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가족 여행 후기

2024. 7. 19. 09:36가족

장마철이여도 계획한 가족여행을 갔다

내려가는 동안 비가 내려 걱정했는데 막상 무주에 도착해보니 땡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도심을 벗어나자 진초록 산야를 가로지르며 달려가는 차창 넘어로 여름도 달려가는 중이다

하얀 구름도 회색구름도 함께 달려가다 어느새 비를 뿌리다 다시 회색구름에서 흰구름으로

하늘도 우리가 달리는 속도만큼 빠르게 변화무쌍한 날이다

삼십도를 오르내리는 더위에는 여행은 엄두도 못내지만 모처럼 자식들이 한데 모일 기회가 흔치 않고

온가족이 함께 여행하기도 쉽지 않기에 따라 나섰다

처음엔 망설였지만 결과적으로 따라가길 참 잘했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은 날을 살고 있을 나에게 이박삼일은 작은 일상탈출이 될것이다

의기 투합한 삼남매가 숙소며 먹을거리 교통편 모두 알아서 할테니 엄마 아빠는 그냥 함류만 하면 된다는

하명대로 몸만 가기도 쉽지 않은게 여태 자식들을 먹여살린 엄마인 탓이다

삼계탕 끓일 홍삼육수와 토종닭 두마리 찹쌀을 준비하고 재워둔 갈비와 내가 먹을 양배추 당근 오이까지

챙기니 짐은 점점 불어났다

이박삼일동안 크고 너른차를 빌려 뭐 버스 타고 기차 탈일도 아닌데 짐 좀 늘어나도 상관없다

그래도 남편과 나는 등산 다니던 버릇대로 각자 배낭을 하나씩 메면 간단할테고

아이들의 짐과 사람들을 한가득 차에 태우고 휴계소 들렀다 가는 네시간 동안 즐거운 여정이였다

다시 없는 오늘이다

구천 초등 골목길 끝에 자리잡은 숙소는 구천동 계곡이 바로 옆이고 아이들 놀이터겸 수영장이 딸려 있었다

아직 성수기가 아니여서 그런지 아님 장마철이여서 그런지 자갈밭인 마당 여기저기 풀들이 나있고

차는 두대만 주차되어 있었다

물소리 새소리 들리는 숙소엔 우리 식구뿐이였다

저녁을 먹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고 공기는 후덕지근하여 흐르는 계곡물에 발이라도 담그려고

짐을 풀고 슬슬 나가보니 벌써 손주들과 사위는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고

딸은 물이 차서 춥다면서도 노는 지 자식들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아들과 개 엄마가 된 며느리도 계곡에서 물총싸움 하며 어린아이처럼 놀고 있었다

나도 계곡으로 내려갔다

덕유산 등산은 여러번 다녀왔어도 구천동 계곡을 처음이다

청명한 파란 하늘아래 초록숲이 우거진 청정계곡이였다

마구잡이로 놓인 바윗돌들이 삐죽삐죽 헛발이라도 딛으면 넘어지기 십상인 계곡 아래로 흘러내리는 물은

그닥 깊지 않아도 유속이 제법 빨라 물속에 들어가긴 위험할것 같아 난 발만 담그고 앉아 있었는데

한참 물총싸움에 신이 난 남편이 바닥의 미끄런 바윗돌을 밟았는지 물속으로 풍덩 넘어졌다 일어난다

그러길래 늙은 삭신은 조심 또 조심해야하는걸,칠십이 넘은 남편은 젊을때만 생각하고 나이를 잊고 지내는 사람이다

크게 다치지 않아 천만다행인데 이박삼일내내 한쪽 엉덩이가 아파 바로 앉지 못했다

저녁밥을 준비해야 할텐데 아들 며느리는 밥 걱정하지말고 쉬었다 부르면 나오라는 성화로 우리는 방으로 들어왔건만

휴계소에서 먹은 점심이 부실하고 집에서 저녁 먹을때가 되어서 그런지 허기에 손도 떨리는거 같아

빵 한개를 얻어 먹고 기다렸다

내가 먹을것은 내 손으로 준비해야 직성이 풀리는것도 병인가 

닭백숙을 끓인다는 아들 며느리가 못내 믿어지지 않았지만 꾹 참고 기다렸다가 푹삶아진 닭고기를 뜯어 먹었다

닭 뱃속에 넣을 찹쌀은 따로 죽을 끓이고 있었다

이리 끓였든 저리 끓였든 맛있는 저녁식사였다

김서방 퇴근후 출발한 지혜네는 저녁 일곱시나 되어 도착했다

거의 이삿짐 수준으로 많은 짐을 싣고 왔는데

어제 밤에 코스트코에서 장보기했다는 먹을거리를 엄청나게 싸들고 왔다

어느새 열한명으로 늘어난 대 식구가 되다보니 한끼 먹는게 보통일은 아닌게 되었다

오랫만에 타지에서 모두 모이자 자식들도 아이들도 즐거워 보인다

아파트에서 뛰지 말라던 내 목소리도 쏙 들어갔으니 역시 아이들은 뛰어야 쑥쑥 자란다

 

 

집 떠나 하룻밤이 지났다

예보대로 날씨는 비는 안내리고 구름낀 하늘이다

내가 자는 방은 식사 준비하는 곳이 아니라 오늘 아침도 아들 며느리가 해준대로 먹어야만 한다

조식은 베이컨과 베이글 스크램블 그리고 어제 먹다 남은 닭죽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오전 일정으론 케이블카 탑승해서 해발고도 1525m 설천봉에서

600m 떨어진 덕유산 정상인 해발고도 1614m의 향적봉에 오른다

덕유산은 눈꽃 피는 설경산으로 으뜸이지만 휴가온 이 계절이 여름이라 할수없다

여름인들 사방팔방 펼쳐지는 초록 풍광은 눈이 시원해질것이니 무덥지만 않으면 괜찮다

높이로만 따진다면 1947m 한라산 1915m 지리산 1708m 설악산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네번째로 높은 산이다

백두대간의 한줄기를 이루는 덕유산 산줄기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는

덕유산자락 여러 봉우리들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어젯밤 내가 추천했다

딱히 계획된 일정이 있는것도 아니고 가족끼리 밖에서 맑은 공기 마시고 밥 먹는게 여행이라면

하나쯤 특별난것도 나쁘지 않겠지 싶었다

엉덩이를 부딪친 할아버지와 케이블카 탑승불가인 개만 빼고 열명이다

케이블카는 천천히 올라 초록산 너울이 보이는 너른 공터인 설천봉에 올랐다

팔각정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서 전망은 점점 눈에 들어오게 된다

등산이라기보다 낮은 계단 걷기수준으로 오르다보면 누구나 쉽게 덕유산 정상에 도달한다

덕유산은 벌써 여섯번째다 

설악이나 북한산의 화강암 바위산이 아닌 흙산이란것도 다른 매력이다

넉넉하고 덕이 큰 산 이름대로 임진왜란등 난리를 겪을때 백성들이 이 산으로 숨어들어

적군이 찾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산경도에 나오는 백두대간 지리와 실제 걸어 보아도 지리산에서 북진하는 대간길은

육십령을 지나면 덕유산자락으로 들어서게 되면서

이어 남덕유산인 할미봉에서 삿갓봉 무룡산을 거쳐 주봉인 향적봉을 조금 비껴

덕유평전인 백암봉에서 동진하게 된다

북으로 달려 나가며 대덕산 황악산으로 올라가며 백두대간은 이어진다

덕유산 종주길이 17km정도라 일박이일을 걸었었다

정상석도 귀신 할미마냥 빨간 글씨로 써 있었던 할미봉에 오르려면 썩음썩음 나무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발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 제정신으론 올라가기 힘든구간이다

지금쯤 수리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지리에서 설악까지 설악에서 지리까지 남한 백두대간길인 735km을 한번도 아닌 세번을 육년간 어떻게 했는지

아득하기만하다

그때가 젊었었나 보다

향적봉 정상에 서면 바위돌로 이루워진 정상마루가 넓게 펼쳐 있고 정상석도 자연스러운 바위라 정겹다

주변에는 싱싱한 잡풀들이 바람에 춤을 추고 있고 우리 머리카락도 천지 분간을 못하고 휘날린다

쨍한 햇살이 아쉬워도 구름끼고 바람불어 산행하기 딱 좋은날이다

겨울이라면 주봉에서 중봉 사이 주목과 철쭉 군락지인 1km가 설경의 하이라이트가 되겠지만

바람이 거세고 아이들 다리 아픈 핑계로 향적봉 휴계소까지만 갔다가 싸간 간식만 먹고 뒤돌아 섰다

더울까봐 얼음 수건에 얼음 목걸이까지 달고 왔는데 바람까지 부니 나는 시원해서 살것만 같은데

아이들은 춥다고 난리다

세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점심은 버섯과 소고기가 들어간 전골과 부대찌게 전골을 먹었다

어디든 들고 가서 끓여 먹을수 있는 간편식이 있다니 참 편한 세상이다

집 나와서 밥하느라 개고생 할 필요없이 이런 먹거리도 좋은거 같다

예전에는 밥 안먹으면 큰일이나 날것처럼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압력밥솥 부터 챙겼었다

오후엔 아이들은 수영장에서 놀고 우린 달리 할것도 없었는데 아들이 설치해준 영화,서울의봄을 보았다

작년 겨울에 방영되어 천만관객을 넘어섰는데 귀병 때문에 극장가는 도전을 못해 놓친 영화다

전두환을 전두광으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1979년 12,12 반란 사건이라 결말을 알아서 그런지 딱히 감동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황정민보다 수도 경비사령관인 이태신역을 맡은 정우성 연기가 나았다 

옆에서 같이 보던 남편은 어젯밤 잠을 못자고 설사까지 하여 기운없다더니 영화보단 잠이 보약이다

영화가 끝났어도 하루해가 길어 아직 저녁 전이다

저녁밥은 돼지고기 바베큐다

연기를 마셔가며 삽겹살을 굽고 구운 삼겹살을 맛있게 먹고 아무튼 먹는것이 사는것이다

돼지고기를 먹느라 소고기는 그냥 가져갈 판이다

저녁 식사후 휴식시간에도 아이들은 정신을 홀라당 뺄듯이 시끄럽게 논다

조용하게 노는법이 없으니 건강해서 그런거니 여겨야한다

화면에 나오는데로 따라하기만 된다는 어른들 놀이는 집에서 절로 운동효과도 있겠다

이박삼일 여행은 어제 왔는데 내일이면 돌아가야 한다

따지고 보면 오늘 하루 노는거다

어둠이 내리고 밤이 되자 저녁나절 다른 투숙객들이 들어 왔는지 아이들소리와 

후덕지근한 공기를 타고 두런두런 사람소리가 가끔씩 들려온다

일년만에 세 남매가 만나 맥주 한잔씩 들이키며 못다한 정을 나누도록 나두고

나는 일찍 숙소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낳고 특별나게 뒷바라지한것도 없는데 어엿한 성인으로 자라 각자 지 살림하며 사는게

무엇보다 건강한게 모두가 감사한 밤이다

전날은 숙소 옆에 있는 구천 초등운동장을 세바뀌나 돌고도 잠자리가 바뀐탓에 뒷척거렸지만

오늘밤은 죽은듯이 푹 잤다

 

다음날 아침은 내가 준비했다

어제 먹다 남은 구운 돼지고기와 김치를 넣어 볶음밥으로 조식을 챙겨주니 맛있다며

다 들 잘 먹는다 손주들만 빼고

자식들의 자식까지 챙기기에는 역부족이니 알아서들 키워야 한다

반딧불 박물관에 들렸다 올라간다는 예정은 없던일이되고 말았다

짐을 챙겨 숙소를 떠나야할 시간인데  하늘이 어두컴컴해지고 한두방울 내리던 비가

우두둑 거세게 빗방울이 굵어지고 앞이 흐릿하게 보일정도로 쏟아진다

비가 내려도 가족여행인지라  함께 구경가면 모를까 개는 들어갈수 없는 구역이라하니

그냥 일찍 집으로 가는게 나을성 싶어 차는 비오는 무주를 뒤로 하고 고속도로로 올라탔다

옥수수대가 세찬 비에도 끄덕없이 튼실하던데 이제는 옥수수철이 되었나보다

별빛 쏟아지는 밤 평상에 둘러앉아 수박 참외 복숭아 감자 옥수수를 배가 터지도록 먹을수 있던 때도

여름철 한철인데 이젠 공짜로 갔다 줘도 먹을수가 없다

소화도 안될뿐 아니라 당뇨 전단계라 하루에 두끼만 먹으란다

 

내려갈땐 새벽부터 아들이 차를 빌리고 운전하여 식구들 데려가는라 힘들었는데

올라올땐 사위가 운전했다

둘 다 안전운전으로 오고가는 차편이 안락했다

이제 각자 생활전선으로 뿔뿔히 헤어지고 나니 가족여행이 오래전에 다녀온 느낌이다

한달간 난리 구석을 피워댔던 방을 치우고 세탁 정리하느라 며칠을 보내고 나도 고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올해는 장마기간이 길어지고 장마비가 연일 쏟아지다 멈췄다를 반복하는 이상야릇한 기상이다

내 머리 마냥 지구도 열 받아서 터질 지경인가 지구 온난화는 여러가지로 기후 변화를 가져와

사계절 뚜렷한 한반도 대신 아열대 기후의 한반도가 되었다

여름이 길어진 나라 칠월이 다가도록 후덕지근한 공기는 바람을 타고 몸에 달라붙어

무덥고 지긋지긋한 여름도 성큼성큼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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