇살로 몸의 열기는 달아오르고
얼굴과 등에 땀이 밴다
도상거리 팔킬로여만 가면 진부령에 닿을수 있다
길게 올라 너덜지대 끝에 멋진 조망이 보인다
845봉 암봉을 지나고 잡목숲길을 걸어 길게 내리락 오르락하면
병풍바위 갈림길이다
이정목에는 마산봉 1.0km 새이령 2.6km 병풍바위 20m로 적혀 있다
이어 이십여미터 오르면 병풍바위가 나온다
병풍바위는 대간령과 마산봉사이에 있는 바위로 정상 건너편 진부령쪽이
암반으로 되어 있고 그 방향에서 바라볼때 생긴 모습이 마치 병풍을
두른것처럼 생긴데 유래하여 얻은 이름이다
전방으로 진부령 마을이 보이고 우측으로 대간길 마지막 봉우리인 마산봉이
좌측으로는 대간령으로 이어지는데 갑자기 뒤 따라오는 운무에 갇힌 산줄기가
희미하다
병풍바위에서 입구쪽으로 나와 우측으로 떨어져 내린다
아래로 내려 안부에 이르고 마산봉까지 다시 오르막이다
해발고도 1052m의 마산봉에 섰다
봉우리 정상석은 귀여운 정상석 말고도 움직이는 나무 팻말 표지석이 하나 더 있다
정상에는 사용하지 않은듯 망가져가는 군인들 벙커가 있었다
알프스 스키 리조트를 서쪽에 품고 있는 마산봉은 예전에는 고원속에 평원한 흘리를
품고 있는 수수한 산이였다
산을 혜손하면서 대단위 종합레저타운 알프스 스키장과 리조트를 건립하였으나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다
대간 종주의 시작과 끝인 마지막길이 눈앞에 보인다
마산봉 정상에서 알프스 스키장으로 내려가는 가파른 계단과 흙길이 섞여 있다
알프스 리조트 절개지 상단이 보이고 이어 슬로프 길은 억새와 잡풀로 우거졌다
가을 한철 찬란한 은빛으로 억세게 사는 억새가 마지막 군무를 펼친다
무분별한 개발로 혜손시킨 자연은 그냥 내버려 두면 자연스럽게 회복될것이다
자연처럼 사람도 웬만한 병치례는 그냥 나두면 회복되련만 요즘은 어디가 조금
고장인가 싶으면 병원과 한의원으로 쇼핑 다니듯이 다니는 세상이다
어느날 십년은 젊어보이는 옛동창이 만났다
우리 나이에는 수리해가며 살아야 한다나
세월의 흐름인 피부 주름살을 없앤다고 영혼의 주름살이 없어질까 의문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어차피 나이 드는것은 매한가지이다
헨리 데이빗 도로우의 '일기'에서 "영혼이 자연과 결합해야 지성이 풍부해지고
상상력이 생긴다"고 했다 풍부한 지성이 아니래도 보통으로 살기 위해서는
사람도 자연인걸 잊어서는 안되며 자연을 닮아가야 한다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 흉물스런 시멘트 블럭의 리조트 건물을 지나고 임도를 건너
군부대를 지났다
다시 숲길로 들어선 대간길은 아스팔트 도로로 나와 또 다시 숲길로 들어서야 하거늘
스키장이 폐쇄되어 문 닫은 식당과 상가들 사이에 또 다른 공사중인 현장에서
우왕좌왕 하느라 1.8km를 도로 따라 걸어 마침내 백두대간 종주 기념공원이 나왔다
기념공원에 있는 수십여개의 검은 대리석 기념 비석들을 마치 대간길 걷다가
죽은 추모비로 착각했다
자세히 보니 완주 기념비였다
굳이 검은 대리석을 공원에 심어가며 이름을 알리고 싶을까
흔적없이 들꽃 하나 피우면 될것을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공원을 벗어나
이어 진짜 진부령에 도착했다
구곡 양장 고갯길이 장장 16.6km로 이어지는 진부령에서 드디어 곰과 상봉했다
지도에 표기된 해발 고도 529m의 진부령은 강원 인제군 북면과 고성군 간성읍을 잇고
소양강의 지류인 북천과 간성으로 흘러드는 같은 이름의 북천의 분수령이 되고 있다
도로표지판에는 높이가 520m로 표시되어 있었다
간성과 한계리 국도가 지나는 이 고개는 중부지방의 백두대간 여러고개중에 가장 낮아
예전부터 영동과 영서지방의 물산이 교류하는 고개였다
군부대의 허가를 받아야만 갈수있는 칠절봉 너머 향로봉을 제외하면 통상 진부령이
지리산에서 달려오는 백두대간 북진의 끝점이고 백두대간 남진의 시작점이다
진부령 고갯마루의 진부리쪽 길가에는 동족상잔의 흔적인 육이오 전쟁
향로봉 전적비가 서 있다
걷기 시작한지 여덟시각이 흘러서 비로소 남진의 첫번째 구간을 마쳤다
기뻐 펄쩍 뛸줄 알았더만 국토의 등줄기가 이어지지 못하고 철조망으로
가로막인 슬픔과 교차한다
법정스님은"걷는다는건 자연과 서로 통하는 놀이다
어머니 대지와 하나되는 놀이이고 본디 모습으로 돌아가는 놀이다"라고 말했다
자연과 교감하는 놀이하러 금강산 너머 머리에 물 이고 있는 백두산 끝까지
두발로 꼭꼭 밟으며 갈수 있는날이 오기는 올까
날씨 마저 찌푸등등 싸늘하게 식어 버린 저녁 나절이 되어가고
보내고 싶지 않은 가을은 이제 저만치 떠나가고 있었다
문 닫은 미술관과 식당 앞에서 한시간이나 떨다 서울행 버스로 귀가했다
미시령 너머
한걸음씩만 올랐다
똑 바로 걸어도 나타났다 사라지는 산자락은 구불구불
용트림을 하고 있다
한걸음 한걸음으로 셀수 없을 만큼 올랐다
햇살이 일었다 운무에 갇혔다
구름 바다위에 우뚝 솟은 섬을 찾아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올랐다
고개 너머 그곳에 갈때까지
하늘 아래 허공으로 뻗어내린 길이 아득하여
나는 하늘만 보이고
산은 나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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